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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폴리티쿠스, 호모 포에티쿠스,

▲ 신동욱 © 운영자

신동옥 고은 시인의 시「문의마을에 가서」와 시 해설에서 선생님을 처음 뵙니다. 충북(忠北) 청원군(淸原君) 문의면(文義面) 산덕리(山德里). 깨질 듯 맑은 벌판에 덕이 도타운 산자락에 참 말뜻을 기루는 동네.
만든지명같았습니다.『 김수영전집』의사진속에서선생님을뵙니다. 김수영 선생은 사진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누군가에게 집중합니다. 선생님은 담뱃갑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사진 속에서 김수영 선생은 짐짓 열정적이지만, 선생님은 부러‘쿨’합니다. 사진은 서늘하게 깨어서 건너온 선생님의 1960년대 내면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신동문 산덕리는 영산(靈山) 신(辛)씨 세거지, 나 태어나고 자란 곳일세.
내 자친(慈親)의 장례를 치를 때 고은 시인이 다비염불을 했지. 그예 작품의 고갱이가 되었나 보아. 나보다 6살 연배인 김수영 시인은 한 시대를 건너온 같은 세대였지요. 1960년대 이전에 우리나라에는 아직 세대가 형성된 일조차 없었다는 말일세. 우리에겐 배척할 기성세대도 새로이 대두할 신세대도 없는 것이었네. 있다면 그제야 비로소 하나의 의식된 세대가 형성되는 과정이었어요. 이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조건으로서의 연령 구분이나, 문학적인‘에꼴’을 넘어서는 과정이네. 문학을 넘어서는 시대 의식 공동체를 체험했다고나 할까. 기실한 시기가 정리되면서 비롯하는 문학사상의 논쟁의 핵심은 다른 것이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에 대한 반응 아닌가. 반응이건 논쟁이건, 건강한 사회라면 끝없이 교체 전이가 일어나는 것이 당연지사라 할 것이네. 새롭다는 것은 세대가 처하고 있는 현실과 역사에 대한 감각의 리얼리티의 차이에 있고, 저이들을 둘러싼 낡은 겉껍질, 즉 전 세대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전제로 한 비판에 있네. 새 세대는 감각의 리얼리티와 비판이라는 양 날개를 비약의식으로 가질 것이네. 김수영, 신동엽은 물론 많은 이들, 여태도 나를 추억하곤 하는 고은, 신경림 제씨들이 나의 세대일 것이네.

▲ 신동문(왼쪽)과 김수영 (출처『김수영전집』, 민음사) © 운영자
신동옥 선생님 세대에 대해 말해주셨습니다.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을 이야기해야 합니다(1993년 9월 29일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2년이 지난 1995년에야 4·19는‘학생의거’에서 다시‘혁명’이라는 이름을 되찾습니다). 대표작인「아! 신화같이 전진하는 다비데군들 - 4·19의 한낮에」를 썼고, 다수의 논설을 발표합니다. “유순한사투리를그대로쓰고있는겸손하고과묵한청년”「( 지성에방화한젊은시인」,《 경향신문》, 1960.10.8, 4면)의 극적인 변화입니까?

신동문 인간의 정신이란 것이 괴팍스러우리만치 순수를 제 감수성으로 고집하는 면이 있네. 그러나 그 감수성은 세계와 역사를 정면으로 감수하지 않으면 약동할 수 없다는 의미의 촉수네. 청순한 인간의 정신과 더불어 건강한 지성은 무엇이겠는가? 나 스스로에게,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불을 질러서 패배의 철학을 살라버리는 것이네.
이런 내 생각은 한때의 내 유순하고 감상적인 정서와는 외따로 보아야지. 1954년 군에서 제대하고, 1955년《한국일보》,《 동아일보》에가작, 1956년《조선일보》신춘문예에당선되고처음이자마지막시집『풍선과제3포복』(충북문화사)을냈네. 청주의도립병원에요양하면서《충북신보》에관여했네.“ 우남족(雩南, 이승만의호)”,“ 만송족(晩松, 이기붕의 호)”같은 조어를 만들어 비판적인 사설을 썼지. 혁명이 일어나고는 청주에서 배후 조종자로 지목되어, 서울로야반도주했네. 혁명와중에, 다행히종합교양지《새벽》의편집장이되었네.「 4·19의한낮에」는 경향신문, 세대, 민족일보 등에 혁명을 대변하는 젊은이의 일개로 글을 쓸 때, 함께 썼네. 신당동 하숙집에 엎디어‘르포르타주’하는 기분으로 써 갈겼지. 스스로 인간이 되고, 현대의 주인이 되고, 민주주의의 실현자가 되고, 조국의 주권자가 되려는 첫 걸음을 보는 하루하루였으니. 자네, 대표작이라고 했나? 그런 말 다시는 말게. 장시 몇 개 빼면, 고작 서른 몇 편, 종이 낭비에 밑씻개나 될 작품을 써댄 나 같은 이에게 대표작이 무슨 말인가.

