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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없는 세대 1」외 3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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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네 편의 시는 '76년 3월-76년 12월'이라고 씌어진 대학노트에서 가려낸 것이다. 이 노트에서 이미 등단작(1977)인 「정든 유곽에서」의 세 편의 시와, 두번째 시집(1986) 앞머리에 실린 「서시」 「정적 하나가」 「당신은 짐승, 별」 등 세 편의 시가 나왔다. 대체로 말의 변덕과 뒤틀림이 심한 기발표 시들에 비해, 다소 유치한 감상의 언저리에 씌어진 이 네 편의 시에는 무모한 시인 지망생의 쓸쓸함과 막막함이 짙게 배어 있으며, 지금까지 이 시들을 꺼내 보이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30년이 넘은 시점에서 이 시들의 몇몇 구절은 단꺼번에 나를 스물 네 살의 대학 교복 입은 모습으로 학교 벤치 위에 앉아 있게 한다. 당시 나는 삼 년의 해군 복무를 마치고 삼학년에 복학하였는데, 곁에는 어떤 애인도 없었고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몰랐으며 유신 말기의 시대는 어지럽기만 했다. 그때 나는 시를 어떻게 쓰는지 몰랐다. 시는 가려움이었고 목마름이었고 물 마신 뒤의 허탈함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매일 시를 썼고, 바로 그 때문에 지금은 시를 쓰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노트를 살피다 보니 맨 뒷장에 불어로 씌어진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문제는 그 비참함, 더러움, 추잡스러움에 있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 바로 그 남자와 그 여자가 어느 날 서로 알게 되었고, 남자가 여자에게 미소지었다는 것이다." 지금 나는 이 구절이 너무 좋고, 덩달아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진다. 어째서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이토록 뼈저린 문장을 쓸 수 없었을까. 그것은 결코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진정성의 문제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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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없는 세대 1
나뭇잎은 푸른 하늘에 떠 있습니다 검은 가지는 죽은 듯이 세워져 있고요 젖가슴이 큰 여자 하나 서쪽으로 떠내려가지만 사랑이 없는 눈으로는 불러 세우지도, 마냥 보내지도 못 합니다
혼자 몇 시간을 앉아있는 날은 내 나라의 땅은 이리 미끄러울까요 생각만으로 일어서면 기어코 넘어질 테지요
보세요, 지금 서 있는 나무 바로 곁으로 다른 나무가 다가가는군요 얕으게 움직이는 구름 조각을 따라 어느 각도로든 겹치는 실수는 없네요 아 보세요, 이제는 두 나무 위 하늘이 엎어져 푸른 비 쏟아지는군요
이별 없는 세대 2
당신의 눈자위에 어른거리다가 잔잔한 나무가 되렵니다 바람 부는 들판은 내 앞에 있고 안개 속에서 늙은 여자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제부터 나의 몸체는 흔들립니까? 나라의 가난한 변두리를 떠나지 않고 흔들립니까? 어둠을 확인할 만큼 애매한 빛 속에서
당신의 눈자위에 어른거리다가 잔잔한 나무가 되렵니다 순수한 굴절과 不動이 나의 꿈이지만 잠자던 痛覺들은 깨어났습니다
내가 신음하면 당신은 나를 잊어버릴 테지요 큰 소리로 당신이 나를 부르기 전에는 그러나, 입안에 溫氣가 남지 않아요
이별 없는 세대 3
당신이 없어도 난생 처음 정적이 있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 내 여윈 아랫도리를 세울까요 소돔에 다녀온 발바닥을 묻어주어야겠습니다
내 살의 바깥에 있는 습도 높은 정적은 언제 또 살이 되었습니까? 고요한 살의 뻘밭을 수놓는 모세혈관을 따라가면, 당신은 나를 만나줄 때까지 거기 있으렵니까?
여보세요! 눈초리 끝에 지평선이 매달려 短調를 울리고, 멋모르는 波動 안에서 더디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느린 걸음들이 푸드덕 날아오를 때까지 내가 모든 소리를 억눌러 키워야 합니까?
그러나 나무 그늘 안에서 오래 시든 살은 보드랍지 못합니다 반점과 부스럼이 있는 딱정벌레 등허리 같은 정적이지요 어느 날 당신이 툭 건드려 보아도......
여보세요, 여보세요!...... 당신은 듣고 있습니까? 언젠가 당신을 만나면 당신과 나의 관계를 꼭 물어 보아야겠습니다
이별 없는 세대 4
파란 많은 숨결을 거두고 눈은 심장 어디쯤에 파묻고 서 있을 때 어디 변함없는 물결이 미끄러져 와 내 몸은 헤엄칩니다 죽은 꽃에게 가야지! 지금 한참 붉은 혀 빼물고 미친 생각들의 불빛이 흔들리고, 곧추 뻗은 다리는 경련합니다 오, 죽음! 시든 꽃받침 위에 다시 나타나는 다른 나라의 古城! 하지만 내가 몸을 너무 많이 움직이면 헤엄이 빨라지고 이끼 낀 성곽이 흔들리지 않을까요? 흔들려, 조금씩 금이 가지나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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