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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으로서 한국어를 배운다는 것

  저는 1996년에 처음 한국에 왔습니다. 불행하게도 “한국에 왜 왔습니까”라는 그 흔한 질문에 솔직히 답한다면 “한국에 큰 관심이 있었으니까”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1996년 저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미래에 대해서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보통의 젊은이들처럼 대학원에 가면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취직을 한다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 중이었고 한국은 저에게 지리적으로 먼만큼이나 미래에 대한 선택에서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 만족스러운 결정이 없을 것 같은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대학 선배를 만났습니다. 그 선배가 대학 졸업 후 영어를 가르치러 일본에 갔는데,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재미있는 일자리를 구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어도 열심히 공부해서 유창하게 할 수 있었고, 새로운 문화를 배워서 이제는 모국인 미국까지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의 망설임이 그때 끝났습니다. 취직과 대학원 진학, 미지의 세계로의 모험 등 세 가지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너무나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선배의 조언으로 제가 일본대사관과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했을 때, 일본대사관에서는 지금 신청하면 일 년 후에 가르칠 수 있겠다고 했고, 한국대사관에서는 저보고 언제 올 수 있느냐고 물어봤습니다. 전화 통화 후 이 주일이 지나 저는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제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그 선배는 저에게 한국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한국어를 배우는 것 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한국에 사는 동안 한국어 실력이 향상될수록 한국 체류의 의미도 깊어지는 반면 한국에서 벙어리로 지낸다면 시간이 갈수록 소외감과 고립감만 강하게 느끼게 될 뿐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반드시 한국어를 배우고야 말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으며 다른 외국인들이 언제까지 한국에 있을 거냐고 물어봤을 때 한국어를 잘 할 수 있을 때까지라고 답했습니다. 그럼 죽을 때까지 여기 있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요. 한국에 온지 거의 10년인데 한국어를 정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학습 중이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 친구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제가 한국에서 적어도 벙어리로 사는 운명은 피했고 한국어 학습에서 어느 정도의 성공은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대학 선배가 저에게 주었던 조언처럼 한국어를 배우는 길에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한테 할 충고가 있다면 아마 다음과 같은 것일 겁니다.

  한국어 교과서에서는 기본적인 문장구조와 어휘를 배울 수 있는데 그런 기본적인 지식이 없다면 한국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들을 익힐 때까지는 교과서로 공부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의 경험에 비추어 보거나, 한국어 학원에서 초급부터 졸업할 때까지 공부해도 한국말을 못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교과서 외에도 실생활(책, 영화 등등)에서 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이년 반 정도 교과서로 열심히 공부했었는데, 교과서에서 나오는 말과 실생활에서 마주치는 말과는 너무 큰 차이가 있어서 그렇게 오랫동안 공부를 했는데도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화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닐곱살 아이가 하는 말부터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교과서에 곁들여 동화책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기로 했고 친구에게 한국어 동화책을 녹음해달라고 부탁해서 열심히 듣기 시작했습니다. 몇 개월 만에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서 살게 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제 주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훨씬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한국 사람들이 실제 사용하는 말을 배워라”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한국어 교육을 지원하는 재단이나 정부기관에 당부하고 싶은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살아있는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한 “진짜 한국어 교재”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녹음과 용어 해설이 되어 있는 교과서(초등학교 1학년 수준부터 대학교 수준까지), 대본과 설명이 있는 한국 영화 DVD 등등. 이런 교재가 반드시 필요하고 이것을 만들 때는 한국 언어학자들과 함께 한국어를 오랫동안 공부한 외국 사람이 동참하는 것이 효과적이리라 생각합니다.

  둘째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 학생들을 지원하는 재단이나 정부기관에서는 한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한 학생들을 선별해서 집중지원을 해주면 좋을 듯합니다. 그 학생이 외국에 있든지 한국에 있든지 상관없이 말입니다. 저처럼 한국에 살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은 정부나 재단으로부터 한국어 학습을 위한 지원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재미있는 예를 들자면 제 막내동생은 한국에 큰 관심이 없으면서도 자기 형이 한국에 살고 있어서 조지아대학교(University of Georgia)에서 두 학기 동안 한국어 수업을 들었습니다. 제 동생은 별로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고 자주 저에게 메일을 보내서 숙제를 대신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물론 저는 항상 기꺼이 해줬습니다). 동생은 외국의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공부했다는 이유만으로 원하기만 했다면 장학금을 받고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만,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했고 관심도 많은 저는 한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기회를 제공받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 있던 외국에 있던 한국어 능력 시험에서 중급 이상의 점수를 딸 수 있는 수준의 사람에게만 지원의 기회를 주어야 하고 그래야만 지원을 받고 싶은 사람이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입니다.

  “한국어를 잘 할 수 있을 때까지 한국에 있는다면 죽을 때까지 한국에 있을 것 같다”는 말의 참뜻을 1996년 처음 한국에 왔을 당시 알았다면 저는 아마도 한국어 공부를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새로운 언어에 도전하는 것은 해볼 만한 일인 것 같습니다. 한국어 교육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들과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함께 새로운 “진짜 한국어 교재”를 만들고 새로운 한국어 학습의 방법을 제공한다면 앞으로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훨씬 더 높은 성공을 거둘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