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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ㅣ2011 서울국제문학포럼 - 발제문 다시 읽기

편집자주 ㅣ 2011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발표된 발제문 중 작가의 삶과 문학 그리고 세계에 대한 시선이 담긴 글들을 뽑아 싣는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문학
-내 문학과 이데올로기

작가로 등단한 뒤로 가장 자주 듣게 되면서도 언제나 대답하기 난처한 질문은‘왜’문학하는가, 또는‘어떻게’문학하게 되었는가,였다. 젊은 날에는 내가 문학을 하게 된 과정이나 경위가 내 삶의 이력과 너무도 긴밀하게 뒤얽혀 있어서, 어떤 불변의 예정을 실천한 것 같은 필연성으로 밖에 더 내 문학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때만 해도 내 기억에 더 선명했던 것은 내가 언젠가 우울하고 몽롱한 언어의 조종사로 끝장을 보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그 운명에서 달아나기 위해 급조했던 반(反)문학 이론들, 그리고 어느 날 끝내한 소설가가 되고만 나를 보고 소스라쳤던 경험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30년이 더 지난 이제는 거드름 섞어 조작하거나 미화하고 과장한다는 느낌없이 그 물음에 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특히 이데올로기와 연관지어 내 문학을 이야기하라면 대답은 더욱 정연해진다.

참혹한 이데올로기의 그늘에서 싹튼 문학

1950년 9월 한국전쟁의 첫 번째 반전 때 공산정권을 도와 일했던 남한의 한 젊은 지식인이 패퇴하는 공산군을 따라 북쪽으로 달아났는데, 그 월북은 그가 신봉했던 이데올로기의 적들 사이에 남겨진 그의 젊은 아내와 어린 자식들에게 재앙과도 같은 생존환경을 남겨주었다. 특히 연좌제(連坐制)란 아시아적 전제국가의 잔재는 아버지의 부역(附逆)을 언제든지 현실적인 처벌이 가능한 원죄(原罪)로 바꾸어 적지에 남겨진 그의 아내와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옥죄었다. 거기다가 그의 젊은 아내가 피투성이 내전을 겪으면서 키운 피해망상은 그 아이들의 삶을 더욱 끔찍하고 고달프게 만들었다.

삼년 뒤 정전(停戰)이란 형태로 한국전쟁이 종결되었을 때도, 그 젊은 아내의 의식은 여전히 집단학살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과 아이들의 생존을 위한 두 개의 원칙을 고수하였다. 그 하나는 전쟁이 다시 터졌을 때, 자신과 아이들이 개전(開戰) 첫머리에 체포되는 일이 없도록 경찰의 파악에서 벗어나 있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불행히 체포되더라도 반드시 도회지에서 체포되어야한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부역자 집단학살이 개전 열흘 안에 자행되었다는 점과 그래도 대도시에서는 법과 재판이 있어 마구잡이 학살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훗날까지도 잘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젊은 어머니의 그런 원칙에 따라 이 도시 저 도시로 이끌려 다녀야 했던 그녀의 다섯 아이들에게는 그 삶이 또래들과는 달리 별난 체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다섯 중 넷째였던 어린 내게는 특히 그랬다. 어머니의 피해망상 때문에 외롭고 고달프게 떠돌아야했던 그 10년은 그 뒤 5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내게는 억울한 느낌을 주는 고난과 모멸의 세월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아버지가 월북한 뒤에도 고향에는 어머니와 우리 다섯 남매가 의지해 살기에는 넉넉한 전답이 있었다. 그러나 경찰의 파악 밖에 있기 위해서 도회를 떠돌며 사는 바람에 고향에 있는 재산은 있으나마나 한 것이 되었다. 이따금 어머니 혼자 밤중에 몰래 고향으로 숨어들어 우리 땅을 헐값으로 떠맡기듯 처분한 돈으로 다급한 경제적 난국을 해결하는 수 도 있었지만, 도회지에서의 우리 삶은 거의 구걸에 가까운 적빈(赤貧) 속에 방치되었다. 전후의피폐한 경제 때문에 우리가 의지하려고 찾아간 지인들도 큰 힘이 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굶주림과 헐벗음이 내 어린 영혼에 남긴 상처에 못지않게 우리가 떠돌던 삶의 유형도 쉬 지워지지 않은 각인으로 내 가슴에 새겨졌다. 그때는 지금처럼 주민등록이 잘 정리되어 있지 않던 때라, 우리 가족이 밤중에 낯선 도시로 자취 없이 떠나버리면 경찰이 다시 알고 우리를 찾아오는 데는 빨라도 한 해가 더 걸렸다. 우리를 어떤 도시에서 보았다는 목격자의 전문(傳聞)이나 그들 나름의 정보망을 통해 우리의 자취를 밟아오는 것인데, 그때 걸리는 이삼 년이 우리
가 한 도시에 머무는 기간이 되었다.

