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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모르포세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르가스터는 물론이고 호모 에렉투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를 포함한 호모 사피엔스까지 전 인류는 모두 멸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인류가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진화했다는 설과 한 종이 다양한 종으로 나뉘며, 경쟁한 끝에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은 종이 현생 인류가 되었다는 설이 분분하던 때였어. 물론 호모 사피엔스가 살던 시절에도 깊은 산 중에, 호모 사피엔스의 문명이 미쳐 닿지 않았던 밀림 속에는 오랑펜텍이나 빅풋 같은 호모 에렉투스 혹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류의 종이 존재했지만. 호모사피엔스는 그들의 시간 개념으로 약 20만년 가까이 지구라는 곳에 살았다. 그들은 입천장이 움푹 들어가 있고, 후두부터 목구멍까지의 관의 길이가 길어서 다른 동물들보다 말을 잘 할 수 있었지. 하지만 영장류인 보노보와 침팬지들과 DNA 염기 서열이 97%나 일치하는 하등한 존재들이었단다. 보노보나 침팬지들과 다름없이 집단생활을 했고 커뮤니케이션을 중요시 했어. 심지어 자신들을 일컬어 스스로 슬기로운 사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까지 지어 가졌으니 그들의 동물적 자부심이야 말로 전 인류의 역사에 남을만한 것이었지. 그들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까지 했다니까.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 순간 절멸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들의 주 서식지였던 지구의 존재 자체가 워낙 우주의 중심에서 멀었고, 비좁은 태양계에서도 작은 축에 속하는 미미한 행성에 별다른 관심을 갖는 메타모르포세스가 없어서 호모 사피엔스의 멸절은 은하계에 큰 이슈가 되지도 못했지.

그런데 메타모르포세스 중 유난히 호모 사피엔스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있었단다. 왜 어느 종에나 탐험 정신이 투철한 종류의 별종이 있기 마련이지. 그는 호모 사피엔스에 대해 많은 시간을 들여 연구했어. 그들을 직접 보고 싶어 했지. 호모 사피엔스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야. 우주의 골짜기 어디쯤, 그러니까 이미 잊혀진 행성, 지구 어딘가에 호모 사피엔스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너희들도 알다시피 호모 사피엔스는 우리보다 훨씬 거대하고, 야만적인 종이었단다. 그들 중에는 2m가 넘게 성장하는 인간도 있었어. 팔 다리는 또 얼마나 길고, 머리털은 무성했는지 그들이 다양한 색깔의 털을 어깨까지 기르고 다니는 모습의 사진을 몇 장이나 볼 수 있었지. 하기야 한 행성을 스스로 파괴한 전에 없던 인류였잖니. 그들은 무기라는 도구를 사용한 전무후무한 인류였어. 호모 사피엔스는 자신들이 자기반성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지녔다고 믿었지만 가장 야만적인 종이었던 그들은 끝까지 자기반성도, 문제해결도 하지 못했다. 자기반성과 문제해결이 그들의 언어로 자기 합리화라는 이름으로 번역 되는 것이라면 모를까. 너도 나도 자기를 표현하고,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고, 비슷한 부류의 인간들끼리 조직을 만들어 복잡한 사회 구조를 만들어 낼 생각만 했지. 심지어 사회 조직 내에서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해 각자 성이나 이름을 지어 가졌고, 그 이름으로 서로를 불렀어. 우리에게 남아있는 호모 사피엔스의 흔적이란 미와 미학에 대한 관심뿐이란다. 예술, 그러니까 문학이나 음악과 같은 문화에 대한 관심이 그들에게도 얼마간 있었다는 거야. 하지만 그들이 세운 도시들을봐. 그들의 미학은 파괴와 파괴, 고갈과 고갈의 미학이었지.

호모 사피엔스는 오로지 자신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영향을 미치려는 욕망 때문에 과학이나 철학, 신화, 종교 같은 것들을 발전시킨 거였다고 해.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백과사전에 자랑스럽게 고백하고 있단다. 메타모르포세스. 우리는 어떤 것도 발전시키지 않지. 우리의 입장에서야 무엇에 대한 욕망이든 인간에게 욕망이 남아 있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신기한 일이지만. 아무튼 그들은 번거롭게 많은 도구를 이용해야 했어. 하다못해 고작 몇 십 킬로미터 떨어진 아주 가까운 곳에 갈 때에도 자동차나 비행기라고 불리는 것들을 이용해야 했단다. 그들에게는 바퀴나 날개가 없었어. 스스로 가벼워 질 수도 무거워질 수도 없었지. 오로지 도구만을 발명하고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끝없이 도구를 발명했고, 기술을 발전시켰다. 스스로는 조금도 변화할수 없었거든. 그들은 끝없이 변화를 꿈꿨고, 변화하기 위해 이성을 사용했고, 이성을 사용해 변질되어 갔단다. 오비디우스는 먼 길을 떠나기 전에 수사학과 웅변술을 배웠어. 물론 오비디우스라는 이름도 지어 가졌지. 그는 호모 사피엔스와 어울려 살기 위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호모 사피엔스 최고의 발명품, 언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 거야.

