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 21세기 문학의 창 -

웹진 대산문화

한국 문화의 보편성 획득을 위한 의미있는 발걸음-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을 치르고 나서

   고려대의 문광훈 교수는 경향신문 6월 1일자 칼럼에서 이번의 국제문학포럼에 대해 언급하여, “이런 행사는 유럽에서도 흔치 않다. 우리 문화도 이제 숨통을 틔어가는 것인가” 하고 총평에 해당하는 의견을 표명하였다. 또 그는 주제로 선택한 “평화를 위한 글쓰기” 그리고 그것을 갈라놓은 소주제들, 문화, 공동체, 근대성, 빈곤, 세계화, 환경 등을 말하면서 “지금 시대가 직면한 거의 모든 문제를 토의”한 것이라고 평하였다. 조직위원회 측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자화자찬의 혐의가 있기는 하지만, 이 문 교수의 평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포럼의 성과는 물론 이 일에 참여한 여러 사람들의 결집된 힘의 열매이다. 다시 문광훈 교수는 “누가 초청되고 어떻게 조직되며, 또 무엇이 토론되는가” 하는 것에 주최 측의 역량이 드러나는 것인데, 그것은 상당한 것으로 보아도 된다고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역량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근본에 있어서는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 앞서, 우리 사회의 힘이 그만한 수준에 달한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사실 이러한 문화행사나 문화토론의 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한국이 오늘의 국제 사회에서 일정한 자리를 차지해가고 있다는 증거는 도처에 발견된다. 이러한 증후가 우리를 너무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까지도 있어서, 우리는 그것들이 목적 없는 역동성의 표현이 아니라 조금 더 정제되고 통일된 문화적 성숙성을 갖는 것이 되었으면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여튼 이번 회의에 힘으로 작용한 것은 다시 말하여 역사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음으로 이만한 사람들이 모여 이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개인적인 희생을 무릅쓰고 조직위원회에 참여하여 정보를 제공하고 여러 인사들과의 접촉 방안을 마련하고 또 직적 접촉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여러 분들이다. 이렇게 모여진 지혜를 현실화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대산문화재단의 관계 직원들이다. 신(神)은 세부(細部)에 계신다는 말이 있지만, 만사에 있어서 이 말만큼 옳은 말도 흔하지 않다. 지난번에 비하여 이번 포럼은 모든 일의 세부가 매우 원활하게 조직화되었다. 이것은 지난번 행사에서 얻은 지혜의 덕이기도 하지만, 실무를 맡은 여러분의 꼼꼼한 노력으로 가능하였다. 어떠한 일도 물질적 뒷받침이 없이는 성사될 수가 없고 그것을 위해서는 그 뒷받침을 위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대산문화재단의 좋은 뜻이 없이는 이번의 행사와 같은 일이 열릴 수 없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문예진흥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여기에 큰 힘이 되었다.

  주제, 작가 초청, 참여 작가들에 대한 뒷바라지, 홍보활동, 청중 참여 - 이러한 여러 면에서 이번의 대회가 원만하게 진행되었다는 판단은, 되풀이 하건데, 부당한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판과 반성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행사의 시대라고 할 만큼, 행사가 많은 것이 오늘날이다. 필요한 일중의 하나는 행사로 하여금 행사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의미를 갖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이것을 위하여서는 벌어지는 일에 대한 철저하고 냉철한 반성이 필요하다. 이번 일도 아마 시간이 가고 다음 행사를 구체적으로 생각하여 가면서 - 다음에 또 이러한 행사가 열린다는 전체 하에서 - 이렇게 하였더라면 하는 부분들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전체적인 의의도 검토하여야겠지만, 그것에 못지않게 또는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세부에 대한 면밀한 검토이다. 다시 한번 신은 세부에 계신다.

  이번의 발표회의 조직과 관련하여, 해외 참가자나 국내 참가자들이 가졌던 여러 비판적 견해들이 있을 것인데, 그 중에 내가 들은 것의 하나는 유럽에서 온 문인이 말한 것으로서, 자신의 발표 장소에 청중이 너무 적었다는 비판이랄까 불평이었다. 발표나 강연을 듣고 안 듣는 것은 청중 하나하나의 자유로운 결정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것은 잘못된 관점의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는 그 문인의 생각을 자세히 들을 시회를 가졌다. 그의 생각은 많은 돈을 들여 수만리 먼 이역에서 사람을 불러오면서 그 투자를 충분히 활용하지 않은 것에 대한 배려를 담고 있었다. 몇십 명을 상대로 삼십 분을 말하게 하기 위해서 그러한 투자를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생각하여야 할 사항임에 틀림이 없다.