야반도주나 다름없는 우리 일가의 다음 이주는 그 도시의 대공(對共) 담당 형사가 다시 우리 가족을 찾아와 동태를 파악하고 가는 그날로부터 한 달을 넘기지 않고 감행되었다. 형사가 느닷없이 찾아올 무렵의 불길하고 음울한 분위기, 그리고 뒤이은 은밀한 이주 준비와 함께 마침내 출발의 밤이 다가왔다. 집주인에게조차 말하지 않고 식구대로 보퉁이 하나씩만 맨 채 단간 셋방을 빠져나와 늦은 야간열차에 오르면 까닭 모르게 솟곤 하던 눈물. 어머니의 엄명 때문에 그동안 사귄 동무들에게 작별조차 못하고, 우리들에게 도움을 베푼 지인들에게조차 우리가 가는 도시를 알려주지 못한 채 결행되던 그 떠남의 묘한 분위기는 오래 오래 아픈 기억처럼 가슴 속에 남았다.

정들 만하면 떠나야 했던 그 도시들, 멀어져 가는 도시를 차창 밖으로 바라보며 젖었던 나름의 감회.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새로운 도시에 내리면 어느새 되살아나곤 하던 낯섦에 대한 동경과 기대. 그때 애 늙은이의 설익은 사유로 상정해 보았던 삶의 원형은 떠돎이었고, 존재의 양식은 외로움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어느 정도 내 문학적 감수성의 형성과 연관이 있겠지만, 거기까지 내 문학의 출발점으로 끌어대고 싶지는 않다.

이제는 거의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문학과 나의 친화(親和)과정은 그 고단한 떠돌이 삶의 한 부작용인 제도교육에서의 이탈과 그 때문에 생긴 여가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돌면서 나는 초등학교를 세 번 옮겨 다녔는데, 세 번 모두 학적부가 연결되지 않은 전학이었고, 그 사이에는 몇 달 혹은 한 한기 가까운 공백이 있었다. 그게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게는 흔치 않는 여가가 되었는데, 그런 내 여가는 대개 교과 밖의 책읽기에 돌아갔다.

그 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한해 만에 우리 외롭고 고달팠던 첫 번째 떠돌이 삶 10년이 차면서 우리의 귀향이 결행되었다. 밤낮으로 불안하게 여겼던 것처럼 전쟁이 쉽게 일어나지 않았을뿐더러, 민정복귀를 앞두고 있던 군사정권 지도자가 연좌제 폐지를 공약하자, 용기를 얻은 어머니가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된 까닭이었다. 선산(先山)발치에 있던 넓은 산지를 개간하여 새로운 삶의 터전을 삼으려고 식구들이 모두 고향으로 모였고, 나도 다니던 중학교를 몇 달 만에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중학교가 없는 고향에서 비정규 과정을 거쳐 검정고시로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나는 또 이년 반을 제도교육에서 벗어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또래보다 터무니없이 늘어난 여가는 다시 책읽기에 바쳐졌다.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우리 성씨들만이 사는 마을을 돌아 친척들의 빈약한 서가에 있는 책들을 거두어 왔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그 책을 읽으며 도시의 또래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난 여가를 죽여 냈다. 그런데 문제는 무료와 외로움을 달래는 것 말고는 특별한 지향이 없고 아무도 지도해주지 않는 책읽기였다. 그렇게 되면 책읽기는 어쩔 수 없이 재미와 자극적인 감동 쪽으로 편향되게되고, 끝내는 문학작품 특히 소설 쪽으로 흘러가기 쉽다. 나도 마찬가지 - 잠시 통속 잡지나 만화 같은 읽을거리를 기웃거리다 소설 쪽으로 방향을 튼 나의 책읽기는 이내 나를 조숙한 문학애호가로 만들어 놓았다.

