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대산문화
 
두 얼굴의 지식인
 

폴 존슨의 『지식인의 두 얼굴』(윤철희 역, 을유문화사)은 쉽고 재미있다. 뛰어난 작가사상가의 작품과 그 정신을 까다롭게 분석하고 이론을 해석하는 글이 아니라 그들의 생애와 활동을 소개하는 것이니 쉬울 수밖에 없고, 그 빛나는 업적과 인격을 추앙하는 쪽이 아니라 영광 뒤에 숨은 위선이며 과오를 폭로하는 글들이어서 속물적인 통쾌감까지 불러주기에 충분한 재미를 얹어주는 것이었다. 나는 ‘위대한 명성 뒤에 가려진 지식인의 이중성’이란 부제를 가진 이 책에서 우선 마르크스와 톨스토이 부분만 읽어보았다. 마르크스는 몇 달 전 프랜시스 윈의 『마르크스 평전』(정영목 역, 푸른숲)을 보았기에, 톨스토이는 지난 3월 서울역사박물관에서의 ‘톨스토이전시회’에 감동받아 거기서 구입한 『톨스토이』(이 책은 이상하게도 그 저자와 역자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를 읽었기에, 내가 19세기의 거대한 사상적 문학적 위인으로부터 받은 감동이 여기서는 어떻게 벗겨질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영국 옥스퍼드 출신의 저술가로 소개된 존슨의 이 책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가혹하게 이 두 위인들의 어두운 실상을 ‘까뒤집고’ 있었다. 가령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고 노동자 계급 정당을 만들고 무산자 세상을 위한 혁명 운동을 벌였지만 정작 그 자신은 노동자들을 싫어하고 만난 적이 없었으며 오히려 부르주아 생활을 즐겼고 그 때문에 진 빚을 갚기 위해 엥겔스에게 돈을 보내달라고 졸랐고 자신의 가정부에게 사생아를 임신시켰을 뿐 아니라 죽을 때까지 혹사시켰음에도 월급 한 푼 주지 않았다고 존슨은 비난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19세기에 발간된 가장 뛰어난 학문적 업적으로 20세기의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지만 존슨은 마르크스가 자신의 입론을 뒷받침하도록 자료를 왜곡하거나 잘못 인용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이 책의 제7장에만도 오용, 오도된 인용문이 24개 페이지에 나오고 있다고 지적하고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130쪽)이라고 힐난하고 있다. 톨스토이에 대한 관점도 이와 비슷해서, 그는 톨스토이가 “나만큼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을 지금까지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자부하면서 그런데 “왜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다고 탄식했다(200쪽)며 성자가 아니라 오히려 지독한 위선자라고 폭로하고 있다. 존슨은 톨스토이가 성병에도 걸릴 만큼 여자관계가 문란했고 노년에는 갖가지 주제로 책을 쓰고 설교를 하며 성자적인 면모를 보였지만 그 내용은 상투적이고 고리타분할 뿐이라고 비난했다.


요컨대 폴 존슨의 『지식인의 두 얼굴』은 사상가, 작가의 사상과 정신, 주장과 문학과는 다른, 아니 오히려 배반하는 그 위인들의 실제의 숨겨진 삶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 위대성을 탈신화화하고 있다. 명성으로 가려지고 사상으로 분장된 위인들에게서 허울을 벗기고 어두운 곳을 밝혀 벗김으로써 우리가 알고 있는 위인들이 실제로 얼마나 위선적이고 추악한 인물인가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폭로들이 굳이 검증하지 않더라도 거의 사실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아무리 위대한 사상가라 하더라도 그 역시 인간임에는 분명하고 뛰어난 창조자라 하더라도 그의 인격이 오히려 더 비참할 수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위대하다고 감탄하는 것은 우선 그의 사상이며 작품이지 그의 인품과 인격이 먼저가 아닐 것이어서 그 위대성을 창조해낸 인간은 정작 비열하고 나약하며 혹은 위선적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상가, 예술가가 만들어낸 이론과 작품은 그의 이상 혹은 꿈이지 결코 현실의 것이 아니며 그래서 그가 그리고 있는 세계의 서술과 그가 살고 있는 삶의 실제는 같은 것일 수가 없다. 그 둘이 하나일 수 있다면 오직 성인일 경우뿐인데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사람은 종교적 도덕적 성인이 아니라 학문적 문학적 사상가, 작가들이다. 그러니까 이들 사상가, 작가들은 인품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신적 예술적 업적과 그들이 그리는 이념적 이상적 세계 구상으로 추앙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의 창조적 정신은 사실 인품과 인격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기성의 이 세계와 그 윤리와의 갈등과 싸움에서 빚어지는 것이다. 나는 이 갈등과 싸움이 치열할수록, 그래서 사상가, 예술가들이 이 세계의 상투적인 도덕성과 가짜의 윤리와 심각하게 불화를 일으킬수록 그의 사상과 예술은 싱싱한 힘을 발휘하며 새로운 세계로 향한 아름다운 빛을 비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격과 창조성은 오히려 역설적인 관계에 있을 것이며 인격이 세속적으로 파탄될수록 그의 작품들은 오히려 더욱 예술적인 치열성이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를 싫어하면서도 그들을 위한 거대한 사상 체계를 세운 마르크스나 스스로에 위선적임으로 해서 타락한 세계의 위선을 폭로한 톨스토이가 숱한 예들의 한두 경우일 뿐이다.

