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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역자와의 아름다운 만남 - 西譯 『Paraíso cercado 당신들의 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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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작품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데 가장 이상적인 것은 번역자가 한국어가 능숙할 뿐만 아니라 해당국의 언어에도 능숙하며(거의 모국어 수준으로), 게다가 문학을 하는 사람(꼭 문학을 하지 않더라도 문학을 좋아하거나 소양이 있는 사람이라면)인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격을 모두 겸비한 사람은 실제로는 드물다. 대부분의 경우는 문학을 전공했거나, 문학으로 학위를 받았거나, 또는 한국어를 외국어로 옮기는데 출중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먼저 외국어로 번역을 하고 난 뒤, 그것을 외국인 공역자가 수정을 하거나 교열하여 번역을 완성시키는 식이다. 아무튼 이 공역 시스템이 가장 많은 역자들이 취하는 방식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스페인어 번역자인 고혜선 교수는 많은 이점을 가진 역자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고 교수는 중남미 문학과 언어학을 전공했고, 자타가 공인하듯 탁월한 스페인어 실력을 갖춘 스페인어 번역의 독보적인 존재이다. 한편 공역자로 참여하는 페루 출신의 카란사(Carranza) 교수는 문학적 식견에 언어학과 인류학적 지식을 겸비한, 공역자로서는 더 할 나위없는 자격을 갖추고 있고 거기에 고혜선 교수의 남편이기까지 하다. 이 멋진 콤비가 이제까지 한국어 문학작품들을 스페인어로 번역한 성취도는 놀랍다. 1992년 『한국단편집 Cuentos Coreanos』( 멕시코 유수의 출판사인 Fondo de Cultura Económica에서 출간)을 시작으로 2004년 이청준의『서편제』까지, 10여년 넘는 기간 동안에 10권 정도의 번역서를 냈는데, 그것은 거의 1년에 한 권 정도(그것도 시가 아니라 소설임) 낸 폭이다. 최근의 이청준의 『축제』를 포함해서 이미 번역을 완료하거나 번역을 하고 있는 작품까지 다 포함하면 거의 15권 정도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번역물 성과가 있다고 해서 번역의 질이나 수준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본 리뷰 대상작품인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스페인어판은 이미 스페인어권 두 나라에서 출판되기 전 검증을 받은 바 있다. 역자는 멕시코시티의 한 대학에서 학생, 교수들 약 250여명 앞에서 이 작품의 일부분을 낭독한 뒤, 열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심지어 쿠바에서는 그곳 작가동맹의 문인들과 이 번역본을 가지고 토론을 했으니 번역의 완정성(完整性)은 증명된 셈이다.
역자는 『당신들의 천국』의 타이틀을 스페인어로 ‘Paraíso cercado’(한국어로는 울타리 쳐진, 닫힌, 막힌 천국이라는 의미)로 번역했는데 이것은 작품의 내용이 60～70년대 군사독재 시절의 상황에 대한 메타포라고 생각해 볼 때, 적절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것을 직역해 ’Paraíso de Vds‘ 또는 ‘Su paraíso’라고 하면 아무런 의미 없는 번역이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역자는 『당신들의 천국』을 번역하면서 원작의 여러 부분들을 삭제했는데 그것은 이 작품이 신문연재 소설이라는 성격상 등장하는 반복조의 이야기, 그리고 설명조의 이야기들이 역자가 판단하기에는 작품의 긴장이나 긴박감을 떨어뜨린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작업은 작가와의 충분한 상의를 거쳐서 나온 결과이다. 이 점은 참으로 중요한 부분인데, 예를 들어 소설 끝부분에 삽입되어 있는 소록도로 돌아온 주인공이 결혼할 부부의 주례사를 연습하는 부분은 역자가 보기에 실상 장황하고 절제가 되어있지 않아 삭제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작가가 그 부분을 통해서 자신의 철학을 피력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살려두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번역을 하는데 있어서 작가와 역자와의 바람직한 상보적 관계의 한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고혜선 교수가 그랬듯이, 문학작품의 경우 역자가 원문에 손질을 가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게 되는데, 이럴 때 원작 그대로, 수정 없이 해달라고 요구하는 작가가 있는 반면, 역자의 의견을 따르는 작가도 있다. 이청준은 후자에 속하는 경우로, 그는 자신의 작품이 외국의 독자층에게 잘 전달될 수만 있다면 작품의 부분적인 수정도 좋다는, 다시 말해 역자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언젠가 필자는 역자에게 이청준 작품을 번역하면서 느꼈던 점을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때 역자는 딱 잘라 작가하고 인간적으로 친해졌다고 술회했던 것을 기억한다. 역자가 유독 이청준의 작품을 많이 번역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번역자에게 어떤 작품의 번역이 주어졌을 때, 그 작품 그리고 그 작품을 만든 작자에 대한 애정을 지니는 것은 너무도 필요한 일이다. 그럴 때, 역자는 번역을 함에 있어 보다 많은 열정과 공을 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Paraíso cercado』일 것이다.
※ 『Paraíso cercado 당신들의 천국』은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2004년 말 스페인 트로타(Trotta)에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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