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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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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말>
글 / 고종석_소설가. 『대산문화』 편집자문위원, 한국일보 객원논설위원. 1959년생.
소설 『기자들』 『제망매』 『엘리아의 제야』, 산문집 『코드 훔치기』 『서얼단상』 『자유의 무늬』등
‘문학과 과학’이라는 특집 제목에서 허풍(虛風)을 읽는 독자들이 계실 것이다. 이런 특집이 버젓해지려면, 문학의 정의와 과학의 정의가 깔끔하게 미리 내려져 있어야 할 테니 말이다. 문학에도 과학에도 아직 깔끔한 정의는 내려져 있지 않다. 그러니 눈 딱 감고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기로 하자. 그래서 문학을 ‘심미적 충동에 이끌려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짠 텍스트’로, (자연)과학을 ‘객관세계의 원리를 이성의 지휘에 따라 캐는 정신활동’ 정도로 정의하기로 하자. 찰스 퍼시 스노가 ‘두 문화’라는 말로 문학가와 자연과학자를 대립시켰을 때, 문학과 자연과학은 그저 이런 정도의 헐거운 뜻이었다. 그러나 이런 임시변통으로도 문학과 과학의 경계를 또렷이 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느슨하게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과, 역시 느슨하게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둘 다, 무게중심을 서로 조금씩 다르게 둔 앎의 형태일 뿐이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감성의 언어라 할지라도 그것이 언어인 한, 문학은 인간 이성의 최대치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객관세계의 질과 양을 이성의 연산에 따라 잰다는 과학의 언어는 흔히 발랄한 상상력에 이끌린 신화적 서사였다. 문학과 과학은, 그 정의가 촘촘하든 성글든, 서로 스며들 수밖에 없다. 그 스밈이 꼭 과학혁명 이후의 일만은 아니었다.
특집에 두 꼭지가 할애된 과학소설(SF)도, 모든 상투어가 그렇듯, 물렁물렁한 말이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과학이라는 말이 물렁물렁하기 때문이다. 과학언어가 드물지 않게 상상력에 이끌리는 신화적 서사라면, 과학소설과 환상소설을 구별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우리가 과학소설가라 여기는 작가들과 환상소설가라 여기는 작가들은 적잖이 겹친다. 또 과학소설과 환상소설을 한 묶음으로 꾸린다 해도, 그것과 그것 아닌 것(‘전통’ 소설? ‘본격’ 소설?)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언어)(라고 여겨지는 것)이 작품 속에 얼마만큼 스며있어야 과학소설이 되는지가 또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의 『1984년』은 과학소설인가 아니면 전통소설인가? 가장 안전한 대답은 그것이 과학소설이면서 전통소설이라고 말하는 것일 게다. 이 특집이, 말들의 이런 물렁물렁함을 치유하지는 못할지라도 직시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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