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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비평의 자리를 묻다 ❷ 이 시대의 비평을 둘러싼 세 가지 풍경

- 최성일, 오길영, 신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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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평가의 죽음

지난 2011년 7월 2일 출판비평가 최성일(44)이 지병인 내종양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그가 그토록 좋아했던 책읽기를 더는 진행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최성일의 죽음은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비평가로서의 염결성, 치열한 책읽기, 올곧은 태도, 담대한 비판정신으로 인해 그의 글을 아끼는 많은 이들에게 슬픔과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그가 세상에 살았던 흔적은 우리시대 지성인과 사상가 218명의 사유의 궤적을 담은 역저『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1~5권)이나『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등의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출판저널》,〈 교수신문〉,〈 도서신문〉등의기자를역임한이후프리랜서출판비평가로십수년간지속적으로 서평을 써온 최성일이 보여준 한 사람의 비평가(서평가)로서의 지난하고 치열한 역정(歷程)은 이시대 비평과 비평가의 존재방식에 대한 근본적이며 우울한 생각으로 유도한다.
나는 비평가 최성일의 삶과 죽음을 통해‘과연 독립적이며 주체적인 전업비평가는 가능한가?’라는 물음을 던져보았다. 문학, 미술, 영화, 출판을 막론하고, 대학(학교), 특정한 출판사나 에콜, 컴퍼니(갤러리,영화사) 등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비평가가 비평 행위를 통해서 최소한의 생존을 유지하는 일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최성일은 그 힘든 길을 선택한 비평가이다. 적어도 최성일 앞에서라면‘비평의 독립성과 비판정신’운운하는 글에 냉소를 보였던 많은 비평가들이 머리를 수그려야 하리라. 때로는 책이 너무 좋아서, 때로는 생계의 방편으로, 때로는 출판비평가로서의 사명으로 인해 그는 그 수많은 책들에 대한 리뷰를 묵묵히 써 나갔으리라.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을 읽다보면 그가 책과 저자에 바친 지적 분투에 대해서 경외의 마음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책과 비평에 대한 엄청난 열정이 한 순간도 그를 경제적 안정으로 이끈 적은 없었을 터이다. 그는 늘 프리랜서 비평가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생계의 어려움, 미래에 대한 불안을 견디면서 묵묵히 비평행위를 수행해나갔다. 생각해보면 쉴 틈 없이 지속적으로 원고를 쓸 수밖에 없는 프리랜서 비평가의 고단한 삶이 그의 건강을 더 악화시킨 것이 아닐까.

어떤 입장으로부터도 비평적 주체성과 독립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그의 비평가로서의 태도는 그의 정신을 더 피곤하고 예민하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최성일은“책에 투항하느냐 투항하지 않느냐, 곧 비판적인 독서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 짓는다”고 적은 바 있다. 실제로 그는 이러한 비평관을 그의 글쓰기에 그대로 실천했다. 이를테면 최성일의 비평이나 서평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저자나 사상가의 책에 대해서도 냉철한 관점을 유지했으며, 편파적인 거대언론에 대해서도 시종일관 비판적이었다. 그는 체질적으로 신화화나 과대평가를 싫어했다.

나는 최성일의 죽음을 마주하면서 이 시대 비평가는 과연 어떤 존재인지에 곡진한 마음으로 다시 묻게 된다.

2. 비평가를 부탁해!

지난 10년간 많은 비평가들이 새롭게 등장했으며,그 비평가들의 비평언어는 더욱 화사해지고 있다. 이론에 대한 감각이나 관심도 한층 세밀해지고 증가한 듯하다. 지금 이 시대의 비평가들이 이론적인 감각의 측면에서 볼 때 한국현대비평사를 통해 가장 업그레이드된 비평세대라는 사실은 충분히 인정될 만하다. 평균적인 면에서 볼 때 비평문의 형식적 완성도나 문장력은 확실히 이전보다 좋아졌다. 그러나 도발적이며 문제제기적인 비평, 담대한 비판 정신으로 채워진 의욕적인 비평, 문학장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전개하는 비평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말하자면 문학제도나 문학장에 의해서 순치된 안전한(?) 비평언어만 넘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일러 비평이 문학제도 출판자본에 포섭되는 과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 싶다.

내가 최근에 접했던 가장 인상적인 비평문 중의 하나는 영문학자 오길영의「‘비평가’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면…‘신경숙을 부탁해!’: 신경숙의 베스트셀러와‘비평의 위기’」(프레시안, 2010.10.15)이다. 이 평문은 주로 신경숙의 베스트셀러『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에 대한 주류 평단의 호평 일변도에 맞서, 이 소설이 지니고 있는 몇 가지 치명적인 한계를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다.

예컨대 지나치게 남용되는 센티멘털리즘, 천사표 캐릭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단순성, 시대적 고통조차도 아름답게만 묘사하려는 작가의 태도 등이 이 작품에 어떤 미학적 파탄을 야기하는지를 세밀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 비평의 어떤 대목들은 작가 신경숙이 자기 갱신이나 새로운 문학적 도약을 위해서 진지하게 경청해야 될 내용들이다. 가령 “신경숙은 고통을 고통스럽지 않게, 아름답게만 그린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은 신경숙
소설의 미덕으로 흔히 꼽혀온 요소들이 냉철한‘악마’적 현실 감각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을 때 어떻게 작품을 해칠 수 있는가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등의 구절들이 그렇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다. 과연 이런 비평문이《창작과비평》이나《문학동네》,《 문학과사회》등의 문예지에 수록될 수 있는가? 왜 대부분의 문예지에서는 문학작품에 대한 비판적 서평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오길영의 비평문에 대한 반론이나 후속논의는 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인가? 이미 이런 현실에 대한 무수한 진단과 문제제기가 이루어졌지만, 비평계의답답한 현실은 한층 악화되고 있다.

