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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대보름 불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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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에 없는 강추위로 시작된 신년에는 하루 빨리 봄 소식을 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한 소원이 되었다. 그 때문인지 입춘이 가까워지면서 『오래된 정원』의 한 장면, 즉 도피행을 계속하는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을 처음으로 만나러 가는 길에서 아이들이 대보름 불놀이를 하는 것을 보는 장면이 갑자기 뇌리에 떠올랐다.
건너편 빈 밭머리에서는 동네 꼬마들이 정월 대보름 불놀이를 하고 있었다. 구멍 낸 깡통에 나무 삭정이들을 채워넣고 불을 붙여 빙빙 돌리며 허공에 불꽃이 원을 그리며 춤을 춘다. - 『오래된 정원』 상 29~30쪽
그런 놀이를 직접 본 적도 없는데 그 정경이 떠오르면 왠지 그리워진다. 혹시 인간과 불의 원초적 관계의 기억, 태고에 조상이 불놀이를 한 기억이 내 DNA에 보존되어 있는 게 아닐까.
일본의 불에 관련된 전통적인 축제로서는 나라(奈良)시에 있는 도다이지(東大寺) ‘오미주토리' 가 단연코 유명하다. 대불 개안(752년) 이래 계속 행해져 온 연중행사의 하나인데 묶은 나무에 불을 붙여 그것을 스님이 세차게 휘두르면서 사원 안을 뛰어다닌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달리는 불꽃. 그 행사는 지금은 양력 3월 13일 새벽에 거행되지만원래 춘분의 날을 설날로 한 조로아스터교(배화교)에 유래된 의식이라고 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최초의 세계종교인 조로아스터교는 일신교이며 선악이원론으로 기독교, 유태교, 이슬람교, 또 불교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 종교적 의례가 동아시아의 맨 끝에 위치하는 일본의 불교사원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미주토리'로 연면히 이어져왔다니…… 새삼 고대국가 당나라 문화의 국제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시에 당나라는 세계최고의 문화국가로서 동서세계의 모든 길은 수도 장안으로 통했고 인구 100만 명인 국제도시 장안에서는 위구르인, 페르시아인, 소그드인(이란계)을 비롯한 많은 외국인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거기서는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기독교를 비롯해 그들의 독자적인 신앙생활도 허용됐다고 한다. 당나라 불교란 그러한 다채롭고 개성적인 신앙을 포섭한 사회에 존재한 것이며 거기에서 발달한 것이었다. 만약에 이문화를 받아들이는 도량이 큰 문화국가 당나라의 불교가 아니었으면 일본 도다이지에 조로아스터교적 의례는 전파되지 않았을 것이다.
동서문화의 교류를 통해 크게 융성한 당나라 문화는 당시(唐詩)가 상징하는 한자문화권을 확립하고 동아시아에 공통된 문화권을 성립했다. 그러나 약 100년 후에는 도교를 신봉한 무종(武宗)이 폐불 훼석(845년)을 강행하고 불교도를 비롯해 조로아스터교도, 마니교도 등 이교도와 이민족의 재산을 몰수하고 살해했다. 그 후 이민족과 그 문화가 공존하는 빛나는 사회는 사라지고 결국 멸망하고 만다. 그런데 그 시기에 동아시아의 각 국가들에서는 민족문화가 크게 발전되었는데 거기에서 문화의 국제성과 민족성의 미묘한 관계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찬란한 문화를 자랑했던 당나라가 멸망한지 1,100년 후인 현재, 일본은 고이즈미 수상의 야스쿠니 참배문제로 동아시아 각국과 심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유감스럽지만 광적인 민족주의로 근대를 향해 돌진한 일본은 아직 과거의 과오를 깨닫지 못 하고 피해자의 신음 소리도 듣지 않고 역사에 대한 책임을 모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와 같은 일본인이 한국문학을 번역 소개할 경우 한일 양국의 근대사에 대한 이해가 절실히 요구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의 침략에 맞서서 발흥한 한국민족주의가 바탕이 된 20세기 한국문학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민족주의를 쓸모없는 골동품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한 일본 독자가 한국문학을 통해 민족주의를 상대적으로 보는 지혜를 얻게 된다면 두꺼운 눈구름으로 덮인 일본열도에도 햇빛이 들어올 것이다. 남북관계가 화해와 공존에서 연합과 통일을 향해 본격적으로 나아갈 2006년, 입춘에 즈음하여 다시 대보름 불놀이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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