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매미들이 우는 사연 |
| |
장마가 끝나고 날씨가 활짝 들었다. 먼 산위로 뭉게구름이 솟았다. 뭉게구름을 본 지가 얼마만인가. 반갑다. 날씨가 활짝 개이니 뙤약볕 속에 매미 울음소리가 유난하다. 옛날 어렸을 때 우리들은 강가 바위에서 잠을 잤다. 넓은 바위 위에서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을 지붕 삼아“별 하나 꽁꽁 별 둘 꽁꽁”별들을 세며 잠이 들었다가 아침이면 매미 소리를 듣고 잠이 깨었다. 아침 일찍 잠을 깨우는 매미는 왕매미다. “맴맴맴”하며 운다. 밭도 매고 논도 매라고 해 뜨는 아침 높은 미루나무 꼭대기에서 맴맴맴 운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매미가 운다. 처음에는 찌찌찌 하며‘찌 매미’가 울더니, 며칠 전부터“일추개 일추개”하며 ‘일추개’매미가 운다. 이 매미는 늦모 심을 무렵에 빨리 일을 추리라고 일추게일추게 울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무슨 일을 못 추리고 있는지 이 매미가 아파트 내 창문 밖에서 일추개 일추개 하며 밤에 우는 게 아닌가. 나는 깜짝 놀랐다. 매미가 밤에 울다니, 도시에서 매미가 너무 시끄럽게 울어 밤잠을 설치게 한다는 소리를 들었어도 밤에 우는 매미 울음소리는 난생 처음이다. 생각해 보니, 도시 사람들은 두시 세시가 되어도 한낮처럼 잠을 자지 않고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이광웅 김남주 시인하고 나는 서울 강남터미널 앞 인도의 플라타너스 나무그늘 아래 서 있었다. 그 때 이광웅 시인이“매미가 운다. 매미가”하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도시의 그 시끄러운 소음 속에 매미들이 울고 있었다.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와가리’라고 하는 매미들이 여기저기 새까맣게 붙어 떼로 울고 있었다. 이 매미는 떼로 와그르르 울다가 일제히 뚝 그친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또 와그르르 와그르르 운다. 차 소리 속에 섞인 매미 소리는 너무나 시끄러웠다. 무엇인가를 찢는 소리 같았다. 김남주 시인이 매미들을 올려다보며“악을 쓰네. 악을 써”그랬다. 정말 매미들이 악을 쓰고 있었다. 악쓰며 우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바락바락’악쓰며 사는 우리들의 일상을 생각했었다. 조용한 시골 마을 해질녘에 뽕나무에서“뜰람 뜰람”하며 우는 매미가 있다. 그 매미는 사람들이 들에서 돌아올 무렵에 운다. 해지면 매미소리 들으며 논과 밭에서 나오고 해 뜨면 논이나 밭으로 일 나가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뜬 모와 개망초 꽃
심어 놓은 모들이 자리를 잡아 간다. 논가에 있는 학교는 늘 조용하다.
아이들이 줄어든 운동장에 하루가 멀다하게 제초제를 뿌려도
금방 풀이 자란다. 끝이 꼬실라진 풀들도 이제 제 몸 일부를 버릴 줄 안다.
논물이 맑아졌다. 논길이 학교 길이다.
저 꽃이 개망초 꽃이다. 엄마는 논에 가면서
어둔 얼굴로 말했다.
나 없어도 아빠랑 살 수 있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 말이 무슨 말인지 그 때 나는 몰랐다.
뜬 모를 때울 때 엄마는 떠났다.
해가 져도 엄마가 돌아오지 않은 날
어두운 마당에 들어 선 아버지는 흙 묻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나갔다. 아버지, 아버지 어디가?
아버지와 엄마가 싸울 때, 우리 세 사람 가슴에 고여 길을 찾지 못하는
말들 때문에 답답했다.
밤이면 검게 탄 아버지의 얼굴은 더 어두웠다.
자리 잡지 못한 벼들이 둥둥 떠 있다.
소쩍새가 운다. 엄마도 저 새소리를 들었을까.
5일 째다.
말도 통하지 않던 엄마가 어떻게 개망초 꽃을 알았을까.
엄마의 고향은 섬이랬다.
