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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리듬, 사색의 흐름- 獨譯 『Vermutungen über das Labyrinth 미궁에 대한 추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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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눈에 띄는 번역비평문을 읽다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언어 단위에서의 일 대 일 대응관계를 점검하는 것이 곧바로 등가성에 대한 평가인 듯 왜곡하는 글이 적지 않아서이다. 번역에서의 등가를 ‘의미상의 동일성를 통한 효과의 동일성’이라고 할 때, 번역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함정은 단어와 어휘의 대응관계가 효과의 동일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환상이다. 언어단위의 대응관계는 인지적 등가나 정감적 등가를 담보해주지 못한다. 문학텍스트 번역에서의 관건은 문장에서 문장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원텍스트에 상응하는 사고와 정서가 독자에게서 활성화되도록 하는 것이다.
소설 번역을 하다보면 매번 엇비슷한 갈등에 휩싸인다. 언어를 통해 구현하는 의미를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다 보면 문장의 맥과 숨결이 약해져 서술 리듬이 밋밋해지고, 응축성과 다의성을 보존하고 문장의 강약을 살리려고 하면 뜻이 온전히 파악되지 않는 삐꺽거리는 문장이 만들어지곤 한다. 이런 갈등의 발생 배경에는 어법의 차이, 문화의 차이 외에도 통사구조의 근본적 상이성, 그리고 거기서 야기되는 사유 방식과 정감 촉발의 상이성이 자리잡고 있다.
카이 쾰러와 이경분이 함께 번역한 이승우 소설집 『Vermutungen über das Labyrinth 미궁에 대한 추측』(독일 Pendragon 刊)은 이런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길을 제시해 준다. 응집성(coherence: 텍스트 기저의 개념들의 연결성)이 강해서 긴장을 조성하는 대목들은 다소 생경한 느낌을 감수하면서 원텍스트의 형상성을 보존하고, 응결성(cohesion: 통사구조의 구성요소들이 상호관련을 맺는 연결성)만으로도 의미파악이 가능한 대목들은 자연스럽게 읽힐 수 있도록 도착어의 리듬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 긴장과 이완, 낯설음과 자연스러움을 적절하게 조합한 카이 퀼러와 이경분의 텍스트는 원텍스트의 성분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으면서도 가독성이 높고 강약과 리듬을 갖는 맛깔스러운 문학텍스트로 탄생하였다.
다만, 도착어에서 ‘의미와 효과의 어긋남’이 일어날 수도 있을 대목에서 낯설음의 수위를 어느 정도까지 조절할 것인가 하는 점은 여전히 문제거리로 남아 있다.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에서 부부 사이에, 그리고 부녀 사이에 사용되는 존칭(Siezen), 매끈하게 읽혀지지 않는 표현 고리들(“푸석푸석한 음악”, “납덩이처럼 무거운 마음” 등), 그리고 독일어권 독자에게는 실감이 오지 않는 방식의 묘사(“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뜨거운 기운”, “등골이 오싹함” 등)는 내용상으로는 원텍스트에 조응한다 해도 번역텍스트 읽기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느낌이나 마음을 서술하는 부분들에 있어서 우리말로는 생생하게 느껴지는 서술이 논리성과 합리성에 근간을 둔 독일어로는 의미의 빗나감을 초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Noch bevor sie(eine unerwartete Vorstellung) klar umrissen werden konnte, ahnten sie die Wimpern des Inneren und wogten schon aufgeregt.(136) …… Jene unklare Vorstellung, die die Wimpern des Inneren unruhig wogen ließ, wurde für einen Moment klar, als ginge ein Licht an.(136) …… In dem Moment hörte ich wieder jenes unangenehme Sirenengeheul, das selbst die kleinsten Wimpern des Inneren sich sträuben ließ.(142)
- 「Die Innenseite des Hauses」
아직 흐릿해서 잘 분간이 되지 않았는데도 마음의 섬모들이 먼저 눈치채고 흥분해서 일렁였다.(41) …… 내 마음 한구석의 섬모들을 일렁이게 했던 그 흐릿한 영상이 그 순간에 불이 켜지듯 환해졌기 때문이었다.(41) …… 그 순간 내 영혼의 자잘한 솜털들까지 일으켜 세우는 예의 그 불길한 경보기 소리를 나는 다시 들었다.(49)
- 「집의 내부」
『Vermutungen über das Labyrinth』가 지닌 가장 큰 미덕은 리듬감 넘치는 문장흐름과 섬세한 작품 선정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어권 독자들이 번역텍스트의 리듬을 타면서 ‘낯선 통찰을 통한 깊은 사색의 흐름’ 속으로 빠져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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