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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의 꿈, 혹은 산책

외국에서의 꿈, 혹은 산책

바다가

깊은 바다가 걸어왔네
나는 바다를 맞아 가득 잡으려 하네
손이 없네 손을 어디엔가 두고 왔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손이 없어서 잡지 못하고 울려고 하네
눈이 없네
눈을 어디엔가 두고 왔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바다가 안가지 못하고 서성인다 돌아선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하고 싶다
혀가 없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 그 집에 다 두고 왔다

글썽이고 싶네 검게 반짝이고 싶었네
그러나 아는 사람 집에 다, 다
두고왔네

- 시집『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에서(창비 2001)

▲ 허수경 ©운영자

한 사람이 꾸는 꿈이 그 사람이 가진 무의식의 바다를 얼마나 잘 말해줄 수 있을지 나는 잘 모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깨어나기 직전에 꾸었던 마지막 꿈만 기억한다는 연구자들의 말을 상기한다면 어쩌면 기억되는 꿈은 수많은 꿈의 한 조각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도 어떤 꿈은 이토록이나 오래 남고 결국은 그 꿈을 시로 쓰게 만든다. 마치 아수라의 난장이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 같은 꿈, 말이다.
이 시는 뮌스터라는 독일의 한 도시 학생 기숙사에서 꾼 꿈이다. 꿈을 꾸고 일어나 보니 한밤 중이었다. 나는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기숙사 건너편에 있는 옥수수밭을 한참 바라보았다. 무엇이 그 너머에 있는 것도 아닌데 꼭 그 너머에 무언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한밤중의 옥수수밭 저 너머에 뭐가 보일리가 없었다. 바람소리만 듣다가 창에서 떨어져 나와 꿈을 받아 적었다. 독일에 온 지 6년가량 되어가던 시절이었다. 나는 당시 석사논문을 쓰고 있었다. 모국어보다는 독일어로 생각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자주 내 스스로에게 낯설어 지는 경험을 했다. 외국어로 사는 나날이 늘어나면서 또 공부 때문에 고대어를 익히면서 시를 쓰는 나의 자아는 어떤 구석으로 꽁꽁 숨어버렸다. 외국어를 학습하고 그 언어 환경에서 살고 또 다른 외국어와 고대어를 배우는 언어와 언어가 뒤섞이고 부딪치는 나날 동안 시적 자아는 언어벼락을 맞은 모양이었다. 그러니 놀라서 어느 구석에 들어가서는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그러나 그 시절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지 않았다. 숨어버린 시적 자아가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거라는 막연한 짐작을 하고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내 스스로에게 낯설어지고 내 모국어가 나에게 주어진 자연이 아니라‘대상’이 될 때 아마도 나의 시적 자아는 스스로를 배신하면서 쇄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거라는 느낌 때문이었다.
꿈을 받아 적고 보니 위와 같은 시가 나왔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 무의식의 어떤 부분은 내 의식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육체에 선연히 새겨진 수술자국 같은 닫힌 상처 밑에서 무의식은 나의 가장 결정적인 자아인 시적 자아를 보듬고 어둡고도 더운 숨을 내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멍하게 앉아있었다. 살면서 놓친 것이 많겠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분명 있을 터인데 바로 그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놓치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내가 공부를 한 뮌스터라는 도시는 독일에서는 중소도시에 속하며 중세의 상업중심지이며 가톨릭의 힘이 센 곳이다. 독일에서 세 번째로 학생 수가 많다는 종합대학부터 시작하여 음악 아카데미, 예술아카데미에다가 크고 작은 전문대학까지 모여 있는 대학도시이다. 그리고 대학 도시답게 학기 동안에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학생들로 가득하고 방학이면 도시가 썰렁해진다. 방학이 되면 나는 연구소 도서관에 앉아 있다가 해질 무렵이면 자주 도시를 산책하곤 했다.
