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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뒷 이야기

- 국제문학포럼의 출발점이자 그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 중 하나는 참가작가 섭외에 있다. 조직위원회가 일찍 구성되고 3년여에 걸쳐 준비를 하는 것도 그 때문.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문인들이 대거 참석했던 만큼 섭외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우여곡절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당초 이번 포럼의 기조발제자로 점찍고 초청에 나선 인물은 체코의 대통령을 지낸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바츨라프 하벨과 중남미 문학의 거장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였다. 하벨은 주한 체코대사와 하벨의 측근으로 알려진 주필리핀 체코대사를 통해, 바르가스 요사는 페루 출신의 카란사 교수와 고혜선 교수 부부를 통해 긴밀히 접촉한 끝에 두 사람 모두에게 참가 약속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행사 1년가량을 앞두고 하벨은 심장병 때문에 장거리 여행이 불가능하다고 참가를 포기했고 바르가스 요사 역시 갑자기 다른 일정과 중복되어 참가가 힘들게 됐다는 연락을 해와 주최측을 안타깝게 했다.

- 해외 참가 예정자들 중 주최 측을 가장 당황하게 만들었던 이는 프랑스의 자크 아탈리였다. 아탈리는 자신의 참가 조건과 일정까지 일일이 까다롭게 조정해오다가 포럼 개막을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뚜렷한 이유도 없이 일방적으로 참석을 취소해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바르가스 요사 대신 초청을 추진했던 중남미문학의 또 다른 거장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멕시코 외무부까지 나서 초청을 추진했으나 고령과 건강을 이유로 끝내 사양했다. 이밖에 이탈리아의 움베르트 에코와 다리오 포, 독일의 귄터 그라스와 한스 옌첸스베르거, 중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가오싱젠, 미국의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 등이 초청 대상 리스트에 올랐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초청이 불발되거나 다음 기회로 미루어진 작가들이었다.

- 메인 포럼 이외에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서울평화선언 발표였다. 서울평화선언은 한국전의 북한측 종군기자였던 헝가리의 티보 머레이의 제안으로 준비돼 작가단의 판문점 방문 직후 파주 헤이리에서 발표됐는데 그 시의성과 내용의 적절성 때문에 여론의 큰 호응을 받았다. 서명에는 해외작가 17명과 국내 참가자 61명 등 총 78명이 동참했는데 참가작가들 중 해외작가 2명, 국내작가 1명이 서명에 불참해 눈길을 끌었다. 해외작가 2명은 내용에는 동의하지만 개인적인 신념이 연판서명이라는 형식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사유 등으로 서명을 거부했고 보수적 성향으로 알려진 국내작가는 테러리즘에 반대하는 내용이 명시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다는 이유로 불참했다. 한편 포럼 내내 화제를 몰고 다녔던 독일의 볼프 비어만은 공산체제 하에서 각종 행사와 서명에 동원된 악몽 때문에 불참하겠다고 밝혔다가 마지막 날 환송만찬에서 분단된 한국을 생각하며 마음을 바꾸었다고 선언, 큰 박수를 받았고 미국의 계관시인을 지낸 로버트 하스는 평화선언의 내용 중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더 많은 지원”과 같은 문구가 선진국의 오만한 시각을 내포하고 있다는 이유로 서명을 거부하다 판문점에 다녀온 후 마음을 바꾸어 평화선언문에 서명했다.

