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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제27회 대산문학상 시·소설 부문 본심 대상작 선정

문학현장 ➋ 제27회 대산문학상

대산문학상의 2019년도 시·소설 부문 본심 대상작이 확정되었다. 매년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문 학 작품을 선정, 시상해 온 국내 최대 규모 종합문학상인 대산문학상은 제27회 수상작 선정을 위해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 간 시·소설 부문의 예심을 진행하였다. 보다 심도 깊은 독회와 심사를 위해 심사 기간을 소폭 확대하여 시행한 이번 예심 결과, 최종적으로 시 부문 10작품, 소설 부문 8작 품이 본심작으로 선정되었다(오른쪽 표 참조).
예심위원으로 시 부문에 박형준(시인, 동국대 교수), 진은영(시인, 한국상담대학원대 교수), 최현식 (평론가, 인하대 교수), 소설 부문에 김종광(소설가), 서영인(평론가), 정홍수(평론가), 조경란(소설가) 씨 등이 참여하여 2018년 8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지난 1년간 단행본으로 출간된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하였다.
시 부문 심사위원들은 10권의 시집을 가려내기 위해서 “겉으로는 조용했지만 속으로는 난타전”을 겪어야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전원의 동의를 얻은 시집도 몇 권 있었지만, 고개 저음과 끄덕임에 오 랜 시간 시달려야 했던 시집이 더욱 많았다. 본심에 부쳐질 열 명의 시인은 우연찮게도 30대부터 60 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의 언어와 감각을 대표하는 남녀 다섯 명이 내정되어 우리의 내면과 현 실을 향한 젠더적·문화적 성차의 유의미한 기록을 조감케 하였다. 심사위원들은 선정된 10권의 시집 이 ‘문득 다가오는 가을처럼 우리의 마음을 어여쁘게 다독이며 어딘가 숨겨뒀던 지음의 복락을 활짝 들려주기’를 희망했다.
소설 부문 심사위원들은 ‘장편소설’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논의하며 그 기준이 되는 분량을 최소 600매 이상의 작품으로 정하였다. 더불어 해외 보급과 번역의 문제를 고려하여 대하소설도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이후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질문부터 급변하는 문화 환경 속에서 오늘의 문 학이 분투하는 광경에 이르기까지 소설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토론을 이어나갔다. 그 결과 저마다 다른 ‘장편소설’의 정의를 실현하고 있는 8편의 작품을 선정하게 되었다.
제27회 대산문학상의 최종 수상작을 선정할 본심은 단심제로 운영되는 평론·번역 부문을 포함해 9월부터 두 달 간 진행된다. 수상작은 11월 초에 발표되며, 시상식은 오는 11월 27일(수)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제27회 대산문학상 - 예심

