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홍준     © 운영자

- 졸시 「술이 있는 집」 전문

내 아버지는 눈물이 많으셨다. 이런 일로도 울고 저런 일들로 우셨다. 그래서 내 아버지는 두 볼이 홀쭉하고 살이 없었다. 벌초 때가 되면 안산자락에 있는 할아버지 무덤 풀을 베시고 나를 따라오지 못하게 한 다음 혼자 낙엽송 밭 속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잠시 후에 눈이 벌개져서 나타나셨다.
아홉 살에 죽은 형의 무덤은 안산자락 낙엽송 밭 속에 있었다. 무덤이라고 생각지도 못할 만큼 작고 초라하고 형편이 없었다. 응달진 낙엽송 밭 속이라 그런지 가늘고 기다란 풀포기만 듬성듬성 나 있을 뿐이었다.  
할아버지는 스물아홉에 돌아가셨고, 형은 아홉 살에 죽었고, 아버지는 쉰다섯에 돌아가셨다. 우리 집 남자들은 다 단명을 한다.
내 아버지는 하모니카를 잘 부셨다. 곧잘 울어서 홀쭉해진 두 볼에 바람을 집어넣었다가 뺐다가 숨을 불어넣으면 은빛 하모니카에선 멋진 음이 만들어져 나왔다. 늦여름이었고 초저녁이었다. 두 볼이 홀쭉한 아버지로부터 나는 하모니카를 배웠다. 
(아버지의 하모니카로 하모니카를 배우면 일찍 죽는다는 속설이 있는지도 모른다.)
동생과 나는 아버지의 자전거로 자전거를 배웠다. 수도 없이 아버지의 자전거를 처박았고, 또 다시 아버지의 자전거를 올라탔고, 마당을 뱅뱅 돌았다. 
(아버지의 자전거로 자전거를 배우면 이놈의 세상 맴돌기만 한다는 속설이 있는지도 모른다.) 
가난했지만 배드민턴도 사 주셔서 동생과 나는 자주 마당에서 빨랫줄을 네트 삼아 배드민턴을 치고 놀았다. 기와지붕 위로 올라간 배드민턴공을 긴 장대를 가져와 끌어내리곤 했다. 
아버지는 전기회사 수금원이었는데 해거름이 되면 늘 반 술이 되어 때 묻은 동전이며 지폐며 더러운 돈이 잔뜩 든 하늘색 가방을 메고 돌아오셨다. 종일 이집 저집을 돌아다닌 피로와 술에 곯아떨어진 아버지 옆에서 동생과 나는 그 서러운 돈 냄새를 맡으며 분류하고 세고 묶었다. 
일일이 말할 수도 없고 말하기도 싫은 가계사가 있다. 내 가계사는 순탄하지 않았고 내 DNA는 한숨과 눈물과 상실과 좌절감으로 얼룩진 것이었다. 나는 사소한 일에도 분노했고 불화했고 몸부림쳤고 떠돌았다. 
네 번의 가출!
그때 나는 왜 그랬을까. 아버지 앞에서 수도 없이 밥상을 꺼 엎었다. 이놈의 집구석 다 불질러버리고 말겠다고 발악을 하고 대들었다. 나는 천하에 몹쓸 놈이었다. 눈물이 많던 내 아버지는 담배를 물고 자주 뒷마당으로 가셨고, 모질어질 대로 모질어진 어머니는 자식이 꺼 엎은 밥상을 수도 없이 수습했고, 내 어린 동생들은 겁을 먹고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나는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터지는 것 같다.
1990년. 설날이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그때 나는 경북 영양에서 벌목한 나무를 제재소나 광산으로 보내기 위해 트럭에 싣는 상차꾼 일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갈이 왔다.
아버지는 병원에 일주일쯤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어차피 오늘밤을 못 넘길 것 같다고 병원에서 집으로 모시고 가라고 했다. 글쎄 그랬다. 요즘 같으면 임종 직전에도 병원으로 모시고 가는데 그때만 해도 병원에서 돌아가시는 것도 객사라고 집으로 모시고 가라고 했다.
병원 모퉁이에서 큰 누나와 큰 자형과 몇이서 얼굴을 모으고 의논을 했다. 다들 내가 장남이니 나보고 결정을 하라고 했다. 난감했다. 스물아홉 살 나는 어렸고, 아버지는 의식이 아주 멀쩡했고 전혀 돌아가실 분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도 의사들은 그렇다고 했다.
어머니가 집으로 가자고 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링거를 단 아버지를 모시고 우리는 시골집으로 올라갔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인턴 한 사람과 간호사가 동승을 한 채였다. 아버지의 팔뚝에 꽂힌 링거가 다 닳아 없어지면 돌아가시는 거였다.
시골집 흙벽에 걸린 링거병은 차갑고 싸늘하고 맑아 보였다. 앰뷸런스가 돌아가고 동네 분들이 하나둘 찾아왔다. 아주머니 한 분이 나를 가리키며 이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우리 큰 자슥이제 누군 누구라!”
아버지의 대답은 짧고 시큰둥하고 무뚝뚝했다. 나를 바라보시지도 않고 그 대답을 하셨다. 우리 큰 자슥이제 누군 누구라! 이 말은 아직도 내 귓바퀴에 붙어 떨어지지 않고 있다. 아버지가 내게 마지막 남기신 말이고 많은 뜻을 함축한 말이기 때문이다.
음력 이월 초사흘. 꽤 추운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갑갑하다고 마루로 나가자고 하셨다. 엉덩이 차가운 마룻바닥에 앉아 아버지는 먼 눈빛으로 동구 밖을 보시다가 담배를 한 대를 달라고 하셨다. “그래 마지막 가는 길이니 피우고 가시오!” 머뭇거리는 우리 대신 내 모진 어머니는 담배를 가져다주셨다. 아버지는 소주도 한 잔 달라고 하셨다. “그래, 평생 그리 좋아하던 술이니 잡숫고 가시오!” 어머니가 술 한 잔을 또 갖다 주셨다.

▲ 아버지(맨 오른쪽)와 그의 형제들    © 운영자

그 술 그 담배를 태우신 아버지는 됐다고 했다. 아버지는 안방에 가 누우셨고 잠이 드셨다. 새벽 4시 13분. 어머니가 우리를 모두 나가라고 했다. 주섬주섬 문을 열고 나가는 우리들의 등 뒤에서 어머니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고했다. “더럽고 몹쓸 것들일랑은 다 나한테만 주고 가소이. 자식들한테는 절대로 물려주지 말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이내 진주로 내려왔다. 그해에 나는 공단문학상을 받았고 그 이듬해 개천문학상을 받았다. 지역에서 주는 상이지만 내 문학의 바탕이 된 상들이었다. 완전히 잊고 지냈던 문학을 우연히 하게 된 것이었다.
1998년. 나는 한 계간지를 통해 등단을 했고 지금까지 세 권의 시집을 냈고 세 개의 창작기금과 세 개의 문학상을 받았다. 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이루어진 일들이다.
단명의 가계사에서 나는 이제 쉰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쉰다섯에 돌아가신 아버지보다는 더 오래 살아야하고, 이제 5년 남았다.
인력으로는 안 된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믿지 않는다.
아버지의 하모니카를 분 것은 내 시의 노래를 위한 것이었고, 아버지의 자전거를 탄 것은 내 삶의 균형감각을 갖추기 위한 것이었고, 아버지의 배드민턴을 친 것은 내 꿈을 셔틀콕처럼 가볍게 저 하늘 높이 띄워 올리라는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