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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바위를 깨면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 독도 사랑 시낭송 예술제를 다녀와서

   지난 4월 2일부터 5일까지 한국시인협회가 주관한 독도사랑 시낭송 예술제를 다녀왔다. 시협이 이 행사를 준비한 것은 일본의 시마네현 의회가 결의한 다케시마 조례 제정 이전인 작년부터다. 독도가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 우리 영토이며, 우리의 숭고한 주권과 자존의 표상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 시협은 이 행사를 준비했다.

  독도의 행정지명은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1-37번지다.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87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독도는 동도와 서도, 36개의 작은 암초로 이루어져 있다. 독도의 공시지가가 2억6천만 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하지만 천문학적 수치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는 독도의 가치를 공시지가 따위로 가늠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독도의 총면적은 여의도 광장 절반 정도이다. 이 작은 섬에 해오라기, 검은댕기해오라기, 황로, 쇠백로, 덤불해오라기, 중대백로, 왜가리, 고니, 청둥오리, 바다비오리, 흰줄박이오리, 진홍가슴딱새, 유리딱새, 노랑지빠귀, 개개비, 쇠솔새, 산솔재, 상모솔새, 휘파람새, 솔짝새, 큰유리새, 제비할미새, 직박구리, 박새, 촉새, 섬멧새, 쑥새, 방울새되새, 솔잣새, 찌르레기, 섬참새, 참매, 솔개, 말똥가리, 물수리, 꼬마물떼새, 깝작도요, 삑삑도요, 청도요, 맷도요, 괭이갈매기, 재갈매기, 큰재갈매기, 흰갈매기, 바다쇠오리 등이 서식하고, 토대황, 갯개미자리, 섬갯장대, 민들레, 닭의장풀, 돌피왕김의털, 큰비쑥, 땅채송화, 돌나물, 괭이밥, 개사상자, 해국 등과 같은 토착식물과 해송, 향나무, 섬괴불나무, 동백, 후박 보리장나무, 무궁화 등과 같은 조림목이 자란다. 독도 주변 해역에는 냉수성 어종, 한냉성 어종, 회유성 어종, 난류성 어종 등이 풍부하다. 수만 년의 해풍과 파도에 씻겨 형성된 독도는 그 자체로 보기 드문 절경이다. 현무암 주상절리가 잘 발달된 절벽, 그리고 해식동굴, 해식대, 해식애의 절경이 천연기념물 제 366호로 지정된 섬이다.

  독도로 가는 여정은 험난했다. 첫날 포항에서 출항한 선플라워호는 울릉도를 향해 2시간 반쯤 항해를 하다가 파고가 높아 회항한다. 독도로 가는 첫 번째 관문에서부터 예기치 못한 난관에 부닥친 것이다. 천상 포항에서 일박을 하며 이튿날 파도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왜 독도를 가려고 하는가. 우리는 왜 그토록 독도를 갈망했는가. 독도를 자국령이라고 우기는 일본 우익의 영토 야욕에 맞불을 지피기 위함인가.

  우리는 매주 회의를 하고, 낮밤을 가리지 않고 뛰며 협찬사를 구하고, 수백 통의 전화통화를 하고, 쌓인 피로를 소주 몇 잔으로 달래며 이 독도사랑 시낭송 예술제를 준비했다. 그런데 무산될 수도 있는 중대사태를 맞았다. 시협의 김종해 회장과 핵심간사들이 회항하는 배 안에서 긴급회의를 가졌다. 여성시인 몇은 눈가가 붉어지고, 간사들은 침울했다. 다음날도 여객선이 뜨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는 정황이었다.

  이튿날 포항에서 하룻밤 잔 뒤 깨자마자 숙소의 창문을 열어 바다를 내다본다. 바람이 잦아들고 풍랑이 일던 바다는 거울 같이 잠잠하였다. 낮고 간격이 긴 물너울이 고요하게 모래밭을 핥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비로소 안도한다. 오전 10시 정각에 백사십여 명의 시인과 취재진으로 구성된 일행은 다시 울릉도행 선플라워호에 승선한다. 멀미를 만나 창백한 낯빛으로 바닥에 널브러졌던 시인들도 뱃길이 고요하니 낯이 피고 생생하다. 오후 1시경쯤 울릉도 도동항에 입항하자 무세중 굿놀이 사물놀이패가 풍물을 치며 분위기를 띄운다. 선플라워호를 하선해서 바로 독도로 향하는 삼봉호로 갈아타니, 아, 독도에 가는구나 하는 실감과 함께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

  도동항에서 출항한지 2시간 20여 분, 동도와 서도로 나뉜 독도가 자태를 드러낸다. 접안 시설에 독도경비대원 몇 명이 내려와서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 사월의 찬연한 햇살 속에 한 채의 소슬한 궁전처럼 독도는 거기 그렇게 있었다. 독도는 차라리 바다 한 가운데서 응고한 음악이다. 독도는 바다 한 가운데 펼쳐진 책이다. 독도는 바다가 피운 두 송이의 꽃봉오리다. 독도는 바다가 낳은 알이다. 독도의 눈동자에서 하늘이 나오고, 독도의 심장에서 파도가 나오고, 독도의 발가락에서 괭이갈매기가 날아오른다. 동해의 바람과 물너울과 괭이갈매기에게 독도는 태고의 젖을 물린다. 동해의 바람과 물너울과 괭이갈매기는 한글 자음과 모음을 써서 발음을 한다. 독도여, 오늘 여기 와서 처음 알았다, 그대와 내가 같은 모계혈통임을, 그대의 DNA와 나의 DNA가 같다는 사실을.

