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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대산문화

가정문제 상담가의 길을 열어준 가족 이야기들

편집자 주) 『대산문화』에서는 이번 호부터 자신의 성장기에 영향을 끼쳤던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사회 각계의 명사들로부터 들어보는 코너를 ‘다락방의 책들’이란 제목으로 연재한다.

  요즘 대형서점에 가면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이 실감나곤 한다. 분야별로 정돈되어 끝이 없는 서가도 그렇고 책 한 권 한 권이 정성스럽고 아름다워서 그렇기도 하다. 어릴 때 책을 읽어주고 또 좋은 책을 골라주기 위해 애쓰며 키웠던 아들이 낼 모레면 30대에 들어서는 나이가 되고 보니, 어린이 책은 관심의 영역에서 물러난 지 오래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서점의 유아, 어린이 책 부근을 서성이다 보면 우리 아이 어린시절과도 비교할 수 없이 다양하고 수준 높은 책들이 많아서 ‘요즘 아이들은 참 좋겠구나’는 생각이 든다.

  내 어릴 때에는 한국전쟁 직후였으니, 부족한 것 투성이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절박한 시절에 책은 그것도 아이들 책은 사치품 가운데 사치품이 아닐 수 없었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우리 집은 형제들이 많았고 다른 부분이 조금 부족할지라도 책은 읽어야 한다는 부모님과 손위 형제들이 있어서 나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소년소녀 세계명작’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었다. 새 동화책 한 권이면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시절이었으니, 어려운 시절에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던 환경에 대해 지금도 감사하는 마음이 된다(요즘에는 창작동화들도 많고 종이 질도 좋고 아름다운 그림들로 가득 찬 책들이 차고 넘치지만, 당시에는 서양의 동화도 직역이 아니라 일본책을 다시 번역하는 수준이고 종이 질도 형편없었다. 그래도 책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펴며 꿈을 키우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본다).

  책이 귀하다보니 한 권의 책을 적게는 서너 번 많게는 수십 번씩 읽는 것이 당연했다. 수십 번 정도 읽고 또 읽어서 지금도 그 장면을 선연히 떠올릴 수 있는 이야기가 요한나 슈피리가 지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와 루이자 메이 올콧의 『작은 아씨들』이었다.

  어린 마음이지만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서 하이디와 할아버지가 나누는 따뜻한 사랑, 하이디와 클라라의 순수한 우정 그리고 이야기의 배경이 되었던 알프스의 아름다운 풍경에 언제나 마음이 따뜻해지곤 했었다. 클라라의 집에 머물면서 늙으신 피터의 할머니를 위해 하얀 빵을 모으던 하이디의 그 순수한 마음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모른다. 먼 훗날 스위스를 여행하게 되었을 때, 몽블랑 산을 오르면서 그 추운 바람 속에서도 내 어린 시절에 만났던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생각했었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지금 말로 엄마 아빠 없이도 할아버지, 이웃들과 대안가족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정통(?)적으로 가족 사이의 사랑과 자매들 간의 사랑, 우애, 갈등과 화해를 통해 내게 깊은 감동을 준 것이 『작은 아씨들』이었다.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참전한 아버지가 무사히 집에 돌아올 것을 기다리는 가운데 독실한 신앙을 바탕으로 인자하고 슬기로운 어머니와 개성이 넘치는 네 자매의 소소한 일상들이 따뜻하고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큰 언니다운 메기와 가장 개성이 돋보였던 조, 천사 같은 베스, 가끔 얄밉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막내다운 귀여움과 착한 심성을 가졌던 에이미의 일상 그리고 항상 자매들에게 인생의 바른길을 일러주었던 현명한 어머니, 이야기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독자인 내게도 그 가족의 중심에 자리한 것으로 느껴졌던 신심 깊고 자애로운 아버지로 이루어진 이 가족의 이야기는 문화와 사회적 배경은 전혀 다르지만, 가족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려 주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이 책을 원작으로 1949년에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서, 내가 상상했던 인물과 집의 모습들이 화면에 구현되는 것에서 색다른 감동을 맛보았던 기억도 즐겁다.

  그 밖에도 『소공자』『소공녀』 이야기를 너무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고 좀 더 커서는 『삼국지』를 통해 역사와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와 『작은 아씨들』은 모두 가족의 이야기다. 법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가족사회학을 공부하며 30여 년간 가정문제 상담가로 인생을 바칠 수 있었던 것에는 어린 시절 이렇게 아름다운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의 성장과 삶에 있어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이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