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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청소년연극제의 현황과 나아갈 길

  우리나라에는 국무총리실 산하의 청소년위원회 등 청소년 관련 정부기구도 있고 여러 가지 청소년들만을 위한 보호교육 관련행사들이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청소년 수련원이라는 집까지 여러 지역에 있을 정도로 그들에 대한 배려가 적잖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나라의 미래를 좌우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특별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여러 가지 행사들 중에는 스포츠 다음으로 문화예술 관련 행사가 많다고 본다. 문화예술 관련 행사는 대체로 문학, 음악, 미술 등 중등학교 교육과정에 들어있는 커리큘럼에 국한되어 있고 다른 분야에는 인색한 편이었다. 그러다가 근자에 와서 연극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몇 군데 대학과 지역에서 청소년연극제를 시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소규모에 그치고 있었고 전국의 청소년들에게까지 영향이나 관심을 불러일으킬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1997년에 전국 규모의 청소년연극제가 생겨남으로써 그동안 부분적으로 시행되어오던 각 지역행사가 하나로 통합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각 지역행사가 하나로 통합될 수 있었느냐는 것인데, 이는 아무래도 민관이 일체가 되어 대단히 순수한 목적을 띠고 출범한데 따른 것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각계로부터 존경받아 온 우량기업이 앞장서고 한국연극협회가 실무를 담당하며 정부의 여러 기관이 후원해주는 체제로 나아간데 따른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결정적으로는 교보생명주식회사라는 훌륭한 기업이 전적으로 재정적 뒷받침을 해줌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교보생명의 창립정신 중 하나가 ‘국민교육 진흥’인데 이는 청소년연극제의 취지와도 직결되는 것이다. 이는 연극제의 일곱 가지 목적 중에 네 가지가 순전히 고등학생들의 인성 및 문예교육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도 잘 나타난다.

  몇 가지만 예를 들면 첫째로 ‘고등학교 학생들의 인성교육과 전인교육에 기여하고 이들의 창의성과 문화적 소양을 길러준다.’ 둘째, ‘연극을 통해 고등학생들의 표현력, 발표력, 행동예절, 협동심, 성취감, 타인에 대한 이해능력 등을 키운다.’ 셋째, ‘참가 학생과 관람 학생들 및 일반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이들의 정서 함양에 기여한다.’ 넷째, ‘청소년 예술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등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중등학생들의 전인교육이라는 청소년연극제의 시행취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는 교육행사의 일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말은 청소년연극제가 민간보다는 국가가 맡아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최 측을 보면 재정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민간기업(교보생명)과 공연장을 내주는 정부산하 특별법인(예술의전당), 그리고 공연행사의 손발이 되어주는 사단법인(한국연극협회)으로 삼원화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교육인적자원부와 문화관광부 등 2개 정부부처가 후원이라는 명목으로 한발 들여놓은 정도고, 9회 때부터 총리실산하 청소년위원회가 후원부처로 가담한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꽤나 광범위하고 든든해 보이지만 솔직히 교보생명이 손을 떼면 이 행사는 하루아침에 없어질 수 있는 모래성과 같은 것이다. 어느 누구도 재정을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곧 이 연극제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서 출발했고, 또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물론 우리 사회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교보생명이 청소년연극제를 절대로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확신하고는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 연극제를 국가가 맡아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윤을 목적으로 삼는 기업이 그 이윤의 사회 환원을 위해서 만든 문화재단이라 하더라도 국가가 할 일까지 도맡아서 언제까지 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여하튼 어렵사리 출범한 청소년연극제가 1997년에 첫 발을 내딛으면서 여러 가지 장애에 부딪혔다. 그 첫 번째 문제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남아있는 연극문화에 대한 사시였다. 그러니까 상당수 학교들에서 학생들의 연극 활동을 도외시했다는 이야기다. 연극은 천한 것이라는 전통사회의 인식이 보수적인 교장, 교감 등 간부급 교육자들에게 남아 있어서 학생들의 자발적인 연극 활동마저 억제한 것이었다. 두 번째로는 입시교육이 그동안 학교분위기를 워낙 경직화시켜 놓았기 때문에 상당한 준비시간을 필요로 하고 많은 학생들이 동원되어야 하는 연극 활동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세 번째로는 각급 학교에 연극을 지도할만한 교사가 국소한 점이었다. 네 번째로는 지방 도시의 연극협회에 청소년연극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연극지도자가 드문 것도 문제였다.

