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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소설의 첫 일본 상륙- 『외딴 방』의 번역을 마치고

  지난 7월 11일, 장편소설 『외딴 방』의 작가 신경숙 씨는 도쿄에서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하네다 공항으로부터 김포공항을 경유하여 귀국하였다. 신경숙 씨가 이번에 도쿄에 머무른 것은 일본에서도 대표적인 출판사 슈에이샤(集英社)에서 『외딴 방』이 일본어로 번역, 출판된데 따른 행사에 초청을 받아서이다. 7월 10일, 슈에이샤 협찬으로 호세이(法政)대학 국제문화학부가 주최한 ‘한국문학과 영화를 둘러싸서’란 주제의 작가대담에 참석한 것이다. 그녀의 대담 상대는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의 한 사람인 쓰시마 유코(津島佑子). 이날 호세이대학 26층 스카이홀에서 개최된 대담에는 200명 가까운 『외딴 방』의 독자와 청중들이 참가하였다.

  이 대담에 앞서 신경숙 씨가 도쿄에 머무르는 수일간 아사히, 요미우리, 마이니치, 도쿄, 니혼게이자이 등 주요 신문사들과 통신사의 문예담당 기자들의 인터뷰가 잇따랐으며 이 인터뷰와 함께 『외딴 방』에 대한 서평들이 연일 여러 신문에 실렸다.

  일간신문들에 실린 신경숙씨 관련 기사들을 읽으며 이 소설을 일본에 번역, 소개한 나로서는 무거운 짐을 덜었다는 흡족함을 느꼈으며 아울러 근 1년 동안의 번역과정에서 있었던 몇 가지 일들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소설의 번역에 착수한 것은 대산문화재단으로부터 번역출판을 지원하겠다는 통지를 받은 2003년 가을부터였다. 번역을 마무리짓는 데는 거의 10개월이 소요되었다. 그것은 7월 10일 작가 대담을 방청하러 찾아온 어떤 친구가 “꽤 세심하게 번역했군요” 라고 귀띔했듯이, 신경숙 씨의 일본 상륙 제1호가 되는 소설인만큼 세심하게 번역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외딴 방』은 일본에서는 에세이 소설로 분류되는 수필 형태의 작품이다. 주인공인 ‘나’의 눈에 비친 인물과 사물의 움직임이 중심적으로 묘사되며 그에 따른 주인공의 심리상태나 감정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적인 꾸밈은 많지 않다. 소설적인 꾸밈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생활에 바탕을 두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번역하는 경우 현실에 바탕을 둔 소설인만큼 여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어떤 곳에 어떻게 세심한 신경을 돌렸는지,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 『외딴 방』에서 여러 번 만난 말의 하나에 ‘단정하다’라는 단어가 있다. 『새 우리말 큰 사전』은 이 단어의 뜻을 아래와 같이 풀이하고 있다.

  ① [端正] 얌전하고 바름. 얌전하고 조촐함.

     예문; 품행이 ～하다. 옷차림이 ～하다.

  ② [端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한자사용빈도가 낮은 한국에서는 뜻이 두개씩 있어도 별로 문제가 안되겠지만 가나와 한자를 혼용하는 일본어 문장에서는 문맥에 맞추어 정확한 한자어를 고르지 않으면 원작을 훼손할 수도 있다.

  이것은 단어를 예로 본 것인데 다음과 같은 경우는 어떨까. 『외딴 방』에서 좀 긴 문장을 인용하겠다.

