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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란 도라카의 스물두 번째 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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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어서 일어나라고 눈을 간질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몇 번이나 이리저리 몸을 뒤틀면서 같이 사는 카리스를 찾았습니다. 카리스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벽에는 카리스가 잠옷으로 입고 자는 청색 추리닝이 걸려 있었습니다.
“의리없는 놈, 여자 친구 생겼다고 저만 혼자 날랐군.”
나는 베개를 끌어안고 카리스를 부러워했습니다. 카리스는 몇 달 전부터 자기보다 세 살 많은 스리랑카 여자랑 사랑을 하고 있답니다.
어제는 월급날이었고, 회사 전체 회식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사장님은 나처럼 외국인 노동자들을 한국인 노동자나 다름없이 대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다니는 공장이 너무 좋답니다.
나는 찬물로 세수를 하고 라면을 끓이려고 하다가 무심코 벽에 걸린 달력을 보았습니다. 5월 19일. 오늘은 스물한 번째 내 생일이었습니다. 19라는 숫자 밑에 ‘추란 도라카 생일’이라는 글씨가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그만 맥이 빠져 버렸습니다. 이런 날 카리스라도 옆에 있었다면 좀 나았을 겁니다. 그래도 나는 카리스의 생일을 잊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주는데, 사랑에 빠진 카리스는 나한테는 도무지 관심이 없습니다. 전화가 있었다면 스리랑카에 사는 어머니한테서 연락이 왔을 겁니다.
우리 식구는 아버지가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별 어려움 없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집 근처 마을에서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군인들은 자주 아버지를 찾아왔고, 어느 날 아버지는 반군이 쏜 총에 맞아 돌아가시고야 말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고향을 떠나 수도인 콜롬보로 갔습니다. 몇 달간은 아버지 친구들의 도움으로 살았지만 형편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어머니랑 누이동생이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나도 일을 하려고 했지만, 어머니가 말렸습니다.
“추란, 너는 공부를 해서 꼭 성공해라. 너는 우리 집안의 희망이다!”
나도 열심히 공부했답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거의 우등생이었습니다. 하지만 남의 집 파출부를 하던 누이의 일기를 본 뒤로는 더 이상 공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열다섯 살이었던 누이는 환갑이 넘은 주인한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게다가 어머니마저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었습니다. 나는 편안하게 책을 볼 수가 없었고, 내가 돈을 벌어서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고 누이동생을 가르치겠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면서 허락을 했습니다.
그때 내 친구들은 한국에 가는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한국에 가서 1년만 고생하면, 스리랑카에서 10년간 고생한 만큼 돈을 번다고 믿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다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스리랑카보다는 돈을 벌기 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한국에 오게 된 것입니다. 그나마 아버지 친구들이 도와주어서 브로커들에게 큰 돈을 주지 않고 올 수 있었답니다.
나는 쓰라린 기억들을 떨치면서 옥탑방을 나왔습니다.
오월의 햇살이 뜨겁게 쏟아졌습니다. 스리랑카의 햇살보다는 좀 따갑습니다.
남쪽으로는 아파트촌이 보이고, 뒤에는 엄청나게 큰 교회가 솟아 있습니다. 나는 교회 옆으로 눈을 돌려서 북한산을 보았습니다. 산은 푸른 물감으로 덮여가고 있었습니다. 봄입니다. 한국의 봄은 참 예쁩니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동전보다 작은 꽃들이 피어납니다. 잎이 진 나뭇가지에서 새싹이 나고, 금세 숲이 파랗게 변하는 걸 보면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은 기적의 나라입니다. 자연의 선물이 너무 많은 나라입니다.
내가 일하는 공장은 교회 앞에 있습니다. 빌라의 지하주차장을 개조하여 봉제공장으로 쓰고 있습니다.
봄바람이 콧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봄바람이 뱃속으로 들어오자 속이 쓰리고 배가 고파졌습니다. 들어가서 라면을 끓여먹을까, 아니면 나가서 사 먹을까 하고 잠시 망설였습니다. 그러다가 에라, 모르겠다고 하고는 3층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중략)
* 본 작품의 전문은 <대산문화> 2005년 가을호를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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