  이상과 같은 악조건 속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 규모의 청소년연극제가 9년 전에 일단 팡파르를 울렸다. 주최 측에서는 우선 지도교사들의 연극교육도 함께 진행시켰는데 호응은 괜찮은 편이었다. 다행히 지역예선 과정에서 경기, 강원, 부산, 광주, 충북, 대구, 전남, 경북 등 8개 지역은 그 동안 나름대로 소규모로나마 청소년연극제를 해왔기 때문에 준비가 수월했지만 나머지 8개 시도 지역은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어서 소홀한 면도 없지 않았다. 그 결과 첫 해에는 전국의 1,800여개 고등학교들 중에서 140개교만이 지역 예선에 참가하여 16개 학교가 본선대회를 치를 수가 있었다.

  첫 해에 나타난 문제점은 대체로 세 가지였다. 첫 째로 지역 간의 격차가 너무 컸다는 점이다. 연극을 조금 하는 지도교사가 있는 학교와 그렇지 못한 학교간의 차이는 천양지차였다. 두 번째로는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남녀공학이 적어서 여학생들이 남자 역을 해야 했고, 반대로 남학생들이 여자 역을 해야 하는 한계가 그것이다. 세 번째로는 인문계 고등학교 보다는 실업계학교들이 주였고 남학교들보다는 여학교들이 주였다는 점이다. 이는 순전히 입시위주 교육 현실에 따른 것으로 볼 수가 있다. 네 번째로는 가장 큰 문제라고 볼 수도 있는 것으로서 학생들이 소화할만한 희곡이 희소한 것이었다. 따라서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는데, 가령 윤대성이 20여 년 전에 써서 동랑레퍼토리 극단에서 공연했던 청소년드라마 「방황하는 별들」과 「꿈꾸는 별들」이 본선 작품의 과반을 차지하는 기현상이 야기된 것이었다.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경연대회에서 똑같은 희곡이 과반을 차지하는데서 오는 시상문제와 연극축제의 단조로움, 그리고 시대급변과 학교환경의 변화를 따르지 못한 윤대성의 희곡이 연극제의 활기를 죽였던 것이다. 그래서 제2회 때부터는 학생들이 공연할 만한 희곡을 골라서 희곡집을 만들어 각 학교에 배포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이듬해부터는 똑같은 작품이 본선에 올라오는 경우가 크게 줄어들었다. 그만큼 그동안 우리나라 극작가들이 청소년들을 위한 희곡을 거의 쓰지 않았음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앞으로의 과제로 남는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희곡집 배포가 긍정적 효과만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너무 작품선택의 폭이 좁은데다가 지도교사나 학생들의 창의성을 죽일 가능성이 있었으며 연극제가 획일적으로 흐를 가능성마저 없지 않아서 희곡집 배포를 곧바로 중단했다. 그 결과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이 다양화되어 갔으며 지도교사의 창작이나 교사와 학생들이 공동 창작한 새 작품들도 하나 둘씩 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참가 학교가 증가해 갔는데, 그동안의 통계를 살펴보면 1998년도에 187개교, 1999년도에 204개교, 2004년도에 213개교, 2005년도에 219개교가 참가한 것이다. 3,000여개교가 참가한다는 일본과 많이 차이가 나는데, 한국은 전체 학교의 9분의1 정도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일본과 비해서 우리나라가 부진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첫째는 이 행사가 국가행사가 아니라는 점과 한 기업에서 지불하는 예산의 한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청소년연극제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부족 등에 따른 것으로 압축해 볼 수가 있지 않을까 싶다.

  가령 현재의 소극적인 후원을 넘어 국가가 이 연극제를 앞장서서 개최한다면 참여를 안 할 학교가 있겠는가? 고루한 사고를 가진 학교장들조차 가담할 것임은 명약관화할 것이다. 그만큼 정부나 각 학교들은 연극이 청소년들의 전인교육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이다. 그런 인식이 없기는 대중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는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에서는 대표적인 공영방송인 NHK가 나서서 홍보도 해주고 작품방영까지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한국에서는 어림도 없다. 주요 신문들은 거의 외면하고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 방송들도 마찬가지이다. 하다못해 교육방송조차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교육방송은 딱 한번 참여하고는 등을 돌린 것이다. 아마도 수익성이 없어서인 것 같다. 현재 지상파 방송들 중에서 SBS가 연극제 기간 동안 스팟을 내보내주는데 그것도 상업방송인만큼 광고료를 지불해줘야 한다.

