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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그 어두운 공간의 스포트라이트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
너였다가 /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첫 공연이 오르는 10월 13일. 10월로 접어들면서부터(어쩌면 그것보다 훨씬 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은 벌써 13일에 와 있는 채로 아직 오지 않은 13일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맞이하는 모든 날들이 13일이었다가, 13일이다가, 13일일 것이었다가, 그렇게 상상 속에서 여러 번의 13일을 보내고, 이제 진짜 10월 13일 저녁 7시 30분, 드디어 대학로 게릴라 소극장의 막이 올랐다. 나는 조명실 바로 앞 맨 뒷자리에 앉아서 공연을 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날의 공연이 좋았는지 어땠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지막 장면에 ‘Moon River'가 흐르고 나서야 아, 끝이구나, 생각했다. 그저 머릿속에서는 ‘첫 공연, 정말이지 올렸구나, 올라갔구나' 라는 생각뿐이었다. 사실, 지난 여름 부산 가마골 소극장에서 첫 테이프를 끊고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를 거쳐 대학로에 왔으니 엄밀하게 따지면 첫 공연이 아니었지만, 나는 서울 태생으로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며 연극에 대한 꿈을 키워왔으므로, 내게는 내가 꿈을 꾸고 있던 대학로의 무대가 진정한 처음이었다.
자, 가만 기억을 더듬어보자. 이제까지의 내 생에 어디쯤에서 이렇게 설레고 떨리고 기뻤던가를.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없었다. 처음이다. 나는 공연이 끝나고 끝내 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울어버렸다. 내가 법관이 되길 바라던 아버지의 얼굴이며 내 앞에 서서 나를 이끌던 스승의 얼굴, 내 옆에서 나와 함께 걷던 친구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여러 감정이 범벅되어 정신이 없었던 첫 공연을 끝내고, 그 다음부터는 다소 차분해진 상태로 극장에 갔지만 내게 여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공연을 보는 내내 나는 내 앞으로 앉은 사람들, 그 사람들의 얼굴과 그 사람들이 짓는 표정과 작은 소곤거림까지 관객들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 생각했다. 작가와 연출가와 배우, ‘만드는 이들'과, 관객, 그것을 ‘소비하는 이들'을 모두 한 공간 안으로 몰아넣는 연극이 어떤 면으로는 참 잔인하기도 하다고. 바로 눈앞에서 그들의 웃음과 울음, 혹은 무반응, 나아가서는 졸음, 이런 것들을 바라보며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희일비해야 했으니까. 관객들의 반응에 단 한 점의 동요 없이 초연할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나는 유독 초조하고 예민했었다. 여러 공연장을 다니며, 혹은 스승에게서나 여기저기서 들은 바로 연극계의 어려운 현실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때와는 달리, 직접 공연을 올리며 공연을 제작하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니, 연극인들의 ‘어려운 형편'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극장 건너편에 새로 생긴 영화관에는 밤이고 낮이고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극장에 오는 관객들의 반응에 더 예민했었던 것 같다. 물론 초조한 일희일비(一喜一悲)의 또 다른 이유에는 아직 내가 어린 나이라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연극을 처음 본 것이 고등학교 2학년. 작품은 「고도를 기다리며」였고, 그 뒤로 연극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이제 스물 셋. 아직은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 서 있기에 너무 어린 나이가 아닌가. 사실 공연하는 내내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이 행운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아직 이 행운을 온전하게 껴안을 만큼 넉넉한 품이 아닌데. 그것 참, 어떻게 이렇게 되었지.' 엉거주춤이었다.
대산문화재단에서 갔던 유럽문학기행 때 런던에서 만난 황석영 선생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무조건 살아남아라!” 「울고 있는 저 여자」를 무대에 올리고 데뷔를 시켜주신 이윤택 선생도 말했었다. “극작가는 오십 명 중에 한 명꼴로 살아남는다. 살아남아라”라고. 사실, 지금 중요한 것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라는 감회가 아니라, ‘이제부터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어떻게 나아가야 무사히 끝까지 살아남는 작가가 될 것인가'하는 의지일 것이다. 혼자 즐기고 영유하던 그 어두운 공간에 고맙게도 스포트라이트가 비쳤으니 이제 그 밝아진 공간 안에서 오래도록 머물 수 있는 방법을 부지런히 모색해야 할 것이다. 부디, 살아남는 작가가 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