  또 그 불평에는 우리의 조직과 계획의 자의적인 면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그는 처음에 들은 바로는 발표가 사십 분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와서야 삼십 분으로 줄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체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을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점에서 우리와 서구 여러 나라 사이에는 아직도 상당한 간격이 있는 것이라고 하겠는데, 국제 관계에서 이것은 극히 조심해야 하는 일의 하나로 생각된다. 나는 다음의 시회에 명심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 반성하였다.

  그런데 이 유럽 문인의 불평 또는 비판에는 또 달리 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 있다. 그는 그의 발표 후에 그것을 중심으로 활발한 토의가 있을 것을 기대했다고 한다. 토의가 얼마나 심각하게 또 널리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은 사안에 따라서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의 계획에서 중요한 작가들을 불러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와 견해를 진지하게 토의하지 않고 세 사람 네 사람 내리닫이 발표를 하고 끝나게 하는 것이 잘한 일인가는 조금 더 생각해보아야 하는 일일 것이다. 이것은 인적 자원을 낭비하는 일이기도 하고, 우리가 토의하는 주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일로도 취해질 수 있다. 어떤 문제가 제기되면 그것은 피차에 계발되는 바가 있게끔 충분히 토의되어 마땅할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비용의 문제가 있고, 압축될 수밖에 없는 시간의 문제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대중적 성격의 행사에 너무 사로잡히는 경향이 있다. 대중 집회와 소수의 콜로키엄의 이점을 어떻게 병행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조금 더 면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에 그것과 모임의 형식과 비용을 조정하는 문제를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집중적 토의의 부족은 본 회의장 밖에서의 개별 작가 중심의 여러 프로그램에서 보완되기는 하였다. 다만 이것이 조금 더 본회의 쪽으로 당겨졌으면 하는 아쉬움은 그대로 남는다. 사람들의 의식에 본회의장 지역이 중심이라는 생각이 박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토의가 독립되어 있으면서 하나로 종합될 수 있다면 전체의 모임이 조금 더 짜임새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집중적인 토의에 비슷하게 이것은 작가들 사이의 교환의 문제에도 적용될 것으로 생각된다. 오에 겐자부로 씨는 헤이리의 점심식사 후 이번의 모임에서 자신이 만나고 싶었던 여러 작가들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고 말하였다. 그의 발언으로 미루어 보이게 보이지 않게 작가들 사이에 교환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포럼 시간표나 주변의 공간의 사정들로 하여 상호접촉이 아주 쉽지는 아니하였을 것이다. 당초에 교보빌딩에 카페를 운영하자는 말이 있었으나, 이것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랬다 하더라도 그렇게 효과적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5년 전에 비하여도 세종로는 한결 복잡하고 행사가 많은 곳으로 변하였기 때문에 만남도 만남이려니와 주의를 흐트러지게 하는 요인이 너무 많은 곳이 되었다. 조금 더 조용하고 행사와 행인이 적은 곳이었더라면, 만남은 저절로 많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국내 작가들의 참여가 산만하여진 것도 이점에 관계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회의장 근처에 쾌적하게 나앉을 수 있는 장소가 있고 조금 더 가라앉은 공간이 있었다면, 그리고 조금 더 발표의 사이사이에 휴식 시간이 있었더라면, 참여와 교환은 더 자연스럽게 일어났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대체로 몇몇 작가들을 빼고는 국내 작가들의 참여가 소극적이었던 것은 우리 사회의 대체적인 행동양식과 깊은 관련을 가진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행사가 보이지 않게 우리 작가들의 의식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반드시 이러한 국제포럼의 영향은 아니겠지만, 보다 다양한 문화의 환경, 그러한 환경을 대변하는 견해들을 접하면서, 우리가 문학을 생각하는 지평은 지금 넓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문학의 세계화는 보편성의 확보가 필요하다고 말하여진다. 그것은 우리의 문제와 사정을 이해하는 데의 배경에 있는 지평의 깊이와 넓이 - 거기에 그어지는 많은 동기와 인과 관계를 충분히 생각하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문제와 사정을, 나의 이야기와 우리의 이야기를 가로지르고 있는 의미의 맥락을 더 깊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서 다양한 문화 배경의 작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견해를 의식한다는 것은 중요한 촉매에 접하는 일이다. 아마 이러한 회의의 손익 계산을 따져 볼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이점에 있어서의 진전일 것이다.