- 이번 포럼에서 국내 언론의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작가가 기조발제자였던 오에 겐자부로였다. 이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라는 후광에다 일본 정치인들의 잇단 망언과 일본 사회의 우경화 움직임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의 양심적 언행, 일본과의 지리적 문화적 친연성으로 인해 한국에서 오래 전부터 두텁게 쌓여왔던 그의 문학에 대한 애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그러나 오에는 섭외 과정에서 오랫동안 참가를 망설여 주최 측의 애를 태웠다. 나중에 주변사람들의 만류 때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는데 특히 가족들은 독도 문제 등으로 악화된 한일 관계 때문에 한국에 가면 청중들이 썩은 토마토를 던질 것이라며 그의 방한을 만류했다고. 주최 측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끈질긴 교섭을 벌인 끝에 참석한 오에의 강연장에는 이런 우려와는 달리 매번 3백～4백 명이 넘는 청중들이 모여 그의 발언을 경청하고 박수를 보냈으며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 그의 사인을 받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오에 역시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통절히 반성하고 또 일본사회의 우경화 움직임에 강력한 비판을 늦추지 않는 ‘일본의 양심’으로서의 모습을 잃지 않았고 행사 기간 내내 힘든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겸손하고 온화한 태도로 일관하는 대가의 면모를 보여 관계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그는 일본에 돌아가 아사히신문에 포럼 참관기를 쓰기도 했는데 자신의 젊은 시절 우상이었던 르 클레지오를 비롯한 많은 작가를 만날 수 있어서 흡족했다며 주위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 행사진행을 돕는 도우미들, 특히 여성 도우미들로부터 가장 인기가 있었던 작가는 터키의 오르한 파묵이었다. 이는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인상을 지닌 그의 호감가는 외모에도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항상 주변 사람을 배려하고 고된 일정과 몰려드는 사인 요청 인파에도 늘 웃는 낯으로 응해주는 그의 넉넉한 마음씀씀이에서 비롯된 것. 실생활에서도 파묵은 주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딸과 함께 보내는 자상한 아버지라고 하는데 포럼이 끝나갈 무렵에는 여성 도우미들 사이에서 파묵 팬클럽을 결성하자는 ‘오빠부대’가 생겨 나중에 터키의 파묵 자택에 놀러가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실제로 파묵의 ‘오빠부대’가 터키 방문을 감행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 이번 서울국제문학포럼은 메인 포럼 이외에도 리셉션, 작가의 밤, 환송만찬, 기타 작가별 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는데 청중들의 호응을 가장 크게 받은 작가는 독일의 볼프 비어만이었다. 독일문화계의 음유시인으로 불리는 그는 자신의 발제 시간과 작가의 밤, 환송만찬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의 국민가요인 ‘아침이슬’을 읊조렸는데 그는 2년 전 함부르크에 있는 그의 집에서 김민기와 첫 만남을 가진 이래 이 노래의 애송자가 되었다고. 비록 한국어 발음이 부정확해 허밍으로 음만 따라하는 것이었지만 동독 출신의 반체제 시인이 부르는 ‘아침이슬’을 듣는 감회는 각별한 것이었다. 비어만은 아예 포럼이 끝난 다음 날 대학로의 학전 블루소극장에서 김민기와 함께 콘서트를 갖기도 했는데 청중을 매료시키는 그의 화려한 무대 매너는 한국의 고은 시인을 연상시킨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 메인 포럼장에서 일어났던 해프닝 하나. 11세션 ‘기술 변화와 소통의 세계화’에 대한 발제를 맡은 미국의 로버트 쿠버는 새로운 소설양식으로 자리잡고 있는 ‘하이퍼픽션’의 선두주자답게 자신의 발표에 컴퓨터를 이용하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해왔다. 도착해서부터 자신의 도우미를 통해 리허설을 부탁했는데 그의 발표를 위해 재단은 별도로 빔프로젝트와 랜(LAN)선을 급히 대여해야만 했다. 발표 직전 점심시간까지 이용해 리허설을 만족스럽게 마쳤는데 정작 발표 때 컴퓨터를 작동시키자 화면 속의 하이퍼픽션은 열심히 움직이는데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는 매우 황당하다는 제스처를 연발했고, 관계자들 역시 당황하여 우왕좌왕할 수밖에. 기술자가 내려와 빔프로젝트를 확인해도 아무런 이상이 없는 상태였다. 혹시나 하여 그의 노트북을 살펴봤을 때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소리를 제로로 설정해 놓았던 것. 자칫 IT강국 한국의 명성에 흠집을 냈을 뻔한 하이퍼픽션의 대가의 실수에 당사자는 무안해했는데 청중들이 너그러운 웃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발표는 곧 다시 진행되었다.

- 포럼에 참석한 해외작가들의 독특한 한국 알기 노력과 에피소드도 화제였다. 독일의 토마스 브루시히는 한국 음식문화의 별미중 하나인 개고기를 먹고 싶다고 해서 도우미와 구기동의 한 보신탕집을 방문하였다. 수육을 마지막까지 다 먹은 그는 양념이 너무 강해 고기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고 소감을 밝혔는데 그 덕분에 여성 수행원도 난생 처음으로 개고기를 맛보았다고. 모옌은 한국의 동해 바다를 보고 싶다며 도착 다음 날 당일치기로 동해안과 사찰을 둘러보았다. 케냐에서 온 응구기는 자신의 도우미가 자신보다 스와힐리어가 더 유창하다고 놀라워하며 오히려 그에게 모르는 말을 묻기도 하는 등 한국문화의 다양성과 높은 수준에 경탄하였다. 반면 혜경궁 홍씨를 소재로 한 『The Red Queen』을 쓴 마거릿 드래블은 한국어판 출판과 반응에 대해 잔뜩 기대를 했는데 정작 출판사의 늑장으로 한국어 번역판이 나오지 않아 낭독회를 가제본 된 책으로 대신하게 되어 몹시 아쉬워하기도.

- 이번 포럼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성숙하지 못한 우리의 관람문화. 애초 재단은 포럼장에 청중들이 운집해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 사전에 좌석 예약을 받았다. 예약은 폭주했고 몇몇 인기작가들이 나오는 세션이 일찌감치 예약 마감됐을 때만 해도 재단의 계획이 성공을 거두는 듯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포럼장에는 이들 예약자들의 태반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을 위해 예약자 명단과 예약표를 만들고 좋은 자리에 일일이 예약석이라는 표시를 만들어 붙인 스태프의 노력은 차치하고서도 이들 때문에 정작 포럼 참석을 포기했거나 발길을 돌린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허탈하기만 했는데 우리 문화가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약속을 지키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절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