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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영’의 부침과 함께 한 167만부 베스트셀러,1989년의 화제작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1989년, 한국의 서점들은 믿지 못할 현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우중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그해 여름 8월에 초판을 내고 며칠 간격으로 쇄를 거듭하며 몇 만, 몇 십만의 기록을 세우더니 급기야 6개월 만에 백만 부를 넘었다. ‘밀리언셀러’라고도 불리는 이런 초대형 베스트셀러는 이전에 보기도 힘들었지만 더욱 놀라운 건 책의 내용이었다.

이전의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정비석의 『자유부인』이나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과 같은 대중의 감성을 건드리는 소설류가 대부분이었고 저자들은 대개 필력을 충분히 인정받은 문필가들이었다. 이에 비해 김우중은 대기업의 총수로만 알고 있었지 그의 글에 관해서는 검증된 바가 없었던 터이고 내용 또한 이른바 ‘자전에세이’라며 그이가 살아온 내력과 회사를 경영하면서 지향하는 가치관 같은 것에 대한 성찰과 훈수 같은 것으로 구성되었다. 출간 직후 서점을 비롯 출판가에서는 스타급 기업경영인의 프리미엄 덕에 어느 정도야 나가겠지만 대단한 판매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었다.

  한 번의 중쇄에, 아니 책 한 권의 전체 판매가 몇 천권을 넘기기 힘든 출판가에 매 쇄를 만 단위로 찍어낸 이 책의 에너지는 무엇이었을까. 부제로 달려있는 ‘내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에서 보듯이 이 책은 젊은이들에게 충고하는 ‘어른’의 가르침이다. 그 이전에도 이런 류의 교훈과 비전을 제시하는 책은 적지 않게 있어왔다. 그리고 그런 책들은 대개 상반된 반응을 얻게 된다. 너무나 뻔한 소리 내지는 고루하고 지겨운 가르침이라는 것이 부정적인 반응의 핵심이고 보니 읽지 않고도 ‘읽은 것처럼 뻔하다’는 평가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저자의 역할 못지않게 편집자의 역할이 돋보인 경우이다. 김영사의 박은주 편집장은 1989년 ‘갑자기’ 사장직을 맡게 된다. 그의 첫 작품이랄 수 있는 이 책은 당시 경영인으로서 놀라운 성과를 거듭하고 있던 대우의 김우중 회장을 필자로 끌어들이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몇 번의 고사와 거듭된 간청으로 집필이 시작되었는데, 저명인사의 글에 대한 장단점을 파악한 출판사의 전략은 쉽게, 그리고 진솔하게 접근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독자타깃이 뚜렷했다.

  판에 박힌 듯한 설교 같은 가르침은 싫은, 그렇지만 무언가 인생의 참된 그리고 실제의 내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목소리를 듣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김우중의 목소리는 엄청난 파급력을 지니게 되었다. 대필의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문체의 스타일을 거론하기에는 그가 설파한 ‘세계경영’과 ‘자기개발’에 대한 자신감과 철학이 너무나 확고했기 때문에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청소년기의 고난과 극복, 회사를 세우고 어려운 일에 직면했을 때 대처해나가는 에피소드들이 자신감이 넘치는 수사법과 어울려 독자에게 드라마틱한 흥분까지도 전하는, 경영인의 에세이로서는 드문 역할을 해냈다.

  백만 부라는 단위는 우리의 독서환경을 고려할 때 웬만한 집에서는 한 권쯤 샀어야 가능한 수치이다. 거의 책을 읽지 않던 사람도 ‘이 책만큼은’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단위라는 뜻이다. 대학생을 비롯 30대의 회사원들, 중고등 학생들까지 필독서처럼 이 책이 폭발력을 얻게 된 것은 80년대 말 시대적인 분위기도 한몫을 했다. 5공화국과 6공화국을 지나며 새로운 가치와 비전에 대해 각성이 조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화. 당시 정권은 국내의 정치적 문제를 가급적 자연스럽게 해소하기 위한 일환으로 관심을 나라 바깥으로 돌리려 내세운 분위기 중 하나가 이른바 ‘세계화’였다.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 넓은 세상에서 활개를 치는 민족이 되자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가져야 할 자세는 어떤 것인 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했고 그 적시타가 바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였다.

