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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코리언

   빅토리아 휴고가 한국을 찾은 것은 돌프 자무시의 돌연한 배신 때문이었다. 배신, 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진행 중이던 다큐와 BBC를 팽개치고 하루 아침에 미국의 신생방송사로 이적해 버렸다. 고액의 연봉과 대저택, 여섯 기의 피라미드라도 받은 거겠지... 라고는 해도 일년 육 개월을 동거했던 자신에게 이런 짐을 떠맡길 줄은 정말 몰랐다. 그 울화로, 오 년 명상 끝에 겨우 열린 차크라가 다시금 닫히는 기분이었다. 닫혀도 좋으니 똥이나 처먹으라지, 돌프!

  한국은 처음이었다. 에어십에서 내린 빅토리아와 스태프들을 맞은 것은 한국 소재 관광청의 직원들이었다. 템플 스테이로 막대한 성과를 올리는 인간들답게 표정에는 거만함과 겸손함이 날이 잘 선 양날의 검처럼 번득이고 있었다. 어떤 협력도 아끼지 않겠습니다. 다큐의 결과와 파장은 이미 그들의 머리 속에 정확한 수치로 계산되어 있었다. 한국은 정말 특별한 곳입니다. 저도 이곳에서 마니푸라 차크라를 쉽게 열었습니다만... 피라미드 센터나 외부 파워의 조력 없이도 그게 가능했습니다만... 요즘엔 옴 명상음의 주파수도 183헤르츠로 조절했습니다만... 관광청의 수석 가이드 잭 브라우먼은 특히나 말이 많은 훤칠한 키의 요셔커였다. 아, 예. 하고 빅토리아 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할... 주둥이 차크라라도 열렸나 보군!

  아닌게 아니라 한국은 불가사의한 나라였다. 그 사실을 빅토리아도 인정하고 있었다. 이십 삼세기의 화두는 단연코 정신과학이었다. 십구 세기의 니체가 신은 죽었다, 라고 말한 것처럼 물질은 죽었다, 란 각성이 대부분 인류의 머리 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기계와 물질문명은 이미 인류가 전부를 사용할 수도 없을 만큼 넘쳐난 지 오래였다. 허겁지겁 인류는 자신의 광활한 - 그리고 공허한 하드웨어의 우주에서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소프트웨어를 찾아서, 이제 인류는 새로운 길을 걷고 있었다.

  수행과 명상, 그리고 자신의 차크라를 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되었다. 도래할 이십 사 세기에는 정신력이 곧 국력이 될 거란 예견이 쏟아진 것도 이미 삼십년 전의 이슈에 불과했다. 실지로 MNP(Mental National Product)가 GNP의 개념을 대체하기 시작했고, 서구에선 몇 기의 피라미드를 소유하느냐가 상류 사회의 새로운 관건으로 등장했다. 이제 지구의 가장 값비싼 광물질은 천연 수정이었다. 얘야, 우린 지금 과도기를 살고 있단다. 평생 모은 다이아를 처분해 쥐똥만한 수정구를 구입한 어머니 - 낸시 휴고 여사를 빅토리아는 떠올렸다. 단 하나의 차크라도 열지 못한 채, 결국 그녀는 생을 마감했다. 사인은 변비였다.

  MNP 세계 1위. 바로 한국의 얘기였다. 지난 세기를 통틀어 인류의 철학사에 어떤 영향을 끼친 적도 없는 나라였다. 인류가 추앙하는 정신적 지도자를 배출한 나라도 아니다. 하지만 국민의 대다수가 일곱 차크라의 네 번째 관문인 아나하타 차크라를 통과한 채 살아가고 있다. 지저스! 메모리북을 넘기던 빅토리아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제 겨우 몰라다르 차크라를 연 인간으로선 심히 회음부가 따끔거릴만한 데이터였다(몰라다르 차크라는 회음혈에 위치해 있다). 그러고 보니 그 인간, 돌프 자무시의 허언이 진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봐 빅토리아... 한국에선 중학생도 공중부양을 한다니까. 그게 티벳과 다른 점이야. 112kg의 여드름난 비만 소년이 눈앞에서 뜨는데 말이야... 아아, 하고 빅토리아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돌프는 왜, 미국으로 달아난 걸까?

  다 왔습니다. 잭 브라운이 일행을 안내한 곳은 깊은 산사나 명상센터가 아니었다. 번역하자면... 학원... 그러니까 일종의 교육기관인 셈인가요? 그렇습니다. 저도 학원이란 곳을 이용했습니다만... 또 이곳엔 단과란 것이 있습니다만... 말하자면 마니푸라 차크라를... 속성이란 게 있습니다만... 부활절 전날의 칠면조 같은 면상으로 다시금 잭이 주둥이 차크라를 열었으므로 빅토리아는 서둘러 스케줄을 잡기 시작했다. 잘 짜인 팀워크로 이미 스태프들은 모든 준비를 마쳐가고 있었다. 남은 것은 촬영이었다. 기간에 상관없이, 다시금 천문학적인 메모리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최고의 다큐를 위해 이미 본사는 두 기의 위성 서버를 렌트해둔 상태였다. 물질적이긴 해도, 수세기를 이어온 BBC의 방식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미 아나하타 차크라의 단계에 올라있습니다. 삼십 퍼센트의 상위 그룹은 비슛디 차크라에, 오 퍼센트의 엘리트 그룹은 아즈나 차크라의 경지에 도달해 있습니다. 이는 티벳의 역대 고승 모두를 모은 것보다 압도적인 우위의 수치죠. 게다가 그들은 산 속의 고승들이 아닙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고등학생들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저기 빅토리아... 대수롭잖다는 듯 피디를 맡고 있는 장 폴 뷔흐너가 입을 열었다. 마치 CNN 아침뉴스의 브리트니 같잖아? 이건 뭐랄까... 그러니까 다큐란 건 말이야... 돌프처럼 해야 한다구. 빌어먹을 돌프! 다시금 빅토리아는 발끈, 열렸던 회음부가 닫히는 기분이었다.

