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향기 있는 삶 |
| |
우리 국민들은 지난 50여 년 동안 참으로 숨 가쁘게 살아왔다. 무엇이든 ‘빨리빨리’ ‘싸게싸게’ ‘후딱후딱’ ‘얼른얼른’ ‘대충대충’ 해치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과정에서 당초 목표치를 앞질러 나간 ‘조기(早期) 달성’ ‘초과(超過) 달성’은 중요한 덕목으로 평가되었다. 오죽하면 실용과 효율을 외치는, 귀를 틀어막은 토건 전문 불도저 정권까지 등장해 무엇이든 마구 밀어붙이고 있다.
그렇다. 역대 정부는 거의 예외 없이 경제성장을 외쳤다. 그들은 마치 경제를 위해 태어난 사람들 같았다. 물론 경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니까. 하지만 조금 잘 먹는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수염까지 석 자로 자라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여러 정권이 명멸했다. 정직하지 못한 정권, 인권탄압 정권, 친인척 비리로 얼룩진 부도덕한 정권, 특권층만 살찌우는 부자 정권 등등…… 그 색깔과 특징도 가지가지였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대통령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지도 못했다.
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사실은 대통령부터 성공해야 한다.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국민들로부터 존경 대신 불신을 받아왔다.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대통령 밑에 빌붙어 호가호위하던 정권 실세들도 도마 위에 올라 비판의 칼날을 받아야 했다.
어느 사이엔가 정치는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멀쩡하던 사람도 정치권에만 들어갔다 하면 이상하게 변질되는 풍토.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사태가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원인은 위정자들을 비롯한 사회 전반의 정신문화 빈곤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세월 정부가 목이 터지도록 경제성장을 외치는 동안 정신문화는 퇴행을 거듭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정신문화의 가치에 무지했다. 그 결과 황금제일주의가 우리 사회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되었고, 문화와 예술은 뒷전으로 밀려나다 못해 질식 상태에 와 있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문화와 예술은 인생의 자양분이다.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이 전제되지 않는 한 경제발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심각한 정신적 골다공증에 걸려 있다. 뿌리와 줄기가 허약한데 잎만 무성한 형국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정신문화의 중요성을 망각한 채 오직 경제발전을 위해 두 눈에 핏발을 세우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종종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외쳐왔다. 하지만 삶의 질은 지난 세월 경제발전과 반비례하여 더욱 핍진해졌다. 남이야 죽건 말건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이기주의가 판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인정은 황폐화되었다.
인정 없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인정이 고갈된 이후에는 약육강식으로 대변되는 정글의 법칙만 남게 된다. 이는 인간의 세계가 아닌, 바로 동물의 세계인 것이다.
우리의 삶에는 향기가 없다. 인문학을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중심에 바로 문학이 있다. 문학은 인생의 윤활유(潤滑油)와 같다. 아무리 좋은 기계라도 양질의 윤활유가 없으면 곧 고장 나게 마련이다. 문학이 홀대받는 사회에서 삶의 질을 논한다는 것은 공허한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다.
대관절 누구를 위한 경제인가. 당연한 말이지만 정치도, 경제도, 인간중심이어야 한다. 인간을 위한 정치, 인간을 위한 경제가 아니라면 전혀 가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정부와 정치권은 크게 뉘우쳐야 한다. 이제는 대통령부터 문화와 예술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문예 창달에 역점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바야흐로 우리는 향기 있는 삶을 살아야 할 때가 되었다. 경제 제일주의도 좋고 실용이며 효율도 좋지만 하루 빨리 경제일변도의 무분별한 행보를 되돌아보며 숨고르기를 할 때가 되었다. 배부른 돼지보다 굶어 죽는 소크라테스가 더 위대한 것은,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가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이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