  일단 정점에 오른 베스트셀러는 상당 기간 가속도를 지니게 된다. 김우중 회장이 대우의 불법 경영의 혐의로 외국으로 떠돌기 시작하면서 지탄을 받고난 이후에도 월 천 부 이상의 판매를 유지한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출판사로선 대기업을 운영하는 개인, 김우중에 대한 존경으로서가 아니라 일찌감치 세계화를 살아가는 정신자세를 언급한 그의 철학에 대한 반응이 아니겠느냐는 분석을 하기도 하고 일각에선 그만한 기업을 이룬 사람에 대한 연민으로서 판단 유보 혹은 ‘대마불사’의 정서가 여전히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

  저자의 몰락은 당대의 베스트셀러의 운명까지 직결되었다. 포용성, 합리성, 진취성이라는 용어로 설명되던 그의 기업 철학이 결국 편법 내지는 불법과 변칙, 방어적 사고 같은 반칙적인 경영의 능수능란한 포장술이었음이 밝혀지면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또한 기회를 놓치지 않는 수완가로서의 김우중의 한 ‘작품’이었다는 점이 심각하게 제기되기도 한다. 친분관계가 남다르다고 하던 도올 김용옥이 동남아 어딘가의 피신처로 그를 찾아간다. 귀국을 권하는 도올에게 김우중은 “귀국은 사치일 뿐이다. 이제 귀국해서 재판을 통한 명예회복을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겠느냐”는 한탄을 토로하기도 하는데 세간의 비난에 대해 “물고기에게 물이 대단한 것이 아니듯 나 같은 비즈니스맨에게 돈은 변통의 수단이며, 나는 전 인류를 상대로 사는 사람인데 지금 거론되는 일련의 비난들은 대한민국의 배신이다”는 강한 반발심을 보였고 그런 그의 말들은 책에서 설파했던 ‘참된 인생의 가르침’과는 배반되는 것이어서 오히려 실망과 반발을 부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이 든 이는 있어도 ‘어른’은 없는 시절에 참된 어른의 목소리를 자임한 그의 책은 그의 귀국과 사법처리 이후 더불어 ‘처리’되었다. 147쇄, 167만부라는 공식적인 기록을 남기고 김영사는 공식적인 절판의 수순을 밟았다. 저자의 신변변화를 고려하지 않았다면, 책의 순수한 메시지만을 평가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스테디한’ 책으로 기록되었을 책이었는데, 지도층 인사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명언적인 것이 아니라 (책에서도 거듭 강조된 것처럼) 진심과 행동이 앞뒤로 이어져야 뿌리 깊은 찬사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또 다른 교훈’으로 남겨 놓았다.

1989년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종합)

(기간 : 1998. 12. 30 ～ 1989. 12. 28)

●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았던 때

   - ‘내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라는 부제가 붙어 있던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에세이

     스타일의 수상록인《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았다》가 초판발행 반년도 안돼 1백만부가

     넘게 팔리는 쾌거를 이루며 밀리언셀러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에 있

     는지. 역시 세계가 넓어서 찾을 길이 없다.

순위	도서명	저자명	출판사명	분야
1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김우중	김영사	비소설
2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이문열	자유문학사	소설
3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필립 체스터필드	을유문화사	비소설
4	성자가 된 청소부	바바하리다스	정신세계사	소설
5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마광수	자유문학사	비소설
6	꼴찌 안녕	임교순 외	대교출판	아동
7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칼릴 지브란	진선	시
8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로버트 풀검	김영사	비소설
9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임정진	고려원	소설
10	선생님은 괴짜를 좋아해	김녹촌 외	대교출판	아동
11	백치애인	신달자	자유문학사	비소설
12	까미유 끌로델	안느 델베	정음사	소설
13	슬픈 우리 젊은 날1	사회와문학을 생각하는모임 편	오늘	시
14	오싹 오싹 공포체험	편집부 편	대교출판	아동
15	꼬마성자	미국수피즘협회	정신세계사	소설
16	홀로서기	서정윤	청하	시
17	만화로 배우는 고사성어	편집부 편	경원각	아동
18	시간의 모래밭	시드니 셀던	김영사	소설
19	고삐	윤정모	풀빛	소설
20	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	푸른나무	비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