  다음으로는 예산문제와 관련된 것인 바, 기업의 문화재단에서 매년 2억2천만 원 이상 재정지원을 해준다는 것은 너무나 고마운 일인데 하물며 더 이상 요구한다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지자체나 학교 자체의 재정지원 없이 대산문화재단의 지원만으로 200여 개 이상의 학교를 참가토록 하는 것은 무리라는 점이다. 실제로 지방에서는 더 많은 학교들이 참가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떤 지방에서는 고육지책으로서 선착순으로 몇 개 학교만 예선을 치르도록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만약에 참가를 제한하지 않을 경우 한 지역에서 수십 개 학교들이 참여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예선 기간이 늘어나는 데 따르는 극장 문제라든가 심사비용 등 예산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바로 그런 점 등으로 인하여 현재의 연극제 틀로서는 더 이상의 확대 같은 것은 생각할 수 없다고 본다.

  이처럼 여러 가지 제약조건 하에서 진행된 연극제가 시간이 흐르면서 일단 자리가 잡혀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초기에는 중앙보다는 지방에서 더욱 열성적이었고 수상자들도 지방의 여학교와 여학생들이 거의 독차지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중앙의 이름 있는 학교들이 대상이나 차상을 받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후원단체의 하나인 한국대학연극학과교수협의회의 협조이다. 이 단체는 청소년연극제를 활성화시키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는데, 가령 수상학생들을 여러 대학 연극학과에서 특기생으로 입학시킴으로써 지방 학생들이 입학하기 어려운 명문대학을 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는 결정적으로 학생들을 자극함으로써 재능 있는 학생들로 하여금 열정적으로 연극제에 참여케 만든 것이다. 사실 청소년연극제가 있기 전까지는 지방학교 학생들이 서울의 명문대학 연극학과에 입학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연극제에서 상을 받은 학생들이 쉽게 희망학과에 입학을 했고, 이것은 학생들의 참여열기를 높였으며 장기적으로는 여러 지역에서의 고른 인재발굴과 함께 예술의 균형발전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얻을 수가 있게 되었다. 즉 매년 연극제 수상자 26명 중 15～20명 정도가 연극학과에 진학함으로써 이 연극제가 학생들에게는 거의 ‘꿈의 무대’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도 우수한 학생들은 법학, 경영학 등 사회과학이나 의학 등에 몰리고 주로 여학생들이 예술분야를 선호하는 경향에 따라 연극제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 역시 여학생들이 대부분이다. 9회 동안 예선과 본선에서 여학교가 언제나 과반을 차지하는 것이 그 단적인 예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금년만 하더라도 본선에 오른 18개 학교들 중 여학교가 11개나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학교들도 여러 학교가 남녀공학이므로 청소년 연극제는 여학생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오늘날 세계에서 여성들의 파워가 거세지고 있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자연스런 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연극배우 희망자들이 어느 한쪽 성(性)에 편중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서두에서 언급한 바 있는 것처럼 청소년연극제는 배우를 키워내는데 목적이 있기보다는 전인교육에 궁극적 목표가 있는 것이고 부수적으로 미래의 연극인을 양성하고 연극의 저변을 넓혀보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사실 학생 시절 한 편의 작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희곡 분석을 통하여 문학 공부가 되는 것이고, 공동작업을 통하여서는 협동심을 기를 수 있으며 작품 완성을 통하여 성취감을 맛 볼 수 있어서 교육적 효과는 대단히 큰 것이다. 그래서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초중등학교에서 연극을 정규 커리큘럼으로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부분적으로나마 중등학교에서 연극을 학과목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서 고무적이다.

  여하튼 청소년연극제가 실시되면서 각급 학교들의 과외 활동이 활성화되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입시 위주 교육으로 인하여 메말라진 학교에 낭만적 정서가 스며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해마다 열성적인 교장들과 지도교사들이 증가하고 있음도 실감할 수가 있다. 어느 학교는 직접 교장이 학생들을 인솔하고 극장에 오기도 하며 뒤에서 보이지 않게 격려해주는 학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청소년연극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고무적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나 청소년연극제는 지금보다 발전적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는 점은 이미 말한 바 있거니와 사단법인 한국연극협회가 조직과 인력을 도맡고 있는 것도 한계가 있다. 대체로 지방연극인들은 연극 외의 생업을 갖고 있다. 많은 비용이 드는 지방 예선대회를 그들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바로 그 점에서 청소년연극제는 별도의 기동성 있는 특별 전담기구를 설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특별 전담기구에서 지도교사들의 연극교육과 기획홍보 등 행정 및 각 지방의 예선대회는 물론이고 본선대회까지 총괄하게끔 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러려면 이 특별 기구를 지탱할 예산이 필요하다. 이 예산은 당연히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청소년연극제가 내년에 10주년을 맞아서는 발전적으로 크게 탈바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편집자 주) 이 글은 작년 전국청소년연극제 기간 중 부대행사로 열린 ‘한․일 청소년연극제의 비교와 활성화 방안’ 세미나(2005년 10월 29일)에서 유민영 교수가 발표했던 원고를 요약, 정리한 것이다.