시 부문

대산문학상 시 부분 본심에 올린 10권의 시집을 선정하기 위해 3인의 예심위원은 총 3회의 모임을 가졌다. 나라 안팎의 무거운 사정과 도심의 아스팔트를 흐적대는 맹폭의 여름날이 어수선하게 지나가 는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예심위원들은 놀랄 만큼 맹렬한 시의 온도와 뜻밖의 세계 발견을 향한 예각적인 의식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시인 모두는 유종호 선생의 먹먹한 고백처럼 “내 삶의 첫 열정”을 ‘시’에서 처음 만났고, 또 그로 인해 ‘궁핍한 시대’의 차갑고 밝은 눈을 항상 견지해왔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여기’의 ‘궁핍한 시대’를 꿰뚫어 살 만한 세상의 심미와 지혜를 찾아가고 또 표현 하는 말들의 노고와 경이에 다소곳한 예의를 차림으로써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 라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는 백석의 결기를 다시 우리의 것으로 가지고자 했던 것이다.
첫 모임에서는 지난 1년간 여기저기서 생산된 시의 소출을 가늠해보느라고 바빴다. 어떤 경우는 이 게 정녕 시의 저편을 꿰뚫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의 신작(新作)인지 아니면 득의만만한 생산량을 자랑 하기 위한 자기 언어의 중복적 식목인지 여부가 헷갈려 우리의 상심을 더했다. 이 때문에 본선 대상 의 시집을 간추리는 기준은 오히려 비교적 손쉽게 합의되었다. 첫째, 넉넉한 언어의 성채를 쌓았으되 세계를 향해 던지는 자아의 표지가 개성적인 시집, 둘째, 내일을 기대케 하는 시의 소출은 지금까지의 농법(農法)이 아니라 몇 년의 실패를 작정한 실험적·모험적 농법이라는 사실에 예민한 시집, 셋째, 그 러면서도 독자대중의 시 읽기에 대한 명랑한 배려 및 그들과의 정서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충분히 애 쓴 시집이 그것이었다.
두 번째 모임에서는 1차 예심에서 선별한 30여 권의 시집을 위의 평가 기준에 따라 더욱 세심하게 분별하면서 그 성취와 한계를 차분히 살펴보았다. 지나치게 사적(私的)이어서 ‘지금 여기’의 현실과 안 이하게 동떨어진 시집, 언어와 형식 실험은 강렬하되 주제의 호소력이 그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시집들 이 자연스레 예심자의 관심에서 먼저 비껴났다. 이 과정을 통해 15권 정도가 3차 예심 시집에 올랐다. 해당 시집들은 수백 권의 시집을 거슬러 올라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으로도 충분히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지만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언어’들이었다.
마지막 모임은 그야말로 겉으로는 조용했지만 속으로는 난타전이었다. 예심위원 전원의 동의를 얻 은 시집도 몇 권 있었지만, 고개 저음과 끄덕임에 오랜 시간 시달려야 했던 시집들이 훨씬 많았다. 이 치열하되 격의 없는 심사는 예심위원의 개별적 호오(好惡)를 되도록 괄호치고 이 땅 시인과 독자의 순 연한 동의와 수긍, 또 수상 시집의 해외로의 번역 가능성을 우선한다는 약속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본심에 부쳐질 열 분 시인은 60대에서 30대까지의 다양한 세대의 언어와 감각을 대표한다. 또 우 연찮게도 남녀 다섯 분이 선정되어 우리의 내면과 현실을 향한 젠더적·문화적 성차(性差)의 유의미한 기록을 조감케 한다.
예심위원들이 열 분의 시인들을 두고 대번에 동의했던 바는 그 지향점이 흔한 표현대로 자아와 세 계의 통합에 있든 아니면 현실 균열의 날카로운 포착과 해체의 맹렬한 시도에 있든 기존의 자기 시와 더욱 멀어지고자 하는 시적 갱신의 열정이었다. 예심 막판에 몇몇 시집을 두고 오랜 숙고와 논의가 몇 차례 계속되고, 몇몇 시집에 대한 선택의 결과가 결국 달라졌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예심평을 쓰는 지금, 한창을 귀 따갑게 울려대던 매미 울음이 많이 잦아들었음을 실감한다. 게다가 저녁 즈음에는 가을 풀벌레 소리가 더위에 지쳤던 걸음걸음을 서늘하게 식히느라 바쁘다. 열 분의 시 집이 문득 다가오는 가을처럼 우리의 마음을 어여쁘게 다독이며 어딘가 숨겨뒀던 지음(知音)의 복락 을 활짝 들려주기를 고대한다.

