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학기행문

사랑과 혁명
글쓴이 : 박하빈 날짜 : 20.04.29|조회 : 1784

사랑과 혁명만큼 가깝고도 먼 단어가 또 있을까 싶다. 언젠가 모든 비극은 사랑이 없으면 생겨나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느새 나는 여전히 ‘사랑’을 잘 알지 못하지만 ‘혁명’이 무엇인지는 알고도 남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나 역시 크고 작은 혁명들을 겪은 뒤였으므로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과연 ‘사랑’을 경험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젠가부터 읽고 쓰는 이 일을, 나의 애정을 좀처럼 믿기 어려웠다. 여행을 가기 몇 달 전부터, 나는 어느 나라든 좋으니 외국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언어로 쓰인 간판으로 가득한 거리를 거닐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내게는 무엇도 사랑할 자신이 남아 있지 않았다. 여행지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러므로 이 글은 기행문이라기보다는 나의 곁에서 나보다 나를 더 많이 믿어준 이들에게, 더 낯선 곳으로 집요하게 파고들려고 애쓰던 나와 자주 분투한 나 자신에게 구하는 용서이자 고백이다.

 

*

 

파리에서는 마침 ‘혁명’이 일어나고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몇 주 전, 연금 개편 시위와 지하철 파업으로 액상 프로방스에는 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아쉬운 마음은커녕 그들이 혁명을 무사히 마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토록 ‘혁명’을 ‘사랑’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7월 14일이면 프랑스 대혁명을 이끈 바스티유 습격사건을 기리기 위한 ‘혁명기념일’ 축제가 열린다. 혁명기념일의 백미는 에펠탑 위를 수놓는 불꽃놀이라고 했다. 에펠탑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한국을 떠나온 것이 실감이 났다. 간밤에 도착해 보았던 프랑스의 첫인상은 보들레르의 시집 제목을 연상케 했다. 샤를 드골 공항부터 숙소까지 이어진 거리에는 옷가지마냥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뒤늦게 숨바꼭질을 하는 사람처럼 간신히 침낭에 몸을 숨긴 그의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갑작스런 빗줄기에 파리의 야경 한편이 지워지고 있었다. 도시의 온갖 모서리를 찾아내 자리한 이들을 보지 않으려 나는 부단히도 애썼다. 파리의 우울. 들뜬 듯한 목소리와 프렌치 키스를 나누는 연인들 사이에서도 나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그런 풍경들뿐이어서 나는 파리에 있는 내내 묘한 죄책감마저 들었다.

어제부터 계속되었던 비가 그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나는 에펠탑이 잘 보이는 곳에 서서 눈을 감고, 어스름 위로 하나 둘 내려앉는 붉은 불빛들을 그려보았다. 어떤 빛들은 어둠을 밝히지만, 어떤 빛들은 어둠을 몰고 온다. 혁명과 축제가 샴쌍둥이처럼 불가분한 관계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총성과 폭약, 신음소리가 넘쳐나는 전시 상황과 축제가 일어나는 정황이 아주 먼 곳에서 바라볼 때에는 하나의 국면으로 수렴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밀려드는 바람을 탓하며 조금 몸을 떨었다.

이후 바스티유 감옥이 있던 자리에는 오페라 극장이 두 곳이 지어졌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우리가 도착한 ‘오페라의 유령’의 배경이기도 한 오페라 가르니에였다. 사랑도 혁명도 모를 무렵, 나는 소설책 중에서도 ‘오페라의 유령’을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곤 했다. 아마도 오페라 극장이 주는 오묘한 분위기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령 에릭의 크리스틴을 향한 사랑이 로맨틱해 보였으리라. 사랑을 모르긴 몰라도, 이제 에릭의 사랑이 마냥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너무 맹목적이니까. 어쩐지 맹목적이라는 단어 앞에 까닭 없이 슬퍼진 나는 생각을 쫓아내려 부지런히 극장을 살펴보았다. 숫자와 예술가의 이름들이 겹쳐진 로톤툰다 천장 아래를 지나, 발코니로 가는 곡선형 계단을 밟고 올라서자 어딘가에서 ‘음악의 천사’ 아니 ‘문학의 천사’가 나를 부르지는 않을까 주변을 자꾸 기웃거리게 됐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내가 자꾸만 돌아보게 된 것이 극장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혁명이 일어난 그 자리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이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삼일 째 되는 날, 오전에는 작가와의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다. 조금 일찍 카페에 도착해 아틱 라히미 작가를 기다리는 내내 나는 그의 소설을 읽으며, 지금까지 파리의 풍경들을 통해 느꼈던 감정들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전시 상황에서 가족을 잃은 화자가 자신의 손자를 데리고 아들을 만나러 과정 속에서 겪는 착란은 나로 하여금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거듭 고민하게 했다. 아틱 라히미 작가는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쓰고 있던 중절모를 내려놓으며 선생님 두 분과 긴장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한 명씩 수차례 인사를 건넸다. 그는 농담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신작에 대해 설명하기도 하면서 우리가 준비한 질문보다도 훨씬 더 친절하고 구체적인 답변을 늘어놓았다. 그야말로 ‘사랑’이 넘치는 답변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우리에게 “여러분들은 지금 위험한 직업을 선택한 것”이라며 농담을 건넸는데, 그 어떤 답보다 진중하게 다가와 자꾸만 목이 탔다. 궁금한 것들이 많았으나 나는 질문들을 애써 삼켜냈다.

