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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는 균형적 사고,정의로운 표현,문화적 요소를 담고 있어야

편집자 주ㅣ2011 서울국제문학포럼 참가 차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가 방한했다. 2001년과 2005년 재단의 초청으로 방한한 이후 대표적인 지한파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르 클레지오는 한국문학과 영화에 관심이 지대하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이종 문화간 소통을 위해 힘쓰고 있다. 작가는 포럼을 마친 6월 재단을 방문해 본 재단 이사장이자 교보생명 대표이사 회장인 신창재 이사장과 세계화 속에 놓인 기업과 문화에 대한 대담을 나누었다.

- 노벨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와 대산문화재단 신창재 이사장과의 만남

J.M.G. 르 클레지오(Jean-Marie Gustave Le Clézio)_프랑스 소설가.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 1940년생 소설『조서(Le Proces-verbal)』『열병(La fievre)』『홍수(Le deluge)』『물질적 황홀(L’extase materielle)』『성스러운 세 도시(Trois Villes Saintes)』『우연(Hasard)』『황금물고기(Poisson d’or)』등

신창재_ 대산문화재단 이사장 겸 교보생명 대표이사 회장, 前서울대학교 의과대 교수. 1953년생

신창재 이사장(이하 신) ● 반갑습니다. 서울국제문학포럼 리셉션에서 뵙고 다시 뵙는군요.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르 클레지오(이하 르) ● 우선 서울국제문학포럼의 성공적 개최를 축하드립니다. 이번 포럼의 가장 큰 의미는 그동안 제가 만난 적이 없었던 앤드루 모션, 가오싱젠과 같은 작가들을 만나 교류한 것과 그들을 통해 따뜻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제 역시 굉장히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화라는 것은 누구나 다 이야기하지만 누구도 구체적으로 의미를 잘 알고 있지 못합니다. 이번에 저희 작가들이 교류하면서 서로 다른 의미로 세계화를 이해하고 있구나, 저런 방식의 세계화에 대한 이해도 가능하구나 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저는 세계문화간 어떤 격차나 헤게모니,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 반대합니다. 저는 문화는 등가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적극적으로 믿고 그것을 위해 투쟁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만남이 더욱 더 소중했습니다.

신 ● 재단에서 세계화를 주제로 포럼을 하게 된 것은 이미 세계화라는 것이 우리 피부에 바짝 맞닿아 있는 현실인데도 무심코 간과되고 있었던 부분을 관심의 영역으로 끌어내 현안, 문제점, 또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는데 실제로 어땠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포럼에 직접 참여하지 못해서 세계 석학, 작가분들께서 어떻게 논의를 했는지,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는지 궁금합니다.

르 ● 이 포럼에 참여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 중에 하나는 세계화라고 하는 현상에 있어서 기술이라든가 기업은 아주 앞서있는 것에 비해 문화는 세계화에 동참하는 것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엔 우선 언어적 장애가 있고요 그리고 또 하나 이데올로기적 장애가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데올로기와 문학이라는 세션이 하나 있었을 만큼 대산문화재단에서도 이 부분을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포럼의 논의는 어떻게 하면 좀 더 자유롭게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기 위해서 경계를 허물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신 ● 서울국제문학포럼을 통해 작가분들의 교류에 도움이 많이 됐으면 하고, 독자들도 그런 여러 가지 행사를 충분히 유익하게 느끼고 즐겼으면 합니다. 재단도 상당히 보람 있게 생각을 합니다.