- 박형준, 진은영, 최현식

소설 부문

2018년 여름의 혹독한 더위가 아직 기억에 남아 있어선지 올해는 견딜 만하다고 다들 입을 모았지 만, 그래도 여름은 더웠다. 6월 5일 1차 심사를 시작하여 8월 14일 3차 심사를 마쳤으니 대산문학상 예심으로 여름을 난 셈이다. 뭘 해도 더운 여름이라면 역시 소설과 함께이지! 라고 말할 여유 같은 것 은 없었다. 1차 심사 직전에 전해진 소설의 목록은 길고도 길었고, 심사는 엄정하고 성실하게 진행되어 야 했으며,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소설 읽는 시간은 즐거웠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1차 심사에서는 2018년 8월 1일부터 2019년 5월 31일까지 출간된 장편소설의 목록을 놓고 1차 검토 작품을 결정했다. 검토 작품을 결정하기 전에 우선 대산문학상 심사 대상 작품의 범위를 정했다. ‘시 대정신과 보편성’, ‘개성적 시선’, ‘해외에 소개될 가치’라는 기준은 대산문학상 공통의 기준이지만 특히 소설 분야에서는 ‘해외 보급에 유리하도록 장편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기준이 추가된다. ‘장편소설’을 어떻게 정의할 것이며, 그 기준이 분량이 되는 것은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더 필요할 줄 로 안다. 다만 매년 수여되는 문학상의 기준은 당대 문학이라는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심사위 원들의 생각이었고, 최근 활발하게 출간되는 경장편을 심사의 대상에 포함시킬 것인가는 당면한 문제 였다. 논의 끝에 심사위원들은 장편소설로 대상을 한정하는 대산문학상의 취지를 생각하여 최소 600매 이상의 작품을 심사대상으로 삼기로 결정했다. ‘해외 보급’과 ‘번역’의 문제를 고려하여 아쉽지만 대 하소설도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심사의 기준을 정하고 대상이 된 작품 중에서 1차로 검토할 19편의 작품을 정한 후 2차 심사에서는 본심에 올릴 작품에 대한 본격적인 토의를 진행했다. 4명의 심사위원들이 각각 추천하는 작품을 중 심으로 검토하여 5편의 작품을 선정하고 3차 심사에서는 2019년 5월부터 7월까지 발표된 작품 중 6 편을 추가로 논의하여 최종 본심 후보작을 결정했다. 3차 심사에서는 1차 심사 이후 발표된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논의한 이후 2차에서 선정한 작품을 포함하여 최종 후보작을 결정했다. 논의 끝에 결정 된 작품은 김탁환의 『살아야겠다』, 윤성희의 『상냥한 사람』, 정찬의 『골짜기에 잠든 자』, 조남주의 『사 하맨션』, 조해진의 『단순한 진심』, 최수철의 『독의 꽃』, 한창훈의 『네가 이 별을 떠날 때』, 현길언의 『묻 어버린 그 전쟁』의 총 8편이다.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 1년간 발표된 장편소설을 일별하고 그중 20편이 넘는 작품을 읽는 일은 심 사의 기회가 없다면 쉽게 얻기 힘든 귀한 경험이다.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질문부터, 급변 하는 문화환경 속에서 오늘의 문학이 분투하는 광경까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과정이었다. 최종 수상작을 결정하는 무거운 책임은 본심위원에게 넘겨진 상황에서 본심 후보작의 목록을 앞에 두고 결과적으로 떠오른 소회를 밝히는 것으로 심사평을 갈음하고자 한다. 정통적 장편소설의 문법을 충실 히 구현한 작품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지만 최종적으로 선정된 8편의 작품들은 저마다 다른 ‘장 편소설’의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 사회적 사건에서 소재를 취해 사실의 기록으로부터 허구의 효과를 불러낸 작품이 있는가 하면 단편과 장편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면서 단편의 미학과 장편의 서사가 그렇 게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작품도 있다. 연작의 형식이되 각각의 이야기가 치 밀하게 결속되어 하나의 서사로 이어지기보다는 각 단편의 존재감을 더 부각하는 형식도 새로웠으며, 역사 속 인물을 불러와 허구의 공간 속에서 대화하게 하는 방법으로 역사와 예술에 대한 긴 아포리즘 을 완성하는 장편의 문법도 흥미로웠다. ‘시대정신’이나 ‘보편적 공감’, ‘작가의 개성’ 등의 기준은 어떻게 보면 좋은 문학을 찾기 위한 가장 넓고 느슨한 범주이지만 거기에서 논의되는 작품들은 언제나 당대 의 사실과 가치를 민감하게 재현하면서 늘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였다.
문학상을 수여하고 거기에 문학의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어쩔 수 없이 사후적이다. 사후적 결과가 관행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당대 문학의 다채로운 분투 전체가 하나의 이벤트로 기록될 수 있어야 한 다. 그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이 심사라는 제도임을 심사 내내 무겁게 인식하고자 했다. 당연히 대산문 학상이 그 분투에 대한 보상이자 응원이 되어 줄 것이다.

- 김종광, 서영인, 정홍수, 조경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