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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선생 해먹기 어렵네요.

“문학선생 해먹기 어렵다”라는 말을 듣고 사람들은 그렇다면 어떤 선생이 해먹기 쉬운지, 이 살기 힘든 세상에서 해먹기 쉬운 직업이 무엇이냐, 라고 반문할 것이다. 문학 담당 교수라는 고상한(?) 직책을 수행하면서 ‘해먹기’라는 막말을 사용하는 것도 그런 사람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할 터이다. 그래도 나는 ‘해먹기 어렵다’를 고수하련다.

내 경우에 한정시킨다면 문학선생 노릇하기 정말 힘들다. 우선 캐리어 때문이다. 문학선생 생활을 30년 가까이 하다 보니, 목에 힘주어 특별하게 가르칠 의욕이 잘 생기지 않는다. 교수 내용에 중요한 것이 없고 모두 시시껄렁하게 여겨진다.

다음, 문학의 영향력이 줄어듦에 따라 그전처럼 세속의 성직자연 하면서 문학의 지고한 가치에 대해 역설할 수 없다. 자신이 전공한 학문적 대상이 영향력과 가치가 감소되면 대상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가 불가능하다. 80년대와 90년대 초만 해도 나는 문학이 대단한 권능과 실천력을 지닌, 파워 넘치는 예술의 한 분야라고 학생들에게 진실 같은 거짓말을 전달할 수 있었다. 2000년대 들어선 오늘날 그런 거짓말을 계속하면 수완 없는 사기꾼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거짓말을 문학의 영향력에 대한 설명에서 써보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 수 없는 것이 저간의 실정이다. 그러니 문학선생 해먹기 어려울 수밖에.

문학의 영향력이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문학은 이제 끝장났다’라는 이론이 난무한다. 내가 보기에 한국 문학은 노쇠하기는 하지만 아직 정정한 상태인데, 죽기도 전에 산채로 관에 집어넣고 못을 땅땅 치는 이론가들이 너무 많다. 그런 인간들은 문학 비평가가 아니라 문학 장의사라고 불러야 한다. 사르트르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대부분의 비평가를 “그다지 복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고, 절망하려는 순간에 묘지기의 조용한 일자리를 찾아낸 그러한 종류의 사람들”이라고 질타한 바 있다.

문학 비평가가 아니라 철학자라고 자처하는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부르짖는 것은 다른 사람이 문학의 죽음을 진단하기 전에 명민한 진단을 먼저 내렸다고 과시할 필요 때문일 것이다. 죽었다고 빨리 판정을 내리면, 작가라는 귀신과 통령(通靈)하면서 저승 세계와 문학이 접촉하는 신비스러운 심령술을 누구보다도 먼저 발휘할 수 있다. 서재라는 조용한 공동묘지에서 일생동안 죽기 살기로 쓰기만 한 작가들을 하나씩 불러내어, 칸트, 마르크스 등 그들이 생전에 읽어본 적 없는 철학자들의 난삽한 말로 죽은 작가들을 다시 몸서리치게 할 수 있는 기회는 문학의 전체적 죽음을 통해서 얻어진다.

사르트르는 또한 “동시대의 저자들이 죽는 호의를 베풀어 준다면, 이것은 비평가에게는 하나의 경사다”라는 말도 했다. 그 역시 비평가인 주제에 비평가에게 뼛가루를 뿌리는 말이다. 사르트르는 물론 나까지 포함해서 대부분의 비평가는 말이 궁하면 별 재수 없는 이야기도 다하는 딱한 족속들이다. 이런 족속들이 가장 기대하는 바는 저자들의 집단죽음과 문학 전체의 종말이라는 쓰나미 현상이다. 나는 그 기대 선상에서 비켜 서 있는데, 죽은 작가보다는 살아있는 학생들을 더 좋아하는 선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주변에서 ‘저자는 모두 죽었다’, ‘문학이라는 잔치는 끝났더라’라는 소문이 흉흉한 가운데 선생 노릇 해먹기란 정말 지난하다 이런 상황에서 “훌륭한 작가가 되어라”, “문예부흥의 선두주자가 되어야 한다” 따위의 말을 제자들에게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저자는 죽었으니까 잘 베끼는 필사자나 되어라”, “부흥은 교회 부흥회에서나 찾고 선종(善終)할 궁리나 챙겨라”, 이런 절망감이 가득 찬 말을 선생으로서 차마 뱉을 수 없다.

