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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사용자들의 한국어 학습이 어려운 이유

   1. 서론

  요즘 외국어로서의 한국어(Korean as a Foreign Language, 이하 KFL)는 영어 사용자들에게 있어 다른 언어에 비해 ‘어려운’ 언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따라서, 한국어는 중국어, 일본어, 아랍어와 함께 ‘레벨 IV’ 언어로 분류된다. ‘레벨 IV’ 언어는 미국 국방언어연수원의 능숙도 ‘2+’(5가 교양있는 원어민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 가장 많은 수업 시간(2200～2600시간)이 필요한 언어이다.

  일반 언어학 입문 코스를 수강한 사람이라면, 한 언어가 다른 언어에 비해 얼마나 어려운지 그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한국어는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어 사용자들에게 있어, 한국어에 대한 심도 깊은 공부와 한국어 능숙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언어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비언어적 측면에서 많은 장애가 뒤따른다. 이로 인해 한국어를 배우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다양한 장애들로 인해 한국어는 매우 어려운 언어, 특히 영어 학습자들에게 있어 어려운 언어로 인식된다. 이제부터 이러한 장애들에 대해 살펴보겠다.

  2. 장애(1): 언어적 측면

  영어 사용자들, 적어도 성인이 되어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영어 사용자들이 부딪치게 되는 언어적 측면의 장애는 한국어 구조 전반에 걸쳐 있다. 음성조직과 발음 측면에서 학생들은 ㄱ, ㅋ, ㄲ, ㅂ, ㅍ, ㅃ, ㄷ, ㅌ, ㄸ, 그리고 ㅈ, ㅊ, ㅉ를 인지하고 이것들을 만드는 3가지 상이한 방법들을 익혀야 한다. 또한, 두 가지 상이한 종류의 s(ㅅ와 ㅆ)를 만드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영어권 학습자들은 “한국말”이라고 말할 때 실제로는 “한궁말”로 발음되는 것과 같은 동화 법칙을 이해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한국어의 어순 유형은 영어와는 반대이다. 즉, 영어는 동사-목적어의 어순인 반면 한국어는 목적어-동사 형식이다. 아주 단순한 사실이긴 하지만, 이는 한국어의 문법 구조와 많은 관련을 지니고 있다. 즉, 한국어 문법 구조의 대부분은 영어와 상이하거나 반대이다. 특히, 영어권 학습자들은 영어의 전치사나 어순의 역할을 하는 수많은 접미사, 명사의 불변화사, 동사 어미를 배워야 한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형태통사론 측면에서 한국어는 영어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점이다.

  어휘 학습 면에서, 한국어에는 영어권 학습자들의 학습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동족 언어가 거의 없다. 영어권 학습자들이 불어를 배울 경우, 라틴어에서 유래한 ‘verbe’, ‘adjective’, ‘pronom’, ‘syntaxe’, ‘suffixe’ 등의 상위언어적 어휘들을 쉽게 학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한국어에서 이런 단어들은 모두 한문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한국어 어휘를 제대로 익히기 위해서는 관련 한자를 배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 역시 엄청난 시간을 요하는 일이다. 한국어에도 영어에서 차용한 언어가 많이 있으며 그 수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영어권 학습자들은 이러한 차용어들 중에서 어느 것이 올바로 쓰였는지, 어떤 단어가 한국어식으로 발음되는지, 또는 이런 단어들이 한국어에서 그 의미나 기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 따라서 한국어에서 영어 차용어의 존재는 영어권 학습자들이 한국어를 손쉽게 배울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니라 오히려 또 다른 장애물이라 할 수 있다.

  영어 사용자들이 한국어 학습을 어렵게 느끼는 또 다른 특징들을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경어와 화계(話階, speech level)를 들 수 있는데 어떠한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에게 이것들을 사용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둘째, 모방어(의성어와 의태어)를 들 수 있는데 이는 아주 독특한 낱말이 연결된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며, 문맥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셋째, 혈족 관계를 나타내는 단어들이다. 이러한 단어의 사용은 한국의 사회 구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경어와도 관련이 있다. 문맥에 따라 바뀌는 이러한 특징들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언어 환경을 장기적으로 접하고 집중적으로 연습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가 더욱 복잡하게 느껴지는 또 다른 언어적 요소는 다변성에 있다. 한국어가 하나의 표준화된 언어로 정착된 것은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 언어에는 검토가 필요한 많은 언어 형태가 존재하는데, 일례로 학습자들이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비표준어를 들 수 있다. 어떤 언어에도 다변성이라는 요소는 존재하지만, 한국어는 표준화의 정도는 낮으면서도 특정 지역의 사투리는 매우 두드러지게 표현되기 때문에(특히 경상도 사투리) 학습자들은 가끔 예기치 못한 언어 형태와 특징에 맞닥뜨리곤 한다.