  이번에 참여한 한 작가는 나에게 이번 발표의 질이 그 전에 비하여 한결 높아졌다는 것을 말하고, 그 전의 회의록에 비하여, 이번의 회의록은, 선별과 편집의 노력을 더한다면, 좋은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대체로 맞는 지적이 아닌가 한다. 이것은 그만큼 성과가 있었다는 평가이기도 하다.

  이번 포럼의 특이한 사건은 아마 평화선언일 것이다. 이것은 한국전쟁에 종군하였던 티보 머레이 씨가 발의한 것인데, 많은 사람이 그 뜻에 동의하였다고 생각한다. 문면은 김성곤 교수의 초안을 그와 함께 수정하여 작성되었다. 그러한 선언의 발상이 나왔다는 것은 이번의 주제가 시대적인 관심사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이었다는 것을 증거하는 일일 것이다. 내용에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도 있고, 또는 어떤 항목에 대하서는 동의가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선언 발표는 의미있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 주제의 무게의 관점에서도 그러하지만, 이번의 포럼에 하나의 통일성이랄까 연대성을 주는 행사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물론 지속적이고 전체적인 것이든 아니면 일시적이든 집단성의 압력은 늘 존재하고, 그러한 압력으로부터 개체를 보호하는 것도 문학의 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통일성이나 연대성을 지나치게 강조해서도 곤란한 일이기는 하다. 이번의 선언에 동참하기를 주저한 작가 한 사람은 내가 그 주저하는 마음에 대하여 이해를 표현해 준 것을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하였다. 그것은 뒤집어 보면 대체로 사실의 엄격성과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우리의 풍토에서 오는 어떤 불편한 느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개인의 사실 판단에 대한 존중이라는 기율에 저촉되지 않는 한, 포럼의 일체성에 대한 느낌을 강화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평화선언에 비슷하게 다른 행사들도 고안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이 포럼이 조금 발전한다면, 여러 종류의 수상식 같은 것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의 판문점 방문은 (특히 포럼의 주제와 관련하여) 뜻 깊은 일이었지만, 조금 더 한적한 경승지를 방문하여 하루 밤 정도를 작가들만이 같이 보낼 수 있다면, 이러한 일체감의 일부로서의 유대감은 조금 자연스럽게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작은 주제의 작가들 상호간의 토의를 위한 토의안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대체로 말하여, 보완할 점들이 없지 않은 채로, 이번 포럼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앞으로 보다 튼튼한 포럼으로 발전할 것을 기대한다. 이것은 대체적으로 국내에 한정해서 말한 것이지만, 다음 단계는 이것을 국제적인 의의를 갖는 것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발표의 내용을 더욱 튼튼하게 하는 것에 더하여 무엇이 더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여러 차원의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노벨상 수상작가나 해외 저명작가들이 사회적 관심을 끄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어떤 일에서나 그것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하는 일이 보다 더 밀접하게 오늘의 국제 사회의 구조에 맞아들어 가야한다. 한국의 중요한 행사인 국제문학포럼이 왜 다른 나라에서는 주의를 받지 못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단순히 홍보에서 찾는 것은 일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오늘의 세계에서의 문학의 위치에 대한 보다 심각한 성찰이다. 그런 다음 전략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조직위원장의 일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행사 결정을 한 대산문화재단, 거기에 동참한 문예진흥원, 조직위원회의 여러 분들, 자문과 협조에 흔쾌히 응하여 주신 각계 인사들, 성심성의 일정을 돌 본 대산문화재단의 담당 직원들, 안내와 통역을 맡아주었던 봉사원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참여하주신 국내외의 작가 여러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