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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쓰는 시인 그리고 원로들의 선전

8월 초 대학로 카페 <마리안느>에 간 적이 있다. 황인숙 시인의 첫 장편『도둑괭이 공주』출간을 기념한 조촐한 술자리였다. 이 날 시인 김경미, 조용미, 소설가 이명랑, 김숨 씨를 비롯해 문학평론가 박혜경, 번역가 권경희 씨 등 문인들이 카페를 찾았다.

“난 참 문학적인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쓰고 보니 성장소설이 됐어.”

저 앞에 소개한 문인들이 오기 전, 기자와 맥주를 마시며 황인숙 씨가 말했다. 5년째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고양이 엄마’로 살았던 시인은 이 경험을 모티프로 소설을 썼다. 소설 속 주인공은 20살 여자이지만, 꽤 자전적 요소가 강한 소설이다. 소설은 문학동네 인터넷 카페에 연재됐다가 책으로 묶였는데, 연재와 책편집을 담당했던 시인 김민정 씨는“시인들이 연재한 소설은 매일 한 줄이 남아”라며 아쉬워하는 황씨를 위로했다. 김민정 씨는 허수경의『아틀란티스야 잘가』를 시작으로 김이듬, 황인숙 씨 등 시인들이 쓴 장편 소설의 편집을 담당했고 기자는 소설을 빌미로 이들을 차례로 만났었다. 최근 소설 쓰는 시인들이 꽤 늘었는데, 특징은 황씨처럼 자전적 요소가 강한 작품을 쓴다는 점이다. 이들 이외에 시인 강정 씨가 2009~2010년 계간지《자음과모음》에『인형의 핏자국』이란 장편을 연재한 뒤 현재 탈고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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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주, 인터뷰 기사를 들고 황인숙 씨를 다시 만났다. 이 날 화제는 단연 김애란의『두근두근 내인생』이었는데, 황씨는 이 소설을 두고“문장이 좋다”며 양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6월 중순 출간된『두근두근 내 인생』은 출간 한 달 만에 7만 부나 팔렸고, 앞으로 더 팔릴 모양새다. 문단 안팎으로 대중성을 확보한 작가의 첫 장편이니까.

헌데 판매량과는 별개로 이 소설의 작품성을 두고는 왈가왈부 말이 많다. 황씨처럼 호의적인문인이 있는가 하면, 완성도에 의문을 표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기 때문. 이 작품에 제동을 건 사람은 원로 문학평론가 김윤식 씨(서울대 명예교수)다. 김씨는 월간《문학사상》8월호에 게재한 소설 월평에서‘기묘한 장편’,‘썩 엉거주춤한 글쓰기’라며 비판했다. 조선일보 동인문학상 심사위원들은 최근 독회에서 이 작품을‘청춘만화’,‘ 청소년성장소설’,‘ 재치문답’이라는폄하와함께탈락시켰다.

물론 이 작품을 옹호하는 문인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람이 소설가 황석영씨다. 황씨는 이 작품을“아주 영리한 소설”이라고 평가하며 추천사를 써주었다.황씨는『두근두근 내인생』의 출간 몇 주 전인 6월 초, 장편『낯익은 세상』을 출간하며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이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김애란의 장편이 2011년 문학계 젊은 에너지를 상징한다면, 『낯익은 세상』을 낸 황석영 씨와『낯선 타인들의 도시』를 낸 최인호 씨 등 원로들의 선전은 또 다른 활력을 표상하고 있다. 두 작가의 문학적 경향은 다르지만, 이들은 남성 서사 문학의 상징적 이름이었다. 밑바닥 삶의 끈질긴 생명력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사회 모순이나 세계와의 정면 승부를 회피하지 않는 것이 이들 작품의 공통점. 때문에 20~30대 여성이 주류인 문학시장에서 이들 작품은 40~50대 중년 남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출간 후 줄곧 문학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원로들의 선전’이란 테마로 본다면 올 여름 문학계 이슈로 단연 고은 시인의 두시집을거론해야한다.『 내변방은어디갔나』와『상화시편』이그것. 특히『상화 시편』은 53년 문학인생 최초의 사랑시집이라 문학계 화제를 모았다. 올해로 결혼 28주년을 맞은 부인 이상화 교수(중앙대 영문과)에게 바치는 118편의 연시를 모았다. 이밖에도 문학평론가 백낙청 씨가 5년 만에 낸 비평집『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과 고려대 김인환 교수의『현대시란 무엇인가』등이 올 여름문단 원로들이 출간한 굵직한 책으로 꼽힌다.

