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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 노동자의 정신을 따라 - 『전태일 평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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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7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이 끝나고 나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의 전태일 열사의 묘역을 찾았다. 제법 굵은 눈발이 내리던 그날 난 쉼 없이 달려온 지난 27년을 돌아보면서 그동안 나를 이끌어주었던 전태일과 다시 마주했다. ‘낮은 곳을 향한 끝없는 연민과 인간해방을 향한 불굴의 투지’ 나는 이 전태일 정신으로부터 진정한 민주주의와 진보의 길을 배웠으며 또한 그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결심을 하게 됐다.
그것은 27년 전, 내 자신과 시대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던 때의 같은 떨림이었다. 당시 수배 중이던 22살의 나는 서울 명일동에 있던 한 직업훈련소에서 어렵사리 미싱사 자격증을 따냈다. 나는 그 자격증을 움켜쥐고 “전태일 동지, 저도 이제 미싱사가 됐어요!”라고 외쳤다. 그가 걸어온 길, 그리고 그가 걸어가고자 하는 길을 끝까지 함께 가겠다는 다짐이었다.
1985년,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정치 총파업인 구로동맹파업을 조직할 때도 9년이라는 짧지 않은 수배생활의 고단함을 견디어 낼 때도, 전노협, 민주노총, 산별노조운동으로 이어지는 가슴 벅찬 노동의 시대를 열어갈 때도, 내 곁에는 항상 전태일이 있었다.
전태일의 삶이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된 것은 1983년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노동운동에 뛰어들을 즈음이었다. 엮은이 ‘전태일기념관건립위원회’ 명의로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란 우회적 제목을 단 이 책은 발간되자마자 나를 비롯한 수많은 독자들의 삶에 깊은 울림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그 울림은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지면서 민주노조의 시대를 여는 기폭제가 되었다. 전태일의 삶은 1991년에 이르러 『전태일 평전』이란 본래 이름을 찾을 수 있었으며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깊은 울림을 전해주고 있다.
전태일의 짧은 삶은 ‘낮은 곳을 향한 끝없는 연민과 인간해방을 향한 불굴의 투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삶은 60년대, 70년대 개발독재시대를 거쳐 오면서 경제 발전의 이면에서 비인간적인 대우와 착취를 감내해야 했던 어린 여공들의 삶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870만 비정규직의 시대, 누구나 비정규직의 삶을 강요받고 있는 오늘날 대한민국 노동자의 삶 속에서 전태일은 여전히 살아 있다. 아직 전태일이 그리던 세상은 오지 않았으며 수많은 노동자들이 여전히 항시적인 고용불안과 저임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금, 그곳에 전태일 정신이 부활해야 한다.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계산대에 서서 쉼 없이 바코드를 찍어대는 비정규직 아주머니들은 아직도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서 인간다운 노동환경과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기 위해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들에게 강요되는, 그리고 우리 아들, 딸들에게 강요되는 비정규직의 굴레를 벗겨내기 위해서 우리에게 다시 필요한 것이 전태일의 삶 속에 들어있다. 이제 다시 우리가 돌아가야할 ‘마음의 고향’, 전태일이 스스로를 버리면서 가고자 했던 그 길에 지금도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이 놓여 있다. 전태일 평전은 가히 비정규직의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가 가야할 길을 비추는 꺼지지 않는 등대가 되고 있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 『전태일 평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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