신동옥 겸손이 지나치십니다. 신경림 시인은‘눙치는 단호함’으로 이렇게 썼습니다. “그는…… 우리 시사에 길이 기억될 뛰어난 작품들을 남김으로써, …… 수백 편을 쓰고도 단 한 편 독자에게 기억되는 시가 없는 시인이허다한우리시단에많이쓰는것만이장땡이아니라는교훈을남겼다”「( 삶을통하여시를완성한시인신동문」,『 초등우리교육』, 1997.04. 134면).

▲ 신동문(사진제공 : 솔 출판사) © 운영자
신동문 그것 참. 신경림 시인의 평이야 그렇다고 수용하고. 자네가 말하는 시가 글자 안에 갇힌 시라면, 백 번 양보해도 나는 시인이 아닐세. 신동엽 시인은 1960년대의 시인을“향토시의 촌락”,“ 현대감각파”,“ 언어세공파”,“시민시인”,“ 저항파”다섯부류로나눈적있네「( 60년대의시단분포도- 신저항시운동의가능성을전망하며」,《조선일보》, 1961.3.30~31). 순수시파니, 예술지상주의파니, 아카데미파니, 앙가주망의 시인들이니 내가 시를 안 쓴다고들 말이 많은 시절이 있었네. 오죽했으면「실시(失詩)의 변」이라고 변명까지 글로 썼겠나. 누구는 고소해하고, 누구는 동정하고, 누구는 적극 편을 들어줄 때, 나 스스로는 침묵이 시인의 허물이라는 것을 뼈에 새기고 있었네. 언젠가는 좋은 시로 그 허물을 갚아야 한다는 각오를 벼렸네. 허나, 1960년에서 서울생활을 작파하는 1975년까지, 아니「내 노동으로」를 쓴 1967년까지, 내 고작 스무 편 남짓 썼네. 1년에 한 편씩 썼다는 그것들조차, 내 편에서는 시라고 말하기 민망하네. 농투성이에, 침쟁이로 살면서 한 삽 한 삽, 한 땀 한 땀이 차라리 시였던 것이지. 그러니 시인이 아니라, 농부, 침술가, 논객, 편집자가 맞겠네. 내 삶을 통틀어 시를 시답게 쓰며 스스로 문장 속으로 들어간 때는, 한국전쟁 당시 공군부대 야전침상 위에서나, 전쟁이 끝나고 청주 도립병원에서 결핵 요양을 할 때였네.

신동옥 그러면 시에 몰입했던 시기를 말하겠습니다. 선생님은 결핵이라는 신체 체험, 한국전쟁이라는 역사 체험, 4·19와 5·16이라는 정치사회 체험을 썼습니다. 선생님은 체험이 아닌 것을 쓰지 않았습니다. 출생, 배경, 환경에서 받은 영향이 아니라 직접 체험이 도드라집니다. 개인사에 대한 말씀을 시는 물론 산문에서도 아끼셨고, 삶의 와중에도 함구하셨던 것으로 압니다. 직접적인 체험과 선생님의 개인사적 배경을 나눈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동문 나누지 말고 그것들 모두 한데 ‘세계’ 라고 하세. 내묻지. 자네는‘자유’,‘ 혁명’,‘ 독립’이런 단어를 입에 올리며 어떤 생각을 하는가?

신동옥 단어의 의미에 짓눌리기도 하고, 막연한 꿈을 꾸기도 하고, 의지를 불태우기도 합니다.

