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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끝에서 들려오는 희망의 노래 - 아우슈비츠 문제를 넘어선 시인 파울 첼란의 「죽음의 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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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첼란(Paul Celan)(1920~1970)은 1945년 2차 대전 종전 이후 등장한 독일 현대 작가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시인 중의 하나이다.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그걸 저녁마다 마신다 / 우리는 낮마다 아침마다 그걸 마신다 /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죽음의 푸가」에서) 파울 첼란의 대표작 「죽음의 푸가」를 한번 접해본 사람들은 대부분 ‘새벽의 검은 우유’와같은 아름다운 시적 은유와 마치 최면을 걸듯 주술과 같이 반복되는 시의 운율에 감전되는 것같이 짜릿한 감동을 느낀다. 그리고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이 시가 바로 아우슈비츠의 비극적인 역사를 노래한 것임을 알게 되는 순간 또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전후 독일(혹은 유럽)내 지식인 사회의 최대 논쟁 중 하나가 되어버린 ‘아우슈비츠 이후의 시는 과연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첼란 작품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열쇠 중의 하나는 이러한 관심과 시각을 가지고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파울 첼란은 1920년 11월 23일,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지였다가 1918년부터 루마니아에 속하게 된 부코비나공국(公國)의 수도 체르노비츠―현재 우크라이나의 영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건축기사였고, 어머니는 독일 고전문학을 탐독한 교양 있는 가정주부였는데, 독일계 유대인의 가문에서 태어난 첼란은 당시 부코비나의 다른 가정에서처럼 독일어로 교육을 받았다. 이후 1938년 루마니아의 한 김나지움을 졸업한 첼란은 프랑스의 투르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게 된다.
1939년 여름, 루마니아 고향에서 방학을 보내던 그는 세계 2차 대전이 터지자 프랑스로 돌아가지 못하고 체르노비츠에 머물며 그곳 대학에서 불문학을 공부하게 된다. 그러나 1941년 독일군대가 이 곳을 점령하게 되자 파울 첼란의 앞날에는 고난과 역경으로 점철된 험난한 삶이 기다리게 된다. 이러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첼란의 부모는 모두 1942년 유태인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고, 첼란은 다행히 몸을 피신할 수 있게 되어 화를 면하게 된다. 1944년 9월 다시 부코비나지방은 소련의 영토로 합병되고, 소련인들에 의해 다시 문을 열게 된 체르노비츠대학에서 첼란은 다시 학업을 계속하게 된다. 독일이 패망한 1945년 4월 이후 그는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를 거쳐 1948년 오스트리아의 빈에 잠시 머물다가, 1949년 프랑스 파리에 정주하게 된다. 이후 파리에서 생애의 나머지 21년을 보내고, 1970년 4월 하순 센강에 스스로 몸을 던져 50세를 일기로 생을 마치게 된다.
파울 첼란은 1952년에 출간된 시집 『양귀비와 기억』에 실린 작품 「죽음의 푸가」를 통해 독일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하였다. 이 작품의 중요성은 독일의 한 저명한 평론가 W. 엠머리히가 이 시를 20세기 독일시를 대표하는 ‘세기적 작품’이라고 명명하고 있는 데서 잘 알 수 있다. 이 작품이 1960년대에 이미 독일 중고 교과서에 실리거나, 1995년 종전 50주년 기념일에 독일 국회 본회의 석상에서 낭독되는 등, 어느덧 「죽음의 푸가」는 ‘과거반성’을 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전후 독일의 아이콘과 같은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독일의 일반 독자들에게 파울 첼란의 후기(後期) 시―1967년 발표된 시집 『숨돌림의 순간(Atemwende)』을 기준으로 전후기로 구분됨―에 속하는 작품들은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또한 수수께끼와 같은 그의 문학세계를 초현실주의적인 언어실험으로 내려깎으려는 시도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최근 20~30년 독일 내에서의 연구동향을 지켜보면 첼란 문학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커지고 있으며, 비의(秘義)적인 그의 시 언어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첼란의 전(全) 작품들은 전기시나 후기시를 막론하고 하나의 퍼즐처럼 서로 치밀하고 정교하게 연결된 ‘하나의 틀(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그의 후기시의 작품세계가 난해해진 것은 결코 초현실주의적 언어 실험이거나 다다이즘적인 언어유희와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하고 싶다.
T. W. 아도르노는 1948년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라는 도발적 발언을 하는데, 그는 이를 통해 아우슈비츠를 허용한 독일 사회에 전면적인 반성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자기 자신이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인 첼란은 가해자와는 다른 각도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아우슈비츠 이후의 글쓰기의 가능성에 대해 천착해온 시인이다.
필자는 첼란 시를 연구하면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언어 속에서 ‘지옥의 끝에서 들려오는 희망의 노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첼란 시의 가장 큰 미덕은 그의 작품이 아우슈비츠의 문제라는 한정된 주제 틀에 갇혀있는 특수성의 세계가 아니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의 지평까지 그 영역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숨돌림의 순간』은 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대산세계문학총서로 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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