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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무덤들 단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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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크리스마스가 임박해지기 무섭게 벌써부터 정초 기분에 들떠 연하장 주고받기에 바쁘지만 나는 매년 그렇지 못하다. 캘린더 바꾸는 게 고작이다. 아니, 그리고 나서 바뀐 캘린더에서 설날이 며칠인가 찾는다.
금년은 새 캘린더 굵은 숫자 29 밑에 조그맣게 설날이라고 돼 있다. 나에게는 그 29일이 병술(丙戌) 원단(元旦)이다. 캘린더 첫 장을 뜯고 나서야 개띠 해를 맞게 되는 것이다.
개띠 해라 자연스레 개에 대한 여러 가지가 떠오르게 된다. 그 여러 생각들 중에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경북 선산(善山) 땅, 정확히 밝히면 해평면 산양리에 있는 개 무덤 의구총(義狗冢)과 그것이 조성되게 된 내력이다. 간단히 소개하면 그 내력은 이렇다.
지금으로부터 4백여 년 전, 그 고을에 사는 사람이 이웃 마을 잔칫집에 갔다가 돌아오다 술이 담뿍 취해 풀숲에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다. 주인을 따라갔던 개는 마냥 잠든 주인 곁을 지키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쪽에서 들불이 일어나 이쪽으로 번져 오기 시작했다. 주인이 위험에 처하게 되자 개는 할 수 없이 꽤 떨어진 냇물로 가 온몸에 물을 잔뜩 적셔 와 주인 주변의 풀밭에 뒹굴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그렇게 반복해 풀숲은 흥건하게 물에 젖었으나 개는 결국 지쳐서 죽고 말았다. 날이 새자 술과 잠에서 깨어난 그는 자기 개가 죽어 있는 것과 자기가 골아 떨어졌던 곳만이 섬처럼 불에 타지 않았을 뿐 사방이 잿더미로 변한 것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밤새 벌어졌던 아주 위급한 상황과 개가 죽게 된 까닭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슬픔에 겨워 개의 주검을 끌어안고 곡을 한 뒤 입관하여 묘까지 써 장례를 치렀다. 그 얘기가 고을 부사에게 전해졌다. 부사는 무덤에 의구총이라는 비석을 세우는 한편 무덤의 내력을 의구전(義狗傳)으로 써 남겼다.
이보다 6백여 년이나 앞선 고려 때도 이와 똑같은 일이 전북 임실군 오수면에서도 있었다. 그 오수 개의 주인은 김개인이라는 사람이었다. 확실한 장소는 모르지만 나는 충청도 어디에도, 강원도 어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를 더욱 놀래킨 것은 임어당(林語堂)의 한 에세이였다. 그 에세이 ‘중국의 개 이야기’에는 왕씨의 저작인 ‘우리의 성스러운 스승’이라는 동물 이야기책에서 인용한 다음과 같은 ‘충견의 무덤’ 이야기가 실려 있다.
중국 삼국시대에 제씨라는 사내가 우룡이인 개를 데리고 나갔다가 술이 취해 교외의 들판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 들판에 태수가 사냥을 위해 불을 질렀고…… 그 뒤 얘기는 우리나라 선산, 오수의 얘기와 전혀 다를 것이 없다. 맨 마지막도 같다. 제씨는 자기 목숨을 구한 우룡이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태수에게 탄원하여 관과 상포(喪布)를 써 사람들의 장례와 똑같이 치렀는데 지금도 중국 제남 땅에는 ‘충견의 무덤’이라 불리는 조그만 무덤이 있다는 것이다.
그 ‘충견의 무덤’과 우리의 ‘의구총’ 내력은 너무나도 똑같기 때문에 강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우연하게 동일한 실화가 국내 여기저기, 그리고 다른 나라 중국 땅에서도 있었다는 것을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대적으로 따진다면 중국 ‘충견의 무덤’이 훨씬 먼저이니 그 얘기가 또는 그 기록이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져 그것을 모방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까 우리의 것은 실화처럼 꾸며진 허구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 작업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 시대에 의롭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 그들을 교화시켜서 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었을까.
만약 그렇다고 친다면 금년 병술년, 개 해에는 어떤 개 이야기를 어떻게 실화처럼 꾸며 비석들을 전국 방방에 세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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