오비디우스는 당시 가장 흔한 호모 사피엔스의 모습으로 변신했어. 이름답게 곱슬곱슬한 갈색 머리칼을 길렀고, 흰 얼굴에 수염도 자라게 했지. 적당히 배가 나오도록 해서 우리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모두 할 말을 잃었단다. 그의 불룩한 배에 튀어나와 있던 참외 배꼽이란. 그가 호모 사피엔스를 오랫동안 연구한 성과였지. 호모 사피엔스의 언어는 당시 6천여 가지였는데 오비디우스는 그 모든 언어들을 완전히 습득했다. 어떤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하게 되든 그들이 감탄할 만한 수준의 문장을 준비했지. 오비디우스가 호모 사피엔스 사회에서 오랫동안 시인으로 불린 것은 다시 생각해도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일이야. 보이저 1호는 오비디우스가 호모 사피엔스를 찾아 지구로 떠난 지 삼 년 만엔가 우주의 공터에서 발견되었다. 금제 음반에는 115개의 그림과 파도, 바람, 천둥, 새와 고래의 노래와 같은 자연의 소리, 여러 시대의 음악, 55개의 언어로 된 그들의 인사말 등이 실려 있었는데 물론 우리에겐 전혀 새로울 게 없었어.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었거든. 너희도 들어본 적 있지? 지구의 새소리와 바람 소리. 아침이면 우리는 지구의 새와 바람이, 고래와 파도가 되어 서로에게 장난을 걸기도 했단다. 오비디우스는 태생이 성실한 탐험가였고 시간이 흐르자 점점 호모 사피엔스를 닮아가서 무엇인가를 기록하는 일과 누군가와 소통하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어. 그는 그들의 언어로 몇 권의 책을 냈는데 우리에게도 파일을 전송해 주었단다. 그 중 한 권이『메타모르포세스』,변신이야기였어.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였지.

하지만 그들은 오비디우스의 정체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단다. 거기엔 잠시 오비디우스의 옆집에 살았던 파마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파마는 소문을 내기 좋아하는 인간이었거든. 오비디우스를 좋아해서 자신의 몸을 온통 눈으로 도배했던 아르구스 이야기를 읽을 때 우리는 모두 배꼽이 빠졌지. 사실 아르구스에 대한 소문을 낸 것도 파마였거든. 아르구스의 눈이 진짜 백 개였냐고? 글쎄. 한 순간은 그랬을지도.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세고 싶어 하지 않았단다. 눈동자의 색깔이 모두 달라서 너무 현란했거든. 오비디우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지나치게 촌스러운 모습이었지. 하기야 암곰이 되는 칼리스토는 어떻고. 칼리스토는 딱 한 번 곰으로 변신해서 오비디우스의 단잠을 깨웠을 뿐이었단다. 그래도 오비디우스는 꽤 오래 버텼지. 하루에도 몇 번씩 몸을 바꾸며 살던 메타모르포세스가 한 몸으로 어떻게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있었는지. 우리는 혀를 내둘렀어. 그의 목소리를 들은 날은 단체로 거대한 혀 모양으로 변신하기도 했다니까. 호모 사피엔스들은 그가 흑해 연안의 벽지에서 죽었다고 믿었다. 그렇게 믿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가 버린 몸을 매장했고, 그의 죽음을 기록했고, 자손들에게 전승했어. 아이들은 오비디우스의 메타모르포세스를 그리스 로마 신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지.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하지만 오비디우스는 꽤 오래 지구에 남아있었단다. 그는 바그너의 오페라 <신들의 황혼>으로, 해발 2000m 화산 분화구의 고요한 호수로, 깊은 우물의 건질 수 없는 두레박으로, 시시 때때로 몸을 바꿔가며 오래 오래 지구에 머물렀지. 언젠가. 그러니까 정말 호모 사피엔스가 멸절하기 직전이었던가. 그들의 멸종위기 단계가 상향 조정 돼서 오비디우스는 어떤 물질로 그들 곁에 머무르든 위기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들 자신이 측정하는 멸종위기 단계는 몇 천 년째 변함없이 안전이었지. 호모 사피엔스는 위기 파악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어.

그것 자체가 바로 그들의 위기이기도 했지만. 하늘에서 새들이 수천마리씩 죽어 떨어지고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빙하가 녹아 흐르기 시작했어. 오비디우스는 바다가 뒤집히고 하늘이 갈라져 숨을 쉬기가 힘들 때가 많다고 했지. 그래도 그는 지구를 떠나지 않았고, 지구 밖으로, 메타모르포세스들을 향해, 우리들을 향해 송신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를 어디서나 들을 수 있었고, 그가 보낸 영상들이 지구의 안개처럼 공중에 떠다니기도 했지.

