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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모돌리기와 솔라리스- 독일 서부지역 한국문학낭독회에 다녀와서

  나는 어떨까. 내가 청중이라면 두 시간도 넘는 이런 단조로운 행사에 와서 앉아 있을까. 4월 19일 저녁, 독일 서부 도시 본에서 열린 ‘한국문학낭독회’에서 나는 생각했다. 내 순서는 이미 끝났고, 방현석 소설가가 자신의 단편 「내딛는 첫발은」에 대해 이야기했다. 작은 서점을 가득 채운 사, 오십 명쯤 되는 청중들은 고요했다. 어찌나 집중하는지 마치 시험 직전 강의를 듣는 학생들 같았다. 그들은 문학에 관심이야 있겠지만 문학 전공자들만은 아니며, 한국인이거나 한국계로 보이는 사람들과 얼굴 흰 사람들이 반반씩, 나이는 천차만별이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일반시민들이었다. 소규모 클래식 음악회나 미술 전시회에도 그만큼은 온다는 보통 사람들. 우리나라에서라면 어떨까. 나는 문학 행사에 참가하거나 준비해본 적이 몇 번 있는데, 오는 사람들 태반이 시인, 소설가이거나 장차 되려하는 관계자들이었다. 우리끼리 하는 우리들만의 행사. 정말로 일반 시민들이 오는 문학 행사는 공연에 가깝다. 주최 측은 시화전, 깃발, 걸개그림 등등 갖가지 구경거리를 준비하고 재기발랄하게 보이려고 애를 쓴다. 그래봤자 발랄할 리가 없어서 청중은 주최 측 인원수보다도 적기 십상이다. 청중들은 혹시라도 재미있는 게 나올까 겨우 참고 있는데, 언제라도 도망갈 태세로 한사코 자리를 마다하고 서서 구경한다. 역시 음악이 나와야 한다. 쿵작작, 쿵작. 찬조 출연 가수들이 행사를 살려준다.

  독일로 오기 일주일 전쯤 서울에서 열린 예비모임에서 한 작가는, 독일인들에게는 한국 문학이 부시맨들의 문학이나 마찬가지로 보일 거라고 말했다(부시맨들이여, 이 표현을 용서해주세요). 한국에도 문학이 있어? 한국인들도 문학을 한단 말이야? 뭐, 이 정도일 거라고. 하긴 나도 제법 여행은 다녔으되, 유유상종이라고 내가 만난 사람들의 수준이 문제인지는 몰라도, 한국 문학을 읽어봤다는 외국인은 단 한 명도 본 적 없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러면 우리 다 같이 한복 입고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자조적인 농담이 이어졌다. 연단에서 뱅뱅 상모돌리기도 할까요?

  “우리가 하는 얘기나 낭독한 구절들을 이해할 수 있나요?”

  “물론이지요.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짧아요. 무엇보다 우리가 작품을 읽어야 하겠죠.”

  낭독회 중간 쉬는 시간에 잠깐 대화해 본 독일 청중들은 진지했다. 비로소 나는 내 자신에게 묻기 시작했다. 나라면 다른 대륙 어느 작은 나라에서, 내가 그리 욕하는 어떤 국제적인 상도 받은 적 없고 게다가 번역된 작품마저 없는(방현석 소설가나 나는 단편 한 편씩이 독일어로 번역되었는데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열리는 10월에야 책이 나온다고 한다) 작가들이 온다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가겠는가? 문학을 하기 위해서 문학과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80년대, 지금 방 소설가가 설명하는 것 같은 묵직한 사연을 가슴으로 느껴주겠는가? 내가 글쟁이라 해도, 결코 자신할 수 없었다. 나중에 들으니 독일인들은 엉덩이가 무겁다고 한다. 한국인으로서는 참을 수 없이 지루한 행사도 잘들 와서 잘 듣는다고. 정말 그런지 짧은 여행으로 내가 알 수야 없으되, 자신이 참으로 엉덩이가 가볍다는 건 깨달았다. 내가 해프닝과 할리우드 식 자극에 중독 되었구나. 그리고 나야말로 다른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없고 닫혀 있었구나.

  그러나 같은 날 쾰른과 보쿰에서 열렸던 행사는 청중이 적었다고 한다. 3월 달에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행사는 그런대로 성황이었다는데, 같은 시기에 개최된 ‘라이프치히 도서전’ 덕도 보았다는 것이다. 한국 문학만 갖고 행사를 하기는 서부 쾰른 지역이 처음인데, 다들 무참한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한국 문학의 실상이뇨? 사실 어느 행사가 잘 되고 못 되고는 중요하지 않다. 국내에서의 지명도와 상관없이 거의 모든 한국 작가가 독일인들에게 사실상 무명이라서, 당장은 일단의 한국 작가들의 일원으로서 씨를 뿌릴 뿐이다. 행사장에 나타난 청중들의 숫자도 괘념할 필요 없다. 날씨, 도시의 특성, 행사 당일의 다른 행사 여부 등등 우연적인 요인이 더 많기 때문이다. 주사위 던지기라고, 조직위원회는 말했다. 정작 의미 있는 반응은 10월 도서전 이후에 나타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풀이 자리는 우울했다. 한 원로 소설가는 즉흥시를 읊기도 했다. 이 나이에 무얼 해보겠다고 여기까지 왔는가…… 그런데 그런 분위기가 좋았다. 작가들 여럿이 그토록 동감하며 머리를 모아 고민해 보기도 오랜만이 아닐까. 새삼 서로가 소중하게 느꼈다.

  4월 22일 도르트문트. 행사장은 멋진 빌딩의 스카이라운지 비슷한 문화센터. 유리벽 너머 붉게 지는 노을이 장관이었다. 청중은 교민 여섯 명과 부인이 한국인이고 한글학교에서 공부도 열심히 한다는 독일인 한 명. 통역은 사회자와 독일어 낭독자, 독일어 번역서를 팔아야 하지만 한 권도 못 판 또 한 명의 독일인을 위해서만 필요했다. 방현석 소설가와 내가 우리말로 낭독할 때, 교민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약간 숙이고 눈을 지그시 감고 들었다. 40년 만에 들어보는 모국어 낭독이라고, 간호사로 독일에 온 한 교민은 말했다. 오순절 다락방에서 기적이 일어났을 때 이러했으리. 나는 말했다. 세계란 벽은 막막하도록 높다. 소수 언어의 비애를 느낀다. 그래도 우리가 한국어로 쓰지 않는다면, 우리만의 이 생각과 느낌은 상실되어 버릴 게 아닌가. 그럼요, 그럼요. 교민들은 눈을 반짝 뜨며 답했다. 쓰셔야죠, 써야만 합니다, 우리는 맥주 집에서 한껏 회포를 풀었다.

  첫머리에 나온 소설 제목처럼 ‘내딛는 첫발’이다. 내게는 우리가 독일인들에게 어떻게 보였는가보다, 작가로서 처음 타문화의 문을 두드려본 긴장감이 기억에 남는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받아줄 듯도 하고 턱도 없을 듯도 한, 알 수 없는 세계. 타르코프스키 영화에 나오는 미지의 바다, 솔라리스처럼. 나는 자문한다. 상모돌리기도 좋다. 그러나 상모돌리기 이상의, 세계에 대해 할 말이 나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