  2. 장애(2): 비언어적 측면

  언어학자와 언어 교육자들이 영어 사용자들의 한국어 학습에 대한 ‘어려움’을 논할 때 강조하는 것은 한국어의 언어적, 구조적 특징이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최대의 난점은 비언어적 장애이다. 비언어적 장애로 ▲우선 양질의 학습 도구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다양한 수준의 다양한 학습 목적을 가진 광범위한 학습자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영어로 된 적절한 교재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정립된 학습 프로그램과 훈련받은 교사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최근 한국의 일부 재단과 정부 기관들은 미국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KFL) 교육에 대해 “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대학이 130개 이상”이라고 주장하며 미완의 성공에 환성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 통계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1～2년의 단기 교육에 불과하며, 재임 계약이 불확실하거나 안정적인 제도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단기 교사들이 이러한 수업을 맡고 있다. 또한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이들(1.5～2세대 학습자들)에게 이러한 프로그램이 제공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학습자’와 ‘모국어로서의 한국어 학습자’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프로그램들은 그 어느 쪽에 대해서도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마도 영어권의 한국어 학습자에게 있어 가장 결정적인 비언어적 장애물은 학습자의 모국어가 영어라는 극히 단순한 사실에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과 직접 한국어를 연습하겠다는 열망을 가지고 처음 한국땅에 발을 내딛는 영어권의 한국어 학습자는 곧 영어가 한국에서 매우 유용한 상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국인들은 그저 앉아서 커피 마시며 이야기하기 위해 기꺼이 많은 돈을 지불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어려서부터 한국어를 배웠으며, 어떤 식으로든 하루 종일 한국어 환경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거의 모든 경우에 있어 영어권의 한국어 학습자는 자신과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의 영어 능력이 자신의 한국어 능력보다 훨씬 우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결과는? 당신과 한국어로 대화하기를 원하는 한국인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상황을 더 악화시켜 보면, 영어권 학습자는 곧 한국어를 공부하고 연습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는 대신 영어를 가르침으로써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영어 강사로서의 돈벌이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진정한 열혈 학습자에게도 또 다른 문제가 남아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가서 한국어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용자 중심의 프로그램, 교환 학생, 장학금, 그외 다른 인센티브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3. 한국어 교육에 대한 투자 필요성

  KFL의 문제를 논의함에 있어 ‘투자’라는 은유가 매우 유용한 것 같다. KFL을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서, 영어권 대학들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쪽 모두에 충분한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시급한 것은 교사에 대한 투자이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미국의 130개 이상의 대학들 중 한국어 및 한국언어학 부분에서 종신적 지위를 인정받는 교직이 있는 학교는 15개 미만이며, 학부생들에게 4년간의 한국어 교육을 제공하는 학교는 12개 미만이다. 학습자들 역시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영어권 학습자가 한국어를 배울 경우, 프랑스어나 스페인어를 배우는 것보다 3～4배의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 시간은 돈이다. 따라서 학습자 개인도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한국 스스로가 KFL에 투자해야 할 것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포함한 한국적인 것들에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장학금이나 그외 다른 인센티브를 늘려야 할 것이다. 사실상 작은 나라인 한국이 전 세계에 걸쳐 KFL 교육을 촉진시키기 위해 많은 투자를 감행한다면, 이는 한국에 최선의 이익을 안겨다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세계화”를 일방통행로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인들은 영어를 배우는 데 많은 투자를 하는 반면, 자국 언어와 문화에 대한 선전은 게을리 하고 있다. 이제 한국은 “세계화”의 개념을 양방향 도로로 인식하고 KFL에 대해 보다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측면에서 투자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한다면 반드시 많은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