1) 우리는 A라인으로 배정된다. …… 나는 A라인의 1번이 된다. 외사촌은 2번이다. …… 1번의 역할은 스테레오 속자재 원판을 준비반에서 가져다가 피브이시를 고착시키는 나사 일곱 개를 에어드라이버로 박는 일이다. (p.59)

2) 풍속화 속, 내 앞의 에어드라이버는 공중에 매달려 있다. 피브이시를 고정시킬 나사는 왼손에 매달려 있다. 피브이시를 고정시킬 나사를 왼손에 쥔 다음 에어드라이버를 잡아 당겨 누르면 칙, 바람 새는 소리와 함께 나사가 박힌다. 2번인 외사촌도 마찬가지로 나사를 열몇 개 박아야 한다. 다만 내 에어드라이버는 공중에 매달려 있고 외사촌 것은 옆에 달려 있다. (p.64)

3) “팔이 올라가지 않아”

  어느 날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외사촌은 젓가락을 들려다가 내려놓는다. 공중에 매달려 있는 에어드라이버를 끌어내려 나사를 박아야 하는 외사촌의 눈에 눈물이 글썽하다.(p.133)

  이 문장들은 A라인 1번과 2번에 배정된 주인공 “나”와 외사촌의 작업내용을 소개하는 대목이다. 이것을 요약하면 스테레오 원판에 P.V.C를 고착시키기 위하여 “나”는 일곱 개, 외사촌은 열몇 개의 나사를 에어드라이버로 박아야 한다. “다만 내 에어드라이버는 공중에 매달려 있고 외사촌 것은 옆에 달려 있다.” 따라서 “팔이 올라가지 않아” “눈물이 글썽”하는 것은 에어드라이버를 잡아당겨 누르는 “나”라야 되는데 외사촌으로 되어 있다. “외사촌 것은 옆에 달려 있다”는데 어느 “옆”인지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교정원고를 3번이나 보는 과정에서 이 모순을 발견했기에 독단으로 처리했는데 신경숙씨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

또 하나 인용해보자.

  맘보. 겨울밤. 우리들의 맘보춤. 토요일.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희제언니 방에 불이 켜져 있다. 외사촌이 책가방을 든 채로 그 방으로 간다. “나, 내일 이사가.” …… “그럼 송별회 해야지.” ……

  …… 상 위에 촛불이 켜져 있고, 접시에 떡볶이가 소복하다. 희재언니가 가만 있어 보라더니 다시 방에 내려가서 카세트를 가지고 온다. 플레이를 누르니 라쿰파르시타가 흘러나온다.

  팜팜팜팜 빰빰빰 팜팜팜팜―빰빰빰―빠라라라―아아아―아아아아 팜팜팜―빰. (p.305～306)

  라쿰파르시타는 맘보가 아니라 탱고의 고전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팜팜……”하는 박자도 탱고와 흡사하다. 그런데 “맘보. 겨울밤……”으로 문장이 시작한다니.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다행이 시간 여유가 있었기에 신경숙씨와 의논하여 처리할 수 있었다.

  끝으로 편집부로부터 이 원고를 청탁 받을 때의 내용은 번역과정에서 만난 어려움에 대해서 쓰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2003년 가을 학기에 4개월 동안 석좌교수로 명지대 일어일문과에 초빙 받아 강의를 한 것이 한국에서 생활한 기간으로서는 가장 길다. 따라서 한국에서 살아가는데 대한 지식이나 경험은 여러모로 희박하다. 특히 일상용품이나 향토적인 음식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외딴 방』 번역 과정에서도 그런 무지를 드러내었다. 가령 “하이타이”(p.97)란 세제가 있다. 처음에 이것을 청량음료수의 일종으로 알고 있었다. 향토적인 음식에 대해서는 더욱 무지하다. “황새기젓갈”(p.38), 또는 “고구마순 줄기를 하나하나 벗겨서 김치같이 담근 것하고 우렁된장”(p.391)은 상상조차 못했다. 사전에는 “황새치”는 있어도 “황새기”는 없었다. 번역이란 말만 옮기는 작업이 아니다. 문화를 옮기는 작업이란 점을 생각할 때 이런 전통적인 문화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의 결여는 큰 결함이 아닐 수 없다. 동시에 번역만큼 무서운 비평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자한자 번역한다는 것은 그대로 그 작품에 대한 비평이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