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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부인' 혹은 공공의 적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1954년 1월 1일부터 8월 6일까지 서울신문에 연재되어 그 당시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자유부인』은 원래 150회로 기획되었으나 215회로 늘려 연재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누렸으며, 연재가 끝나자 신문 가판이 5만 부나 줄어들었을 정도로 대중의 절대적 지지를 얻었다. 게다가 연재가 끝난 직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고 곧바로 연극과 영화로 만들어져 더욱 장안에 화제가 되었다. 특히 영화 <자유부인>은 ‘최고급품’, ‘댄스는 민주 혁명의 제 일보’, ‘자유부인’ 등의 유행어를 낳기도 했다. 위 인용문은 혼란 그 자체로 받아들여졌던 전후의 사회적 변화가 여성의 삶과 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그런 여성의 변화가 어떤 방식으로 규제되고 억압되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종호의 지적처럼 1950년대는 모든 일탈과 방종이 자유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진 무질서한 시대였다. 외간 남자와 간통하고 본 남편과 재산상 문제로 법정에까지 서게 된 ‘박부미 사건’이나 ‘쌍벌 간통 제1호 사건’ 등과 같이 여성의 경제권 요구와 새로운 성 의식이 대두하면서 일어난 사건들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면서 연일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운 것은 1955년 6월에 혼인빙자간음죄로 기소된 ‘박인수 사건’인데, 그가 2년간 댄스홀에서 만난 70여명의 여성과 관계를 가졌고 상대 여성들이 모두 규수집, 장관집 자제들과 이화여대 학생들이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순결한 여성의 정조만을 법은 수호한다”라는 말을 낳은 이 사건은 댄스홀에 가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더욱 공고히한 사건이었다. 그 당시 모든 신문들은 이 사건을 현대여성의 성의식이 타락하고 있다는 징조로 보고 여성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 강화를 제안하였다.

▲ 정비석 © 운영자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이처럼 댄스홀과 레이션 박스로 상징되는 미국문화의 급격한 유입으로 사치와 향락, 성적·도덕적 타락이 범람하는 전후의 서울을 배경으로, 서로 이질적인 것들이 마구 뒤섞인 채 교통하고 화학작용하면서 새로운 가치와 도덕률을 만들어가는 세태를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역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전후의 사회변화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는 두려움과 불안감, 거부감이 뒤섞여 있는데, 결국 그 불안과 동요는 이 소설에서도 예외 없이 여성의 성적 타락과 도덕심 붕괴, 사치와 향락, 허영을 비난함으로써 해소된다. 그런 점에서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자유부인’이라는 형상은 이러한 극적인 사회변화가 야기하는 불안감과 공포심을 해소하기 위해 선택된 희생양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유한부인들을 비꼬아 주는 뜻을 포함시켜서 아이로니컬한 제목을 붙여 보았다”는 작가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소설의 제목 ‘自由夫人’이 처음부터 ‘婦人’이 아니라 ‘夫人’으로 표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夫人은 일반적으로 남의 아내, 특히 신분이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은 사람의 아내를 지칭하는 용어로, 결혼한 모든 여성에게 적용되는 ‘婦人’이라는 단어와는 구별된다. 이러한 명명방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자유부인』은 표면적으로 “돈푼깨나 있다는 유한부인”에 대한 비판을 겨냥한 소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허영의 괴뢰’, ‘민주주의’, ‘자유와 방종’ 등의 말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소설은 단순히 이러한 방종한 유한부인들에 대한 비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봉건주의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가정적인 혼란상과 사회적인 부패상을 소설로 그려보임으로써, 참된 민주주의란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했다는 ‘작가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소설은 과도기 한국의 혼란상에 대한 공포심과 위기의식을 정치적 수사를 동원해서 드러낸다. 이는 『자유부인』 연재 당시에 불거진 논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처음에 논쟁은 당시 서울대 법대 교수였던 황산덕이 서울대학교 학보인 대학신문(1954년 3월 1일)에 소설 등장인물인 대학교수 장태연과 대학교수 부인 오선영의 행적에 대한 묘사가 현실의 대학교수에 대한 왜곡이자 모욕이라는 취지의 글을 실으면서 시작된다. 정비석은 「탈선적 시비를 駁함 - 『자유부인』 비판문을 읽고 황산덕 교수에게 드리는 말」(서울신문, 1954년 3월 11일)에서 이에 반박한다. 이 글에서 작가는 반박의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는데, 첫째는 『자유부인』을 “아직 읽어본 일도 없으면서” 뜬소문에 의하여 “스토리만 안다”는 정도로 비난을 퍼부었다는 점(특히 황산덕은 미군 부대 영문 타이피스트인 박은미를 양공주로 잘못 알고 있다는 점을 지적함), 둘째는 유명해지기 위해 작품을 쓴다는 비난에 대한 반박, 셋째는 감정적 흥분으로 일관된 비난이라는 점이다.

