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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왜 궁금한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궁금하다

초등학교 동창 중에 내가 짝사랑했던 아이가 둘 있었다. 한 명도 아니고 둘이라고 하면 이야기가 좀 이상하지만 하여간 두 명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짝사랑을 한 건지도 잘 모르겠고 어쨌든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동창회를 해도 나오지 않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친구들에게 물어보아도 소식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의 여자 아이들은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했다. 마을 근처의 휴게소에서 그네들은
내가 서울로 올라올 때마다 운전기사들에게 부탁해 나를 휴게소에 잠깐 들른 고속버스에 태워주었다. 지금도 그 친구들이 너무 고맙다. 지금은 애를 둘, 셋씩 낳아서 읍내에서 잘살고 있으니 그들의 삶이 궁금하지는 않다. 동창생 남자들도 대부분 결혼해서 안산이나 경기도 인근에서 고 있으니 그들이 궁금하지도 않다. 오직 소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인생만이 비밀에 싸여 우리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것이다.

또 궁금한 건, 어릴 적 한밤중에 우리 집 문을 두드리던 사람이다. 그 남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에 밥을 구걸하러 왔다. 식구들은 모두 놀라서 방에 숨어있고 그릇에 밥을 담아서 아버지가 대문 밖으로 넘겨주었다. 그들은 동냥그릇인지 아니면 비닐봉지인지에 밥을 비우고 어둠속으로 돌아갔다. 문둥이인지 아니면 어떤 사연 때문에 쫓기는 사람인지 묻고 싶었지만 그 당시엔 그런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얼마 전, 그날의 일이 궁금해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버지와 식구들 모두 아무런 기억이 없다고 했다. 그들은 비가 내리는데 어디에서 잠을 잤을까. 비를 피하고 잤을까 아니면 어디선가에서 비를 맞으며 잤을까. 왜 한밤중에 우리 집 문을 두드렸을까. 문둥이들이었을까. 범죄로 쫓기는 사람들이었을까. 춥고 배고파서 떨고 있는 가족과 자식들을 보면서 그 사내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중학교 동창 중에는 자장면 배달을 하던 아이가 있었다. 키가 작고 아주 뚱뚱했는데 손버릇이 좀 좋지 않았지만 성격은 명랑했다. 대학에 다닐 때 고향에 내려가면 그 친구를 길에서 우연히 만나기도 했고 버스터미널까지 나를 오토바이로 태워다주는 친절을 베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 친구는 웃으며 나중에 자기 음식점을 꼭 열겠다고 말했다. 지금 그는 소원하던 자장면집을 열었을까.

궁금했던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된 경우도 있었다. 옆 마을에서 할머니랑 살고 있는 어린 여자 아이의 이야기가 그 경우이다. 고향에서 공익근무로 시간을 보낼 때 초등학교를 다니던 여자애가 있었다. 공부도 잘 못하고 몸이 마른데다 꼬질꼬질해서 학교 아이들에게도 자주 놀림을 받던아이는 초등학교 졸업을 하고 읍내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지나칠 때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농담을 건넸다.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나는 장난을 치다가도 어쭙잖게 장래에 열심히 살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투의 얘기를 해주기도 했다. 아마도 학비가 면제되는 약간의 보상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 아이는 다니는 여자중학교에서 오래달리기 선수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아무도 그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달리는 모습을 타인이 바라본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나는 서울로 왔고 그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소식을 간간히 들었다. 그런데 얼마 전 비극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 아이는 졸업 후에 공장에서 일을 하며 월급을 모으고 있었고 회식이 끝나고 술에 취해 난간에서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날은 기숙사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아이는 뒤늦게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월급으로 받은 돈은 알코올 중독에 걸린 삼촌이 빼서 쓰고 있었는데 그 아이에게 나온 보상금은 유일한 혈육인 삼촌에게 지급되었다는 것이다.

가난하고 예뻤던 초등학교 동창, 한밤중에 대문을 두드리던 사람, 읍내에서 자장면 배달을 하던 친구, 살 만해지자 안타깝게 죽은 소녀…… 그들은 모두 가난하고 슬픈 인생을 살아왔거나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야할지 모르는 인생들이다. 어쩌면 나의 편견이 행복한 사람들을 불행의 모습으로 착각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나의 글이 그들의 인생을 어떻게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나는 그들의 슬픔, 굴욕, 비참, 희망, 그런 것들을 같이 느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들과 내가 왠지 같은 물질로 이루어져 먼 곳에 떨어져 있어도 가슴 한 켠에 같은 전기가 통하는 것 같은 착각은 나 또한 그렇게 가난하고 슬프고 스러져갈 인생을 살 가능성이 많아서일까.

다시 만나서 얼굴을 본다고 한들, 그리고 소식을 안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질까. 또 소식을 알게 되면 궁금증과 아련함이 사라질 거 같아 한편으론 보고 싶지 않기도 하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어쨌든, 왜 궁금한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들의 지금 모습이 그리고 앞으로의 모습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