그 뒤 검정고시로 그럭저럭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그마저 일찌감치 그만 두고 다시 제도교육에서 벗어나게 되자, 이전처럼 책이 나의 유일한 스승이 되면서 문학은 점점 더 내 정신적인 성장의 여러 국면을 주도하게 되었다. 특히 어렵게 검정고시를 통해 진학한 대학마저 일 년 만에 때려치우고 나 자신도 잘 모르는 나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제도교육으로부터의 이탈은 문학과의 친화를 넘어서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대학졸업까지 우리 제도교육이 요구하는 16년 가운데 8년을 혼자만의 책읽기로 때워가는 동안 문학은 이제 위로물이나 둔피처(遁避處) 이상의 한 은밀한 지향(指向)으로까지 내 의식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따라서 아버지가 선택한 이데올로기의 엄혹한 그늘에서 피해망상에 빠져있던 어머니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던 초기 10년의 생활방식은 내 어린 정신이 문학과 친화할 계기가 된 것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때의 떠돎과 일탈이 뒷날의 삶에 끼친 그 후유증은 이미 그럴 필요가 없어진 뒤에도 떠돌이의 습성과 제도교육으로부터의 일탈이라는 형태로 남아 문학에 대한 의존을 키우다가, 끝내는 내 삶 자체를 문학에 내던지게 하였다.

작용과 반작용의 심화학습

나의 문학지향은 먼저 불안의 형태로 내게 의식되었다. 이러다가 나는 저자거리의 잡문을 담는 그릇으로 내 삶을 허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언제인가부터 나는 그런 불안으로 문학을 경계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아마 청년시절 초기까지도 내 의식에 강하게 작용했던 전통적인 가치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까지도 우리 사회의 가치관은 문학, 특히 문예창작에는 그리 호의적이지 못했다. 장부로 태어나서 글쓰기에 너무 빠져들면 큰 뜻을 잃게 된다- 같은 전근대적인 문예관에서는 벗어났다 해도, 우리 현대문학 초기의 선배 문인들이 남긴 퇴폐와 곤궁의 이미지는 아직 다 털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안이나 경계도 지향의 한 형태이다. 그리고 겉으로는 불안이나 경계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의식 내부에서는 그 지향에 이르기 위한 학습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른 바 문학 청년들에게 습작기라고 불리는 창작가로서의 자기형성 기간이었는데, 오래잖아 그것은 은밀하면서도 치열한 심화학습 과정으로 발전해 나갔다.

돌이켜보면 소년기 말의 내가 먼저 손댄 습작활동은 글쓰기 중에서도‘어떻게’에 해당되는 부분이었던 것 같다. 나는 도구적(道具的) 실용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드러내놓고 문장수련에 들어갔다. 문장은 앞으로 내가 어떤 분야에서 일하게 되더라도 가장 유용하고 효율적인 도구가 될 것이란 전제 아래 이루어진 기교적 연마였다. 나는 글이 도구가 아니라 존재를 드러내는 유일한 수단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억누르며 효과적인 언어의 선택과 배치를 익혀나갔다.

그 무렵 내가 공들여 했던 문장연마는 그림의 데생에 해당하는 것으로, 오래된 일기에는 그날
의 기록 대신 범상한 주변 사물의 모사로 채워진 부분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장수련은 필연적으로‘어떻게’뿐만 아니라‘무엇’을 쓸 것인가,와도 만나게 되어있다. 특히‘어떻게’쓰는가, 에 어느 정도 숙달 되면 그‘무엇’의 무게는 더욱 커져, 나중에는 바로 그‘무엇’이‘어떻게’의 심화학습 자리에까지 놓이게 된다. 그런데 십대가 다할 무렵 그 ‘무엇’의 자리에 놓이게 된 것이 나를 문학과 조우하게 하고 친화하고, 마침내는 그것을 한 지향으로 삼게 만든 바로 그 이데올로기의 그늘이었다.

