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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과 “Ko Un”- 영역 고은 시선집 『삼거리 주막 The Three Way Tavern: Selected Poems』

영어권 문학장에서 한국 문학이 차지하는 미미한 비중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안타깝다. 영국, 미국, 호주 등의 주요 도시의 서점에 들를 수 있을 때마다 혹시나 하고 서가를 둘러보면 역시 한국문학 작품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그간 적지 않은 번역서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고 또한 대산재단을 비롯하여 국내의 지원기관들이 상당한 금액을 한국문학 번역에 투자한 것으로 알고 있건만, 이것이 어찌 된 일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 짧은 글에서 시도할 수도 없고, 또한 이 글을 청탁한 취지가 이런 거창한 (아니, 고질적인) 문제를 다루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고은의 최근 시를 클레어 유(Clare You)와 리처드 실버그(Richard Silberg)가 유려한 영어로 옮겨놓은 Three Way Tavern: Selected Poems를 손에 들고서는 영어권 일반 독자들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한국문학의 가련한 처지가 먼저 떠오른다.

문학은 원고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저작물로, 책 상품으로 존재한다. 근대 시대에 출판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영어권, 특히 미국의 출판계는 대학출판부가 아니라 대부분 뉴욕에 사무실을 둔 상업출판사들이 주도한다. 동아시아학 총서를 내는 코넬 대학 출판부라든지 미국 동약학의 중심지 중 하나인 버클리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출판부에서 한국문학 영역이 나오는 경우, 그 득실은 무엇인가. 물론, 책이 나온 것 자체가 득이다. 또한 명문대학 출판부에서 나왔으니 학계, 특히 한국학이나 동양학 전공자들이 요긴하게 사용할 가능성도 확보된다. 반면에 실은? 이 글을 시작하며 제기한 질문 내지는 과제를 해결하는 데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점이다. 고은이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임은 좋건 싫건 한국에서는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Ko Un”이 영어권 (동양학계가 아니라) 일반 문학장에서 의미 있는 기표로 존립하는데 이 번역이 얼마나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책의 내용과 상관없이 출판사의 제한적 위상을 감안할 때 우려가 앞선다.

그나마 미국의 유명 시인 개리 스나이더(Gary Snyder)씨가 찬사를 가득 담은 서문(foreword)을 달아준 것이 다행이긴 하다. 1997년 고은 번역에 서문을 달아준 알렌 긴스버그(Allen Ginsberg)에 뒤를 이어, 스나이더 씨가 이해하고 제시하는 “Ko Un”이 사뭇 오리엔탈리즘적인 색채로 물들은 존재라는 점도 (스나이더는 주로 고은을 주로 불교와 선과 연관 지어 설명하려 한다) 감수해야할 대가로 치자. 곧이어 나오는 역자 클레어 유의 본격적인 고은 론이 “Introduction”이란 이름으로 제공되니 고은에 대한 이해를 정립하는 데 별 지장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각주가 10개나 달린 20쪽 짜리 “Introduction”을 거치고 나서야 고은의 작품을 만나게 되는 구도는 이 책의 독자들이 아무래도 학술적인 관심에서 고은을 읽는 사람들에 국한될 가능성을 강화하고 있다.

영어권 문학장에서 이 책의 존재양태가 제한적이리라는 우려는 번역의 유려함을 확인하고 나서는 진한 아쉬움으로 변한다. 고은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적이 없고 고작해야 아마추어 (그것도 솔직히 고백하건대 최근 고은 작품에 열광하지 못한) 독자로서 고은의 문학세계를 재단할 자격은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고은이 (여러 가지 의미에서) ‘목소리’의 시인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이는 비단 고은의 유명한 낭독을 들어봤기 때문은 아니라 그의 작품은 그 어떤 한국 시인보다도 음성적인 시학을 가동시키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번역자들은 가령 “Poems of the Peninsula”을 예로 든다면, 원작의 의성어, 의문문, 감탄문, 호흡의 장단 등을 적절히 잘 전달하고 있다. 빼어난 번역이다. “Breeze” 같은 짧은 시에서도 고은의 ‘음성적 시학’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반복의 미학이 잘 살아난다.

그러니 더욱 더 아쉽지 않겠나. 물론, 이만한 출판사에서 나온 게 어디인가? 또한 시 자체가 얼마나 일반 독자들에게 읽히겠나? 어차피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시인들이 대학에 기어들어와 연명하고 있는 판에 학술적인 담론에서 먼저 “Ko Un”이 정립되는 게 무슨 문제인가? 이러한 반론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래도 아쉬움을 고집하고 싶다. 영어권 문학장은 미국 뿐 아니라 영국과 영연방 지역으로 펼쳐져 있으며, 이 광대한 영어권 문학장의 중심은 캘리포니아가 아니라 뉴욕이나 런던이며, 뉴욕이나 런던의 메이저 출판사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 아무리 훌륭한 번역이라고 해도 영어권의 주요 서점에 한국문학이 배급되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The Three Way Tavern: Selected Poems』는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2006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출판부에서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