나치 전력이 의심시되는 폴 드만에 따르면 시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모든 것이 우연한 사건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시 쓰는 학생을 맥 빠지게 만들어 의욕상실증에 걸리게 하는 말을, 멸망의 야망을 가졌던 드만은 태연하게 진술한다. 간단히 말해서 ‘시 쓰지 마’가 드만의 주장이다.

잡동사니 에세이스트 롤랑 바르트는 결혼 관례나, 의상 스타일 또는 보도 기사에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기호학적 이론을 문학의 걸작에 적용했다. 문학 작품을 기호 체계의 조직 같은 ‘텍스트’로 다룬 것이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문학 공부를 포기하고 기호체계나 연구하라”이다. 딱하게도 문학 공부하는 학생들이 잘 아는 기호체계란 기껏 교통 신호 정도이다.

스스로 시인을 자처했지만 결코 시인이 될 수 없었던 해체주의자 데리다는 의미의 절대적 포기를 강조했다. ‘의미 찢어발기기’가 그의 철학의 요체이다. 이것은 시, 소설의 찢어발기기와 상통한다. 그를 따른다면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 “다 썼지. 수고했네. 그런데 이제까지 쓴 것 몽땅 찢어발기기를 잊지 말게.”

나 같은 이론가는 드만, 바르트, 데리다의 낙담의 비평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창작 전공의 동료 선생들은 아직도 이들의 이론과 무관한 가르침을 베푼다. 그래서 걸핏하면 ‘작품 쓰지 말라’고 학생들을 혼내 준다. 이 말은 저들 이론가의 낙담 강요의 협박과 다르다. 숭고한 가치체계를 지닌 문학작품을 너 따위 수련생은 써보기조차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그런 선생에게 혼이 난 학생들은 자기가 얼마나 남보다 덜 야단 맞았냐 정도에 따라 자신의 능력을 평가한다. “너는 나보다 더 야단 맞았어. 나는 쓰고 싶으면 쓸 수도 있다고 지적 당했어.” 자신의 문학적 우월성을 자랑하는 학생의 말이다. 나는 의도적일 수 있는 시대착오적 창작 전공 선생이 부럽다.

창작 전공 선생들은 학생들에게 이미 죽은 저자의 작품을 닥치는 대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엄청난 숙제를 내준다. 한 학기에 백 권 넘는 책을 과제로 내는 의욕 과잉의 전근대적 문학선생도 있다. 그런 선생은 종이 쳤는데도 혼자만의 열강을 계속하는 시간 무시의 태도를 당연시 한다.

하지만 그들도 나처럼 이야기 한다. “문학선생 해먹기 점점 힘들어진다”라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넋두리로 가득 찬 시, 아버지를 ‘애비’라는 비하어로 거침없이 부르고, 닭장에 가두어 뭇매를 때리는 소설, 이런 작품을 합평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니까 작가의 문학선생 노릇이 힘들어진다. 이들 학생은 드만 류의 비평을 공부한 바 없지만 문학작품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피부로 알고 있다. 선생들은 이런 학생들의 작품을 담배보다 더 건강을 해치는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학생 작품은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며 특히 문학선생과 청소년의 건강에 해롭습니다.” 학생작품의 서두에 이런 경고 문구가 반드시 게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선생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학생 해먹기는 쉬울까? 선생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선생은 힘들어도 월급이라도 나오는데, 학생은 등록금 바치면서 돈 안 될 것이 뻔한 작품 쓰기를 강요당한다. 더구나 선생에게 싸가지 없다는 야단 맞고, 동급생에게 창작 능력이 없다고 왕따 당한다. 이럴 때 선생이 “너 문학 관둬”라고 질책하면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격이라서 급기야 문학을 내팽개쳐 버린다.

결국 선생이나 학생이나 모두 그 노릇 제대로 하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그들이 그래도 문학에 매달리는 것은 밀란 쿤데라가 말한 graphomania ― 글쓰기 망상증에 걸린 인간들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애인에게 하루 스무 통씩 이메일을 보내는 사람은 그라포마니아가 아니다. 자기 글이 전문잡지에 실리거나 책으로 엮어지길 바라면서 글쓰기에 밤낮으로 열중하는 그라포마니아가 있기에 선생도 학생도 존재한다.

그들 덕분에 장사꾼처럼 해먹기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오늘도 이 따위 글을 쓰면서, 나는 그럭저럭 먹고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