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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그 소식을 들었다고 할지, 혹은 보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문라이터 점검을 마치고 쉬고 있었어. 쉰다고 해봤자 며칠째 보던 풍경을 계속 보고 있던 것뿐이었어. 바람도 불지 않고, 아무것도 살아 움직이지 않는 광경. 지구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거대한 천체들을 보는 것도 도착한 지 며칠 만에 지겨워졌어. 달에 처음 오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이번 출장이 마지막이 되는 걸 빌 정도였잖아. 너도, 나도. 처음에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어. 잡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거 있잖아. TV를 켜거나 끌 때 들리는 미세한 소리. 이곳과 지구 사이에는 수많은 우주전파가 떠돌아다니니까 그런 소리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그날 들린 소리는 뭔가 달랐어. 허공에서 바늘을 떨어뜨리는 것 같았어. 나는 기지 벽면에 달린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어. 마음대로 맞춰놓은 몇 개의 채널을 내보내던 화면 중 몇 개가 한꺼번에 일그러졌어. 그리고 아무 소리도, 영상도 전해지지 않았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어. 달에 나와 있는 상황에서 기지의 모니터들이 오작동을 일으키는 건 지구에서 TV가 치직거리는 것과는 다른 문제야. 게다가 그 모니터들이 지구와 연결된 통신 모니터였다면 더더욱. 시험 삼아 채널을 바꿔 보았지만 내부 데이터를 보여주는 화면들은 정상적으로 작동했어. 통신망에 문제가 생긴 걸까. 나는 서둘러 지구 관제센터에 접속했어. 접속이 되지 않았어. 몇 번이나 비상 연결번호를 눌렀어. 관제센터 중앙통제실에, MOONBOARD에, 그리고 여러 개의 암호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연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너에게. 숨이 가빠왔어. 몸에 달아놓은 장치가 심박수와 호흡의 증가를 감지하고 경고음을 울렸어. 이 호흡이 어쩌면 지금 유일한 ‘인간’의 호흡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출장 가게 됐어.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다가 나는 너에게 말했어. 너는 샐러드를 휘젓던 포크를 멈추고 나에게 물었어. 그거 아직도 폐기 안 했어? 나는 무안해져서 물만 들이켰어. 확실히 즐거운 일은 아니지. 달로 떠나는 출장이라니. 대기권을 벗어날 때의 압력은 아무리 훈련을 받아도 익숙해지질 않고 위험수당도 적어. 게다가 반 년 전부터 인기가 바닥을 친 아이템 때문에 떠나는 것도 달갑지는 않아. 우주환경보호론자들도 이제 시큰둥해 할 문제였지. 너는 계속 말을 이었어. 누가 아직도 달에 관심을 가져. 오빠도 출장 다녀오는 대로 팀 옮겨달라고 해. 정비팀에 있으면 세 달에 한 번은 유지보수 때문에 우주출장 가야 하잖아. 내 표정이 굳어 있었는지 네가 조그맣게 덧붙였어. 그래도 그거, 문라이터, 오빠가 회사 들어가서 처음으로 설치한 기계니까. 잘 하고 와.

인류가 달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게 언제였지? 데이터베이스에 물어보면 바로 대답이 나올 테지만 그러고 싶지가 않아. 솔직히 요즘은 숨 한 번 쉬는 것도 조심스러워. 아껴야 잘 산다가 아니라 아껴야 산다는 상황이잖아.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진 편이야. 처음엔 정말 당장 죽을 것 같았거든. 밥도 안 먹고 숨도 안 쉬어야 될 것 같았어. 지금은…… 이런 말 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잘 지내고 있어. 가끔 지구에서 가져온 영화도 보고 외부 카메라 배율 높여서 지구도 봐. 여전히 구름이 표면을 가리고 있지만 무언가 달라지진 않았나 눈을 크게 뜨고 살펴봐. 다행스럽게도 외부 카메라는 태양열 전지라서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아.

오랜 세월동안 인류의 관심은 달에 쏠려 있었어. 우주로 나가게 된 인류가 처음으로 택한 목적지도 달이었지. 달 표면에 유인 우주선을 착륙시키고, 생명체 여부를 탐사하고, 지질학적 특성을 연구하고. 그러다가 달이 결국 바윗덩어리에 가까운 천체라는 걸 알게 되자 대중들은 다른 천체로 눈을 돌렸어. 하지만 높으신 분들에겐 여전히 문제가 남아 있었지. 석유도 뭣도 없는 별이라고 해도 달은 엄연히 지구의 위성이잖아. 그러므로 지구인들에겐 달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 거야. 세계 각국의 정상이 모여 달의 지도를 놓고 서로의 영토를 나눴지. 그 과정에서 약간의 충돌과 주먹다짐 및 점잖지 못한 단어들이 오갔다곤 하지만 그야 모를 일이지. 결국 각 나라는 달의 일정 부분 영토에 대한 권리를 획득했다고 해. 그렇지만 군사적으로도 지형적으로도 쓸모없는 외계 영토를 가장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한참 고민해야 했지. 그 상황에서 나선 게 우리 회사였던 거야. MOONBOARD 말야.

