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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관해서

“몸은 대단히 많은 별개의 영역에서 주조된다.”
- 미셸 푸코

▲ © 운영자

올여름에도 피서지마다 몇 십 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운집했다. 바닷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거침없이 벗은 몸을 드러낸다. 젊은이들일수록 제 벗은 몸을 즐겨 드러낸다. 몸매를 드러내는 사람들은 낯선 이들의 관음증적인 시선을 은근히 즐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대에 들어서서 균형이 잘 잡히고 매끈하게 다듬어진 몸은 자랑할 만한 거리가 된다. 왜냐하면 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력한 재화 중의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몸을“만들고 다듬는”일은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사람들이 매력적인 몸매를 만드는 데 들이는 시간과 노고, 돈을 따져보라. 타고난 몸이 아니라 현대의 미적 규준에 맞춰 ‘만들어진’몸을 갖기 위해 사람들은 다이어트 식품이나 몸매 보정 속옷과 기능성 화장품들을 구매하고, 지방 흡입술이나 보톡스 시술을 하고, 헬스클럽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일부 사람들은‘만들어진’몸에 구멍을 뚫어 피어싱을 하고, 지워지지 않는 문신을 새기기도 한다. 도대체 몸이 무엇이길래?

사람은 몸의 존재다. 우리는 생활세계에서 투명한 존재가 아니라 몸이라는 형상을 갖고 살아간다. 이것은 사람이 세계 내의 물리적 존재로 산다는 뜻을 함축한다. 더 꼭 집어서 말하자면, 나는 나의 몸으로써 산다는 말이다. 나는 머리, 눈, 코, 입, 귀, 손, 발, 지체들을 갖고 산다. 이것은 내 몸의 부분들이며 곧 나의 전체다. 몸은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물적 토대다. 나는 몸의 존재로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운동을 하고, 사랑을 하고, 노동을 하고, 갖가지 사회활동에 참여한다. 이때 몸이란 의식이나 정신과 분리된 그 무엇이 아니라 온전히 합체된 것이다. 몸은 실존의 기초적 바탕이다. 몸은 실존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실존의 목적이다. 이게 주체로서의 몸이다.

다른 한편으로 내 몸은 내 실존의 바탕이면서, 동시에 타자의 시선에 의해 발견되고 지각되며 때로는 소비되는몸이기도하다. 내몸은타자의시선에보여짐으로써대상화된다.‘ 본다’라는행위는의식활동과 더불어 더 깊은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무의식의 욕망을 동시에 외시한다. 내가‘눈’의 존재로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많은‘눈’들이 있었다. 그 말은 내가 보기도 전에 내 존재가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나는보면서보여지는존재다. 한철학자는 이렇게 적는다.

“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누군가의 눈이 우리를 보고 있다는 점에 의존한다”(자크 라캉). 우리가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무의식의 시선, 즉 남들이 보는 방식의 차용에 지나지 않는다. 남에게 보여지면서 대상화된 내 몸이란 나의 지각적 인식 바깥으로 밀려나간 몸이다. 그럼으로써 나의 실존에서 소외된 몸이다. 그러나 타인들은 이 몸을 바라보고 자기 너머에 있는 누군가를 지각하고 관계를 맺는다. 사랑은 그 관계의 한 특수한 형식이다. 나는 너와 손을 잡고, 너의 뺨을 쓰다듬으며, 나의 입술과 너의 입술을 겹쳐 키스를 한다. 사랑은 말벌의 투침(投針)처럼 나의 몸을 너의 몸에게로 쏟아져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몸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타인과
사랑을 나눌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몸은 세계 내의 존재로서 실존하는 몸이다. 나는 나의 몸으로 육화된 실체다. 곧 나의 몸은 ‘나’라는 전체를 이루고 나의 실존을 겪는 주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실존이란 무엇인가? 메를로 퐁티에 따르면 실존은“의미를 갖지 않은 것이 의미를 갖도록 하고, 성적인 의미만을 가진 것을 보다 일반적인 의미 내용을 갖도록 하는 작용 자체, 우연이 정당성을 얻고, 사실적인 상황을 되잡는 한에서의 활동 자체”『( 지각의현상학』)이다. 본디실존은애매하고규정하기어렵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실존은 비결 정성의 상태에 놓여 있는 까닭이다. 실존은 이미 만들어진 그 무엇이 아니며 항상적으로 무엇으로 만들어지는 활동, 즉 우연들을 필연들로 바꾸고, 무의미한 것들을 의미의 맥락 속에서 의미화하며, 본성을 자유로 펼쳐내는 활동 자체다. 나는 몸이며, 몸으로써 표현되는 모든 것이 실존인 것이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다. 내 몸은 이미 사회화의 장 안에 포획된 몸이다. 내 몸에 행동이 장착되는 순간 내 몸은 생리적 몸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내 몸은 생리적인 몸일 뿐만 아니라 의도가 각인된 몸이고, 사회와 역사의“사건들이 각인된 표면”(미셸 푸코,『 니체, 계보학, 역사』)이다. 내 몸은 내 것이면서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의 장과 연루되어 있고 정치의 장으로 소환된 몸이다. 그런 맥락에서 미셸 푸코는 몸을“담론과 권력의 영역들이 그 자체를 각인하는 장소이자 권력의 사법적, 생산적인 관계들의 연결점 또는 극점”이라고 말한다. 내 몸은 무수한 정치적 사법적 명령들을 체화하며 움직인다. 내 몸은 건널목에서 파란 신호등이 들어올 때 길을 건너고 빨간 신호등이 들어올 때 멈춰 선다. 내 몸은 규율 권력이 기입되는 양피지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법과 권력에서 발화되는 명령들을 위반할 때 몸에 대한 처벌, 감시, 징벌, 속박들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몸들은 끊임없이 탈주한다. 몸들은 새로운 도덕, 새로운 정치, 새로운 역사의 장으로 탈주한다. 몸들은 정치와 권력의 장 안에 포획된 몸이면서 동시에 자유롭고자 하는 실존의 몸이기 때문이다.