그때까지 연좌제란 이름으로 월북자 가족들을 옥죄던 남한 사회의 악의와 복수심은 끊임없는 가치박탈의 체험과 피해의식으로 내 의식을 이데올로기의 그늘에 가둬놓았다. ‘어떻게’에 어느 정도 숙달 되면서 내 글쓰기의‘무엇’은 관념의 연마 쪽으로 기울어졌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생생한 자극을 주고 절실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은 내 존재를 부조리와 모순 속에 내던져지게 한 아버지의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관념들이었다. 그리하여 소년시대 끄트머리에서 시작는‘무엇’을 중심으로 한 내 문장수련의 심화학습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그중에서도 특히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작용과 반작용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아버지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나의 첫 번째 의식적인 접근은 십대 후반에 처음 시도되었다. 사춘기를 벗어나 내 존재의 근원으로서 아버지를 찾아보고 싶어지면서 나는 그의 이데올로기에 주목하였다. 대지주로서의 반평생과 일본유학이란 흔치않은 학벌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젊은 아내와 열네 살부터 유복녀에 이르기까지 어린 오남매를 적지에 팽개친 채 홀로 북쪽으로 떠나게 만든 것이 바로 그 이데올로기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유신(維新) 직전의 엄격한 반공 이데올로기 시절이라 아버지의 사상에 접근하기는 쉽지 않았다. 삼엄한 검열은 마르크시즘 이론서의 집필이나 출간을 철저히 봉쇄해 아직 외국어 독해력이 충분하지 않은 내게는 서적을 통한 접근이 불가능했고, 그 이데올로기를 가슴속의 빛으로 품고 있는 사람들도 드물어져 말로 전해 듣기도 쉽지 않았다. 거기다가 전쟁이 끝난 지도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 어쩌다 그런 사람을 만나도 핵심을 조리 있게 전해줄 만큼 기억하고 있지도 못했다.

그 때문에 공연히 만나서 서로 좋을 게 없는 사람들이나 찾아다니고, 요행수를 바라 헌 책방이나 뒤지고 다니다가 결국은 호된 꼴을 보고 말았다. 엉뚱한 사건에 연루되어 가택 수색을 당하던 중에 어렵게 구해놓은 소화(昭和)12년 판 사회주의 사상전집 열권이 들켜 사나흘 호된 심문을 당하고 겨우 풀려난 일이 그랬다. 그때 월북과 밀봉교육의 혐의까지 받아 그 알리바이를 증명하려고 진땀을 뺐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뒤 짧지만 조심스러웠던 대학생활을 보내면서 내가 몰두했던 이상한 독서도 어떤 면에서는 아버지의 이데올로기를 추적하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나는 용케 번역출간이 허용되었던 조안 로빈슨의 마르크시즘 비판이나, 비판서이면서도 80년대 들어서야 해금된 칼 포퍼의 저서 일부 같은 것을 읽으면서 그 인용문이나 행간(行間)에서 순정한 마르크시즘의 파편들을 찾아보려고 애섰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한때 제2인터내셔널에서 추방될 때까지 마르크시즘과 경쟁했던 아나키스트의 저서들을 통해 마르크시즘의 반면(反面)이나 반영(反影)을 찾아보려고도 했다.
그러다가 유신시대가 열리면서 나는 오이디푸스적 복합감정에 감정에 빠져들게 된다. 서로를 이용해 서로의 권력을 지켜나가는 남북의 이른 바 적대적(敵對的) 의존관계가 점차 진상을 드러내자 갑자기 솟아오른 부성(父性) 살해의 열정이 먼저 아버지의 이데올로기부터 부정하게 하였다. 이십대 중반의 일로, 그 갑작스런 반전에는 그때 한창 절정이었던 연좌제의 피해망상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나는 한때 진심으로 반공(反共)이 내 이데올로기가 되기를 빈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내 아버지의 아들이었다. 오이디푸스적 복합감정도 잠시, 부성살해의 열정이 광풍처럼 지나가면 나는 다시 내 피의 아버지를 찾았다. 그리고 오이디푸스처럼 자신을 두 눈을 파낼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가슴 서늘한 회한에 젖어 내가 부정하고 짓밟은 것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그때 한편으로는 짓밟고 부수면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서 그림자나 파편으로만 남은 아버지의 이데올로기를 다시 더듬어 껴안으면서, 긍정과 부정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한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특히 이십대 후반기를 보냈던 대구에서의 아버지 찾기는 지금 돌이켜보기에도 애틋한 추억이 있다. 그때 나는 다시 아나키즘으로 우회하여 아버지의 이데올로기와 만나 보려고 한 것 같은데, 내가 학원 강사로 떠돌던 대구에는 마침 한국 아나키즘의 정맥이 한 갈래 이어져오고 있었다. 허유(虛有)선생이라고 불리던 하기락(河岐洛) 교수로 그때 이미 칠순에 가까웠는데도, 젊은 나를 동지라 부르며 반겨주시던 그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는 그분에게서 먼저 크로포트킨과 프루동의 저서 몇 권을 빌려 읽었고, 그분이 쓰신 한국아나키즘 역사를 사서 정독했으며, 슈타이너부터 바쿠닌까지 그분이 추천해주신 이런저런 아나키즘 저서들을 찾아 대구의 헌책방을 여러 날 뒤진 적도 있다.

