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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을수록 좋은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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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이 자자해서‘나는 가수다’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몇 번 보았다. 소문은 과장이 아니었다. 가창력이나 음악성에서 내로라하는 가수들을 일반인들이 평가하거나 소리를 크게 내지를수록 높은 점수를 주는게 좀 못마땅하기는 하지만, 텔레비전에 거의 나오지 않는 실력파 가수들의 개성을 엿보는 즐거움은 작지 않다. 그들의 노래를 듣고 울었다거나 소름이 돋았다는 말이 이해가 될 것 같다. 어느 시청자는 미용실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나가수'의 노래가 나오자 미용실 모든 직원들에게 빵을 사주는가 하면 택시에서는 거스름돈을 팁으로 주었다고 한다.
10대 청소년들이 우려할 정도로 연예인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감정을 감추는 데 익숙한 중년이 좋아하는 가수에게 열광하는 모습은 좀 낯설다. 주변에 노래방은 얼마나 많으며, 가수라고 불러야 할만큼 노래 실력이 빼어난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노래를 즐기는 편이 아닌 나도 술자리에서 노래방으로 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고, 등 떠밀려 즉흥적으로 노래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옛날 가요밖에 아는 게 없는데 웬만한 중년들은 최신곡도 척척 부른다. 노래 못 하는 것이 큰 스트레스가 될 정도로 우리는 노래를 즐기는 문화를 갖고 있다.
우리 사회는 개인이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사용할 기회가 많지 않다. 마음을 감추고 사회적인 얼굴로 생활하게 된다. 그래서 술 담배 소비가 많은 모양이다. 노래는 건강을 해치지 않으면서 공개적으로 제 감정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삶의 스트레스를 노래로 푼다면 삶의 질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온 국민이 다 가수가 된다 해서 안될게무엇인가. 최근에 한 전철역 주변에서‘노래연습장’,‘ 가요주점’,‘ 도우미항시대기’등의 네온 사인이 거리 양쪽에 가득한 걸 보고 생각이 좀 달라졌다. ‘노래’를 내세우고 있으나 술과 여자가 있는 영업장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는 충분히 짐작이 간다. 풍요는 좋지만 조금만 지나쳐도 소돔과 고모라가 되기 쉽다.
노래 좋아하는 사회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시단이 떠올랐다. 외국 시인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늘 자랑하는 것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신간 시집이 수천 권씩 팔리고, 매일 시가 실리는 일간지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그들은 선뜻 믿지 못하거나 무척 부러워한다. 우리나라에 시인과 문예지와 문학상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된다면 더욱 놀랄 것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시 쓰기를 통해 삶과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면서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고 삶의 압박에서 오는 내면의 불균형을 건전하게 정화시키니 아니 좋을 리 있겠는가. 국민들의 교양과 문화 수준도 성숙해질 것이니 꽤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다. 온 국민은 아니더라도 열 명에 한 명 꼴로 시인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어디에 발을 들이밀 것인가.
그러나 문학의 풍요가 오히려 문학의 위기라는 지적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금년도 한중작가회의에서 오생근 평론가는 발제문을 통해 문학의 과잉 생산이 오히려 좋은 문학 작품을 가려내는 일을 어렵게 만들고 좋은 책과 나쁜 책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그래서 나쁜 작품이 좋은 작품을 밀어내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이것이 문학 정신을 쇠퇴시키고‘삶을 근원적으로 반성하게 만들고 새로운 삶을 꿈꾸게 하는’문학 본연의 의무를 망각시킨다는 것이다.
예비 시인들은 시를 즐기기보다는 시인이 되는 것에만 마음에 두지 않는지, 기성 시인들은 읽기를 게을리 하면서 제 작품 밀어내기에만 급급하지 않는지, 문예지들은 너무 많은 작품을 쏟아내 오히려 좋은 작품 읽기를 방해하지는 않는지, 문학상들은 끼리끼리 사이좋게 나누고 베풀어 열심히 쓰는 작가들의 창작 의욕을 꺾고 있지는 않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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