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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점괘(占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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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고 나면 어느 땐가 그 소설 내용과 유사한 상황(사건)이 현실에서 연출되는 경우를 보곤 한다. 근자 들어서도 오래 전 1989년에 쓴 단편 「키 작은 자유인」 중의 소화 한 대목이 떠오른 일이 있다.
어느 추운 겨울 밤, 나이 먹은 형님네가 옆 동네 유사엘 가면서 한 집에 얹혀사는 아우에게 말썽꾸리기 아들애를 맡긴다. 그 조카애는 삼촌에게 밤새껏 심통을 부리다가 오줌을 누러 나가고, 삼촌은 그 사이 버릇을 고쳐놓기 위해 안에서 방문을 걸어 잠가 버린다. 변소 길에서 돌아온 조카애는 처음 방문을 걷어차며 어서 문을 열라고 성화를 대지만 삼촌은 안에서 아무 대꾸도 않은 채 묵묵히 버티고, 그럴수록 더 심술이 뻗힌 조카애는 이 새끼야 개새끼야 버릇없는 욕지거리 속에, 제 어미아비 돌아오면 일러바쳐 혼을 내주겠다, 기세 등등 삼촌을 을러댄다. 하지만 삼촌은 시종 대꾸가 없고, 부실한 내의 바람에 추위를 견디다 못한 아이는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며 사정하기 시작한다. 추워 죽겠다, 인제 들어오라고 해라, 그래 주면 들어가겠다, 이 삼촌 새끼야…… 그리고 끝내 대꾸를 않는 방안의 삼촌을 향해 아이는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제풀에 울음을 뚝 그치며 정색한 목소리로 말한다.
― 삼촌, 보소. 나 울음 그쳤제? 인자 좀 들어오라 하소!
그 희화가 새삼스럽게 떠오른 건 물론 그와 유사한 근자의 한 현실 상황 때문이었다. 비유하자면 여섯 사람이 모여 앉아 무슨 일을 의논하다 한 사람이 세 불리를 의식하여 밖으로 뛰쳐나가고, 방안에 남은 사람들 중 하나가 그의 본색을 들어 체면을 깎아 내리는 말을 하자, 그는 우선 그 말부터 취소하고 사과하면 다시 방엘 들어가겠노라 버티는 모양새가, 개인사 아닌 나라간의 일로 바꾸어 보면 짐작이 갈 법하다. 방안에서는 결국 사과다운 사과나 취소의 말이 없었는데도, 기다리다 못한 문밖의 친구는 방안의 ‘조심스런 침묵’ 정도를 짐짓 사과나 취소로 간주한 눈치니 말이다.
이렇듯 내용이나 상황의 현실적 재현 현상에 비추어, 매 작품 등장인물의 이름을 짓고 외모와 성격의 특성을 그려야 하는 소설 작업은 일면 작명가나 관상쟁이처럼 그 인물이나 사물, 혹은 시대 흐름의 본질을 꿰뚫어 읽어내려는 노력의 결과로써 일종의 예언적 기능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 조카아이의 위장된 말이 아니라 말 뒤에 숨겨진 본심을 읽어냄으로써 사실을 직시하고 폐해를 되풀이 겪지 않을 수 있듯이.
궤를 같이 하여, 얼마 전 전방부대의 한 사병이 평소 주위로부터 모욕적인 언사와 따돌림을 당해 온 데 대한 적개심을 참지 못해 부대 지휘관과 동료 병사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사건을 접하면서는, 그 동기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나는 오래 전에 쓴 다른 졸작 한 편이 생각났다.
지난 천구백 년대 중반기 어느 해, 내 군복무 무렵이던 당시에도 어느 전방부대에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1967년 그 사건을 염두에 두고서 단편소설 「공범」을 썼다. 당시의 각종 언론 매체들이 전한 바, 대학 재학 중 입대하여 병역을 치르던 그 사병이 바깥 ‘여자 친구’로부터 온 편지를 어거지로 빼앗아 읽는 분대장의 횡포에 못 이겨 그 분대장과 다른 동료 한 사람을 사살한 내용이 담긴 그 소설에서, 나는 가해자의 사형이 확정 된 뒤 소설의 화자인 중대 서무병이 젊은 사형수의 구명운동에 나섰다 실패한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쓰게 했다.
― 다 끝난 셈이지요. 하지만 정말 끝났을까요? 두 사병이 무참하게 죽어간 일이나 김효(사형수)가 결국엔 그렇게 되어 버린 일,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진실이 이야기된 일이 없었던 것 같은 제 미진한 느낌은 무엇 때문일까요? (……) 어머니께서는 김효의 생명에 앞서 어머니 자신의 어떤 진실이나 신념을 좇아 거리로 나섰을 경우를 상상해 봅니다. (……) 결국은 그 진실(과 신념)이라는 것이 오로지 김효를 보다 빨리 죽게 하는 데에만 보탬하고 있었거나, 적어도 결과에 있어서 아무것도 진실은 이야기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라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공범」의 경우에도 이번 사건과 연관해 보면 일종의 경고적 예언을 담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아직 유사한 사고가 재발한 것은, 그 사이 비슷한 사안을 두고 당국자나 우리 사회에서 수많은 예비적 논의가 있어 왔을 터임에도,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를 두고, 진실이 제대로 말해지지 못한 결과일지 모른다. 우리 눈에 쉽게 뜨이지 않는 숨은 진실은 사건 당사자들뿐 아니라, 우리가 짐짓 눈감아온 인성(人性)의 비밀이나 이 사회의 부조리한 관행, 제도들의 밑바닥에 더 은밀히 자리해 있을 수도 있으므로.
굳이 세상일을 걱정해 하는 소리만이 아니라, 이는 지레 그 소설장이의 글 쓰는 일에 대한 책임, 예의 예언성에 대한 진정성과 그에 따른 책임을 떠올려보지 않을 수 없어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소설적 예언의 진정성이나 현실적 반복 현상과 관련하여 나는 또 하나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1977년에 쓴 졸작 「예언자」에는 당시의 지배권력 모습과 행태를 연상시키는 한 술집 마담이 등장하고, 그 술집 단골 중 한 사람이자 시인인 주인공은 그 마담이 술집과 손님 전체를 자기 전유물로 완벽하게 장악하기 위해 미구에 주위 사람을 상대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리라는 불온한 예언을 한다. 하지만 시인을 제외한 술집 사람들은 손님이건 종업원이건 마담의 집단 최면에 걸려들어 아무도 그 위험한 처지를 알지 못하고, 시인의 경고도 곧이듣질 않는다. 보다는 오히려 그를 비웃고 그의 시를 경멸하고 든다. 하여 시인은 자신의 문학과 삶이 걸린 그의 예언을 증거하기 위하여 끝내 자신을 제물로 바쳐 그 살인의 예언을 실현시킨다. 그것은 물론 살인이 저질러지지 않은 채 그의 예언이 실현되지 않는 상황이 자신의 문학이나 삶뿐만이 아니라, 그 술집(사회) 전체에 더 큰 파국이 닥치리라는 비극적 인식과 결단 때문이다.
소설 쓰기나 문학이 그렇듯 두려운 일이지만, 그리고 비록 작품 속에서나 가능할 일이겠지만, 이 시대에도 여전히 문학이 힘있게 살아남아야 할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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