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대산문화
 
번역문도 원문에 못지 않은 상상의 공간이 필요하다
 
 
『韓國現當代文學經典解讀』번역후기
 
한국은 문학을 사랑하는 나라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전통을 이어가면서 수많은 탁월한 문학가, 그리고 한국인의 정신문화와 정서를 담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세계는 한국문학의 진정한 가치를 몰라준다고 한국문학계의 한탄은 높아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중국어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한국 현대문학 작품은 중국독자들이 가장 낯설어 하는 부분이다. 그 원인은 중국에서 출판된 한국문학작품 번역본이 많지 않고 또 한국어 원문은 더욱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는 일반 독자들뿐만 아니라 대학 한국어학과의 학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문학사 수업에서 작가와 작품에 대해 공부하지만 한국문학작품 번역본이나 원문을 직접 읽는 경우는 드물다. 소설도 그렇고 시와 에세이는 더욱 그렇다.


▲     © 운영자
북경대학교출판사를 통해 발행된 이 책은 시, 에세이, 소설 3개 부분으로 나누어 시 21수, 에세이 12편, 소설 12편의 원문과 번역문을 동시에 수록하였다. 필자는 한국문학과 번역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작품을 선택할 때 20세기 초부터 21세기 초까지 한국사회의 변모 양상과 한국문학의 흐름을 그려낼 수 있고 문학성을 인정받은 경전적인 작품을 선별하였다.
 
김소월, 서정주, 고은, 정비석, 피천득, 김동인, 김동리, 이청준, 황석영, 신경숙, 김영하 등 작가들의 작품을 수록하였고, 소설부문에서 특히 70년대 이후의 신예작가들의 작품에 비중을 두었다. 작품을 읽으면서 한국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확충시키려는 취지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어권 한국문학 학습자들을 위해 중국어로 작품해석, 작가 소개도 함께 붙였기에 작품에 대한 독자의 이해도를 한층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한국어 원문과 중국어 번역문을 병행하였기에 한국어 고급 학습자와 한-중 번역능력을 연마하는 예비 번역가들에게도 참고서를 제공한 셈이다.


이 책의 번역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도 사실이다. 문학을 번역하는 번역자는 원작의 제1해석자로서 원문에 대한 이해가 수많은 번역문 독자들의 이해를 좌우지하기에 신중하고 겸손한 태도로 원작에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번역자가 원작에 대한 이해와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없기 때문에 번역작업을 서두르는 것 보다 해당 작품에 대한 기존 분석과 정리가 우선되었다. 예를 들어 만해 시「님의 침묵」을 옮길 때에는 이 시에 대한 논문이나 감상문을 정리하는 한편 기존 중국어 번역본도 참고하여 필자의 판단에 따라 새롭게 번역하였다. 기존 번역(허세욱1), 범위리2))은 이 시에 대한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 즉 떠난‘님’을 남성으로, 화자‘나’를 여성으로 보는 견해에 따른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것은 여성편향성 혹은 아니마(anima) 편향성으로 만해 작품을 해석하는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번역문의 제목도「情人的沈默(연인의 침묵)」으로 번역하였다.

이 시의 영문판도‘님’을 연인으로 번역하고 제목도「Meditation of the Lover(연인의 명상)3)으로 번역한 것을보아‘님’이라는 고유어와 그에 내포된 문화적 요소를 다른 문화(언어)로 전이(번역)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러나 필자는「님의 침묵」을 시집에 수록한 다른 시와 분리하여 보았고‘님’을 여성으로 이해하기에중국어번역본에이런태도를제시하였다.「 님의침묵」은「님을보았습니다」류의시와다르다. 화자를여성으로보는근거는‘여성운’,‘ 존칭보조어간’,‘ 여성주체’에불과하다. 여성운은20, 30년대 시의 보편적 특징 중의 하나이고 아름다운 말투일 뿐이다. 존칭 보조어간과 여성 주체는 모두 만해의 여성주의적 사상에서 빚어진 것으로 파악함으로 여성 화자를 이바지할 만한 증거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 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멀었습니다’이런 시구를
통해 떠난‘님’은 아름다운 여성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떠난‘님’의 침묵은 그 이별이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영원한 상실임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잃은 시인이 그 거대한 비통을 극복하려는 남성적인 강인함과 끈질김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에코 페미니즘 입장에서 보면 남성보다 여성이 자연과 더욱 가깝고, 사랑이 더욱 풍부하고, 위대한 모성애를 지닌다. 그리고 말이나 사상보다 자연이 진실과 더욱 가깝다. 이 시에 등장한‘님’을 여성으로 간주하고 화자‘나’를 남성으로 간주하는 것이 이 시의 상징적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한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즉 이 시의 주체는 역시 여성이며 여성으로 상징되는 나라, 민족, 믿음(부처 혹은 중생), 자연, 진실, 사랑 등 여러 의미의 상징적 복합체이다. ‘님’을 잃은 슬픔(상실의 아픔)은 만해의 현실비판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생각으로‘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 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멀었습니다’를‘ 芬
芳的絮使我失如花的素我失明’로 옮겨 남성적 화자를 도출시킨 것이다. 시의 제목도「님의 침묵」을『시경(詩經)』에 등장하였다가 20, 30년대 중국 현대시에서 다시 등장한 제2인칭(때로
는 3인칭으로 쓰임)인‘伊’를 사용하여「伊的沈默」로 번역하였다.
 
중국 남송(南宋) 시인 엄우(嚴羽)는‘말은 다할 수 있어도 뜻은 무궁하다(言有盡而意無窮)’라는 말을 남겼다. 이것은 모든 예술작품의 규칙으로 보아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독자들이 문학작품을 감상할 때 번역문과 해석글에 국한되지 않고 작품의 언어로 그려낸 객관적 이미지와 추상적 이미지를 통해 심층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 과정에는 독자의 적극적인 상상력이 필요한데 번역문도 원문에 못지않은 상상의 공간을 제공해야 독자들에게 감상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서정주의 시「귀촉도」의 한 시구‘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삼만 리’를 고전 한시의 형식을 빌려‘悠悠西域三万里漫天作花雨’로 번역하였는데 고전 율시(律詩) 형식으로 현대시를 번역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사료된다. 그러나「귀촉도」는 중국 고전시가의 전고(典故)를 이용하였기에 고전시의 맛을 살려 번역한 것도 중국어권 독자들에게 상상의 공간을 넓혀주기 위함이다.
현재 중국 대학의 한국어학과 대부분 커리큘럼에는 문학작품을 접근할 수 있는 교과목은 없다. 언어교육에만 치중하는 탓으로 보인다. 필자는 언어교육을 중요시하는데도 많은 고급 번역인재를 양성해 내지 못하는 것은 언어교육을 교과서에만 의존해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문학작품이 그 풍부한 어휘와 다양한 문체로 언어교육과 번역교육에서 최고의 교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 책을 엮어 번역하였다.

중국 대학 한국어학과에서 더 많은 훌륭한 한-중 번역인재를 양성하여 우수한 한국문학을 중국어권 독자들에게 더욱 널리 알리기를 기대한다.

※『韓國現當代文學經典解讀』는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 지원을 받아 중국에서 출간되었다.
 
 


 
 
개인정보취급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