르 ● 한국문학이 아직까지는 세계적으로는 덜 알려진 아쉬움이 있는데 앞으로 점점 더 세계에 알려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언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한 언어가 가지고 있는 차원을 넘어서 문학이 가지고 있는 어떤 보편성, 보편적인 목소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어떤 보편적인 문제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작가들은 한국의 문제에 대해 세계에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인간이기 때문에 한국인이 겪는 어려움은 모리셔스나 프랑스에서 겪는 어려움과도 사실은 일치하는 데가 있습니다. 그런 것이 바로 보편적인 것이 되는 거죠. 그래서 문학이 민족주의적인 정서를 갖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지만 그 나라의 문학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은 항상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 ● 저는 다른 측면으로도 보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 프랑스에서의 K팝 인기는 그들이 순수하게 한국적인 걸 좋아한다기보다 새롭고 이질적인 한국음악에 반한 한편 그들의 정서를 이해하는 유럽 작곡가들이 곡을 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번 파리 공연은 SM엔터테인먼트에서 수년 전부터 아주 치밀하게 해외진출을 염두에 두고 준비한 것의 일환이라고 합니다. 실행과정에서 현지화를 의식해 유럽 작곡가들을 가담시키고 그들의 리듬과 곡을 붙여 훈련을 시킨 거죠. 한국문학의 전달력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 부언을 하면 우리 재단에서도 프랑스 출판사와 함께 번역, 출판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문학, 음악, 공연이 서로 시너지를 내면서 한국의 실체를 프랑스 - 또는 프랑스를 통해 유럽 전역에 알리는 데 좋은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르 ● 대중문화의 일부로써 K팝이 알려지다 보면 그 위에 고급문화라고 말할 수 있는, 생각과 사고를 더 요구하는 문화를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프랑스는 현재 문학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프랑스 문학은 누보로망 이후 생존이 어려워지고 있고 참여문학이 끝난 이후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타를 잃은 상태에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한국문학은 참여문학이 어떻게 계승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인간의 현실을 표현하는 것이 곧 참여문학일 테니까요. 특히 젊은 작가들이 보여주는 현실주의적인 경향,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겪는 어려움을 묘사하는, 사실적이라기보단 현실적인 글들이요. 예를 들면 김애란, 한강 같은 작가들이죠. 이것은 프랑스 문학에 기여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신 ● 이제 기업경영에 있어서 세계화 문제를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세계화라고 하는 화두는 기업경영에 있어서도 굉장히 도전적인 문제점을 던지는데요, 기업 또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즉 개인적 사회구성원이 아니라 법인으로서의 사회구성원으로 사회와 공존 번영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세계화 문제는 몹시 중요합니다. 글로벌기업의 경우 현지 문화에 적응하고 현지 문화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문화간 소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르 ● 제가 사업가가 아니기 때문에 방향성을 제시하기보단 평상시에 느꼈던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기업과 문화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상품을 정말 구입하고 싶은 상품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상품을 제작한 회사가 균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고 정의로운 것을 표현하고 있고 문화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야만 소비자의 마음을 끌 수가 있고 판매가 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기업은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문화라고 하는 것이 결국에 가서는 이윤을 추구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제주에 갔을 때 도지사님께 제주도가 더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위해서는 문화에 대한 예산을 높여야 한다, 그래서 문화적으로 알려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제주도도 알려지게 될 거고 관광객들이 훨씬 늘어날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업에서 이렇게 문화적인 부분을 지원하는 것은 사실 자유주의의 맥락과 같이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주의라고 하는 것은 항상 한 국가의 정체성이라든가 언어라든가 역사라든가 문화라고 하는 것과 영업판매가 결집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까?

신 ● 기업의 문화적인 역할이 이익 창출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과 앞서 말씀드렸던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기업의 공익적인 활동의 필요성, 그 두 가지에 대해 저도 공감합니다. 교보생명의 공익활동도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임, 역할을 수행하는 길이기도 하면서 은은하게 교보생명의 브랜드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마케팅 차원의 활동이기도 합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경영에 대해 굉장히 잘 알고 계시고 경영자로서 조언을 들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계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르 ● 제가 15년 동안 프랑스의 저명한 출판사인 갈리마르에서 사장님에게 조언을 하는 일을 했었는데요. 그때 제가 주로 했었던 일은 잘 팔리지 않을 것 같은 작품도 무조건 출판하라는 것이었습니다(웃음).

신 ● 교보생명에 경영자문을 해주시는 것도 좋겠네요. 이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같이 문학인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봤으면 좋겠어요. 한국 경제는 대기업 중심으로 구성이 되어 있고 기업들의 영향력이 커서 그런지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강조하고 있어요. 기업이 소규모일 때는 그런 책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다가도 대규모 기업으로 성장하면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파급효과, 사회적 영향력이 커진 문인들도 그런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보니까 문학은 사회의 병리적인 현상을 알게끔 강조하고 밝혀낸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제 생각에는 르 클레지오 선생님 같은 대가들은 그 이상의 책임, 즉 좀 더 사회적으로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까지도 하실 수 있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르 ● 작가가 어느 정도 사회적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희는 정치인도 아니고 경제인도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입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작가가 사회에 대해서 제대로 된 질문만 던지더라도 작가의 사회적 책임은 어느 정도 완수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나이지리아의 노벨상 수상자 월레 소잉카는“내가 글을 쓰는 목적은 사람들이 앓고 있는 병에 약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편두통을 앓게 하기 위해서다”라고 했습니다.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라고 봅니다.

