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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빛- 새벽-빛 그리고 황우석 예찬을 겸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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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빛이 없으면 우리는 맹인에 다름 아니다. 그건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은유적으로도 그렇다. 햇빛이 만물을 드러내 보여주듯이 영혼의 빛은 정신의 보석과 그 무한을 열어 보여준다. 또 햇빛이 만물을 키우듯이 어떤 영혼이 발하는 빛은 우리의 정신을 키운다. 물론 정신적인 광합성을 통해서이다.
은유로서의 빛은 실로 여러가지 경우에 최종적이고 유일한 비유로 쓰인다. 황홀이나 기쁨, 깨달음, 사랑, 미덕들과 표정들, (뜻이 겹치기도 하지만 좀 달리 말해서) 어떤 비전들, 완전함…… 등.
2
새벽은 빛이 태어나는 시간이다. 빛은 태어나면서 동시에 만물을 태어나게 하니, 새벽-빛은 모든 창조와 [새로운] 탄생과 신선함으로 고무된 시작들의 동력이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공기와 꿈』(정영란 역)에서 니체의 『짜라투스트라……』에 있는 「해 뜨기 전에」라는 글의 첫 대목 “오 내 머리 위의 하늘! 오 맑고 깊은 하늘이여! 그대 빛의 심연이여! 그대를 바라보며 나는 신성한 욕망으로 전율한다. 그대의 높이 속으로 나를 던지니, 그게 나의 깊이이다! 그대의 순결함 속에 나를 숨기는 것, 그게 나의 천진난만함이다!”를 인용하고 나서 “떠오르는 해는 다가오는 새날의 결백이며, 세계는 새롭게 일어난다. 새벽이란 그러므로 일어나는 우리 존재의 전신감각이다”(p. 277)라고 말한다.
그런데 위의 글들은 또한 새벽, 태양, 새벽-빛의 광원(光源)이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기 속에 광원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푸른 하늘을 보거나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그렇게 부르짖을 수 없을 것이며 또 자기 속에 광원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그러한 부르짖음을 듣고도 그러한 공명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빛의 향수는 공명 속에서 이루어지며 그것은 필경 빛의 교향, 빛의 잔치이다.
그리고 그 빛의 엑스터시는 빛의 밝음과 높이에 관련되어 있다. 그 밝음과 높이는 맑은 공기에 의해 매개되어 몸을 흠뻑 적시면서[光浴] 불가항력의 법열 속에서 어떤 상승-고양-정화를 겪게 하는데, 내적인 빛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시 광원에 대한 바슐라르의 이야기를 들어볼까 하는데 그는 우리의 상상력이 바로 광원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정신과 의사의 유도에 따라 몽상에 잠기는 환자가 자신의 비참한 상태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우리 존재에 대한 성찰 속에서 상상적 빛, 곧 우리 자신 속에서 태어나는 그런 빛의 원천에 위치하게 된다. 그리하여 전적으로 이미지들의 왕국에서 살게 될 때 야콥 뵈메의 말 “그러나 이제 잘 생각해 보라. 죄어들 듯 씁쓸하고 불같은 것이었으되 이제 그윽해지고 고결한 생명의 바탕 색조가 어디서 왔는지를. 너는 빛 이외에 다른 이유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어두운 육신 속에 들어와 빛나는 바로 그 빛은 어디서 연유하는가? (……)”를 이해하게 된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 빛의 덩어리는 어떤 외부 물체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꿈꾸는 우리의 상상력 바로 그 중심에서 태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푸른빛과 장밋빛과 황금빛이 결합된 태어나는 빛, 여명의 빛이다.”
상상력이라는 광원에서 태어나는 빛이 다름 아닌 여명의 빛이라는 통찰은 여러 시 작품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겠지만, 이쯤에서 상상력 대신 좀더 일반적인 말인 마음으로 넘어가, 여러 미덕으로 넘치는 마음이 내뿜는 빛에 대해 황우석 교수를 통해 먼저 얘기해 볼까 한다.