야자수, 망고, 바나나, 일 년 열 두 달 내내 여름이라고
엄마는 슬픈 얼굴을 더듬으며 내게 말했다.
다른 나라 사람인 엄마의 슬픔이 내게 몰려올 때면
나는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
엄마는 이제 오지 않을 것이다.
불을 켠다. 전화벨이 울린다. 아빠다!
그래, 안 왔어.
개망초 꽃이 이렇게 해사한지 몰랐다.
개망초 꽃을 보고 있으면 엄마가 꼭 올 것 같다.
뜬 모가 비스듬하게 뿌리를 내렸다. 바로 설 수 있을까?
학교로 간다.
운동장에는 끝이 노랗게 탄 풀들이 고개를 들고 돋아난다. 볼수록
운동장이 넓다.
교실로 들어갈 때 우리 집 쪽에서
경운기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다.
개망초 꽃 핀 논둑길을 경운기는 달린다.
아버지는 뿌리가 하얀 뜬 모를 때우러 간다.
바퀴들은 쉬지 않는다.
바퀴들은 쉬지 않는다.
앞산에서 졸참나무와 그냥 참나무가 새잎을 피워내고
뒷산 솔숲 아래 마삭 줄기에 참새 혀 같은 새잎이 돋아나며 세상과 깊숙이
키스를 하는 동안에도
바퀴들은 쉬지 않는다.
인간의 고독은 끝이 없이 진화한다.
아! 눈물을 흘리는 기계를 만들고 싶다.
사랑을 느끼는 터미네이터를 만들고 싶다.
세상을 한 손에 쥐고 무엇이든 한 번의 터치로 끝낸다.
한쪽을 베어 먹은 사과를 든 사람과 별 세 개로 삼각편대를 거느린
그들이 무엇이든지 한 손에 쥘 수 있다고 싸우는 동안
서정의 철조망을 넘어 간 시들이
도시의 뒷골목에서
기아에 허덕인다. 피를 다 흘리면 기계가 될까.
총알처럼, 쉬면 죽는다.
그것을 알기에
자본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굴러 갈 뿐, 고무타이어처럼 숨 쉴 틈이 없다.
물로 돌아가는 물레방앗간 큰 바퀴가 쉬는 동안에도
연애가 이루어졌듯이 바퀴를 굴리고
한강으로 달려 간 사람들이
부서지는 불빛으로 한강에서 바람을 피운다.
스스로 바람을 만들며 날아가는 나비여!
바퀴들이 쉬지 않고 굴러간다.
졸참나무와 그냥 참나무와 참새 혀 같은 마삭 줄기에 새잎들이
세상 속으로 혀를 깊이 밀어 넣는 동안
너의 일거수일투족은 실시간으로 생중계되고 면밀히 재생된다.
비밀은 없다. 쑥으로 어린 목숨을 연명하던 할머니가
재래시장 한쪽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새 쑥과 돌미나리와 두릅을 판다.
팔리지 않아 시든 두릅과 쑥이 할머니 무릎에 돋다 만 새 싹 같다.
혀가 닿지 않은 세상에서도
바퀴들은 절대 쉬지 않는다.
나는 조각배
집에서 놉니다.
노니, 좋습니다.
아파트 정원 산딸나무 꽃이 피었습니다.
희고 고운 꽃잎들이 초록의 나뭇잎 위에
십자모형으로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피었습니다.
초여름 꽃들은 흰 꽃이 많답니다.
때죽나무 꽃, 그 꽃은 대롱대롱 매달려 피지요
꽃술 끝이 노란 그 꽃도 희고 곱답니다. 꽃이 질 때
그것들을 오래오래 바라보면
내 몸에 실린 짐들을 하나 둘 몸 밖으로 던지는 꿈을 꿉니다.
마음의 짐을 다 내려놓으면 눈이 저절로 감겨 집니다.
눈이 감겨지면 내 몸은 빈 배가 되어
그 어느 먼 곳으로 기우뚱기우뚱 더갑니다.
한없이, 한이 없이, 좋습니다. 순순한 바다,
먼 수평선 너머로 깜빡 꺼져서, 나는 나를 놓고 깜박 꺼져서
그래요.
그렇게 당신의 흰 발뒤꿈치에 가만히 가 닿고 싶은
나는
한 조각
빈 배지요.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