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주인공보다 더 극적인 발터 벤야민의몇 가지 장면에 관하여
“내가 세상을 견뎌낼 수 있었다면, 그것은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해방구 학교 앞 막걸리집 산골소녀들은지금 어디에 있을까 레드 콤플렉스 번쩍했던 순간들 환멸의 기원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일제하 최고 베스트셀러,박계주 소설 『순애보(殉愛譜)』
문학은 시대를 성찰할 수 있는가 시 부문 - 낭만적 과잉의 시쓰기 소설부문 - 삶과 역사에 대한 노작가의 견인주의 평론부문 - 문학 , 밀거래된 꿈을 유통시키는 최후의 통로 번역부문 - 유려한 문장으로 원작 재창조
소설부문 - 삶과 역사에 대한 노작가의 견인주의
글 | 이남호_평론가,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1956년생
저서 『일요일의 마음』 『문자제국쇠망약사』 『이 쓸쓸한 뜰에 저 어지러운 구름 그림자』 『혼자만의 시간』 『상상력의 보물창고』 『느림보다 더 느린 빠름』『보르헤스 만나러 가는 길』 『문학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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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일 장편소설
『아들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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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역사에 대한
노작가의 견인주의
장편소설 『아들의 아버지』는, 아들이 1인칭 화자가 되어 가족사를 복원하는 이야기다. 화자의 가족은 처음부터 가혹한 시대의 급류에 휩쓸려 평지풍파를 겪고 풍비박산이 났으며 가족들은 풍찬노숙의 힘든 세월을 견뎌야 했다. 뿐만 아니라 그 험한 가족사는 평생 동안 하소연하기는 커니와 숨기고 지워야만 했던 이야기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파란과 원통의 세월을 마감한 지 삼십여년 만에, 아들이 세상을 멀리 굽어볼 나이인 칠순이 넘어서, 아들은 그 오랜 이야기를 비로소 복원한다.
복원 작업의 일차적 초점은 화자의 아버지의 삶이다. 화자에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아버지는 거의 언제나 가족을 떠나 있다. 나머지 식구들에게 아버지는 거의 부재하는 아버지이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온 가족이 겪는 혹독한 시련의 원인이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을 빌리면 ‘사상운동과 계집질’에 미쳐서 가족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자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부재하는 아버지, 그러면서 가족이 겪는 고통의 근원인 아버지의 삶을 비로소 재구성해 낸다. 그래서 소설의 제목이 『아들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에 대한 단편적이고 희미한 기억을 그나마 지닐 수 있었던 기간은 불과 10년이 되지 않는다. 아들이 1942년 태어났으며 그가 10살 무렵 아버지는 북한군의 후퇴와 더불어 영원히 가족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10년은, 태평양 전쟁과 해방 공간의 혼란 그리고 6·25 전쟁으로 이어지는 파란과 격동의 10년과 겹친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시대 지성의 혼돈과 불우의 전형이 되고, 어머니는 가족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민초의 전형이 되며, 아들은 그야말로 헐벗고 굶주린 난세의 아이가 된다. 즉 이들의 가족사는 20세기 한국 역사의 비극을 그 중심에서 관통하는 스토리가 되는 것이며, 시대사로서의 의의를 지니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 가족사가 비극적 역사의 중심과 그 시대를 공유하기 때문에 주목되는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삶을 복원하는 작가의 견인주의적 성실성과 겸허함이다. 작가는 작품 전반에 걸쳐서 놀라운 성실성으로 희미한 기억의 단편들을 수집하고 정리하고 그것들을 짜깁기하여 박진감 넘치는 장면과 스토리로 복원한다.
가령 진영이라는 마을에서 해방공간의 갈등이 어떤 양상이었는지를 구체적 인물과 사건과 배경으로 그려낸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의 부산 살림집에 어머니가 찾아간 사건이나 영진공업사 사택의 생활 그리고 인공치하의 서울에서 고물상 아저씨가 배가 고파 밤에 남의 호박을 따려다가 죽는 사건 등등 수많은 구체적 에피소드들이 서사적 미덕을 확보한다. 이런 삶의 세목들이 역사를 뛰어넘는 의의를 가짐은 물론이다. 어쩌면 『아들의 아버지』에서 제일 소중한 문학적 성취는 아버지의 삶이나 시대의 기록이라기 보다는 이와 같은 삶의 구체적 세목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작가는 복원의 사실성을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제공하기 위해서 다양한 역사적 사료나 관련 회고록 및 통계 자료들까지 자주 언급하기도 한다. 때로는 이 사료들이 작품의 독서 흐름을 방해하는 면이 없지 않으나, 이 또한 보다 사실적인 관점에서 시대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토대로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성실한 노력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사실의 세목에 대한 충실과 성실은 작가의 겸허하고 객관적 태도로 더욱 빛이 난다. 작가는 시대의 좌우에 대해서도 아버지의 삶이나 어머니의 한탄에 대해서도 섣부른 판단과 입장을 드러내지 않는다. 작가는 어떤 입장이나 어떤 인간의 행동의 시비를 판단하기 위해서 아니라 세상에 존재했던 그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주기 위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최대한 낮춘다. 그렇지만 독자들은 그 삶과 시대를 깊은 회한으로 응시하는 작가의 냉정한 눈길을 느낄 수 있다.
필자는, 오늘의 한국문학에서 가장 허기진 미덕이 삶과 시대에 대한 성실성과 겸허함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아들의 아버지』는 이 미덕을 높은 수준에서 충족시킨다. 노작가의 견인주의적 성실과 겸허에 존경을 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