3
나는 황우석 교수가 TV에서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그동안 사람은 이래야 한다고 들어온 미덕들 - 겸손, 사랑, 천진성, 공정성, 소박함 같은 것들이 황우석이라는 사람에게 수렴되어 2005년 한국 땅에서 육화(肉化)되어 나타났다는 느낌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이룩한 줄기세포 연구가 대단한 것이고, 장차 난치병 환자들이 새 삶을 찾게 되면 그건 인류 역사에서 일대 사건이 될 것임에 틀림없지만, 내가 정작 마음을 빼앗긴 건 그의 얼굴과 표정과 태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슨 빛 - 내 생애에 처음 보기 때문에 신선하기 짝이 없는 빛이었다.
생각해 보면, 난치병이 나아서 각자 몇 년씩 더 살겠지만 줄기세포가 불사약은 아니다. 나는 초점을 줄기세포가 갖고 있는 가치에서 그의 사람됨이 갖고 있는 가치로 옮기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눈과 웃음은 맑음과 천진함을 내뿜고 그의 표정과 태도는 타고 난 그대로의 겸손과 소박함과 진정성을 보여주며 그의 말과 그 어조에는 위의 미덕들과 함께 공명정대함과 사려 깊음과 참됨 같은 게 들어있다. 그가 목장에서 인공수정한 소의 새끼를 손을 넣어 꺼내는 모습도 감동적이었다. 그 비할 데 없는 몰입과 열심!
『나의 생명 이야기』라는 책을 보면 어려서 시골에 살았던 그는 자연에 대해 신비감을 항상 갖고 있었는데, 과학자의 창의성은 세속적인 욕심 없이 “맑은 영혼의 오로지 밝은 시계(視界)”에서만 확보된다고 하면서 “여명의 빛”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명의 빛이란 단지 새벽의 빛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여명은 자연처럼 무심하고 맑게 깨인 영혼에 각인되는 빛이다. 여명의 빛은 영혼의 시력을 열게 한다. 그때 비로소 사람은 개인적인 욕망이나 목표를 뛰어넘어 사회와 인간을 위한 지고한 목표를 가질 수 있다.
새벽-빛에 민감한 영혼이 어느 분야에서나 그 분야의 새벽을 연다는 걸 황우석 교수도 보여준 셈이다. 그러나 우리의 초점으로 보자면 더 중요한 것은 그동안 이 사회에서 아주 사라졌나 싶었던 예의 그 미덕들의 새벽을 연 것이라고 해야겠다. 그 미덕들이 그의 얼굴과 표정과 태도에서 불그스레 동터 올랐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를 만난 사람들이 그의 연구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그의 얼굴에서 동트는 그 미덕들의 여명을 보았기를 바란다.
아닌게 아니라 카톨릭 대주교는 그의 겸손에 감명 받았다고 했는데, 실은 황우석 교수를 주교관에서 만나 무슨 우려를 표명한 것보다는 그를 찾아가서 격려한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이 황 교수의 겸손에 참으로 감명 받은 걸로 보인다. 혹시라도 성직자에게 권위주의의 그림자 같은 것이라도 어른거린다면 그는 이미 자가당착의 희극 속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줄기세포 연구의 윤리적인 문제도, “윤리” 운운하며 문제를 삼으려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난치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 실제로 무슨 일을 했으며 생명을 살리기 위해 실제로 무슨 일을 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듯한데, 난치병을 고쳐서 여러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고 그 혜택을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이 받을 수 있게 하는 것만큼 윤리적인 게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툭하면 “윤리”를 치켜들고 나와서 반대나 하는 게 윤리적인 행동은 아닐 것이다. 가치있는 일을 알아보고 그걸 긍정하고 기뻐할 줄 아는 마음이 한층 더 윤리적인 것일 것이다.
카톨릭 교회는, 줄기세포가 장차 불치병을 고치기 시작하면, 실은, 황우석 교수를 시성(諡聖)해야 한다고 나는 사석에서 말하곤 했다. 예수나 프란체스코 같은 성자들이 난치병 환자들을 고쳤다는 건 다 아는 일이다. 옛날에는 성자들이 신화적인 초자연력으로 병을 고쳤으나 오늘날에는 자연과학자가 그런 기적을 행하게 되었다.
