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대산문화
 
성녀, 걷다
 
 편집자 주) 『대산문화』에서는 이번호부터 기존의 ‘짧은 이야기 혹은 콩트’를 ‘SF콩트’로 개편해 수록한다. SF소설가 겸 영화평론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듀나가 1년간 이 코너를 맡아 콩트를 연재할 계획이다. 



  K시에는 주민들이 그냥 ‘성녀’라는 별명을 부르는 동상이 있다. 몇몇 가설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가톨릭 성녀를 묘사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동상의 주인공이 아니라 그 재질과 위치, 자세이다.

  일단 재질을 살펴보기로 하자. ‘K시의 성녀’의 표면은 평범한 동상들과는 달리 자잘한 사슬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이음새가 아주 정교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떨어져서 보면 표면은 그냥 매끈해 보인다. 단지 치마 끝을 구성하는 부분의 색이 조금 달라 보이는데, 그건 1944년 이 마을을 침공한 소련군의 탱크가 치마 끝을 밟아 부수었기 때문이다. 1952년 전문가들이 치맛단을 복원하긴 했지만 완벽한 대체물을 만드는 데엔 실패했다.

  재질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위치와 자세이다. K시의 성녀는 단 위에 서 있거나 앉아 있는 게 아니라 걷고 있다. 그것도 시청 광장으로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 한 가운데에. 이 자전거 도로는 1977년에 완공되었고 (기록에 따르면) 성녀는 1524년에 제작되었으므로 뭔가 잘못되었음이 분명하다.

  성녀 주변을 둘러보면 더 재미있는 것들이 발견된다. 작고 나지막한 하얀 나무 울타리가 성녀의 주변을 감싸고 있고 그 옆에는 ‘성녀는 산책중’이라는 경고문이 쓰인 안내판이 서 있다. 그 옆에는 마치 록스타를 둘러싼 팬들처럼 ‘사랑해요!’나 ‘내 이름은 아무개예요!’라고 쓰인 플래카드들이 세워져 있거나 걸려 있다. 꽃들도 꽤 많은데, 눈썰미가 좋은 사람들은 그 꽃들이 모두 조화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것이다.

  K시에서 배포하는 팸플릿인 ‘성녀의 전설’에 따르면 이 조각상은 K시에서 평생을 보냈던 연금술사이자 조각가인 H.v.C.라는 남자의 작품이다. 직업과 이름, 공방의 위치를 제외하면 이 남자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그의 유일한 업적은 성녀이다.

  성녀의 존재는 H.v.C.가 사망한지 5개월 뒤에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H.v.C.가 죽자 그의 공방은 그의 딸과 사위에게로 넘어갔는데, 사위는 한 동안 공방 구석에 박혀 있던 이 실물크기 두 배의 동상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장례식이 끝난 뒤 5개월 뒤에 우연히 공방을 들른 사위가 동상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그 동상이 특별하다는 사실을 몰랐다. 장례식 때엔 분명히 구석에 서 있던 동상이 바로 문 앞에서 서서 상체를 구부리고 문손잡이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사위는 처음엔 이게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상은 단순히 위치만 바뀐 게 아니었다. 자세와 표정도 달랐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누군가가 처음 것을 훔치고 아주 비슷하게 생겼지만 자세가 다른 동상을 만들어 두고 갔거나 동상이 진짜로 움직이거나. 사위는 후자가 더 이치에 맞다고 생각했다.

  사위는 매일 공방을 들르면서 동상을 관찰했다. 그의 추측이 옳았다. 동상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앞으로 내밀어진 손은 곧 문손잡이를 잡았고 서서히 손잡이를 비틀었으며 결국 문을 잡아당겼다. 그러는 동안 동상의 양 발은 스케이트를 타듯 조심스럽게 균형을 잡으며 바닥을 미끄러져 갔다. 한 달이 지나자 동상은 문을 열고 공방을 나섰다.

  여러분은 아마도 성녀의 존재를 알아차린 우매하고 어리석은 K시의 시민들이 공포에 질려 온갖 소란을 떨었을 거라고 상상할 텐데, 실제로 있었던 일은 소란과는 거리가 멀었다. K시는 시계와 기계 장난감들로 유명한 곳이었다. K시의 시민들은 성녀가 초자연적인 괴물이 아니라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자동 기계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H.v.C.의 재능을 예찬하고 여전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성녀에게 길을 비켜주었다.