신동문 자네도 아다시피 가친(家親)께서는 대한제국 시기에 유학자이자 한의사셨네. 1907년 합병이 되자 향리로 내려오셨고, 본부인을 잃고, 어머니와 재가하셨고, 내가 두 살 때 돌아가셨네. 나는 유복자로 어머니의 엄한 가르침 아래 자랐고, 어려서부터 서른다섯까지 결핵을 앓으며 치유책으로 수영을 익혔네. 1948년 런던 올림픽 수영 예비 대표였네만, 늑막염으로 좌절, 올림픽은 핑계였고, 옥스퍼드에서 공부하려 했지. 1947년 짝사랑을 하며 시를 쓰기 시작, 한국전쟁 36개월을 제주, 사천의 비행장 공군으로 복무, 그나마 24개월은 결핵으로 병상에 있었네. 그리고 또 뭐, 아내 남기정(1940년생, 청주 시절 제자)과 1963년 서른여섯에 결혼했네. 자네가 말하는 출생환경, 배경이 이런 것인가? 1908년, 일제는 통감부를통해‘자유’,‘ 혁명’,‘ 독립’이라는 단어를 교육과정에서 삭제한다네. 그 이후 세대는 그 단어의 의미를 배우지 못했지. 나나 김수영이나 신동엽이나…… 헌데 대학까지 16년 자유, 혁명, 독립의 의미를 배운 자네보다 내가 그 단어들을 잘 안다네. 세계를 체험하는 감수성과 감수성의 리얼리티가 만든 차이일세. 자네가 말한 체험은 그런 의미겠지. 예를 들어보세. 혁명이란 말일세. 어떤 의미고 간에 해방이어야 하네. 부자유에서 자유로, 가난과 부패와 병폐와 불안과 공포와 압박과 무지에서의 해방이 바로 혁명이야. 타의에서 자의로 변화가 혁명이란 말이네. 마침내는 실감되고 체험되지 않는 어떠한 정치사회적인 변혁도 혁명이 아니네. 나는 시 - 삶을 통해 혁명과 자유가 없는 지옥도를 보고 썼고, 혁명과 자유가 열리려는 때를 기록했고, 혁명과 자유가 도로가 되게 한 압제를 조롱했네. 대한민국에서 사는 유일한 자랑과 보람은 부(富)도, 문학도, 문화도 아니고 오로지‘자유’일 뿐이네.

신동옥 선생님은「『풍선과 제3포복』의 후기」에“「풍선기」는 전부가 53호, 총 1,700행이나 되는 장편 시였는데, 동란 당시 전전하는 전선기지에서 써 모은 그것을 무기보다 소중히는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 이곳저곳에 버리고 말았다”고 썼습니다. 20호나마 남은 것을 위안삼아도, 안타깝습니다. 이어서“백열적인 정신작용을 요하는 시작(詩作)에…… 이런 성격의 시가 결국 일종의 관념적인 구축이나 서정의 세계, 혹은 토착적 관조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고, 더구나 터무니없는 환상이나 사색의 녹음으로 미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생경한 발성의 소묘”로『풍선과 제3포복』을 내놓았다고 썼습니다. 당시를 떠올려주십시오.

신동문 자네 참 끈질긴 구석이 있고만. 1963년 1월에서 11월까지『여상』에, 스물이던 1947년부터 제대할 무렵 스물일곱이던 1954년까지를 자서전 비슷하게 썼네. 지면이 지면인지라 겸연쩍은 구석이 많은 글이네. 10년여에 걸쳐‘재숙’이라는 여인에 대한 짝사랑 속에서 한 젊은 시인이 성장해 태어나는‘멜로드라마’같은 글이네. 처음에는 감상이나 감정과 같은 섬세한 정감과 정서에서 삶이 충만한 생명의 백열적 흥분 상태를 오가며, 환상이고 환각이고 관념이 뒤죽박죽인 열정으로 썼어. 예민한 감수성과 지적인 감도(感度)가 차츰 조화를 이루며 시상이 무제한으로 커가는 것을 느낀 때는, 역설적이게도, 한국전쟁의 와중 전장의 후방에 근무하는 무렵이었네. 전쟁 속에서 행동적인 경험이나 현실적인 체험이 내면의 추구와 맞아 떨어지는 지점에서 내면이 형성되고, 나를 둘러싼 세계나 역사를 감내할 수 있음을 비로소 알았네. 거창한가? 한마디로, 그제야 비로소 사물과 현실을 보는 데 하나의 기준이 생겼고, 비판력이 생겼다는 것이지. 늦되어도 한참은 늦되었지. 이후 심미주의적인 세계랄지 감상적인 태도와 결별할 수 있었네. 그것이 1954년 무렵이었어. 비로소 상극과 화합의 양극단을 여러 가지로 변주할 수있는세계와의‘교섭’지점을발견한것이야. 가열한것은아름답고귀한것에없고땀에있음을알았네.「 풍선기」를 쓰고 나서는 기성 시인들에 대한 나름의 비판력도 생겼지.
이런 태도는 1960년대에 이르러 문화기관이나 거인 같은 문화와 인문학의 메커니즘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기도 해. 사상적인 기질은 이정규(李丁奎, 1887~1984) 선생님과 같은 분께 영향을 받은 탓이 크겠지.