다시 우리의 초점에 따라, 그런 기적을 있게 한 그들의 성품과 그 성품에서 나오는 빛-에너지를 우리는 기억하고 싶다.
4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는 “물체의 속도가 빛의 속도에 근접할수록 시간이 느려지다가 빛의 속도와 같아지면 시간은 정지한다”고 하는 얘기가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만일 빛이라면, 다시 말해 광자(光子)라면 시간의 흐름을 전혀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티베트 불교에 관한 책들은 해탈한 상태, 참다운 상태의 마음의 무시간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그럴 때 몸은 빛 속으로 해체되어 스스로 빛난다고 한다.
우리의 모든 괴로움이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일 때문에 생기는 것인데 한때라도 시간에서 벗어나려면 스스로 빛이 되어야 하는 모양이니, 별 수 없이 시간을 사랑하는 수밖에 없고 괴로움을 끌어안고 뒹굴며 무시간성 같은 건 성자들의 몫이라고 여기면 될 모양이다.
그러나, 위의 얘기들로 미루어 보아서, 우리가 흔히 말하면서도 그게 그다지도 광장한 상태, 눈부신 상태를 가리키는 줄 모르고 쓰는 말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라는 말이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뭔가를 하는 동안 우리는 빛인 것이다(!)
또 시적 순간이라는 게 있다. 그 순간에 벌어지는 일 중의 하나가 이미지라는 광원이 새벽을 연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싹트는 무한이다.
잠결에
시가 막 밀려오는데도,
세계가 오로지 창(窓)이거나,
지구라는 이 알이
알 속에서 부리로 마악 알을 깨고 있거나,
시간이 영원히 온통
푸르른 여명의 파동이거나,
하여간 그런 시가 밀려오는데도,
무슨 푸르른 공기의 우주
통과하지 못하는 물질이 없는 빛
그 빛이 만드는 웃고 있는 무한 ―
아주 눈 속에 들어있는 그 무한
온몸을 물들이는 그 무한
하여간 그런 시가 밀려오는데도
나는 일어나 쓰지 않고
잠을 청하였으니……
(……)
빛의 속도와 같아지면서 시간이 무화(無化)하고 새벽을 여는 것 중에는 또 남녀간의 사랑이 있다. 엘뤼아르의 ｢네 눈의 모양｣이라는 작품은 사랑하는 사람의 눈의 모양이 자기의 가슴을 둘러싸고 돈다고 하면서 그걸 “시간의 원광(圓光)”이라고 노래한다.
네 눈의 모양이 내 가슴을 둘러싸고 돈다,
춤과 달콤함의 원형(圓形).
시간의 원광, 밤의 요람 그리고 분명
나는 내가 살았던 걸 더 이상 알지 못한다,
네 눈은 나를 항상 보지 않았다.
날의 잎들과 이슬의 이끼,
바람의 갈대와 향내 나는 웃음,
세계를 점화하는 날개들,
하늘과 바다를 실은 배들,
소리 사냥꾼들과 색채의 원천들,
새벽떼의 메아리 냄새
별들의 짚에 기대 있고,
날이 천진함에 기대듯이
세계는 네 순수한 시각(視覺)에 의지한다
내 온 피는 그 시선 속에 흐르고.
사랑은 시간을 신화적 영원의 모습인 원형으로 돌게 하고, “세계를 점화하는 날개들”이며 “새벽떼의 메아리 냄새”로 공기를 가득 채운다. 네루다도 그의 『100편의 사랑의 소네트』 첫 시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식물이나 와인 등에 비교하면서 “그 성숙 속에서 새벽이 처음 열리는 말”이라고 노래했는데, 엘뤼아르는 한술 더 떠서 그냥 “새벽”이 아니라 “새벽떼”라고 함으로써 쇄도하는 새벽의 느낌의 강도의 엄청남을 느끼게 하고, 그것도 모자라 “메아리”라는 말을 덧붙이고, 또 그것도 미흡한지 “냄새”를 덧붙여 감각적 구체와 느낌의 육체를 날로 퍼붓는데 이런 게 바로 시의 시성(詩性)이며 그 탁월함이고, 사랑이든 빛이든 열반이든 가령 종교적 진술 같은 것의 추상성으로는 닿지 못할 경계이다.
