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택  © 운영자

 

그동안 쓴 시에서 ‘나의 삶 나의 문학’이 어느 정도 드러났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을 다시 산문으로 풀어 이야기하자니 무슨 말을 덧붙여야할지 난감하다. 나에게 시 쓰기의 시작은 나 자신을 견디는 것, 내 삶을 견디는 것, 삶이 내 육체에 부과한 짐을 어디에 어떻게 놓을 것인가를 전전긍긍하는 데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야기를 말로 다 하는 것은 그다지 내키는 일이 아니지만 시에서는 자연스럽게 다 이야기하게 된다. 그 이유는 시에는 적어도 그것을 우회적으로, 효과적으로 감추면서 드러내 주는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나를 압박하고 괴롭히는 삶이 내 안에 있을 때는 얼른 몸 밖으로 내던지고 싶은 것, 무겁고 뜨겁고 힘든 것이 되지만, 작품 속에 던져 놓으면 견딜 만한 것, 아무 것도 아니거나 우스꽝스러운 것, 때로는 매우 재미있기까지 한 것이 된다.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을 때는 두려운 대상이지만, 알고 보면 대단치 않은 것이다. 작품 속에 드러난 나는 내가 아니거나 제3자 또는 사물이기나 한 것처럼 나와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그러면 나는 나 자신을 소가 닭 보듯 하는 여유를 갖게 된다. 별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나의 삶이 시를 통해 어쩔 수 없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그것은 우회적으로 드러내기, 효과적으로 감추면서 드러내기이므로 나는 내 삶의 보잘 것 없음, 증오스러움, 더러움 따위가 드러났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슬퍼하거나 수치스러워 하거나 시와 내가 서로 얼굴을 붉혀야 할 까닭이 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시 쓰는 일은 내게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시 쓰는 즐거움의 많은 부분은 오히려 삶의 부정적인 감정이나 정서가 긍정적인 에너지로 역전되는 데서 온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삶의 과정이 부정적일수록 더 강렬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산문으로 쓰는 것은 다르다. 산문은 시를 통해 드러난 나의 삶이 불충분하므로 보다 보충적으로 더 진술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나는 삶의 부정적인 내용을 에너지로 만들어 그것과 더불어 노는 것에 이끌려 글을 써왔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글쓰기는 부담을 갖게 된다.
이미 다른 지면에서 나는 내 등단작을 보며 왜 그런 작품이 나오게 되었는가를 시를 쓰게 된 동기와 관련하여 밝힌 바 있다.