  문을 열고 공방을 벗어난 성녀는 한 달에 한 걸음을 내디디며(정확히 말해 미끄러져 가며) 천천히 걸었다. 2년이 지나자 동상은 공방이 있던 거리에서 벗어났고, 10년이 지나자 운하에 도달했으며, 1세기가 지나자 도시의 중심가에 접어들었다. 

  K시 사람들은 성녀를 사랑했다. 그들은 성녀의 아름다움과 운하나 건물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꿈꾸는 듯한 표정에 매료되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가끔 성녀가 길을 건너기 위해 몇 개월 동안 큰 길의 교통을 막아도 이해했다. 불편해도 그들은 억지로 성녀의 위치를 바꾸지는 않았다. 망가질까봐 두려웠고 성녀에게 혼란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녀가 걷는 동안, 성녀에 대한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의 의견은 조금씩 바뀌었다. 18세기까지 사람들은 성녀를 정교한 톱니바퀴들의 조합으로 움직이는 자동기계로 이해했다. 하지만 19세기에 열역학과 에너지 보존법칙이 알려지자, 성녀의 움직임이 그렇게 쉽게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단순한 태엽장치 기계가 성녀처럼 수세기 동안 멈추지 않고 움직일 수는 없는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자 과학자들은 성녀가 단순한 자동기계가 아니라 주변과 상호작용을 하는 생각하는 기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성녀는 단순히 걷는 게 아니었다. 장애물을 만나면 방향을 바꾸었고 새로운 것을 만나면 시선을 돌렸으며 가끔 만지려고 손을 내밀었다. H.v.C.가 이 모든 행동을 사전에 프로그래밍했다고 보긴 어려웠다. 그가 죽은 뒤로 K시의 지리와 환경은 꾸준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성녀의 구조를 밝히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지만 성공할 수 없었다. 성녀를 분해할 수는 없었다. 내부 역시 들여다보기 힘들었다. 참고자료가 될 만한 H.v.C.의 다른 기계들은 남아있지 않았다. 설계도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온갖 이론을 만들었지만 알려진 중세 과학과 그들의 이론을 결합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성녀와 대화를 시도했다. 18세기에 그들은 알파벳이 적힌 나무판을 성녀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세워놓았다. 19세기에 그들은 일종의 그림 사전을 만들어 같은 자리에 놓았다. 1879년, 성녀가 왼손 검지로 아기의 그림이 그려진 부분을 가리켰을 때 사람들은 열광했다. 과연 성녀가 그 그림을 이해했을까? 과연 그 동상에게 아기 그림과 ‘아기’라는 단어를 결합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을까?

  성녀는 걷는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이 흘러갔다가 스러져가는 동안에도 성녀는 걸었다. K시의 시민들은 종종 일어나는 폭격과 난동으로부터 성녀를 보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엔 폭격을 막기 위해 철제 보호 상자를 씌우기도 했다. 그 상자는 1943년 가을에 탱크 재료로 재활용되기 위해 벗겨졌고 그 때문에 소련군의 탱크는 성공적으로 성녀의 치맛단을 밟을 수 있었다.

  성녀는 지금까지 도시 밖에서 481년을 보냈다. 그러나 그건 인간의 달력으로 계산한다면 그렇다는 거다. 성녀의 관점에서 보면 한 달은 1초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성녀에겐 지금까지 겨우 한 시간 반 정도밖에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성녀는 낮과 밤이 형광등처럼 껌뻑이며 흐릿한 회색을 만들어내는 이 텅 빈 침묵의 도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녀를 아끼고 사랑하며 꾸준히 대화를 시도하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이웃인 인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녀는 우리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을까? 그녀는 외로울까? 혹시 같은 시간의 흐름을 공유하는 동료를 원하지는 않을까?

  마지막 소원이 사실이라면 그건 곧 이루어질 것 같다. 최근 들어 내 친구인 조각가 M.B.가 얼마 전에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시청에 제출했다. 시청이 승인한다면 그는 성녀와 똑같이 생긴 두 번째 조각상을 만들어 성녀 옆에 세울 것이다. 물론 우린 성녀의 구조에 대해 아직 모르므로 그 조각상은 텅 빈 금속 인형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모자라는 기술은 우리가 채워 넣으면 된다. 두 번째 인형은 전문 애니메이터들에 의해 조금씩 움직이며 성녀에게 우리의 대변인 역할을 해줄 것이다.

  과연 우린 성녀에게 우리가 사는 미친 세계의 정체를 설명해줄 수 있을까? 성녀는 우리가 만든 새 동반자를 받아들일까? 과연 성녀는 우리에게 그녀의 창조주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만약 알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그건 수 세기 뒤의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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