이 도시의 대성당을 지나 프린치팔 마르크트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중심가를 지나서 인공호수인 아호수에 이르기까지 산책을 하는 동안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흘러갔다.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흘러가는 것을 유럽의 작은 도시에서 머물러 본 적이 있는 여행객들은 알 것이다. 그 시간은 생각조차 천천히 하게 만들었다. 어디론가 바삐 가게 만들지도 않았으며 그리움조차도 천천히 가고 오게 만들었다. 다만 자유롭기는 해서 덜컹, 불안하기까지 했는데 내 내면은 이 자유로움을 잘 소비하지를 못했다. 자유를 소비하는 자로서 나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자유는 싸워서 가져야 하는 것이고 지켜야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빼앗길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가지지 못한 어떤 무엇이었다. 그래서 이 자유라는 물속에 몸을 헤적이고 있는 것이 두렵고 한편으로는 어떻게 잘 소비할 수 있을지 나는 끙끙대며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 자유는 그리고 도서관에서 최대치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쓰여졌다.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잠자는 시간, 잠시 산책하는 시간, 매일 새벽에 수영을 가는 시간, 밥을 먹으러 학교 식당을 가는 시간을 빼놓고는 넋을 내놓고 책과 씨름했다. 책을 읽는 것이 즐거워서 그랬기도 했지만 모국어로 읽을 때보다는 몇 배 더 시간이 걸리는 내 독서 속도 때문이기도 했다. 세미나와 레포트를 준비하는 시간이 엄청 많이 들었고 한없이 느린 나의 독일어 작문이 나를 도서관에 가두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좋았다. 나에게 시간은 많았고 읽지 않은 세계의 책들은 수두룩했으며 나는 느려터진 독서가로 도서관의 식구가 되었다. 오래된 책들에게서 나는 냄새는 매캐했다. 어떤 책은 책장의 가장자리가 점차 부서어지는 병을 앓고 있었고 병원으로 보내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 같았다. 어떤 책은 갓 세상에 나와서 수줍었다. 어떤 책은 잊혀져서 먼지만 뽀얗게 덮어쓰고 서재 한 구석에 묵묵히 있었다. 교회가 많은 이 도시의 종들이 일제히 울릴 때면 나는 잠시 책을 덮고 창밖을 바라보기도 했다. 거리의 소음은 참을 만했으며 도서관의 고요는 퍽이나 나를 행복하게 했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영국에서 공부한적이 있는 일본 작가 소세키는 외국을 타자로 여기고 외국과 일본을 비교하고 외국이라는 타자를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 후로 한 세기의 시간이 더 지나 외국에 나온 나는 이미 소세키의 세계를 탈출해서 세계의 모든 곳이 타향이거나 고향인 세기 속에 살고 있었다. 외국이란, 특히 서구란 나에게는 극복의 대상도 타자도 아니었다. 다만 어떤 한 공간이었다. 내가 속한 공동체와는 다른 역사를 가진 공간. 다른 점도 많고 공통점도 적지 않은 이 지구의 어떤 곳. 뮌스터는 또한 수많은 외국학생이 모여 살고 있었다. 그들과 교류를 하면서 나는 내가 속한 공동체의 역사를 수많은 역사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내 공동체의 역사가 그러하듯 그들의 역사 또한 20세기가 만들어낸 수많은 비극 가운데 하나였고 각자 그 비극의 역사를 가슴에 안은 채 외국이라는 공간에서 그들은 살고 있었다.
나는 신이 났다. 드디어 자신만이 중심에 놓여있던 시간을 통과하고 많은 타자들이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중심은 많은 것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그런 절대 중심이 아니라 많은 것들이 거대한 띠가 되어 흐르고 있는 은하계 같았다. 많은 나라에서 모여든 친구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누구든 사연은 있었고 사연마다 절절해서 듣는 사람은 그냥 듣기만 해도 지구 몇 바퀴를 도는 것 같았다.