신 ●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해요. 요즘같이 디지털 시대에는 인터넷이다 SNS다 해서 여러 가지 소통의 방식이 있는데 소통의 횟수는 많지만 지혜의 교류는 오히려 줄어드는 느낌이 듭니다. 단편적·말초적·감성적·자극적인 동영상과 음악 등은 있지만 지혜로움을 전하고 전달받는 것은 소외받는 시대인거죠. 그래서 문인들이나 석학들- 특히 문인 중에서도 여러 분야를 통섭할 수 있는 다방면의 경험과 높은 안목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소통하는 과정에서 진실을 보고 장기적으로 사회가 가야 할 바를 제시해주는 큰 목소리가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여력이 된다면 대안이나 방향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어떻게 보면 제가 경영을 하면서 느끼는 리더십의 문제점과 비슷합니다. 알면 그것을 조직원들에게 정확히 이해시키고 당장은 힘들더라도 그쪽으로 가게만드는 게 결국 사회 지도층의 역할이자 리더십의 역할과 일치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르 ● 문학에 아직까지도 위대한 역할이 있고 작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많다고 말씀하셔서 저는 굉장히 기분이 좋은데요, 보통 다른 나라에 가면 문학이 소멸해가고 있고 점점 더 빠른 소통방식들에 의해서 사라지고 말 분야처럼 이야기하는데 이사장님께서는 문학에고귀하고 영예로운 역할이 있다고 말씀해주시니 저는 정말 고무되었습니다.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감정이나 심리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심오한 것이라는 점에 동의를 합니다. 문학에는 굉장히 신비로운 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승우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 한국의 전후 세대의 삶, 독재 이후의 삶에 대해 네이버나 구글이나 백과사전에서 찾은 것보다 더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신비롭지 않습니까? 어떻게 문학이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반적인 지식보다 문학이 주는 힘이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제가 이사장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리더십이 있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소통은 꼭 이루어진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모리셔스 섬에서‘상호문화교류와 평화’라고 하는 재단을 만들어서 문화교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비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대산문화재단이 하고 있는 일을 훨씬 더 작은 규모로 하고 있는 거죠.

신 ● 문학에서 좀 더 예술문화 쪽으로 넓혀서 생각을 해봅시다. 인문학이라는 범주가 있죠. 한국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다, 인문학이 죽어가고 있다, 그렇게 말하는데 기업 현장에서 인문학은 생생하게 살아 있고 더 발전하고 있고 예민해지고 있어요. 그래서 단체에서하는 CEO들에 대한 인문학 강좌들에 몇백 명씩 모입니다. 기업이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항상 사원들의 마음을 결집시켜야 하고 또 고객들의 마음을 읽어내야 되고 그것에 따른 상호 작용에 관심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문학을 포함해 인문학이 경영의 기본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주 언급되는 인문학의 위기, 그건 인문학과 교수님들 그리고 인문학과의 위기이지 실제 인문학의 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또 프랑스는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르 ●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지만 그 이윤이 인간사회 없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회공헌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지식사회에서 인문적 요소, 과학기술적 요소의 균형을 강조하셨는데 제 생각엔 이사장님께서 의사이셨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바로 의사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자질 한편으로는 학문을 추구하는 과학자지만 또 한편으로는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는 인문적인 바탕을 가진 직업이죠. 그래서 균형있는 시선을 가지고 계신 거 같아요. 프랑스와 미국도 인문학의 위기를 아주 많이 얘기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저희 할아버지도 의사셨는데요, 할아버지 세대에는 의사가 되기 위해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더 이상 그렇지 않죠.그러니까 프랑스에서도 고전문학이나 고전어에 대한 지식을 소홀히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그 부분을 굉장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는데요, 그런 점에서 대산문화재단과 교보생명은 이익 추구의 측면과 중요하지만 자주 간과되는 상상력, 창조력, 그것에 따른 인본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고 하시는 것 같아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이 이제 세계적 경제 대국이라는 것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한국의 기술력과 인문주의 간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을 미국이나 프랑스 등 해외에서 배운다면 결과적으로 한국이 국제 사회의 중요한 롤모델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신 ●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말씀대로 제가 의사출신이라 그런 것도 있고 또 생명보험 산업 자체가 제조업처럼 유형의 상품을 제조하는 것이 아니라 무형의 서비스를 파는 사업의 일종이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라 그렇기도합니다. 르 클레지오 선생님께서는 한국에 자주 체류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해외에서는 한국이 북한과 대치상태이기 때문에 위험한 국가라고 생각하는 시각이 많지 않은가요?