각 나라에 지부를 둔 국제적 기업인 MOONBOARD는 달의 영토를 조금씩 사 모았어. 몇 년 뒤에는 달에 웬만한 독립국가가 가진 만큼의 영토를 보유하게 되었지. 그리고 광고 사업에 뛰어든 거야. 달에 기록을 남기는 광고였어. 거대한, 그러나 달의 면적에 비하면 작은 광고판을 달에 세울 생각을 한 사람은 MOONBOARD의 사장이 최초였을 거야. 고배율 천체망원경으로 찍은 달의 사진엔 광고판이 꽤 뚜렷하게 찍혔고 삽시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지. MOONBOARD가 내세운 전략은 그거였어. 달에 남긴 기록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 대기가 없는 달의 산맥은 지구보다 훨씬 험준하지. 풍화작용이 없으니까. 돈을 받고 당신의 메시지를 달에 새겨드립니다. 영원한 기록을 당신에게. 메시지를 새기기 위해 MOONBOARD는 달에 기계장치를 보냈어. 그게 내가 회사에 들어가 처음 한 일이야. 문라이터를 달에 설치한 것. 아마 나는 이번 비행이 문라이터를 만나는 마지막 인사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작별 인사를 고한 건 문라이터가 아니라 지구였어.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 너는 피곤해 보였어. 노이즈가 많은 화면 속에서 연신 눈을 비비고 있었지. 지구를 비껴가기로 한 운석의 궤도가 바뀌었다며 낙하궤도 계산 때문에 정신이 없다고 했어. 뭐, 그래도. 하품을 한 네가 말했어. 잘 비껴 갈 거야. 아마도. 너는 호출이 왔다며 손을 흔들었어. 그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 너도, 나도, 지구도.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MOONBOARD는 달에 남긴 메시지가 영원할 거라고 했어. 매해 갱신되는 메시지 관리비를 감안해 볼 때, 그건 당신이 살아서 돈을 낼 수 있는 동안 메시지가 존속될 것이라는 말이었어. 모든 인류가 이렇게 일순간에 사라지리라는 걸 알았을까? 지구의 한 점에서 불꽃이 일어났고, 수증기와 화산재가 지구 표면을 뒤덮었어. 그리고 벌써 반 년이 지났어. 반 년째 아무도 나에게 신호를 보내지 않았어.

처음으로 내가 달에 왔을 때 나는 문라이터를 시험 작동시켰어. 인류가 달에 새긴 첫 메시지는 독실한 기독교인 사장의 염원에 따라 성경의 첫 문장이었어. 그리고 나는 회사가 전송한 메시지들을 새기기 위해 그 문장을 지웠어. 지금 달의 표면은 거대한 낙서장에 가까워.
MOONBOARD는 달의 표면을 메우고 깎아 평평하게 만들었고 수많은 메시지가 새겨지거나 지워졌어. 프로포즈, 이름, 날짜 같은 것들이 온갖 나라의 언어로 난잡해.

비상 산소와 식량은 이제 한 달 정도 분량이 남아 있어. 하루가 일 년 같다는 말이 이곳에서는 농담이 아냐. 달의 자전과 공전 주기는 약 28일로 동일하니까. 그래서 나는 남은 한 달 동안 내가 아는 모든 문장을 달에 새겨보려 해. 한 달이 지나면 나는 내 죽음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겠지. 훗날 외계의 누군가가 내 기록을 발견한다면 그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안녕. 이제 더 이상 통신기를 쓸 일은 없을 거야. 나는 지구를 포기했어.

손을 들어 키보드를 두드린다. 모니터에 입력된 문장은 문라이터로 전송되어 원하는 서체와 크기로 달 표면에 새겨진다. 나는 쓴다. 달의 자전과 공전주기는 약 28일로 동일하다. 지구의 반 년이 이곳에서는 6일이며 6년인 셈이다. 나는 6일 동안 쉬었으며 마지막 날에 내 모든 기록을 이곳에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