수많은 인종이 모여 살면서 거대하고 역동적인 잡종문화를 만들어 내는 미국사회와는 달리 독일 한 대학 도시는 수많은 인종이 모여 살기는 하지만 그들은 이곳에서는 손님이었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문화를 이곳에 부려놓기는 하되 그리고 현지인들이 그 문화를 함께 즐기기는 하되 그것 자체가 다른 형태의 문화를 만들지는 않았다.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이곳의 토종 문화도 문화이지만 손님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보여주기는 하되 자신의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보는 것이 이 도시에 모여 사는 사람들의 공존 방법이었다. 나는 그 느슨함과 관대함이 좋았다. 다들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 가지고 있지만 손님들은 자신의 모국어가 아니라 독일어로 서로 교류했다. 내 이야기를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타인에게 들려주는 일은 신선했다. 이를테면 내 이야기를 모국어에서 외국어로 번역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외국 친구들을 보면서 발터 벤야민을 인용해서 말하자면‘나’라는 존재의 ‘번역 가능성’을 느껴보는 것도 그지없이 신기한 일이었다. 그 과정 중에 나는 내 스스로에게 거리를 가지게 되었다. 나에게뿐 아니라 내가 떠나온 나의 공동체에게도 거리를 가지게 되었다. 점점 고향과 타향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시간이 적어졌고 다만 내가 숨 쉬고 살고 있는 이 공간과 시간만이 지금‘나’라는 한 인간의 고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 메모를 그 시간 동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두터운 대학 노트에 적혀있던 메모들은 메모들인 채 책상 서랍 깊숙이에 들어있었다. 가끔 꺼내보기도 했다. 그 노트에 든 글들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모국어로 시를 쓰는 일이 그곳에서는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랬는지.
발굴을 하느라 오리엔트 지역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런 현상은 조금 더 심해졌다. 점점 나는 나의 모국어와 멀어져 갔고 외국어를 쓰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외국어로 말하는 일에 집중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그들과 일을 하고 그들과 공부를 하고 그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들과 소통하는 일은 당장의 필요에 의해서도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시? 천천히 천천히 하자, 돌아올 거다, 다시 나에게로, 나의 시가.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그 꿈속에서는 내가 아주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바다가 보였다. 독일로 와서 나는 바다에 갈 기회가 없었다. 바다는 너무나 오랜만이었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손도 눈도 혀도 없어서 그 바다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모든 것을 나는‘아는 사람 집’에 다 두고 온 것이다. 바다는 검고 깊어서 그 안에는 수많은 시어들이 출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나는 단 하나의 시어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아니면 시가 되지 못했던 시간들이, 아니면 여러 시적 자아들이 그도 아니면 수많은 이미지들이 시 자체의 무의식이 모여 그 바다는 출렁이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 종이에다 꿈을 옮겨 적고 난 뒤 드디어 나는 알아버렸다. 이제 아주 괴로운 날들이 오리라는 것을. 독일이라는 곳에서 살고 공부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얻었는데 정작 나의 시를 서서히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당시, 독일에서 육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정작 시를 쓸 수 있는 모든 기관과 마음은 아직 그곳에 두고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꿈 뒤에 알게 된 것. 모든 것을 다 두고 온‘아는 사람 집’을 내 속에서 짓지 않는 한 나는 시를 쓸 수가 없으리라는 것을. 그런데 도대체, 이 독일 도시에는 없는 나의‘아는 사람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아님 이 독일 도시에 이미‘아는 사람 집’이 있는데도 나는 보지 못하고 있을까?
도무지, 시의 일생을 끌고 나갈 그‘아는 사람의 집’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옥수수밭을 오래 바라보며 진짜 고독은 이제 시작되었다는 것을 뼈 속까지 짐작했다. 그 고독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아는 사람 집’은 아직 내 속에서 보이지 않고 나는 이 대학 도시에서 계속 산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