또 『신곡』(최민순 역)의 ｢천국 편｣ 제30곡에서 단테는 자기를 인도하는 베아트리체를 “내 눈의 햇님”이라고 했는데. 평생 자기의 광원(光源)이었던 여자에 대한 더없이 완전한 명명이 아닐 수 없다. 완전하다고 하는 것은 “나의 햇님”이 아니라 “내 눈(방점)의 햇님”이라고 함으로써 더없는 살가움을 확보하면서 해-햇빛이 하는 모든 실제적인 일과 또 빛이 상징적으로 수행하는 모든 상태를 아우르는 어마어마한 존재로 느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내 눈의 햇님”이 얼마나 강력한 표현인지 각자 자기의 눈 속에서 느껴보면 알 터이다.
한편 그들이 올라간 지고천(至高天)인 청화천(淸火天)에는 빛의 강물이 흐른다고 써 놓고 있다.
5
동이 트는 순간, 숲에서, 마악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나무들의 초록빛과 하얀 숲길에 감격한 일을 나는 얘기한 적이 있지만, 동이 트는 바로 그 순간에는, 날이 다 밝은 뒤에는 느낄 수 없는, 세계가 빛에 의해 매일매일 창조되고 있다는 느낌의 엄습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까 세계는 먼 옛날에 이미 창조된 게 아니라 매일 동 틀 무렵에 창조되고 있다는 발견은 또 하나의 경이일 수 있다.
그에 비해 해가 떠오르는 걸 볼 때는, 특히 가까운 산 뒤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불덩어리일 때는 또 전혀 다른 느낌에 싸이게 되는데 그건 목이 메이는 듯한 광희(狂喜) 같은 것이다.
타고르는 캘커타의 한 거리에서 나무들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겪은 걸 그의 친구에게 얘기한 적이 있는데 앤드류스라는 그 친구는 그의 서간집에 그 얘기를 수록해 놓았다.
내가 그걸 바라보고 있는데, 그 순간 홀연히 내 눈에서 베일이 거둬지는 것 같았다. 세계는 사방으로 터지며 발산하는 기쁨과 아름다움에 싸여 있는 걸 나는 발견했다. 내 가슴에 겹겹이 쌓여 있던 슬픔의 짙은 구름은 세상의 빛으로 완전히 관통되었고 그건 온 누리에 눈부시게 빛났다……
그 순간에는 내가 사랑하지 않는 게 없었다…… 나는 베란다에 서서 육체노동자들이 길을 걸어 내려가는 걸 보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 그들의 모습, 그들의 얼굴이 이상하리만큼 굉장해 보였는데, 마치 세계라는 대양에서 모두 파도처럼 움직이는 듯했다. 한 젊은 남자가 지나갔는데, 그건 나에게 엄청난 사건이었다…… 나는 내 비전의 전일(全一)함 속에서, 온 인류의 일단이 움직이는 걸 목격하는 듯했고, 음악의 박자와 신비한 춤의 리듬을 느꼈다.
떠오르는 태양이, 아침의 그 빛이 한 시인으로 하여금 어떤 비전을 보게 했는지 알 수 있는데, 햇빛이 에너지라는 건 모든 생물에게 마찬가지인데 인간이 몸과 마음에도 마찬가지이다.