폴 존슨이나 그와 비슷한 도덕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마르크스나 톨스토이가 위선적인 인간임을 증명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창조한 위대한 사상적, 문학적 세계와, 그것들이 끼친 거대한 영향은 평가하지도 못하고 더욱이 왜 그런 배리적 관계를 이루고 있는지 설명하기도 어렵다. 그들이 당대와 후대로부터 존경과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은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비전 때문이지 그들이 그 비전을 만들기 위해 소모해야 했던 비속한 삶의 모습 때문이 아니다. 그런데 존슨은 사상가 문학가들이 천박한 세계와의 싸움을 하며 흘려야 했던 퇴폐며 위선, 허위며 오류로 그들의 전존재를 심판하고 있는 것이다. 사상가, 문학가를 평가하면서 그 사상과 문학이 아니라 그것들을 만들기 위해 소모해야 했던 인간적 약점들만을 들추어 심리하는 근본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존슨은 이 책에서 마르크스의 인간 소외론이라든가 부르주아 체제의 물신주의에 대해 한 마디도 이야기하지 않고 있고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가 제시하고 있는 거대한 세계와 인간의 악에 대해서는 참조하지 않으면서 그 사상가와 작가들의 부정적인 한쪽 얼굴만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존슨이 이처럼 악의적인 태도와 무식한 관점으로 위대한 인물들을 폄하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그는 지식인에게 ‘두 개의 얼굴’이 있어 인류를 위한 기여라는 빛나는 모습의 다른 한쪽에는 마치 모든 존재가 그림자를 가져야 하듯이 그 지식인들에게도 그림자를 숨기고 있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있을 뿐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존슨의 저서를 잘못 읽고 위대한 인물들이 사실은 얼마나 가짜이고 위선적인 사람들인가로 잘못 이해하게 될 경우이다. 마르크스가 엉터리 과학자이고 톨스토이가 가짜 성인이라고 판단해버린다면, 20세기의 현실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주고 사상 세계에도 근원적인 혁명을 일으킨 마르크스의 업적과 그 의미를 끝내 알 수 없게 되고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19세기의 소설사를 위대하게 만들고 오늘의 현대인에게 끊임없는 감동을 주고 있는 톨스토이의 문학적 성과를 도대체 무의미한 것으로 지워버려 이 세계의 존재를 끝내 이해할 수 없도록 망가트리고 말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그의 세계 인식은 얼마나 빈약하고 그의 인간 이해는 얼마나 천박할 것이 될 것인가.


존슨이 『지식인의 두 얼굴』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지식인이 가지고 있는 창조적인 얼굴에 가려진 그들의 비속한 얼굴이다. 그 얼굴은 추하고 약하고 어리석고 타락해 있다. 그러나 존슨의 이 폭로를 통해 거꾸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작가, 사상가들의 이처럼 추한 얼굴 때문에 그들의 위대한 성취와 거대한 영향의 또 다른 얼굴이 지워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충분히 과학적이지 못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는 위대한 학자-사상가였고 부르주아적인 세속적 삶의 관습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대한 평등주의자였으며 무산자를 위한 혁명가였다. 위선적임에도 불구하고 톨스토이는 이 세계의 참혹한 실상을 투시하고 있었고 상투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타락한 인간에 대한 투철한 관찰자였다. 오히려, 존슨이 마르크스와 톨스토이의 어두운 모습을 강조하면 할수록 그들의 위대하고 창조적인 모습이 더 크고 밝게 조형되는 것이다. 이렇다는 것은, 가령 한 시인이 친일적이고 혹은 친체제적이었다는 세속적 삶에서의 잘못된 처신 때문에, 그의 시가 이룬 언어와 상상력의 뛰어난 성취가 지워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세속의 한 가지 잣대로만 지식인과 예술가의 생애와 업적을 가늠하고 평가한다면 그 흑백논리의 지식 사회는 얼마나 빈약하고 위험하기까지 할까. 우리는 지식인이 지니고 있는 두 얼굴을 보아야 하지만 어떤 쪽 얼굴로 그의 진면목을 가려야 할 것인가는 어렵지 않게 가려질 문제이다. 그 어렵지 않은 문제가 심하게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 이즈음 들어 더욱 자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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