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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목소리를 위하여- 우애령 소설, 이윤기 영화 ‘여자, 정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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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정혜. 꿈 많은 잠에서 홀로 깨어나 침묵 속에서 홀로 화초를 돌보고, 홈쇼핑에서 부쳐온 생일축하 카드를 들추고, 컵라면과 오이 속을 빼낸 김밥 따위로 허기를 때우는 여자 정혜.
이 여자의 시간은 늘 과거에 속해 있다. “정혜의 시계는 열세 살 되던 해 여름에 멎어 삶에 대한 환상은 거기서 끝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불 꺼진 삶’에 대해서 소설은 간간이 정혜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를 받아 적는다.
소설의 내러티브를 영화의 스토리텔링으로 옮기면서 눈에 띄는 차이는 다음과 같다. 소설은 정혜가 겪은 어린 시절의 사건을 일상과 기억의 전제로 깔고 한땀 한땀 현재 정혜의 내면과 의식을 수놓아간다. 반면 영화는 주인공을 구축하는 원사건과 동력을 물밑에 가라앉힌 다음 투명하게 정혜의 일상, 을 비추면서 섬광처럼 어두운 기억의 파편들을 재구성한다.
소설과 영화가 다른 또 한 가지는 작가가 개입해 들려주는 정혜의 속내를 영화는 전면적으로 제거한 것. 정혜의 내면은 독백과 속엣말이 아니라 오직, 말 그대로의 ‘내면연기’와 이를 섬세하게 포착하려는 클로즈 업, 줌 인, 롱 테이크 등의 카메라 워크에 의존한다.
소설 속 정혜는 조용한 여자지만 그 안에는 무수한 생각과 분노의 격류가 요동친다.
“어째서 이렇게 순수한 사람보다 비양심적이고 부도덕한 사람이 뭐든지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걸까?”
“가해자가 떳떳하고 행복한데 피해자가 우울하고 불행한 일은 이제 그만 일어나야 한다.”
소설이 이 여자의 분노를 다소 설명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면 영화는 정혜의 분노를 좀 더 ‘아름답고 투명하게’ 희석시켜 제시한다. 영화 속의 정혜는 예쁘고 무력하고 성내는 순간마저도 눈빛은 촉촉하고 깨무는 입술은 도톰하다.
한편으로 영화는 정혜가 겪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변화와 탈각, 성숙의 실마리를 보다 가시화해놓은 점이 눈에 띈다. 영화가 확대한 정혜의 일상 속 중요한 몇 가지 에피소드는 모두 그녀의 ‘끼어들기’로 인해 벌어진다.
이 세상에서 지워진 듯 살고 싶었던 정혜, 열세 살 이후 내면의 셔터를 완벽히 내렸던 이 자폐적인 여자는 타인의 삶, 타인과의 관계에서 완전히 비껴나고자 그리도 안간힘을 썼건만 세 번쯤 타인의 삶에 ‘끼어든다.’ (중략)
* 본 원고의 전문은 <대산문화> 2005년 가을호 지면을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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