신동옥 그렇다면 선생님은『풍선과 제3포복』의 시인으로 보아야 하겠군요.

신동문 첫 시집이라고 시집이라는 물건을 지을 요량이라면, 릴케처럼 교도소 수인에게 뿌려주는 것이 갸륵한 일이겠지. 그래도 내 개인, 열정이나 내향적인 긴밀도로 따지자면 그렇겠네. 내 진정 시인이었던 때는 시인이 되기 직전인 바로 그때였을까. ‘동문(東門)’은 필명이네(본명, 건호(建湖)). 병원 시체실로 향하는 문, 도성의 동쪽 시구문(屍口門), 죽음으로 가는 문. 나에게 시인이라는 이름은 재생의 다른 이름이네. 허나, 4·19 이후의 현실참여시를 쓸 때의 의기와, 5·16 쿠데타 이후에 군부를 조롱하고 야유하는 시를 쓸 때의 의지와 종국에는 시이기를 포기해서 시가 얻은 힘 역시 짚고 넘어가세. 시인이고, 문학가고 인간이기를 지치게 만든 그 시대에 차라리 인생의 여러 가지 장애물이 눈앞에 나타나 투지가 솟아나기를 바랐네. 시를 쓰는 시간에 차라리 쉬는 폭이 낫다고 여겼지. 시는 인생의 중대사가 못 되므로, 시는 인간의 정신을 자극해주는 일종의 각성제이지 그 자체가 인생의 목적도 정신의 목적도 아니기 때문에 시인이 되기보다는, 지사가 되거나 모럴리스트가 낫다고 여겼네. 그보다는 생활인이 되는 것이 나은 시대라고 여겼지. 세계를 외면하고 일생 시에 매달리는 것이 가당치 않기에…… 릴케와 같이 내면성의 광도(光度)를 밝힐 자는, 소수 전문화되어 우수한 시를 쓰는 시인들 몇이나 하면 될 일이네. 그보다도 시를 모르는 일개 노동자가 더 중요하고 대견한 일이겠지. 시인인 나를 버리고 생활의 나로 몰아붙이며 나를 조롱하고 군부를 조롱하는‘시 같지 않은 시’를 썼지. 그 고단한 때에 꽃, 나비, 산, 구름을 노래한 시인이며, 언어를 깎고 또 깎은 시인들은 삶의 현실에서 벗어난 자리에서 시를 구했으니 외려 나보다 마음고생이 심했을 테야.

신동옥 《새벽》편집장(1960~1963)으로 최인훈의『광장』등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경향신문 특집부장 겸 기획위원(1963~1964)으로 기사와 논설을 썼고, 조태일 등 후진을 발굴합니다. 신구문화사 편집 및 기획위원, 주간(1965~1968)으로다수의전집및단행본을펴는데관여합니다.《 창작과비평》대표(1969~1975)로‘만해문학상’을 제정, 운영하며‘창비시인선’을 펴내는 데 관여합니다. 이상 논객, 편집자로서의 이력입니다. 1964년‘북한에서 쌀을 수입하자’는 경향신문 독자투고, 1975년《창작과비평》여름호에 리영희의 글 등 긴급조치 9호 위반, 1975년 7월『신동엽전집』에 수록된「진달래 산천」의 이적성 시비. 이 세 번의 필화로 중앙정보부에 세 차례 연행 됩니다. 그때마다“다시는 정부를 비판하거나 북한을 이롭게 하는 글을 쓰지 않겠다”는‘각서’를 쓰고 풀려납니다. 필화가 시작되는 시기는 소위‘은둔기’와 겹칩니다.