황산덕은 이에 대해 「다시 『자유부인』 작가에게 - 항의에 대한 답변」(서울신문, 1954년 3월 14일)이라는 글로 재반박을 한다. 이 글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성욕 자체, 성적 흥분을 돋구는 표현은 문학이 될 수 없으므로”, “귀하의 『자유부인』은 단연코 문학작품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뒤이어 황산덕은 그렇기 때문에 『자유부인』은 “야비한 인기욕에만 사로잡히어 저속 유치한 에로작문을 희롱하는 문화의 적이요 문화의 파괴자요, 중공군 50만 명에 해당하는 조국의 적이 아닐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후 논쟁은 변호사 홍순화의 『자유부인』 옹호(「『자유부인』 작가를 변호함 - “다시 『자유부인』 작가에게”를 읽고」, 서울신문, 1954년 3월 15일)로 잠시 일단락되다가, 백철의 「문학과 사회와의 관계 - 『자유부인』 논의와 관련하여」(대학신문, 1954년 3월 29일)에서 문학성과 통속성이라는 새로운 문제로 나아가게 된다.

이 논쟁 과정에서 흥미로운 점은 정비석에 대한 황산덕 교수의 비난이 공산주의에 대한 정치적 비난의 수사를 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비석에 대해 “스탈린의 흉내를 내”는 작가라거나 “중공군 50만 명에 해당하는 조국의 적”이라고 비난하는데, 공산주의를 최대의 적으로 상정하는 이러한 수사법은 사실 황산덕 교수만의 것은 아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수사법이 방종한 유한부인을 비난하는 작가 정비석의 어법과 그대로 일치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작가는 오선영의 타락을 곧잘 ‘공산 침략’과 동일시하거나 그녀가 남편에게 취직승낙을 받아내기 위해 세우는 전략을 “공산당 이상으로 무자비한 일”로 묘사한다. 아울러 “육·이오 사변 때에” “급조공산주의자”들 중 “가장 무서운 존재가 여성 동무들”이었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그러나 공산주의만이 거부의 대상은 아니었다. 소설은 자유부인들의 방종을 “민주혁명의 시대풍”이라고 표현하는 등, 전통적인 도덕적 가치관과 윤리의식을 내버리는 여성들을 비난하기 위해 곧잘 ‘민주주의 시대’를 부정적으로 들먹인다. 즉 소설은 여성의 타락을 완전히 상반된 두 가지 정치이념(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을 동원하여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전쟁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당시 공산주의가 극단적 비난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었던 것이나 민주주의가 ‘아메리카니즘’으로 통칭되는 미국문화의 하나로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정치적 혼란의 원인으로 지목된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곧바로 여성에 대한 비난의 수사법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실폭로가 문학인가 아닌가, 혹은 작품의 모럴과 비평의 모럴은 무엇인가, 문학성이냐 통속성이냐의 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자유부인』 논쟁은 사실 ‘자유부인’이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는 사회정치적 수사의 젠더 정치학을 파악하지 못한 매우 부차적인 것에 불과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작가의 탁월한 세태 감각을 보여주는 대목은 단순히 ‘땐스열풍’이나 계모임 같은 시대풍조를 포착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러한 시대 풍조를 통해 사회정치적 난맥상을 드러내고 그러한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자유부인’을 공공의 적으로 설정하는 감각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