어느 날 오비디우스가 보낸 통신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그가 정말 오랜만에 호모 사피엔스, 그들의 몸을 입고 있을 때였을 거야. 그가 여자로 변신했었는지 남자로 변신했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들 나이로 서른이 조금 넘은 것 같았지. 그가 그간 보내왔던 언어 중 가장 생소한 언어였어. 우리는 특이한 알파벳의 모양만으로도 그가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어떤 국적을 빌려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단다. 자, 여기 이것들이 바로 그 문장들이야.

그들은 이름을 부르며 운다.
호모 사피엔스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운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우는 소리가 나를 이상하게 만든다.
나는 지금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운다.

우리는 알아차렸어. 호모 사피엔스가 우는 것은 조금도 새롭지 않았다. 하지만 오비디우스의 말대로 그는 이상했지. 그가 구사하던 아름다운 문장들이 아니었어. 그는 문장에 어떤 수사도 사용하지 않았어. 오비디우스는 뭔가 달라져가고 있었다. 이미 우리에겐 사라진 많은 것들을 발견해온 그였거든. 이를테면 호모 사피엔스들이 서로를 보고 끊임없이 비교하고 질투하는 야비한 속성은 우리에게서 완전히 사라진지 오래였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어. 메타모르포세스들은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잖니. 우리에게는 애착도, 집착도 없지. 우리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으니까. 너희들이 모두 그런 것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관대하고, 서로에게 무심하지. 어떤 것에도 강렬한 욕망 따위를 느끼지 않잖아. 잠을 잘 필요도 없고, 먹고 싶은 음식을 보고 참을 이유도 없지. 병에 걸리지도, 병을 두려워하지도 않아. 모든 건 신체가 알아서 조절하니까. 살을 찌우거나 뺄 필요도 없고, 몸 안에 양성이 모두 있으니 손을 대지 않고도 얼마든지 오르가슴에 이를 수 있지. 우리는 변신 가능한 몸 이외에 아무것도 필요치 않아. 소유를 원하지 않지.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들은 달랐어. 그들은 남성과 여성으로 성이 나뉘어 있었고 성행위를 통해 생식했지. 성행위를 하기 전에 입을 맞추고 포옹을 하기도 했어. 상상이되니? 서로가 서로의 등을 감싸 안는 거야. 두 팔을 벌려서 거구의 호모 사피엔스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볼을 부비고, 입을 맞추고, 입을 벌려 침을 섞고, 숨을 나눈다. 상상만 해도 징그러운 일이었어. 성행위 뒤에 때때로 여자 성을 가진 호모 사피엔스의 배는 한껏 부풀어 올랐고 가랑이 사이로 아이가 태어났지. 그런 게 상상이나 돼? 그런데 오비디우스는 달라진 거 같았어. 그러니까 그 날 이후로 다시는 어떤 전파도 전달하지 않았다. 그의 발견은 거기에서 멈추었어. 그는 자신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면서 운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진짜 이름이 없어. 메타모르포세스는 누군가를 부르면서 울지 않지. 그러니 우리는 오비디우스를 부르지 않았어.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지. 그가 울 수 있다니. 그가 말한 대로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우는 게 뭔지. 사실 우리는 상상하지 못했거든. 이미 몇 장의 사진과 동영상 화면을 통해 호모사피엔스가 우는 것을 목격하긴 했지만 우리에겐 그것도 단순한 호기심과 순간적 즐거움 이상의 의미는 아니었단다. 그가 업로드한 그의 마음을 통해 이상한 어떤 파동을 감지하긴 했지. 우리에겐 없는 영역대의 파장이었거든. 하지만 우리는 곧 변해. 한 몸에 머무르지 않지. 혼란스러울 땐 그 생각을 두고 다른 것으로 변해버리면 그만이거든. 그러니까 옛날 옛날에 참 이상한 호모 사피엔스가 살았었단다.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울어. 나는 지금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운다. 메타모르포세스였던 오비디우스가 지구에서 전송해온 마지막 문장.그의 마지막 목소리. 그 목소리는 그들의 시간으로 2300년 경 도착했고,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그 후로 더는 지구의 소식을 듣지 못했지. 아무도 관심이 없었어. 어떤 순간에든 모든 것이 변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오비디우스는 메타모르포세스의 유일한 전설이 되었단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들은 그의 목소리. 그것은 유일했지. 그는 메타모르포세스들의 꿈으로 남았어. 변하지 않는 목소리. 꿈은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이 되었단다. 메타모르포세스. 우리는 이따금 호모 사피엔스로 사라진 오비디우스의 꿈을 꿔. 모두 다르게. 모두 다른 모습으로. 꿈은 변하고, 또 변하지. 계속해서 시작되는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이렇게 우리 사이를 흐르고 또, 흘러. 오늘밤 내 귓가에 빗물로 내리고 있는 너희들처럼. 자, 눈을 감아봐. 그곳에도 오비디우스의 목소리가 들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