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카프카가 사는 영혼의 도서관으로 이사를 가다- 『때론 아내의 방에 나와 닮은 도둑이 든다』 |
| |
도서관에서 죽은 자를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서재에서 죽은 자의 영혼과 밤새 혼인을 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서재는 말 많은 자들의 공동묘지. 어느 날, 햇살 가득한 서재에서 샤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보면서 깔깔거릴 수도 있고, 카프카의 『변신』을 발가락 사이에 넣어 빙빙 돌릴 수도 있다. 책은 죽은 자의 입 냄새로 가득한 무덤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던가.
나는 아직 살아 있고, 그래서 내 책이 낯설었다.
첫 소설집을 내놓고 좌불안석이었다. 뜻대로 형상화 되지 못한 소설 속 영혼들이 서점을 배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팔이 하나 없거나 머리가 없는 그들이 서점을 배회하다가 산 자의 팔과 목을 잘라 먹지나 않을까, 혹 중편소설 「움직이는 모래」에 등장하는 모래귀신이 서점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어쩌나, 그러다가 애꿎은 어느 독자의 몸을 빌려 도심으로 다 나가버리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그래서 자주 서점에 나가서 누워 있는 『때론 아내의 방에 나와 닮은 도둑이 든다』를 툭툭 때려 봤다. 시간이 지날수록 쪽수가 줄어드는 기이한 현상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병든 책이 보이면 집으로 가져왔다. 그 책을 깨끗이 수선해서 서재에 꽂아 놓고는 서점에 서서 이 책을 열람했을 사람들을 떠올려 보곤 했다. 사자(死者)의 언어로 기술된 책이라고 관 뚜껑을 열어보니 죽은 척 하는 멀쩡한 어느 소설가를 보고 얼른 관을 덮었을 수도 있을 것이고, 치정에 얽힌 사람이거나 내 책이 자신의 삶에 무용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책을 병들게 할 수도 있었다.
캄캄한, 내 지난 시간들이 봉인된 책 속을 들락거렸을 사람들에게 죄스러웠다. 그들에게 감동이 없는 이야기를 괜히 지루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또 내 삶이 이토록 지루한 것인지 조용히 후회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씩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지 죽은 자들이 사는 서재에 달라붙어 고민을 했다. 쉬지 않고 탐독했고, 까맣게 속이 타들어 간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수천 킬로미터 아래에서 퍼 온 천연가스가 내 방을 데우듯, 몸 깊은 곳에서부터 까맣게 그을린 그 뭔가에서 시추한 글이 독자의 가슴을 데울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덜컥, 겁부터 났다.
그 후, 일상은 아무런 긴장감 없이 평평하게 흘러갔다.
내 책이 로브그리에와 등을 맞대면 다소 무거워질 것 같다는 생각, 카프카 보다는 아래에 둬야 한다는 생각, 최인훈 선생보다는 두 칸 아래, 최수철 선생보다는 한 칸 아래, 『강아지 이름 짓는 법』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책과 『때론 아내의 방에 나와 닮은 도둑이 든다』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었다.
이런 약간의 불안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감흥이 없는 날들이 계속 되었다.
간간이 후배들이 전화를 걸어 다음 책을 묻기도 했다. 나는 후배들에게 내 삶은 늘 평온하고 또 늘 불안한데, 이 모든 게 책으로 제본이 되고 보니 참으로 일목요연하다며 다소 빈둥거리기도 했다.
최근 다시 부지런히 글을 쓰고 있다. 『때론 아내의 방에 나와 닮은 도둑이 든다』가 내 자신의 질긴 속앓이었다면 이번에는 나와 타인과의 관계를 위주로 소설을 쓸 생각이다. 내 안에 나는 새로 해 넣은 이처럼 조금은 들떠 있었지만 최근 그나마 자리를 잡아 가고, 이제 할 일은 타인의 몸속에 박혀 있는 ‘나’라는 인물에 대해, 그리고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한 인간의 삶을 그리고 싶다. 그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지. 그 사람의 기억에서 내가 사라지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인지.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 문신을 하는 것인지. 문신도 기억도 하지 않았는데 사랑은 어떻게 인간의 뇌리에 박혀 부들거리는지를 소설로 밝혀 보고 싶다.
이 역시 소설이 다소 무겁고 진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쓰고 싶은 소설을 쓰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최면을 건다.
※ 『때론 아내의 방에 나와 닮은 도둑이 든다』는 재단의 대산창작기금을 받아 2005년 랜덤하우스중앙에서 출간되었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