새벽빛이나 떠오르는 태양의 광휘는 아주 실질적인 일을 하는데, 영혼을 새벽빛으로 물들이면서 마음의 새벽을 열고 우리의 마음이 해돋이와 더불어 또 하나의 광원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의 여러 예에서 보았듯이, 모든 무시간적인 상태, 상상적 비전, 모든 싹트는 힘과 그 파장, 창조적 처음과 그 신선함 같은 것들의 비유가 되며, 그 비유가 육화(肉化)된 것인 한 그 말을 읽거나 듣는 사람이 그 비유의 모태와 비슷한 상태를 경험하게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용운이 ｢찬송｣이라는 작품의 첫 연에서
님이여, 당신은 백 번이나 단련한 금(金)결입니다.
뽕나무 뿌리가 산호가 되도록 천국의 사랑을 받읍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아침볕의 첫걸음이여.
라고 썼을 때, 여기의 “아침볕의 첫걸음”은 물론 “님”을 수식하는 것이지만, “아침볕”에서 느끼는 “첫걸음”의 성질을 알려주기도 한다. “아침볕의 첫걸음”에 따라 이 세상도 첫발을 내딛으며 우리의 마음도 첫걸음을 떼어놓게 되기 때문이다.
6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우리가 불멸의 존재, 상태, 가치 같은 것들을 말할 때는 한결같이 빛으로 꾸민다. 아니 꾸민다기보다는 그들이 빛을 발하니 그걸 보고 느낄 수 있는 영혼들은 자기가 본 것을 그리거나 노래할 뿐이다.
그들의 손이 닿는 것마다 불멸로 만드는 시인들이 있는데 네루다와 릴케가 그런 사람들이다. 사물을 신화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 노래하는 것들을 불멸로 만드는 것이 시인의 위대성의 중요한 조건이라면 20세기가 위의 두 시인을 갖고 있다는 건 우리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릴케는 붓다를 기리는 시를 세 편이나 썼는데, 인류가 성자들을 갖고 있다는 건 물론 인류의 행운이지만 그들의 불멸의 행적과 말의 광채를 되비치는 시인들이 있다는 것도 인류의 행운이다. 릴케의 ｢빛 속의 붓다｣라는 작품을 읽어 본다. (제목의 “빛”은 glory의 번역인데, 光輪, 光背라는 뜻도 있다.)
모든 중심들의 중심, 속 중의 속,
알몬드, 스스로에 둘러싸여 향미(香味) 깊어지는―
이 만물, 더 먼 별들
그리고 그 너머까지 모두가 당신의 살, 당신의 과일입니다.
이제 당신은 느끼십니다 그 어떤 것도 당신한테 매여 있지 않음을;
당신의 광활한 외피(外皮)는 끝없는 공간에 닿아 있고
거기 진한 즙이 솟아나와 흐릅니다.
당신의 무한 평화로 빛을 얻어,
수없는 별들 밤새 회전하며
당신 머리 위 높이 타는 듯 빛납니다.
그러나 당신 속에 앞으로 있을 것이
이미 있습니다, 모든 별들이 죽을 때에도.
“당신의 광활한 외피는 끝없는 공간에 닿아 있고”라는 구절은 원효(元曉)가 『대승기신론소』에서 화엄경을 인용하며 한 말 “허공의 가(辺)를 찾으면 오히려 될 수 있어도 불(佛)의 한 모공(毛孔)은 가(涯)도 없고 한계도 없다”와 흡사한데, “이 만물, 더 먼 별들 / 그리고 그 너머까지 모두가 당신의 살, 당신의 과일입니다”는 앞 비유의 좀 더 감각적인, 살가운 표현이다. 그리고 감각지각은 친근성의 원천이다.
릴케가 보는 붓다의 빛은 “무한평화”에서 나오는 빛인데, 그게 어느 정도냐 하면 수없는 별들이 거기서 빛을 얻어 밤하늘에 빛난다는 것이다. 부처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이 세상에 가득 찬 고통을 내 반드시 평정하리라(三世皆苦 吾當安之)”라고 했다는데, 그 탄생게(偈) 속에는 새벽-빛이 동트고 있었으며, 시인의 느낌에 따라 무한 평화에서 발원하는 그 빛의 즙은 마르는 법이 없어서 심지어 “당신 속에 앞으로 있을 것이 / 이미 있”다고까지 얘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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