반(反)이데올로기에서 탈(脫)이데올로기로

아버지 살해와 아버지 찾기 사이의 오락가락의 끝난 것은 결국 삼십대로 접어든 뒤가 된다. 그 뒤로도 아버지의 이데올로기 주위를 맴돌며 긍정과 부정 사이를 오락가락 하던 나는 한동안 양비(兩非)와 양시(兩是)의 진창을 헤맸다. 그러다가 역사적 허무주의의 세례를 받으면서 마침내는 반(反) 이데올로기 쪽으로 길을 잡는다.

나는 이데올로기를 인간을 위한 어떤 것으로 믿어왔다. 그 계급성이나 당파성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는 그들의 존재에 근원적인 뜻을 부여하는 가치체계이고, 자신과 객관적인 조건들을 현실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분석체계이며, 원망(願望)과 확신으로 자신에게 잠재해있는 에너지를 의지적으로 활성화하는 신념체계이고, 구체적인 사회적 쟁점에 대응하는 수단과 태도를 결정하게 해주는 선택도식이라는 이데올로기 일반론에도 대체로 동조해 왔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의 이데올로기를 부정하거나 긍정하기 위해 접근했던 우리 시대의 이데올로기들은 모두가 기이한 전도(顚倒)를 겪고 있었다. 원래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고안되었던 이데올로기는 그것이 한 이데올로기로 기능하는 순간 오히려 인간을 자기 확장의 수단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인간의 복리증진을 위해 자신을 내던져야 할 이데올로기가 거꾸로 인간을 희생으로 삼아 자신을 번성을 도모하는 목적의 전도를 일으켰다. 우리 가족이 겪은 불행도 아버지의 이데올로기에서 일어난 목적의 전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거기서 반(反)이데올로기의 논리를 키워가던 나는 다시 탈(脫) 이데올로기로 길을 잡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무(無)이데올로기에 이르게 되는데, 기실 무이데올로기는 그 자체가 하나의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오직 이데올로기에 의해서만 부정되고 무화(無化)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데올로기와의 길항(拮抗)으로 써야 할‘무엇’을 연마한 나는 마침내 무이데올로기를 내 글쓰기의 이념적 기반으로 삼게 되었다. 하지만 내 삶을 문학에 의탁하리라는 결의를 하고서도 한동안 나는 무이데올로기도 하나의 이데올로기일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이십대 후반에 내 자호(自號)중에는 삼무자(三無子)란 것이 있는데, 그때 내게 없던 세 가지는 나라와 스승과 이데올로기였다. 그것으로 미루어 그때까지만 해도 내게 있어서 무이데올로기란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어떤 문학적 입지(立地)에 지나지 않았던 듯하다. 그러다가 권위주의 통치 아래 점차 그 압력을 키워가던 우리 사회의 의식과잉이 급속하게 좌편향의 이데올로기로 전화되어 가던 70년대 말에 등단하게 되면서 나도 차츰 무이데올로기의 이념성에 눈뜨게 되었다. 나는 이데올로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부인하고 부정하는 이데올로기를 가진 이데올로그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부인과 부정은 이데올로기의 한 출발은 되지만 그것만으로 온전한 이데올로기가 될 수 없다. 부인과 부정으로 지워지고 빈 공간을 무언가 대안으로 채워놓을 때 비로소 그 이데올로기는 완결된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사유재산의 부정으로 첫걸음을 내디뎠지만, 수많은 이념가의 불꽃같은 사유와 고안들이 사유재산이 부정된 그 빈자리를 채운 뒤에야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완결 될 수 있었다. 아나키즘도 한 온전한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기까지는 초기 발안자들이 지워버린 국가권력의 자리에 적당한 대체물을 채워 넣기 위해 수많은 자유인들이 밤을 지새우며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무이데올로기란 나의 이데올로기도 그런 일반 원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어떤 이데올로기가 이데올로기답게 되려면 부인과 부정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지워버린 것, 비워낸 것들에 대한 대안이 없는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비로소 나는 내가 지워버리고 비워낸 자리에 무엇을 채워 넣었는지, 무엇이 부인되고 부정된 이데올로기를 대신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처음에는 그게 무엇인지 얼른 집혀오지 않았다. 그러나 비정형적인 내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과 논쟁을 거치는 동안에 차츰 그 무엇은 뚜렷해졌다. 이데올로기를 지우고 비워낸 자리에 내가 채워 넣은 것은 바로 문학이었다. 문학이 곧 나의 이데올로기가 된 것이었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문학