필자는 이들 평론집보다 첫 평론집을 출간한 장성규 씨에게 눈길이 갔다. 평론집은 핑계이고, 사실 출판사 실천문학의 개편이 궁금해서였다. 10년 가까이 대표자리를 맡았던 김영현 씨가 물러나고 주간인 손택수 씨가 실천문학 대표로 취임하면서, 손씨는 문학평론가 이명원 씨를 주간으로 앉혔다. 그리고 서영인, 김종훈 씨 등 소장 평론가를 영입했다. 실천문학의 눈에 띄는 변화는 신춘문예, 문학상 신인상 등 기존 등단 방식에서 탈피해서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출간하겠다는 계획인데, 일례로 소설 기획위원들의 추천을 받은 한 신인 작가의 장편이 곧 출간을 앞두고 있다.

출판사 자음과모음 역시 기존의 등단 제도에서 탈피해 서바이벌 형식으로 신인작가의 작품을 출간하는‘나는 작가다’를 운영하고 있다. 참가자는 1단계에서 자유롭게 인터넷 연재를 하고 100매가 되면 독자와 편집자 평가에 따라 2단계 진출 여부가 결정된다. 2단계 집필 중 500매가 될 때 다시 평가를 통해 3단계 진출 여부가 정해진다. 3단계에 진출한 작가는 전자책으로 소설이 출간되고 전문가들의 평가를 거쳐 4단계를 통과하면 오프라인 소설책이 발간되며 정식 작가로 등단하게 된다. 서바이벌 시행 100여 일 만에 8월 중순, 3단계를 통과한 응모자가 나왔다.

이렇게 문인들을 만나면서 귀동냥으로 듣게 되는 소식과 별개로 출판 편집자나 온오프라인 대형 서점 MD들에게 귀동냥을 하며 듣게 되는 소식이 있다. 후자의 대표적인 것이‘정유정 돌풍’이다. 정유정의『7년의 밤』은 지난 3월 말 출간돼 6월까지 약 7만 부 가량 팔렸다. 같은 기간 해외 출간 소식으로 재점화된 신경숙의『엄마를 부탁해』30만부에 못 미치지만, 올 상반기 국내 소설 중 단연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흔히 정유정의 소설을 3無소설이라 부른다. 작가 명성, 정식 문학공부, 수도권과의 인연이 없다는 뜻이다. 작가는 광주에서 간호사로 생활하다 30대 중반에 소설을 쓰기 시작해 2007년 한 청소년문학상 공모에 투고해 당선되며 활동했다. 작가의 세 번째 작품인 이 소설은 형식적으로 스릴러다. 장르소설이 갖는 특유의 흡입력 덕분인지 이 소설은 최근 영화 판권 계약까지 겹치며 경사를 맞았다. 출판사 측은 영화사‘위더스 필름’과 원작료 1억원+α(흥행 시 추가 수익)에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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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두 작품이 올 여름 문학 기자들의 눈에 띄었다.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전석순의『철수사용설명서』와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장강명의『표백』이다. 공통점은 88만원세대, 20대 소설이라는 것. 몇 년 전 유행한 (청년) 백수문학의 연장선으로 읽힐 수도 있지만『철수…』는 제품사용설명서의 형식,『 표백』은추리소설의 기법을사용하는 등 새로운 말하기 방식으로 오늘의 20대를 핍진하게 그리고 있다.

8월 중순부터 눈길을 끈 것은 소설보다 시집이다. 도종환, 박형준, 조용미 등 중견 시인들과 이장욱, 심보선 등의 미래파 시인들의 두세 번째 시집, 유희경, 정한아 등 포스트 미래파 시인들의 첫 시집이 차례로 출간돼 2011년 다양한 시단의풍경을 보여주었다. 이들 중 시인 심보선 씨의 경우 최근 한진중공업 파업 사태와 관련한 일련의 활동으로 문단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재작년 문예지를 중심으로 회자됐던‘문학의 정치’담론 한 가운에 있었던 시인은 희망버스를 타고 3번이나 부산을 다녀왔다.

그가《현대문학》8월호에 발표한 시「헤이 주드」는 이 경험을 모티프로 쓴 시로 비틀스의‘헤이 주드’노랫말을 한 문장씩 적고, 거기에 자신의 해석을 한 줄씩 보탰다. 최근 출간된 심 씨의 두 번째 시집『눈앞에 없는 사람』에도 용산참사 2주기에 쓰인 시「거기 나지막한 돌 하나라도 있다면」이 실려 있다. 한편 비슷한 시기 출간된 유희경의『오늘 아침 단어』와 조인호의『방독면』, 정한아의『어른스런 입맞춤』은 포스트미래파의 탄생을 예고하는 시집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