  갈매기 산란철이라 독도에서는 풍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사물놀이패는 입항 15분전부터 선상에서 길 여는 풍물을 울린다. 1백여 명의 시인들은 저마다 독도시들을 적은 깃발을 들고 입도할 예정이다. 그러나 잠시 뒤에 파고가 높아 독도 접안이 불가능하다는 소식이 날아온다. 독도는 사람의 접근을 쉽게 용인하지 않는다. 한 해에 겨우 사십 여일 정도만 독도 접안이 가능하다. 코발트빛 하늘 아래 고고하게 떠 있는 독도는 얼마나 숭고한 영혼이기에 근접하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그만 맥이 풀린다.

  결국 우리는 삼봉호 갑판에서 독도사랑 시낭송 예술제를 치르기로 한다. 갑판에 올라서니 하얀 괭이갈매기들이 손을 뻗으면 잡힐 듯 가까운 하늘에 가득 떠 있고, 동해의 높고 급한 물너울이 연신 삼봉호의 뱃전을 흔든다. 솟대가 세워진 갑판에서 취재진과 시인들이 뒤엉킨 채 시낭송은 시작되었다. 성찬경, 고은, 이근배, 이가림, 유안진, 조정권…… 시인들의 시가 동해의 청정한 바람결을 타고 울려나간다. 공중에 떠 있는 괭이갈매기의 흰 가슴깃털과 분홍색 발가락이 비현실적일 만큼 극사실적으로 보인다.

  독도의 바람에서는 꽃과 과일의 향기가 난다. 독도의 바람에서는 피 냄새가 난다. 독도의 바위를 깨면 오래 참았던 독도의 울음이 흘러나온다. 우리는 독도의 오열에 귀를 기울인다. 누가 독도의 고독과 설움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대한민국 동쪽 끝 섬, 독도는 우리의 역사이자 숭고한 자존이며, 주권의 표상이다. 고은 시인의 목소리가 동해의 바람을 타고 독도 상공에 흩뿌린다. “네 이름을 부르러 왔다 / 네 이름을 불러 / 세상 아득히 / 너의 천년을 전하러 왔다” 동해의 괭이갈매기들이 고은 시인의 유장한 시를 조용히 경청한다. 시인들은 상상력과 직관으로 독도를 “미쁜 보석”, “내 자식의 담낭”, “내 나라의 혼불”, “반도의 야경꾼”이라고 불렀다. 독도의 “파도와 바람이 한글의 음정”임을 알아들은 빼어난 청력을 보인 것도 시인이다. 예술의 심미적 표현이 어떤 정치 선언문보다 더 혁명적인 것은 수용자의 감성에 직접적으로 호소하고 기존의 지각과 이해를 한 순간에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정치 선언문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보들레르의 시 한 구절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시협이 이 행사를 주관하면서 내세운 “독도의 바위를 깨면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시 한 구절은 일본의 파렴치한 영토 도발에 대한 시적 대응이라고 할 만하다. 시인 106명이 남긴 독도 사랑에 관한 시들은 한편 한편이 모든 독도와 관련된 왜곡과 망각, 고착화된 현실 논리를 꿰뚫고 나아가는 살아 있는 이미지, 현실, 역사를 이룬다. 역사는 실증적인 기록에 근거한다. 우리가 독도를 한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도 512년 신라 지증왕 때의 기록인 『삼국사기』나, 『세종실록지리지』의 강원도 울진현조에 우산, 무릉 2도가 속해 있다는 것, 그리고 『동국여지승람』이나 『성종실록』의 역사 기록에 따른 것이다. 일본 시마네현이 조례를 제정해 독도 영유권에 대한 근거를 남긴 것은 당장의 실익보다 먼 장래를 내다 본 나름대로의 치밀한 계산법에 따른 것이다. 일본 극우 보수주의의 거듭되는 망발에 대해 일장기와 고이즈미 총리의 모형을 불태우는 등의 감정적 분노를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울러 저들의 속셈과 논리를 들여다보고 거기에 따른 차분한 대응도 필요한 것이다. 한국을 대표할 만한 시인 106명과 수십 명의 취재진이 함께 독도 입도를 시도하고 독도를 주제로 한 시를 낭송한 것은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드러내 밝히는 선언적 의미와 함께 역사 기록의 한 페이지로 남을 것이다.

  시낭송 축제가 끝날 무렵 동해의 파도는 더욱 거칠어진다. 삼봉호는 서둘러 회항 준비를 서두른다. 삼봉호 객실에서 나는 하늘이 노래지는 현기증과 함께 창자가 식도로 올라오는 통증 끝에 몇 번 토한다. 파도의 포말이 창밖을 덮는데, 그 뒤로 어둠과 장려한 붉은 노을에 뭉개진 하늘 아래 동해 바다가 암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