르 ● 해외에서 한국을 위험한 나라로 보는 시각은 현실을 잘 알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프랑스에서 한국에 우편물을 부치려고 하면 우체국 직원이“북한이요, 남한이요?”이렇게 물어보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미국의 경우에는 한국에 대한 왜곡이 훨씬 더 심한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한국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옛날에<MASH>라고 부르는 한국전에 대한 영화를 본 것이 전부죠. 그래서 완전히 편견에 가득 찬 한국관, 즉 긴장 상태나 전쟁 상태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매일 신나고 재미나게 웃고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데도요. 물론 전쟁같은 문제는 걱정스러운 일이긴 하죠. 그런 면에서 대산문화재단에서 하고 있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을 통해서 유럽인이나 미국인들이 한국도 그들과 같이 우수하게 살고 있다고 알게 하는 것이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방법입니다. 유럽은 특히 빠른 시일 내 한국이 삼팔선으로 갈라진 상태를 이전대로 복원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 ● 하지만 통일의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양측 지도자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너무 다르고 경제적 부담도 부담인데다 실질적으로 그 문화적인 차이가 많기 때문이죠. 그런 갭을 얼마나 빨리 극복하는가가 한 나라로 합쳐질 수 있는 가능성을 좌우한다고 봅니다.

르 ● 최근 한국이 일본의 어려움을 도와주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고 듣고 몹시 감동했습니다. 과거의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적을 돕겠다고 결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말이죠.

신 ●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이미 적대적 과거를 넘어서는 감정이 있습니다. 한국 젊은이와 일본 젊은이 사이, 한국 기업인과 일본 기업인 사이에는 긍정적인 관계나 돈독한 친구관계가 충분히 있을 수 있죠. 한국인으로서 일본인을 보는 게 아니라 친구로 보는 거예요. 선생님께서는 한국에 자주 오시고 한국을 무척 사랑하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한국사람, 한국이란 나라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르 ● 말씀드리기 복잡하군요. 한국인들은 여러 가지 모순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역사적·사회적 상황으로 보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을 유머로 극복해 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매우 용기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하고, 또 굉장히 따뜻하면서도 직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신 ● 제가 보기에 한국 사람들은 인구밀도가 굉장히 높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경쟁하는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고 갈등이 많은 측면도 있습니다. 그 대신 창의성도 거기서 자라는 거죠. 해외로 진출하는 사람이라든지 우리나라에서 일등한 사람들은 고수일 수밖에 없어요. 엄청난 경쟁을 통해서 이긴 사람들이기 때문에. 르 클레지오 선생님이 말씀하신 한국의 역동성이나 모순적인 특성이 여기서 나온 것이라고 봐요. 저는 르 클레지오 선생님께서 문학 쪽의 대가이신 걸로 알았는데 여러 가지 측면으로 통찰력을 가지고 계셔서 오늘 대화가 무척 재미있습니다.

르 ● 저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대화도 그렇지만 오늘 이사장님을 보다 잘 알게 되어 몹시 즐겁습니다. 이사장님께서는 자연스러운 리더십을 갖추고 계십니다. 보통 저는 사람을 볼 때 두 가지 정도만 깊이 이야기하면 그 사람이 대충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는데요. 이사장님 같은 경우에는 큰 기업을 운영하시기 위해 필요한 엄정성, 엄격함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꿈이나 영감을 받아야 하는 분야들에 대한 감수성, 그 두 가지 요소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계신 것 같습니다.

신 ● 제가 교보생명 대표이사이자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으로서 항상 고민하고 노력하는 부분을 정확히 봐주신 것 같습니다. 이번 남은 일정들 잘 마무리하고 돌아가시고 언제든 또 서울을 방문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르 ● 서울에 올 때마다 늘 환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특히 이번 서울국제문학포럼은 진심으로 굉장히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