이 등단작(「꼽추」)을 다시 보며 습작기를 돌이켜 보면, 내 시는 나 자신에 대한 증오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습작기의 나는 육체적으로 매우 열등하고, 환경적으로도 보잘 것 없을 뿐만 아니라 앞날은 캄캄했고, 어느 곳을 돌아보아도 기댈 곳이 없었고, 그것을 헤쳐가기에 내 자신이 너무 무능해 보였고, 소심하고 겁 많은 성격이었으며, 나의 몇몇 사소한 약점이나 버릇은 나에게 견디기 힘든 치욕감을 주기도 하였다.
나에게 일방적으로 주어진 이 육체라는 치욕스러운 물건을 가지고 나는 먹고 살면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켜내야만 했다. 이것을 견디기 위해 상상 속에서 나 자신을 더욱 견디기 힘든 상황으로 몰아넣곤 하였다. 내 나약한 성격에게 어떠한 상황에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하였다. 내 몸이 견뎌낼 수 없는, 그러나 반드시 견뎌내야 하는, 극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상상하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시가 이러한 작업을 하는데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발견했을지 모른다. 시는 직접적으로 나를 드러내지 않고도 어떤 극한 상황에도 처하게 할 수 있었고, 스스로 부과한 폭력과 수치를 남을 엿보듯이 즐기면서 견디게 해 주었을 것이다. 시는 이러한 작업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매우 흥미 있는 도구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시 쓰기의 매력에 빠져든 것은 내 삶의 불구성을 ‘놀이’로 바꿈으로써 얻어지는 통쾌한 체험 때문이었던 셈이다. 삶의 불구성이란 습작을 막 시작하던 20살 무렵의 내가 본 내 모습이다. 그때 나는 왜소한 외모에 지극히 내성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고, 부모 없이 성장했던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경험을 삶의 내용으로 갖고 있었으며, 공장에서 일하며 경제적으로 자립해야만 하는 처지에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은 정상적으로 사회에 적응하여 살기 힘든 것이었고, 나약한 마음은 삶의 부적응에서 오는 모든 중압감을 다 감당해야 했다. 등단 초기에 어느 지면에서 나는 이런 왜소한 몸으로 사회에 적응하며 살던 모습을 이렇게 적었다.
저울 위에서 내 몸무게는 힘을 쓰지 못한다. 내 살과 뼈와 피와 오물이 내리 누르는 숫자는 슬프다. 발끝에 힘을 주면 바늘은 잠시 오를 것 같다가 못갈 데를 간 것처럼 서둘러 제 자리로 돌아와 바르르 떤다.
그러나 저울이 아무리 내 몸무게가 가볍다고 주장해도 내 체감 체중은 저울 위의 그것보다 무겁다. 살 위에 가슴 속에 머리통 속에 더께로 앉은, 저울 바늘이 잡아내지 못하는 무게 때문이다. 그래서 내 발걸음은 무겁다. 마치 몸무게가 모두 발로 내려온 것처럼 걸음걸이는 힘이 든다. 걷다 보면 머리는 어느 새 땅을 보고 있다. 그 몸무게에 눌려 허파에서 나오는 바람은 제법 강하다. 그 무게를 견뎌내는 허파가 풍선처럼 불안하다. 버스 좌석이나 의자나 방석에 앉으려고 하면 그 무게는 입구가 터진 쌀부대처럼 풀썩 무너진다.

그런 상황에서 시 쓰기는 내가 무엇보다도 쉽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아무데서나 혼자서 할 수 있는 편리한 것이었다. 그것은 현실의 삶과는 다른 이상한 현실을 체험하게 하였다. 삶을 견디는 수단이 일이나 돈이나 공부 같은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뜬 구름보다도 더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몽상이나 상상력 따위라는 것은 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 삶에서는 꽤 매력적인 것이었다. 습작의 시작이 이러했기 때문에 초기의 내 시는 내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배설하듯이 격렬하게 쏟아내는 것이었다. 그것은 적어도 후련하기는 했다. 그러나 배설물이 그러하듯이 쏟아내는 과정은 시원했지만 쏟아져 나온 것들은 참담했다. 그러므로 습작이 거듭될수록 내 시가 감상에 빠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부정적인 감정이나 정서에 대해 엄격하게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그렇게 하는 것이 나의 삶을 견디는데 더욱 효과적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정적인 삶의 체험이 좋은 시를 쓰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적어도 좋은 시를 쓰기 위한 강력한 에너지를 제공한다.
이후의 나의 시 쓰기는 20년간이나 지속된 ‘사무원’ 생활과 동행하게 된다. 잠자고 일어나면 발이 알아서 출근시켜 주고 일이 끝나면 시계가 알아서 퇴근시켜 주는, 습관의 자동성에 의해 지탱된 오랜 반복의 생활 속에서, 어떻게 시가 나왔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시집 『소』의 「시인의 말」에서 고백했듯이 “너무 건조해서 불면 먼지가 날 것 같은 머리와 가슴, 도저히 시가 나올 것 같지 않은 그곳에서 그래도 시가 나오는 이유는 끊임없이 몸을 물고 늘어지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며 “지루하고 답답한 삶의 압력이 강제로 상상력을 분출시키기 때문“이라고 다시 말할 수밖에는 없다. 다만, 나의 불구성을 상상력을 통해 견딜만하고 놀만한 것으로 변형시킨 체험은 이후로도 계속 내 시에 남아, 내 더듬이로 하여금 내 생활이나 몸이나 주변 사람들이나 동물이나 사회제도 속에서 끊임없이 불구성을 찾아다니게 했던 것 같다. 내 시는 그 불구성을 놀이로 변형시키는 재미뿐만 아니라, 그 불구성의 원천인 몸과 생명에 대해 신기해하면서, 어린 아이의 호기심으로 그 주변을 지속적으로 기웃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