신동문 누가 은둔을 하고, 누가 절필을 했다고 하던가. 내사 그들에게 회유와 협박을 받았고, 각서를 쓰고 풀려 났소만,“ 아이롱밑와이셔츠같이/당한그날은”(천상병,「 그날은-새」에서)이라고쓴친구만치가혹하게당하지는 않았으니 굳이 입에 올리지를 말게. 게다가 첫 번째 풀려나고 1965년에는「모작조감도」같이 한층 신랄한 대거리를 시랍시고 써 던졌어. 게다가 내가 충북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수양개 마을에 임야를 매입해 개간하기 시작한 것은 1962년부터였어요. 1975년 9월에 수양개로 낙향을 하네만, 본격적인 농사는 1969년 어간 뽕나무를 심어 양잠을 하던 무렵부터였네. 내가 저 백이숙제가 아닌 바에야 은둔이 가당키나 한가, 내가 시인이었던 적이 없었던 바에 절필이 가당키나 한가. 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로 가두는 규정과 관념이‘은둔’이고‘절필’이라는 낱말이야. 그 낱말에 나를 덧씌웠기에 내가 그렇게 비친 것일 뿐이네. 바꿔 보면, 저들이 시인이 아니었을 때, 나는 시인이었네. 그 수십 년 사이에도 서울 화곡동 본가의 처와 아이들(1남 2녀)과 함께, 가끔 오가는 동료들과 함께, 수양개며 단양의 농민들과 함께 내내 그랬네.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을 맘대로 해도 아무 상관없는데 공연히 하는 망상일까? 되새기는 순간 자기(自己)는 끝이야. 정체모를 특수기관에 감시받는다는 생각 때문에 입열고 손 놀리는 데 조심해야하는가? 생각하는 순간 시인은 끝이야. 나는 양잠을 하고, 소 키우고, 포도와 사과를 키우는 삶의 생산을 시와 같은 값으로 놓았네. 나만치 가난한 이웃에게 침을 놓아주는데 시 쓰는 기력과 같은 값의 기력을 썼네. 삽으로 펜을, 침봉으로 필봉을 부렸네. 자네사 변명으로 들릴라치면, 변명고(辨明考)로 물리면 그만이고.

신동옥 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태어난 고향인 충북 청원군 문의면 산덕리 일대는 대청댐 건설로 수몰됩니다(선생님께서도 보셨지요). 제2의 고향인 충북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일대는 충주댐 건설로 일찌감치 수장됩니다(선생님께서도 보셨지요). 올해, 2011년 여름은 듣도 보도 못한 물난리가 지독합니다. ‘정비’라며 물길이 뒤틀리고, 산야가 깎여나간 것이 몇 해 전부터 여태입니다. 2011년 가을로 선생님의 당부를 전한다면, 무엇입니까?

신동문 그들은 그들의 오명과 패착을 양수기와 삽을 삼아, 천년을 넘어 물길과 산야를 되돌려도 반성이라는 것을 모를 테야. 1963년‘시인이여 입법하라 아니면 폭동하라’라고 썼어요. 2011년 가을에도 변함은 없을 거요. 2011년 가을에도 자유의 가치를 문화나 문학보다 더 중히 여기게나. 욕망과 평안 사이에 진동하는 모순투성이 불완전한 인간들의 최대공약치의 이익을 보장하는 제도가 민주주의라 할지라도, 아니 그것이 민주주의이기에 모순을 딛고 자기의 신념으로 자기를 개혁하는 국민이 중하겠지. 그런 국민이 되게나. 2011년 가을의 금서를 쓰는 문인이 되게나. 내 편에서야 2011년 가을은 오해하기 딱 좋을 만치 바뀌었겠지. 그래, 백 번 양보해 다시 말하겠네. 문약(文弱) 취급을 받을라치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사는 진리의 은자가 되어 보길 꿈꾸게. 위대한 개성과 주관으로 현실에 간여하며, 참여하며 스스로 문학의 이상을 영원케 해 보시게. 행여‘거 참, 말이야 쉽지, 크고도 큰 말 아닌가’싶은가? 그러면 우리들의, 우리의 침묵이 비굴과 거세된 판단과 같은 패배의 침묵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는 마시게.
2011년가을에필요한것은오직하나, 용기일것. 최대한의용기로정신의폭동을일으킬것.“ 나는나다”라는말을 할 의무와 자격을 기를 것. 그래 끝끝내 스스로를 입법하거나 폭동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