어떻게 보면, 문학이 곧 내 이데올로기였다는 말은 논리적 진술이라기보다는 비유적 묘사처럼 느껴질는지도 모르겠다. 문학이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는가. 하지만 그때 내게 문학은 틀림없이 한 이데올로기로 기능했다. 문학은 내게 있어서 존재에 근원적인 뜻을 부여하는 가치체계 (價値體系)였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분석체계(分析體系)였으며, 내 안에 잠재해있는 에너지를 의지적으로 활성화하는 신념체계(信念體系)였고, 구체적인 사회적 쟁점에 대응하는 수단과 태도를 결정하게 해주는 선택도식(選擇圖式)이기도 했다.

그 뒤 삼십여 년, 한 이데올로기로서의 내 문학은 수다한 변용과 굴절을 겪었다. 문학 이데올로기는 필연적으로 문학지상주의 경향을 띄고, 문학의 자기목적성과 자족성을 주장하는 교의에 빠지기 쉽다. 수직적인 가치체계를 부정하고 상위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며, 거기에 종속되거나 그 실현을 위해 복무하기를 거부한다.

그런데 내가 한 신출내기 작가로 출발한 시대는 불행히도 모든 가치가 공동선(公同善)의 기치아래 통합되는 시대였고, 그 아래 수직적으로 종속된 문학은 상위가치에 복무할 것을 공공연하게 요구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는 오랜 권위주의 통치에 반발해 탈주한 지식인들을 유인하고 설득하여 시대정신의 고지를 선점하였다.그렇게 되면 이데올로기로서의 내 문학은 유사의식의 어두운 열정과 정신적인 허영으로 범벅된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충돌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거기다가 점차 그들의 운동성에 과부하(過負荷)가 걸리고 적(敵)개념이 무절제하게 확대되면 불화는 점차 열전으로 변해가고, 그에 따라 내 문학의 이데올로기도 전투적으로 발전했다.

지난 삼십년 그 시대의 공동선에 대한 방관자 또는 냉담자로 출발한 내 문학이 지나온 변용과 굴절의 자취는 이제 돌아보기조차 처참한 기억이 되었다. 짧은 시기의 밀월 뒤 나의 문학,나만의 이데올로기에 의지해 통합주의와 수직적인 가치관에 홀린 시대의 주변을 서성거리던 나는 오래잖아 유사의식과 정신적인 허영의 가세로 더욱 거대해진 시대 이데올로기와 터무니없는 싸움에 말려 들어갔다. 그리고 후반이 되면 분별없는 분노에 빠져 미덥지도 않고 별로 정이 가지 않는 이데올로기들과 합종연횡 하며 이제는 정치권력까지 장악한 그 리바이어던과 좌충우돌 싸움을 벌였다. 특히 지난 십년은 추악하게 타락한 적과 돌이킬 수 없이 타락한 방법으로 싸운 끔찍한 세월이었다.

그 사이 내 문학은 아마도 깊이 상처입고 불구가 걱정될 만큼 뒤틀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 실었던 이데올로기까지 이지러지고 변질되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마구잡이 난타전으로 찢기고 할퀴고 그을린 것은 내 이데올로기의 표피이지 본질은 아니다. 억지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아직도 문학은 내게 이데아처럼이나 휘황한 이데올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