인터뷰를 마친 뒤, 우리는 센강을 따라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했다. 맞은편으로 평행하게 늘어선 건물들과 2층 버스와 자전거,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니 그제야 파리가 사랑과 낭만의 도시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사소한 파리의 풍경이 주는 안정감이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루브르 박물관의 외곽을 따라 걷고 있는데,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를 시작으로 곳곳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구호와 고함소리가 뒤따랐다. 그제야 인파 사이로 곳곳에 있는 카메라와 트럭들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혼잡한 상황 속에서 선생님들은 우리를 안전하게 인솔하기 위해 나와 동기들의 얼굴을 확인하시는 것을 잊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목에서 더 많은 이들이 구호를 외치며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유 선생님께서는 시위가 계속되어 루브르 박물관 쪽으로 가는 것은 위험할 것 같으니, 퐁피두에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오셨다.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1층에는 서점과 굿즈샵이 있었는데, 나는 6층부터 차례대로 내려와 전시를 보기로 했다. 눈이 그려진 반투명한 천막과 알 수 없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벗어나니, 탑승권과 편지 그리고 사진으로 전시관 한 벽이 메워져 있었다. 출구 앞에는 검은색 재킷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어서 나는 그곳에 발이 묶인 사람처럼 한참 동안이나 움직일 수 없었다.

어느새 여행의 마지막 날을 앞두고, 우리는 늦은 저녁 아틱 라히미 작가의 초대를 받아 그의 소설을 영화화한 ‘물지게꾼’을 보러 갔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장에 잠식되고 싶다.’ 일주일 전,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바람대로 된 셈이었다. 물을 받아 서로의 몸에 끼얹어주고, 하늘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춤을 추던 르완다의 기숙학교 소녀들의 얼굴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잔상처럼 남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극장 내부가 밝아지자 아틱 라히미 작가는 무대 위로 올라와 관객들과 적극적으로 만남을 가졌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관객들의 서슴없는 질문과 태도에 자꾸만 눈이 갔다. 작가는 영화가 끝난 뒤, 우리를 찾아와 페르시아어로 우리의 이름을 적은 책을 선물해주었다. 나는 그 책을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캐리어에 가장 먼저 챙겼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국제정세가 혼란스러우니, 조심해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사랑과 혁명으로 가득한 이 도시는 이렇게 평화로운데, 바깥에서는 여전히 크고 작은 일들로 어지럽다는 것이 이상했다. 이곳에서 내가 기억하는 장면들이 센강의 물결 위로 반짝거리는 빛의 조각이나 모든 색깔을 머금고 있는 듯 보였던 생트샤펠의 창도 아니고, 오르세 미술관의 명실상부한 작품이 아니라는 것 또한 그랬다.

 

*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떠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비극은 사랑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곱씹어 보았다. 그러자 모든 것들이 사랑과 크게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나는 나의 애정을 쉽게 믿기 어려웠으나, 아무래도 좋았다. 외면하지 않는 것, 아파하는 것, 계속해서 바라보는 것. 이 역시 하나의 사랑이자 혁명의 방식임을 이제는 안다.

 

끝으로 유난히도 길었던 여로의 끝을 함께해준 동기 규민, 의현, 재빈, 소휘 그리고 내내 세심한 배려를 보여주신 유혜리 선생님과 묵묵한 다정을 보여주신 장근명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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