몸을 통째로 감싸고 있는 것은 피부다. 피부는 세계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경계면이다. 피부는 몸이 세상과 만나는 최초의 매체이자 장소다. 아울러 피부는 몸의 표면이면서 동시에 존재의 심연이다. 피부는 나이와 연령을 나타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신체 내부 장기들의 건강과 심리를 드러낸다. 매끈한 피부는 젊음과 건강과 아름다움의 표상이다. 누구나 매끈한 피부를 갖기를 소망한다. 피부는 몸에서 가장 먼저 노화를 겪는다. 피부에서 일어나는 노화 현상은 몸이 영구불변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한다. 탱탱하고 윤기가 나는 피부는 주름이 생기고 늘어지며 윤기도 사라진다. 몸을 지탱하는 뼈들은 약해져서 허리가 굽는다. 한 시인은 늙음을 이렇게 묘사한다. “시간이 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오래 입어 해진 스웨터를 걸치고/팔순이 넘은 어머니가/ 6시 13분에 저녁을 달게 먹었다/어머니는 늘 시간을 먹고 사는 줄 알았는데/이제 어머니는 시간의 먹잇감이 되었다/시간은 이미 귀를 먹어치웠다/삐걱거리는 나무 의자에 앉은/왼쪽 발목 관절을 먹는 시간의 입가에/어머니가 먹은 시간이 질질 흘러내렸다/시간은 사람을 먹어 작아지게 한다/기억을 먹어버리고/안경 너머 짓무른 눈에는 끈끈한 침을 발라놓았다/이 빠져 흉한 사기그릇처럼/군데군데 이빨마저 먹어치웠다/시간 앞에 먹이거리로 던져진 육신/어머니는 이제 손목에 시계를 차지 않았다/오늘도 어머니는 6시 13분에 저녁을 달게 먹었다/기다렸다는 듯/시간은 어머니 오른쪽 무릎관절에입을대었다/먹히던시간이/무서운제속내를드러내고있다”(정진혁,「 시간은사람을먹고자란다」) 팔순이 넘은 노모는 이미 노화의 최종단계에 도달해 있다. 노모가 겪는 노화는 질병은 아니되 질병과 같은 끔찍한 현상을 드러낸다. 몸의 균형은 무너지고 몸의 여러 부위들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침침해진 눈은 잘 보지 못하고, 입은 다물어지지 않아 침을 흘리고, 귀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이렇듯 늙은 몸이 겪는 이 기능 실조증들은 우리를 아연하게 만든다. 한때 이 몸이 이팔청춘의 파릇한 아름다움으로 빛났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을 수가 없다. 노화란 몸이 애초에 시간에 저당 잡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노화는 몸-주체에게 주어지는 하나의 시련이요, 혼란이다.

올 여름에도 나는 바닷가에 가지 못한다. 벌써 몇 년째‘일’에 붙잡혀 있는 까닭이다. 대신에 나는 지방에 있는 한 대학교의 기숙사에 머물며 책을 쓰고 있다. 이 기숙사에서 여름을 보낼 예정이다. 다행히도 대학교의 캠퍼스 안에 수영장과 헬스장이 있다. 나는 오후 늦게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하고 헬스장에서 근력 운동을 한다. 날마다 수영과 근력 운동을 번갈아 하며 변화하는 내 몸을 느낀다. 몸을 조련/단련하면 근육의 양이 는다. 몸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보람과 기쁨을 느끼는 것은 몸이 행동의 출발점이요, 의미 생산의 토대라는 사실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몸은 세계 내의 능동적 존재로 내가 견디고 살아온 삶의 역사다. 나는‘만들어지는’몸이고, 나의 실존은 몸의 현재성 안에서 작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