신경숙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적 평문이 문학장과는 거리를 둔, 한국소설을 아끼는 한 영문학자에 의해 ‘프레시안’이라는 매체에 발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시대 비평의 습속과 본질을 드러내는 중요한 징후일 것이다. 한국소설을 위해서나 이 시대 비평을 위해서나 소설가 신경숙의 문학적 갱신을 위해서나, 이러한 현상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3. 발터 벤야민, 그리고 신형철

신형철의『느낌의 공동체』를 읽으면서 오래간만에 ‘비평의 매혹’을 만끽했다. 감성적이면서 유려한 문장력, 작품의 속살을 정확히 포착하는 뛰어난 감식력, 적절하고 빛나는 인용과 이론구사, 시대적 아젠다에 대한 성찰적 문제의식 등이 돋보이는 단평집(산문집)이었다. 내가 이 시대 비평에 대한 우울한 정조나 비관적 관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되었다면, 그것의 상당 부분은 신형철의 존재로 인해서이다. 그의『몰락의 에티카』나『느낌의 공동체』는 이 시대 문학비평이 도달한 드문 매혹적 경지와 잠재적 가능성을 활달하게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나는 신형철에게‘김현의 재림’이라는 수사적인 표현을 구사하는 것이 마냥 과장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게 이런 얘기를 하고싶다.“ 가장정확한방식으로칭찬을할수있는
비평을 하고 싶다”는 어느 인터뷰에서 그가 밝힌 입장을 물론 존중한다. 그리고 또“좋아하는 텍스트를 칭찬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만만한 텍스트를 두들겨 패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관점도 물론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신형철의 이런 발언들을 접하면서 다음과 같은 일련의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신형철이 두 번째 주장에서 구사한 어법으로 표현하자면, 그저 그런 텍스트를 칭찬하기보다는 정말 문제적인 텍스트에 대해 예리한 비판을 수행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지금 이 시대 평단은 칭찬이 많아서 문제인가? 아니면 비판이 많아서 문제인가? 가장 정확한 방식으로 비판하는 비평은 대부분의 문예지에 수록되기 힘들지만, 가장 정확한 방식으로 칭찬하는 비평은 문예지에서 적극 환영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칭찬과 긍정의 담론을 선택하고 있을 때, 비판적이며 문제제기적인 비평을 선택하는 것은 비평 문학의 균형감각을 위해서도 대단히 소중하고 필요한 작업 아닌가?

발터 벤야민의 일생을 한 편의 소설 형식으로 다룬 제이 파리니의『벤야민의 마지막 횡단』을 읽으면서비평가와‘몰락’에대한생각을했다.『 벤야민의 마지막 횡단』은 벤야민의 연애와 성을 지나치게 흥미 위주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벤야민의 인생여정을 뤼시엥 골드만의‘두 사람이 함께 책상 들기’방법론에 의거하여 비교적 생생하게 부조하고 있는 문제적 저작이다. 나는 벤야민의 기구한 인생과 자살을 통해 때로는 내 자신의 비평적 여정에 대해, 그리고 때로는『몰락의 에티카』의 저자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다.

‘몰락의 에티카’는 그 자체로 정말 매력적인 제목이자 개념이다. 그러나 신형철의 비평이 그야말로‘몰락의 에티카’에 부합되기 위해서는 그의 비평은 좀 더 기존의 문학장이나 주류 이데올로기와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에는 지금 이 시대 신형철의 비평과 입장은 적어도 문학판에 한정해서 보자면 지나치게 주류 지향적이다. 말의 진정한 의미에서‘몰락의 에티카’를 선택한 비평가는 주류 문학제도나 문학장과 불화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정권을 비판하고 용산참사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은 비평가라면 누구나 가능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자신(비평가)이 속해 있는 문학장이나 문학미디어에 대해 근본적인 비판과 문제제기를 수행하면서 ‘고립’을 선택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리라. 그런 선택을 감내하는 저자나 비평가에게 우리는 기꺼이‘몰락의 에티카’라는 표현을 구사할 수 있는것 아닐까? 「독일 비애극의 기원」이라는 제목의 박사학위논문이 보수적 학계의 이해를 얻지 못하면서 당대 주류지식사회에서 고립되었던 발터 벤야민, 혹은 그 벤야민이‘좌절한 자의 순수와 아름다음’으로 불렀던, 늘 기성체제와 불화했던 프란츠 카프카처럼. 나는 이 시대 비평가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덕목이 바로 문학적‘고립’을 담담하게 견디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신형철이 가장 정확한 방식으로 칭찬하는 비평을 앞으로도 읽고 싶다. 동시에 나는 그가 가장 정확한 방식으로 작품을 예리하게 비판하는 비평도 읽고 싶다(나는 그가 정확하고 아름다운 비판을 전개할 수 있는 흔치 않는 재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했을 때 나는 비로소 그의‘몰락의 에티카’를 참으로 적확한 표현으로 흔쾌히 내 마음에 새겨둘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