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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은 왜 판문점인가요?- 판문점 방문기

   나는 판문점을 잘 모른다. 임진각까지는 가봤으니 그보다 더 북쪽에 있다는 것은 알지만, 도대체 어떤 곳인지 상상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이름도 이상하기만 하다. 판문점이라니, 무슨 중국 식당 이름 같다고 생각했다. 장모님의 고향이 장단군이어서 “거기에 유명한 식당이 있었나요?”라고 물었더니 1945년생 해방둥이 장모님은 거기에 무슨 유명한 식당이 있었겠느냐며 반문했다. 대신에 장모님은 뒷산에 올라가 앵두를 따온 일을 내게 들려줬다. 장모님이 뒷산에 올라간 뒤, 거기에 폭탄이 떨어졌다고 했다. 가족들은 장모님이 죽은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장모님은 치마폭에 앵두를 잔뜩 담아서 다시 내려왔다고 했다. 폭탄이야 떨어지거나 말거나. 그게 그렇게 먹고 싶었다고 장모님은 말했다.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뭔가에 마음이 뺏긴 아이에게는 전쟁도, 폭탄도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건 그렇고, 그 지역에서 자란 장모님도 판문점이 왜 판문점인지 알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네이버 지식검색에 들어가 순진무구한 타법으로 “판문점은 왜 판문점인가요?”라고 키보드를 두들겼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참으로 따뜻하고 친절한 설명이 나왔다. “공식 명칭은 ‘공동경비구역(JSA: Joint Security Area)’이며 ‘판문점(板門店)’은 이 지역의 이름입니다. 남한의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파주시(옛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어룡리’, 북한의 행정구역상으로는 ‘개성직할시 판문군 판문점리’이나, 남북한의 행정관할권에 속하지는 않는 특수한 지역입니다. 판문점이란 이름의 유래는 휴전 회담 장소가 이곳으로 옮겨지면서, 이 회담에 참석하는 중공군 대표들이 이곳을 쉽게 찾아보게 하기 위해 당시 회담장소 부근에 있던 주막을 겸한 가게(店)를 한자로 적어 ‘板門店’으로 표기한 것이 그 유래라고 합니다. 원래 널빤지로 만든 문이 있다고 해서 널문리로 불리던 곳이며, 널문리 주막을 한자로 적은 것이 ‘판문점’입니다.”

  아하, 나는 무릎을 쳤다. 중국식당 이름 같다고 생각한 애초의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던 셈이다. 그렇다면 판문점에 들려서 자장면이라도 한 그릇 먹고 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 정도는 했지만, 판문점에 가보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후방에서 방위병으로 근무한 나는 딱 한 번 철원에서 군 생활을 하던 친구를 면회 간 적이 있었다. 외출한 장병들은 오후의 햇살이 기울기도 전에 모두 술이 취해버렸다. 빈방을 찾을 수 없어 몇 군데를 헤맨 끝에 들어간 여관은 더러웠고, 깨끗하게 다려 입은 친구의 군복에서는 탄내가 났다. 하룻밤이 지나자, 외출 장병들은 모두 슬픈 얼굴이었으므로, 그 얼굴이 싫어 다시는 전방에 면회 따위를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판문점이란 내 인식의 지평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지명이나 마찬가지였다. 대략 중국 식당 이름 같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별 문제가 없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지난 5월, 누군가 외국 작가들은 판문점에 가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국제문학포럼 2일째 행사가 끝난 오후, 세종문화회관 뒤편의 노천카페에서 생맥주를 들이켜고 있을 때였다. 모두 남자들이었다. 그들도 한 번쯤은 전방에 면회를 가거나 근무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판문점에 가기로 했다고 말하자, 다들 의아한 표정이었다. 우리에게 판문점이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녀와야만 하는 군대와 같은 곳이니, 새삼스럽게 구경 간다는 게 이상했던 것이다. 구경 잘 하시오, 라고 또 누군가 말했다. 그러니까 ‘구경’이란 말 속에는 판문점이란 대략 중국 식당 이름 같다고 여기는 그 상태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는 것이지, 그 의미를 따져봐서는 안 된다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문학은 그간 판문점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다고 할 수 있다. 판문점에서 벗어나려면 판문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뿐이었다. 가능한 한, DMZ는 고요하게 있는 편이 좋고, 판문점은 중국 식당 이름쯤으로 생각하는 게 좋다. 외국 작가들은 왜 그 좋은 소재를 작품으로 남기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모르고 하는 말씀이다. 폭탄이 아니라 이제는 앵두에도 마음이 뺏기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러자니 조금은 애처로운 민족이다.

애처로운 민족의 풍경은 판문점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애처로움의 핵심은 판문점의 풍경이 영화 <JSA>의 세트장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비롯했다. 주먹을 움켜쥐고 금방이라도 권총을 뽑아서 쏠 수 있다는 자세를 취한 남쪽의 장병과 우리 쪽으로는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부동자세로 서 있는 북쪽의 장병은 마치 얼차려를 받고 있는 듯 보였다. 당연히 그들 장병들에게 바로 내 감정이 이입됐다. 외국 작가들은 우리 모두가 그런 얼차려를 받아본 적이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오에 겐자부로, 게리 스나이더, 볼프 비어만 등 외국 작가들 대부분의 반응은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다”는 것이었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 한국을 다녀간 티보 머레이는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처럼 긴장된 분단 상황이 계속된다는 점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소감을 오랫동안 얘기했다. 판문점에서는 누구도 웃지 않았다. 외국작가들은 그들 나름의 이유로, 우리는 우리 나름의 이유로. 전방인 탓인지, 몹시도 햇볕이 따가웠다.

  남북을 나누는 그 가느다란 경계선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나선 길이라 뭘 구경하겠다는 마음은 애초에 없었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돌아 나오는 길에 나무에 앉은 철새들을 보자 내 입에서 탄성이 터져났다. 그 우아한 모습에 금방 내 마음이 빼앗겼다. 내게 판문점은 그렇게 내면화됐다. 얼차려를 받는 듯한 군인들과 한가롭게 나무 위에 앉은 하얀 새들의 모습. 게리 스나이더의 소망대로 언젠가는 판문점이 유명한 철새 도래지로 알려지는 날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 때까지 우리는 수많은 판문점을 만날 것이고 그 때마다 그것들을 내면화해야만 할 것이다. 나는 판문점은 잘 몰랐지만, 판문점과 같은 것이 어떻게 내 안에 자리 잡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건 해소해야만 하는 긴장 상태라기보다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이다. 판문점에서 돌아온 뒤, 작가들은 서울평화선언을 발표했다. 나는 평화의 첫 단계가 그 모든 것을 그대로 마음속에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뒤에야 우리는 치마폭 가득 앵두를 따올 수 있으니까. 나는 판문점을 잘 모른다. 중국 식당 이름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안에 판문점이 없다는 얘기는 절대로 아니라는 걸 외국 작가들도 지금쯤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