  어쨌거나, 드넓은 강당을 가득 메운 수백 명의 학생들과, 그들의 명상과, 버퍼 카메라가 잡아내는 그들의 오오라는 장관 그 자체였다. 초록과 청색, 그리고 희뿌연한 보라가 어우러진 정신의 풍경 앞에서 빅토리아도 장 폴 뷔흐너도 할 말을 잊었다. 더없이 강렬한 옴 진동을 느끼며 빅토리아는 그야말로 <슈퍼 코리언>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대다수의 국민이 이런 경지로 존재할 수 있는 거지? 보십시오 하고 칠면조가, 아니 관광청의 잭이 입을 열었다. 저기 보라색 그룹을 말입니다. 그들은 이미 분리된 자아의 느낌과 에고를 동일시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습니다. 일관성의 경지에 오르게 된 거죠. 그들은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를 통찰하고, 진실(사트Sat)과 의식(치트Chit), 행복(아난다Ananda)을 실현하게 되는 겁니다. 아난다! 아난다를 말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죠? 특별한... 원인이 있을까요? 가장 큰 차이를 꼽자면... 사교육을 들 수 있겠죠. 사교육? 그렇습니다. 한국의 사교육은 그야말로 슈퍼합니다. 여성들은 고도의 명상수련센터에서 아예 집중적인 태교를 시작합니다. 태아 때부터 이미 한국인들은 명상의 우주를 접하게 된다 볼 수 있죠. 그리고 아이의 출산과 함께 줄곧 고도의 사교육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수세기를 이어온 특별한 교육열이죠. 처음 한국에 부임했을 땐 저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꾸밈없이... 한국의 가정엔 어느 집이나 천연 수정구가 하나씩은 있습니다. 중산층이라도 말이죠. 상상이나 할 수 있습니까? 인조 수정도 아니고... 그리고 끝없이 교육을 받는 것입니다. 물론 부작용도 있습니다. 차크라가 도무지 열리지 않는 아이가 자살을 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얼마 전엔 공중부양에 실패한 아이들이 집단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어서... 집단 자살이라구요? 네, 물론 그렇기도 합니다만... 또 그런 특수성이 MNP 1위의 원인이기도 합니다만...

  어쨌거나 놀랍군요. 아직 놀라긴 이릅니다. 보라색 그룹의 얼굴들을 확대해 보세요. 네, 이마를 집중적으로... 보입니까? 빅토리아의 눈에도 가장 강렬한 오오라가 마치 보석처럼 아이들의 이마에서 빛을 발함을 알 수 있었다. 저건... 혹시? 그렇습니다. 제 삼의 눈이라 불리는 삼안(三眼)입니다. 삼안은 가장 순수하고, 만물의 정수로 통하며 모든 것을 구체화시키는 눈입니다. 마음은 절대성을 깨닫게 되고, 모든 이원적 사고가 사라지는 것이죠. 아아, 그 순간 빅토리아의 입에서 신음이 새나왔다. 둥실, 하고 일군의 학생들이 공중으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왔습니다만... 바로! 공중부양입니다만... 칠면조의, 아니 잭의 목소리가 그들과 더불어 부양하기 시작했다.

  저들은 그야말로 축복 받은 코리언들입니다. 땀을 닦으며 잭이 부가설명을 늘어놓았다. 대입시험에서 어마어마한 가산점을 획득할 수 있거든요. 뜨지도 못하는 칠면조의 말 따위에 귀 기울일 상황이 아니었다. 빅토리아는 즉각 장과 함께 뛰어갔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쩌면 이것은 새로운 인류의 발현일지도 모른다, 그 최초의 인터뷰를 BBC가 기록하는 것이다... 내가 바로 <슈퍼 코리언>의 최초 기록자다. 돌프의 구겨진 얼굴마저 떠오르자 빅토리아는 회심의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결단코, 회음부마저 화사하니 행복해지는 느낌이었다.

  명상을 끝낸 보라색 그룹의 일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충분히 다큐적으로, 빅토리아는 차분히 인터뷰를 진행시켰다. 눈앞의 어린 슈퍼맨에겐 장차 어떤 미래가 있을까 궁금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요? 계획이라면... 하고 순진한 슈퍼맨이 머릴 긁적였다. 물론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거죠. 좋은 대학... 하고 빅토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좋은 대답이었지만 다큐를 위해선 보다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대답이 필요했다. 대학을 나온 후...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갈 생각이세요? 다시 한번 머릴 긁적이며 슈퍼맨이 대답했다.

  공무원이 되고 싶어요.

  마음의 절대성을 깨닫고, 모든 이원적 사고가 사라진 중저음의 목소리였다. 몇 번이고 눈을 깜박인 후, 빅토리아는 지금쯤 첫 방송을 하고 있을 미국의 돌프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절로,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